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216. 영선의 깊디깊은 속마음. 그리고 유다의 턴!
* * *
“임, 임신이요???”
영선 누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굴 보고 말하는 게 부끄러운지 나를 욕조 안으로 끌어들여 앉히고 뒤에서 포옹했다.
조용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등에 닿는 숨결이 간지럽다. 하지만 영선 누나가 뱉는 말은 꽤 진지했다. 호텔의 욕조에서 작은 고백이 흘러나온다.
“강민아. 나는 가끔 무섭다?
네가 지금은 나랑 섹스해 주지만, 언젠가 나한테 질려서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그럴 리 없잖아요.”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키스해 줄 요량으로 몸을 돌렸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영선 누나가 나를 단단히 껴안고 있다.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럴리 없긴.
나중에 샤를이 나로 변신해서 놀아주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고 할 거잖아. 내가 못하겠다는 타투도, 피어싱도 전부 할 수 있고.”
순간 머리가 띵했다.
누나의 말뜻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속에서 화가 좀 올라온다.
결국 영선 누나를 버리고 갈아탈 인간으로 생각하는 거잖아. 날 너무 쓰레기로 보고 있는 거 아냐?
절대 아닌데 말야.
샤를과 예림을 만나며 오히려 더 잘 알게됐다.
얼굴이 똑같아도 전혀 다른 사람이다.
샤를이 러브돌즈의 벨라로 변신해서 한번 섹스해 준 적이 있었지.
할 땐 흥분됐었다. 진짜로 벨라와 섹스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하고 애프터 토크를 하는 동안 깨달았다.
아, 결국 샤를과 섹스했구나만 느껴졌다.
샤를이 영선 누나로 변신해도 똑같다.
흉내를 내는 것 뿐.
진짜 영선 누나가 훨씬 더 좋다. 영선 누나를 다른 누군가로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 적도 없다.
물론 타투와 피어싱같이 흔적 남기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안 한다는 영선 누나를 샤를로 대체하고 버린다니. 그럴 리 없잖아. 억울한 마음이 솟았다.
“누나, 그”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건 정곡을 찔려서 화가 난 거다.
어쩌면 나는 진짜로 그런 인간일지도 몰라, 하는 마음 속의 목소리가 화를 내게 만든 것.
따지고 보면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이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사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나는 영선 누나가 믿음이 생기게 행동했을까?
그럴 리 없지.
매일 다른 여자 만나고. 섹스할 때 가학적으로 섹스하며 비웃고. 섹스 끝났을 때만 사랑한다고 해 주고.
그리고 예림이가 들어온 이후의 하렘 상황이 괜찮은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불편한 건 모두 듣지 않고, 그냥 여행 가자는 것에 신나서 끌고 오고. 결국은 내 마음대로 영선 누나를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
...남친 실격이네.
반박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말을 멈췄다. 다행히 영선 누나는 내 침묵을 경청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계속 말을 이었다.
손가락으로 내 등을 살짝 스쳐가며 묻는다.
“어쩌면 네가 진짜로 예림이랑만 놀게 될 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난 어떻게 해?
네가 나 이렇게 만들었잖아. 오줌도 아무렇지 않게 마시고, 질내사정도, 항내사정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클리토리스 짓뭉개도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촬영한 걸 인터넷에 올려도 좋다고 수락하고.
이게...싫다는 건 아니지만. 걱정돼.
네가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 떠난다면. 그래서 너랑 평생 못 보게 된다면. 샤를과 예림이만 있으면 충분하다면서, 그렇게 떠나버린다면...”
누나는 훌쩍이는 중이었다. 촬영 중의 눈물과는 달랐다. 정말로 무서워하고 떠는 중이었다.
몸을 돌려 영선 누나를 꽉 껴안았다.
“절대 안 그래요. 누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선 누나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나를 꼭 껴안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포옹을 갈구한다.
“그걸 어떻게 믿어... 넌 매일 다른 여자 만나고 다니잖아. 게다가 내일이면 유다 언니랑 여행갈 거면서...”
