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 220. 유다 누나의 깊고, 깊고, 깊은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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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린 의자를 뒤로 제낀 후 자고 나서야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유다 누나는 운전하며 불평을 재잘거렸다.
“으으... 캠핑카였으면 옆에서 잘 수 있었는데...”
내 옆에 딱 붙어 잠들 수 없는 걸 아쉬워하며, 차 안에 누운 내내 손을 잡고 있던게 꽤 귀여웠다.
잠들기 전 날 쳐다보며 배실배실 웃다가 스르륵 잠들어 버린 것도 귀엽고. 방금 전의 배뇨 플레이같은 건 신경도 안 쓰는 순종적인 태도가 좋았다. 자느라 안경은 잠깐 벗어둔 모습도 새로웠다.
“강민아. 캠핑카같은 건 어떻게 생각해? 살까? 주말에 다같이 놀러간다던가 하면 좋지 않을까?”
플렉스가 장난 아닌데?
“누나, 원래 밖에서 노는 건 안 좋아하지 않았어요?”
외출도 나 만나기 전엔 거의 안 했고. 타투샵에서 손님만 받고, 오피스텔에서 혼자 술 마시는 게 취미인 줄 알았는데. 친구도 아무도 없었잖아. 하지만 유다 누나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음...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영선이랑, 샤를이랑 같이 밖에 돌아다니니까 너무 즐거워서. 자꾸 놀러다니고 싶지 뭐야?”
볼을 긁으며 헤실헤실 웃는다. 맨 처음 타투샵에서 만났을 때의 어두운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밝아 보이는게 참 좋다.
“괜찮은 것 같은데요? 나중에 예림이만 좋다면 같이 놀러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치? 여자 넷에, 강민이 너까지 해가지고 다섯명이서 캠핑장 놀러가면 진짜 좋겠지? 나 모닥불 피워보고 싶어.”
상당히 기대되는지 목소리가 들떠 있다. 유다 누나는 원래 인도어 파가 아니었나보네.
부모님때문에 학창 시절 내내 갇혀 살다시피한 데다가 타투샵에서 강간 미수 사건까지 터져서 방에 박힌 거지, 원래는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타입인가보다.
“그래도 누나 많이 밝아진 것 같아서 좋네요.”
“헤헤. 이거 다 강민이 네 덕분이야. 여자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남자 친구도 생기고.”
누나는 내게 정말 고마워했다. 운전하며 내 쪽으로 뻗어 손을 꽉 잡아준다.
“에이. 유다 누나가 좋은 사람이라 그렇죠. 제가 아니었어도, 언젠간 빠져 나왔을 거예요.”
가볍게 웃으며 유다 누나를 칭찬했다. 그런데 그 순간 차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탁한 물 속에 들어온 것 같은 텁텁함이 몸을 감쌌다.
뭐, 뭐지? 내가 방금 지뢰를 밟았나? 이 기운의 근원지인 유다 누나에게서 무거운 분위기가 풀풀 흘러나온다.
“언젠가? 아냐. 못 빠져나왔을 걸.”
룸미러로 나를 보는 눈이 어둑하니 깊다. 아침인데 한밤처럼 어두운 눈동자였다. 갈라진 스플릿텅으로 자신의 입술을 적시며 내 말을 대뜸 부정한다.
어, 어라?
유다 누나가 앙금이 가라앉은 탁한 목소리로 우울하게 중얼거린다.
“강민이 네가 없었으면 난 아직도 혼자 힘들어하고 있었을 거야. 남자 볼때마다 공황발작 일으키고, 친구도 한 명도 없이 쳐박혀 있었을 거고 나같이 음침하고, 어두운 여자가 왜 좋겠어.”
이 누나 갑자기 왜 이래! 무섭다고!!
“사실, 타투중에 몇 개는 자해한 흔적 가리려고 한 거거든...”
흘끔. 누나의 타투를 살폈다. 고래 타투인가? 아니면 손목 쪽의 악보 타투? 유다 누나는 슬쩍 손목을 가리며 계속 중얼거렸다.
“만약 네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상처가 더 늘었겠지? 진짜로, 강민이 네가 남자친구여서 정말 다행이야...
나, 절대 버리면 안 돼. 너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냐...뭐든 다 해줄게. 영선이한테 해 준 화장실 문신, 나한테는 쌩으로 해도 상관없어.
다 보이는 곳에 네 이름 새겨도 되고. 다른 사람이랑 자라고 하면 잘게, 인터넷에 내 얼굴 올려도 되고. 막 피멍 들 때까지 때려도 괜찮아. 아니면, 예전에 나한테 코 피어싱 시켜러던 거, 그런 것도 해줄게”
아이고!
