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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241화 (241/358)

〈 241화 〉 237. 미카엘의 첫키스

* * *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요? 오늘 바로 오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배고프니까 그래요.”

미카엘은 의심에 가득차 강민을 쳐다봤다. 하지만 강민은 무해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미카엘을 라운지로 데리고 나왔다.

“무슨 생각이죠?”

가벼운 브런치 접시가 앞에 놓여졌지만 미카엘은 손도 대지 않았다. 직전까지 아나이스를 능욕하던 강민을 쉬이 믿을 수 있을리가.

‘경계심이 강하네.’

강민은 태연하게 달걀을 입으로 가져가며 미카엘을 살폈다. 상처입은 새끼여우처럼 머리털을 잔뜩 곤두세우고 자신을 노려본다.

얼핏 보면 중학생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갸냘픈 몸이 소동물 같은 분위기를 더한다.

‘어쩐다...’

솔직히 말하면 강민도 난감한 상태였다. 이런 외모의 여성은 처음 겪어본다. 강민이 만났던 여자들은 최소 C컵. 키도 크게 차이나지 않았던 여자들인데 미카엘은 그와는 백만년은 동떨어져 있었다.

맨 처음 호텔 방에 들어가서 미카엘과 맞닥뜨렸을 땐 깜짝 놀랐다. 평소엔 성당기사단의 갑옷을 입고다녔기에 키만 작고 몸은 다부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갑옷을 벗은 걸 보니 갸냘프기 그지없는 몸매였다.

양심이 없는 강민에게도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정도였으니.

‘흠... 이렇게 된 이상 아나이스하고 이간질도 시킬 겸 상냥하게 해 볼까? 결국 괴롭히긴 할 거지만.’

강민은 그렇게 생각하고 툭 말을 던졌다.

“좀 먹고 생각하죠? 꼬르륵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

미카엘은 보이지 않게 의자를 꽉 쥐어뜯었다. 부끄러움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사실 올라오는 계란과 소시지의 냄새에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한국으로 날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먹은 기내식은 화장실에서 모조리 토해냈다.

스튜어디스가 문을 두드리며 괜찮냐고 걱정해 줄 정도. 강민을 만나서 겪을 일에 대한 극도의 스트레스, 긴장 반응이었다. 그 이후로 물만 마셔도 토하는 상태.

긴장은 캡슐호텔 침대에서 강민을 기다리는 동안 계속 이어졌다. 잔인한 섹스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었는데. 강민이 밥을 먹자며 풍선에 바람 빼듯 긴장을 덜어준다.

“읏...”

여기에 앉자 잊고 있던 허기가 몰려온다. 입에 침이 고였다. 미카엘은 강민의 눈치를 살피다가 포크를 집어들었다.

“무슨 속셈인진 모르겠지만. 난 당신 안 믿어요.”

포크로 날카롭게 지목하며 음식을 입 안으로 집어넣는다. 자칫하면 두 입만에 접시 위의 모든 음식을 삼켜버릴 정도로 배가 고팠다. 그렇지 않도록 자제하며 식사를 해치운다.

“여기, 팬케잌이랑 수플레도요.”

강민은 음식을 좀 더 시켜 미카엘 쪽으로 밀어놨다. 미카엘은 이제 자포자기하고 식사를 즐겼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지. 강민이 무슨 속셈이든, 무슨 짓거리를 하든­ 일단 먹자.

먹어야 에너지도 생기고, 기운도 난다. 강민이 가학적인 짓을 했을 때 육체적으로 힘들면 쉽게 굴복하게 되겠지.

전투에 나가는 신병의 심정으로 꾸역꾸역 음식을 집어넣었다.

“...이제 그만 먹을래요.”

거의 4인분에 가까운 식사를 한 미카엘은 식기를 내려놨다. 주변에선 잘 먹네­ 란 눈빛으로 미카엘을 바라봤다. 수녀복에 가녀린 몸매의 여자가 이만큼 음식을 먹고 있으면 누구든 쳐다보겠지.

“자. 이제 날 잡아먹든. 뭘 하든. 맘대로 하세요.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건 질색이니까요.”

밥을 먹고 당분이 들어오니 머릿속이 그제서야 핑핑 돌아갔다. 강민의 속셈이 뭔지 짐작이 갔다.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강민을 노려봤다.

강민의 취향은 반항하거나 엉엉 울거나­ 하여튼 반응이 격렬한 걸 좋아했다. 지금 이 식사도 자신을 높이 들어올렸다가 바닥으로 내던지기 위한 사전작업이다. 미카엘은 마음을 다졌다.

‘고문에 가까운 섹스를 내게 하겠지. 하지만 난

네가 원하는 대론 절대 해 주지 않을거야.’

곰을 만났을 때 죽은 척을 해서 관심을 돌리듯. 미카엘도 최대한 비명을 참을 생각이었다. 아나이스의 고문 영상은 많이 봤다.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가? 그럼 이제 올라갈까요?”

강민은 에스코트하듯 손가방을 들어주고 미카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뿌리치고 싶었지만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강민.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캡슐호텔로 다시 돌아간 미카엘은 들어가자마자 수녀복을 벗어던졌다. 강민에게 명령할 기쁨을 주고싶지 않았다. 잘 개켜 탁자 위에 놓고 침대 위에 풀썩 대자로 누웠다.

성적인 무드도 아예 잡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 하고싶은대로 하세요. 묶던지. 속옷까지 벗기던지.”

강민은 흥미롭게 미카엘을 관찰했다. 두려움보다는­ 자포자기에 가까워 보였다. 마치 기쁨을 하나도 주지 않겠다는 듯. 어쩔 수 없지. 여자로써의 몸가짐을 알려주는 수밖에.