언제나 용감하고 웃음기 넘치던 영선 누나는 없다. 같이 알바하던 시절의 모습은 오래된 과거로 밀려나고, 사랑 앞에서 약해지고 두려워하는 모습만 남았다.
사랑이라는 사슬에 잡혀서 내가 부탁만 한다면 뭐든 해 주고 싶어하는 영선 누나. 변기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책임감에 머리가 쭈볏 설 정도였다.
내가 누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구나.
양심의 가책에 아무 말도 못하는 동안, 영선 누나는 속마음을 계속 털어놨다.
“만약에... 내가 네 아이라도 임신한다면.
그래서 널 묶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어.
강민이 너, 아기 지우라고 할 정도로 나쁜 놈은 아니잖아?”
“...후우...”
충격에 입에서 한숨이 저절로 새나온다.
영선 누나가 임신까지 하고 있을 줄은 정말 추호도 몰랐다.
“미안해요. 누나. 진짜 미안해요. 누나 그렇게 불안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
누나를 껴안으며 귓가에 계속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영선 누나도 답하듯 날 더 꼭 껴안는다.
탄탄한 근육들은 슬픔으로 바들바들 떨리는 중.
죄책감에 가슴이 아프다...
‘지금에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같이 여행오길 정말 잘했네.
다른 여자들 있는 곳에선 절대 듣지못할 이야기다.
영선 누나를 안고 달랬다.
“미안해요. 누나. 제가 확실히 말했어야 하는데. 저 누나 진짜 좋아해요. 버리거나 그럴 일 없어요. PC방 알바할 때부터 누나 좋아했어요. 이제 와서 버리다뇨.”
“진짜...? 진짜 나 좋아했어...?”
뭐, Love는 아닌 Like였지만. 호감 자체는 꽤 있었다고. 안 그러면 사장이 지랄하는 거 그렇게 커버 쳤겠어? 그리고 서큐버스의 꿈 안에서도 누나 얼굴로 놀기도 했었고.
“당연하죠. 누나 사랑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겠어요. 그런 말 하지 마요. 누나.”
“진짜, 진짜지? 강민아, 나 버리면 안 돼”
영선 누나가 내 가슴팍 안에 얼굴을 묻고, 내 심장 소리를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우린 그렇게 한참동안 안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북처럼 울리는 심장소리를 나누며. 따뜻한 물이 욕조 밖으로 넘칠 때까지 가만히.
“...믿을게.”
영선 누나는 그제서야 진정했는지 뒤로 물러났다.
“어쨌든, 임신 있잖아. 가볍게 생각하고 한 이야기는 아니야. 진짜로. 진지하게 생각해 줘.
단 둘이 있을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덕분에 마음 정리가 좀 되네.”
영선 누나는 할 말을 다 했는지 씨익 웃었다. 평소의 밝고 쾌활한 상태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눈가가 우느라 새빨갛다.
미안한 마음에 다시 영선 누나를 껴안고 쓰다듬었다. 누나도 기분이 꽤 풀렸는지 내 팔뚝을 가볍게 치며 웃었다.
“솔직히 너, 내가 임신해도 괜찮다면서 매달릴 때 기분 좋았지.”
“아, 아뇨? 제가 그런 쓰레기일리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 괴롭힐때랑 똑같은 표정이던데.”
가슴이 뜨끔했다.
젠장.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 매달리는 영선 누나의 모습에 뒤틀린 만족감을 느끼긴 했어!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고!
“너도 진짜 나빴다.”
내가 속마음을 들켜 말을 못하고 있자 누나가 내 어깨를 지그시 깨물었다. 이빨자국을 남겨가며 나를 괴롭힌다.
솔직히 내가 잘못해서 할 말이 없네.
뭐, 이렇게 된 김에 진짜 쓰레기처럼 굴어볼까?
날 무는 영선 누나를 떼어내고 웃으며 말했다.
“누나. 나 누나 타투했으면 좋겠어요.”
“...진짜 나쁜 새끼.”