대뜸 파멸적으로 사고가 튀는 멘헤라적인 버릇은 아직도 남아 있구만!
멘헤라의 특징이 이런 거다. 괜찮아 보이다가도 말 한마디에 갑자기 급발진을 한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하나의 신호에 파멸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의존하고, 뭐든 해주려고 하고. 나는 아마 지금 유다 누나에게 완전히 신적인 존재겠지. 아마 내가 오피스텔 소유권을 공동명의로 해달라고 하면 기뻐할걸.
‘누나 남자친구가 나여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악독한 남자한테 걸렸으면 정말 몸과 정신, 돈까지 모두 너덜너덜하게 쪽쪽 빨렸을 거다.
클리토리스에 피어싱 박히고 남자 똥구멍에 입술에 키스하는 것마냥 딥키스하고, 울면서 앞보지 처녀, 뒷보지 처녀 다 따이고 남자한테 빌빌 기면서 여친 취급도 못받고 간편한 오나홀처럼 쓰였겠지.
‘어라...? 나랑 섹스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나?’
그래도 난 기둥서방까진 아니잖아? 여자친구답게 소중하게 대해주기도 하고! 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방금 전까지 했던 방뇨플은 잊고 합리화하며 유다 누나를 달랬다. 잠시 갓길에 차를 댄 후 누나를 내 쪽으로 끌어당기고, 토닥토닥 해주며 말을 골랐다.
유다 누나는 어두운 표정으로 내게 안겨 떨고 있다.
“강민아. 진짜로. 뭐든 다 해 줄게...”
그러며, 자신을 내던지듯 애원한다.
마음이 무겁다. 뭐라고 말을 해줘야할까. 지금도 어둠 속에 갇혀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은 뭐가 있을까.
필사적으로 유다 누나를 도울 말을 찾았다.
나도 어두운 시절을 지나왔었다.
내 인생이 빚을 갚기 위해 돌아가는 기계같았던 때.
세상이 무채색이었던 때.
부모가 물려준 빚은 내게 질척질척하게 들러붙었고, 아르바이트는 필수였지만 공부도 병행해야했다. 나는 절박했다.
한 번이라도 장학금을 타지 못하면 그대로 휴학해야 했고. 레일에서 벗어나는 순간 내가 세웠던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 그래서 친구도, 삶도 없이 끊임없이 쳇바퀴를 돌았다.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 공부, 그리고 수업, 오후 세시면 아르바이트 밤 열한시까지. 과제. 새벽 한 시에 잠들고. 일곱시면 다시 일어나 장학금을 위해 공부.
주말에는 또 아르바이트.
그 안에서 내게 위안이 됐던 건 예림이가 해줬던 말들이었다.
오빠, 왜 그렇게 졸아요?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했다고요? 진짜 열심히 하네요. 힘들겠다.
오빠 멋져요. 화이팅!
힘내요. 커피라도 내려드릴게요. 드시고 하세요.
눈 좀 붙여요. 사장님 오시면 말해드릴게요.
내 옆에서, 말을 들어줬고. 위로해 줬고. 칭찬해 줬고. 그리고 내가 충분히 가치있고. 빛나는 사람이라고 알려줬었지.
그래. 사람을 어둠 속에서 구해 주는 건 그런 말들이겠지.
“...누나. 이거 보여요?”
내 손목에 새겨진 타투를 보여줬다.
강민, 유다, 샤를, 영선. 넷의 이름이 새겨져 이리저리 얽혀 있다.
유다 누나는 손가락을 뻗어 내 타투를 더듬어간다.
거기에, 살짝 마력을 돌렸다.
푸르스름한 빛이 문신을 타고 움직인다. UV도료로 새겨져 보이지 않는 문신에도 마력이 도니 새파랗게 빛난다.
“제가 아는 분이, 이 문신 진짜 걸작이라고 했어요.”
“진, 진짜?”
“그럼요.”
저번에 마력 사용법을 배우러 박성연에게 갔었을 때 해준 말이다. 마력 구동법을 배우는 동안 박성연은 내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어이없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 문신 뭐냐? 거의 아티팩트 급인데?’
크라바트 효과를 일으킬 만큼 강렬한 사념을 담은 룬 문자들과, 문신을 새겨준 사람의 마음까지 합쳐져 강렬한 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그 덕에 아나이스를 괴롭히는 여러 마법도 쉽게 습득할 수 있었고.
‘그리고, 문신사 실력이 미쳤구만. 룬 문자들 간격 오차가 0.1mm 이내야. 이 정도면 역사에 길이 남을 수도 있겠네. 대체 누구야?’
‘...제 여자친구요. 유다라고 있어요.’
그래. 내 여자친구.