‘그보다 나중에 속옷부터 갈아입혀야겠군.’

색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검소한 회색 면 속옷. 아나이스가 입고 있는 것과 똑같다. 성당기사단의 보급품인가?

옆에 털썩 주저앉자 미카엘의 몸이 파득 떨린다. 두려워하는군. 좋은 징조였다. 손을 뻗어 가녀린 허벅지를 살짝 쓰다듬으며 물었다.

“부끄러워 하진 않네요?”

“부끄러워야 할 건 당신이죠. 천칭의 벌을 주는 것도 정도껏이지. 그보다. 섹스 안 할 건가요? 언제까지 이러고 누워있어야 하죠?”

강한 척 쏘아붙이지만 말하는 혀가 떨린다. 강민은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았다.

여기서 부드럽게 대해주면 볼만하겠군. 강민도 옷을 차곡차곡 벗어 미카엘의 수녀복 옆에 쌓았다.

마치 모텔에 입실한 사이좋은 커플의 옷무덤처럼 보인다. 와이셔츠, 바지, 그리고 속옷까지­ 벗을 때마다 미카엘의 눈이 강민의 등을, 남자의 몸 라인을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남자 몸은 처음 보나요?”

“...”

미카엘은 속옷을 벗는 순간 눈을 꽉 감고 대답하는 것을 거부했다. 남자의 속옷 아래에 이렇게 거부감을 느끼는 걸 보면 처녀중의 처녀겠네.

강민은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끼며 이불을 미카엘의 몸 위로 덮었다.

호텔캡슐 안의 불을 모두 끄고 강민도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하고 포슬포슬한 이불 안에서 둘의 맨살이 서로 맞닿는다. 시원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허벅지와 허벅지가 스치자 미카엘은 긴장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아­ 이제, 진짜­ 난, 범해지는 거구나­’

아나이스처럼. 비명을 잔뜩 지르며 범해지겠지­

끔찍한 상상을 하며 자신의 속옷을 벗거나 찢길 거친 손길을 대비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살과 살은 맞닿아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가질 않는다. 강민이 손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거나 허리를 감싸고 토닥거려 줄 뿐.

이제 객실 안의 어둠에도 눈이 천천히 적응한다. 눈 앞의 남자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인다.

천진하게. 아무 해도 없는 것처럼. 풀어진 표정으로 자신을 껴안고 쓰다듬고 있다.

‘...뭐지???’

미카엘은 혼란에 빠졌다. 정말로 무슨 생각이야?

“뭐하는 건가요?”

“왜요? 그렇게나 섹스하고 싶어요?”

“그건 아니지만.”

맨 처음 자신을 위협했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이렇게 나오는 게 적응이 안 된다.

“가학적인 것도 제가 좋아하는 플레이긴 한데. 이것도 나름 좋아하거든요.”

강민은 유다를 대할 때보다 더 부드럽게 접근했다. 깨지기 쉬운 얇은 유리잔의 입 부분을 다루듯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쓸어주고. 다른 손으로는 등허리를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쓸어준다.

미카엘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묘한 신음이 나올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따뜻한 쓰다듬을 받는건 생애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악마들림 현상으로 부모님에게 버려지고. 성당기사단에 맡겨져 키워지고. 그동안 자신을 안아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미카엘도 포옹을 원하지 않았다. 악마를 잡아 죽이고. 태워야 하는데. 포옹 따위라니. 사람을 무디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강민이 쓰다듬어 주는 건. 기분이­ 묘했다. 온 몸의 감각신경이 열린다. 등을 규칙적으로 쓰다듬으니 온 몸의 솜털이 일어난다. 강민의 손을 기다리며 파들파들 떨린다.

여우가 사람의 손을 타듯. 어린왕자가 여우를 길들여 한시간 전부터 기다리게 만들었듯. 강민의 쓰다듬이 날개뼈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다시 허리에서 시작되는 쓰다듬을 기다리게 된다.

“잠, 잠깐만요­”

“왜요. 그냥 만지는 것 뿐인데. 싫으면 속옷부터 벗길까요?”

“아, 아뇨... 괜찮아요.”

“그럼 계속 할게요.”

이제 등허리를 쓰다듬는 것뿐만이 아니다. 허벅지 바깥쪽. 종아리. 목 뒤. 머리카락. 목덜미의 잔털. 온 몸을 깃털로 문지르듯 부드럽게 쓸어준다.

어쩐지­ 포근하고 기분좋다. 처음엔 몸이 뻣뻣해질 정도로 긴장했지만. 강민은 그 이상의 행동으로 넘어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정말로 이건­ 평범한 연인의 첫날밤같았다. 부끄럽지만 부드럽고. 젠틀하고.

어느 새 입술이 다가온다. 미카엘은 깜짝 놀라 얼굴을 빼려고 했지만 이미 강민의 손은 도망가지 못하게 머리 뒤쪽을 붙잡고 있다.

그리고­ 키스.

긴장한 성문을 무너뜨리듯. 미카엘의 입술에 새가 쪼듯 쪽쪽. 엄지로 쓸어서 한껏 민감해진 입술에 촉촉한 강민의 키스가 계속된다.

‘무, 무슨­ 남자 입술이 이렇게 부드러워­’

미카엘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머리 한구석으론 의심한다.

이렇게 들어올렸다가 잔인한 섹스를 하려는 것 아닐까­

하지만. 지금 입술에 닿고 있는 키스는 정말 부드럽고­ 상냥한걸­

아나이스한테는 그랬으면서 나한텐 왜 이러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미카엘은 아무것도 못 한 채. 꽉 굳어 키스를 받아들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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