영선 누나는 그렇게 쏘아붙였다. 방금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는 비난이었다. 하지만 눈은 피학적인 쾌감으로 크게 확장되어 있고, 숨은 열기를 띈다.
자신의 갈색 피부를 눈으로 이리저리 훑으며 툭 말을 던졌다.
“...어디에 해 줬으면 좋겠는데? 남들 볼 수 있는 데엔 안 되지만...”
“알아요. 그거 생각해서 말하는 거예요.”
하트 모양으로 정리한 보지털을 톡 두드렸다.
“여기 다 깎은 다음에 하면 아무도 못 보겠죠? 팬티 입기만 해도 가려질텐데. 어때요? 괜찮아요?”
누나가 상상했는지 얼굴을 화악 붉혔다. 하지만 상상조차 못한 일은 아닌지, 더듬거리며 타투의 종류를 물어본다.
“뭐, 뭐 타투 시킬 건데...”
의외로 마음의 준비는 됐나 보네? 하긴. 내가 타투와 피어싱 노래를 불렀으니 말야.
들으면 놀랄 텐데. 웃으며 손가락으로 보지 위에 타투 도안을 그렸다.
“남자화장실 표시랑요. 마크 가운데에 두고 W.C 타투한 거 보고 싶어요.”
“야, 야...”
내 도안을 들은 영선 누나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른다.
변태 같은 걸 시킬건 예상했지만, 이렇게나 심한 타투를 요청할 줄은 몰랐나보다.
뭐. 남자화장실 표시라니. 스티커로 붙인다고 해도 기겁할만한 물건이다. 영선 누나는 연신 너무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런 거 하면 시집 못가...”
하긴. 신랑이 첫날밤 치르려고 속옷 벗겼는데 보지 바로 위에 남자화장실 문신이 있으면 기겁하다 못해 이혼하겠지.
하지만 그런 걸 왜 걱정한담.
어차피 누나 다른 사람 만나지도 못할텐데.
“그건 걱정하지 말고...”
소근소근. 누나의 귀에 속삭였다.
타투 대신 넘겨줄만한 조건은 있어야겠지.
내 말을 들은 영선 누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뭐, 뭐? 잠깐. 진짜야?”
내가 제시한 조건은 예상 못했는지 눈이 크게 떠진다. 얼굴이 빨개지고 어안이 벙벙해져 날 꿈뻑꿈뻑 쳐다보는 중이다.
“물론... 여러가지로 이야기 해봐야겠지만요. 그냥 대략적인 계획일 뿐이고. 예림이랑도 협의해 봐야 하고.”
“응, 응. 그치...”
영선 누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손가락은 바쁘게 움직인다.
“집은 어디에 구하게? 그리고 아빠한테 허락은 어떻게 받지...? 아니, 그보다 동거하는 여자만 몇 명이 되는거야...?”
“뭐. 그건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구요. 어쨌든. 내일은 같이 가서 타투 받기로 해요.”
“으, 으으...”
영선 누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자신의 둔덕을 손으로 가렸다. 하지만 이미 약속했잖아? 결국 영선 누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일은 유다 누나 보고. 그 다음날 여행 준비도 하고 해야지.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와 수건으로 온 몸을 닦아주기까지 했다. 가운을 입혀 껴안고 칼 호텔 침대에서 잠들었다. 침구류가 정말 푹신푹신하네.
그리고, 그 다음날.
영선 누나는 서울로 돌아와 유다 누나의 작업대 위에서 얼굴을 가리고, 치욕스러워 하는 중이었다.
“자, 잠깐만 유다 언니한테 타투 받는다는 건 못 들었는데!”
“타투 받을 사람이 달리 누가 있겠어요. 남자 손에 맡길 순 없잖아요? 그리고 아는 사람한테 받는 게 더 낫지 않아요?”
“그건, 그건 아닌 것, 같은데에!”
사악. 사악. 사악. 일회용 면도기로 하트 모양 보지털을 밀리며 영선 누나는 부끄러움의 비명을 질렀다.
곧 더 부끄러워질 텐데. 하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