날 너무나 사랑하는 유다 누나. 어둠 속에서 내 손을 붙잡고, 언젠가 이 손이 자신을 놓을까봐 불안해하며 엉엉 울고, 엎드려 비는 유다 누나.
그렇게 불안해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누나 문신 실력이 진짜 대단하대요.”
“아냐. 그 정도까진 아냐...”
유다 누나는 양손을 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칭찬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
“그렇게 자기를 너무 낮추지 않아도 괜찮아요.”
유다 누나의 인생은 지금까지 가시덤불 속을 헤쳐온 것이었는데. 그런 시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멋진 타투 실력을 피워냈는데.
인생이 가시장미를 누나에게 건냈음에도 불구하고, 멋진 가시장미 꽃다발을 만들어 낸 유다 누나인데.
“누나. 누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예요.”
누나는 충분히 멋지고, 타투도 잘하고, 힘든 시련을 다 이겨내고 있는 사람이예요. 내가 아니었어도 언젠가 어둠을 빠져나올 수 있었을 거예요.
만약 누나가 믿지 못하겠다면.
“믿을때까지 말해줄게요. 언제까지고. 거짓말 같아도. 그게 진짜로 느껴질 정도로 말해줄게요.
누나는 진짜로 대단한 사람이고. 예쁘고. 멋지고. 내 소중한 사람이예요.”
“싫, 싫어 왜, 그런 말 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 아닌데 싫어, 그냥 막 대해줘”
유다 누나는 울먹이며 고개를 흔든다.
누나의 어둠이 생각보다 깊다.
칭찬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차가운 물고기가 인간의 체온에 화상을 입는 것처럼. 항상 어둡고 차가운 곳에서 살아온 유다 누나에게 칭찬은 너무나 뜨겁고 아프다.
상처로 자신의 삶을 자각할수밖에 없던 유다 누나. 피어싱으로, 스플릿 텅을 하며 혓바닥을 메스로 자르며, 자해를 하고 그 위를 문신으로 덮어가며. 상처만이 자신의 삶을 자각하게 만들었던 유다 누나.
가슴이 아파왔다.
“누나, 상처 말고도 세상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옆에서 언제까지고 같이 있어줄 테니까. 그렇게 저한테 애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둠 속에서 손을 내민 건 나다.
누나를 일으켜 빛 아래로 데려온 것은 나다.
남자친구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겠지.
언젠가 이때를 기억하며, 그때는 그랬지 하고 웃으며 추억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다.
물론... 거친 플레이는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유다 누나에게 많은 사랑을 퍼부어주고싶다. 비처럼 꾸준히 많이.
누나를 꽉 껴안고 속삭였다.
“사랑해요. 유다 누나. 정말로.”
유다 누나를 계속 토닥거려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유다 누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애원하지 않아도 사랑받을수 있다니, 누나에겐 못 믿을 말이었다.
“그런 거, 내 부모도 나한테 못 해 줬는데. 네가 진짜로 해 주겠다고? 말이 돼? 그냥, 내가 해 주는 거 받아주면 안 돼? 돈도 줄 수 있는데...”
유다 누나는 대가 없는 사랑을 믿지 못한다.
“안 돼요. 그런 거 없어도 사랑하니까.”
“못 믿겠어.”
한참의 반복된 실랑이가 이어지다 유다 누나가 입을 삐죽였다. 마지못해 수긍한다.
“...일단 알았어.”
아직 설득하려면 한참 남았군. 진이 다 빠질 지경이다. 이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 같아 화제를 돌려봤다.
“그런데 누나. 저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우리는 호남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인터체인지 근처 갓길에 차를 세워놓았다. 하지만 유다 누나는 나에게 설명하지 않고 망설였다. 추론하는 수밖에 없지.
“전주? 광주? 아니면 보성? 그 쪽으로 여행가고 싶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유명한 곳들을 말해봤다. 하지만 누나는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누나 민증 주소가 여기 전남 어디로 되어있지 않았나??
네명이서 처음으로 술먹은 날에, 꼴아버린 유다 누나를 집에 데려다 주려고 봤었지. 이젠 희미한 기억밖에 안 남았지만...
“그러고 보니. 여기 누나 고향 아니에요???”
말을 들은 유다 누나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나를 쳐다봤다.
“강, 강민아. 그건 어떻게 알아?”
뭐, 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태연한 척 하며 이야기를 했다.
“저번에. 민증 봤었는데. 주소지가 이쪽이더라구요. 왜요?”
“아하, 그, 그랬구나...”
유다 누나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한참 그런다.
진짜 뭐지? 내가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유다 누나가 마음을 다지고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래?
“사실. 이번에.
내 부모란 인간들, 보려고, 내려온 거야.”
뭐?
잠깐.
이거 상견례... 비슷한 자리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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