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화 〉 212. 영선 누나와의 부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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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에서 영선 누나는 엄청 기뻐하며 쉴새없이 재잘재잘 떠들었다. 이렇게까지 신나하는 건 처음 보는데. 나랑 여행가는 게 그렇게 좋은가?
“이렇게 남자랑 단둘이 여행 가보는 거 처음이거든. 체육관 오빠들이랑 전지훈련은 많이 가 봤어도 남자친구랑 여행이라니!”
아하. 그래서였구만. 옆에 달라붙는 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나도 웃었다. 근데 묘하게 신경쓰이는 게 있었다.
“누나, 너무 야하게 입고 나온 거 아니에요?”
여행가느라 신난 건 알았겠지만, 복장이 눈 둘 데가 없네. 허벅지를 다 드러내는 초미니 흰색 숏팬츠라니. 아까 기차역에서부터 남자들이 힐끔거리더라고.
근데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고 있자, 영선 누나가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뒤 귀에 속삭였다.
‘이거 생각나? 강민이 네가 처녀 뚫어줄 때 입었던 거다?’
정선에서 입었던 그거구나! 젠장할! 기차 안에서 그런 거 말하지 말라고! 더럽게 꼴리잖아!
지금 당장이라도 핫팬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싶은 마음을 참고 누나를 말렸다.
"누나. 이번엔 진짜 꽁냥거리는 데이트 하고 싶다면서요!"
야한 거 배제하고! 여행가기 전부터 말했으면서! 영선 누나도 팔짱을 풀고 큼큼 헛기침을 했다.
"그, 그렇지. 맞아."
잠시 마음을 다잡다가 억울한 듯 나를 보고 울상을 지었다.
"나. 나도 처음엔 건전한 데이트가 좋았거든? 근데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
건...전? 그랬나?
내가 한 데이트 내용을 생각해봤다. 성인용품 샵에서 원피스 들추고 애널 희롱하기. 옷가게에서 팬티 노출시키기 등.
응. 내가 쓰레기였네!
"알았어요. 잘못햇어요. 누나. 이번 여행에선 진짜로 다른 커플처럼 다녀요. 길거리에서 바지 안으로 손 안 집어넣을 거구요. 가슴 안 만질 거구요. 야한 옷 안 입힐거고. 최대로 해봤자 키스만 할 거예요!"
"지, 진짜?"
말을 듣는 영선누나마저 놀랄 정도였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쓰레기같았는지 짐작이 가는군. 뭐. 이번 여행에선 자제해야지.
내 선포를 들은 영선 누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우물쭈물하며 조건 하나를 더 걸었다.
“그, 그래도 스킨십 너무 없는 건 싫어. 뽀뽀는 괜찮아. 많이 해 줬으면 좋겠어. 한... 천 번 정도...?”
...비유적인 표현이겠지?
“알았어요. 일단 옷부터 갈아입어요.”
영선 누나의 캐리어를 꺼내 안쪽을 뒤져 좀 멀쩡한 옷을 찾았다.
"아니, 무슨 전부 다 숭한 옷들밖에 없어!"
허벅지를 노출하지 않으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는지 전부 초미니 팬츠 뿐이다. 영선 누나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날 바라봤다.
"하지만 강민이 너... 이런 거 좋아하잖아..."
평소의 당당한 태도와는 다르게 부끄러워하는 게 꼴리긴 하지만! 나는 그 중에서 멀쩡한 데미지 청바지를 손에 쥐어주고 화장실로 보냈다.
"갈아입고 와요!"
"응, 응"
영선 누나가 옷을 갈아입고 오자 그제서야 좀 멀쩡한 커플같은 차림새가 됐다. 벌써부터 진이 빠질 지경이로군.
멍하니 있다가 기차여행의 로망이 생각났다. 기차여행이면 당연히 기차 안에서 뭔가 마셔줘야 하지 않겠어?
"누나. 매점 갈래요?"
"갈래! 안 그래도 출출했는데!"
열차 매점에서 카스 두 캔과 육포를 사서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 밖의 풍경이 씽씽 지나간다. 누나가 가볍게 짠, 하며 맥주를 마셨다.
“히히. 좋다...”
영선 누나의 입가에 수염처럼 거품이 달라붙었다. 웃으며 엄지로 거품을 쓸었다.
"누나. 귀여워요."
"귀, 귀여워???"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지고 눈이 이리저리 방황하다, 큼큼 헛기침을 하며 내게 기댔다.
"있지. 나는 오빠들이 많았지만... 항상 말괄량이 여동생 포지션이었거든. 귀엽다는 말보다는 좀 얌전히 있어라 나무 좀 그만 타라. 이런 소리밖에 못 들었어.”
"그래요?"
민수 형이나 다른 관원들이 날 잡아먹으려고 드는 걸 보면 엄청나게 아끼는 여동생이었을텐데. 아마 그 사람들도 직접적으로 귀엽다는 말은 안했나 보다.
"너처럼 항상 예쁘고, 귀엽다고 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야."
귀끝까지 붉힌 채 내 팔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성 취향도..."
내 팔을 끌어당겨 바지 지퍼 위로 올리려고 한다.
잠깐만 신경 안 쓰면 이런 꼴이네! 샤를보다 더 서큐버스같은 누나다!
"누나, 멈춰요!
꽁냥거리는 커플이라니까요!"
"읏, 앗차. 그랬지?"
영선 누나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부끄러운 듯 맥주를 비워버리고, 육포를 씹으며 내 손을 조물거린다.
“맥주 더 마실래.”
둘 다 기분 좋을 정도로 취해서는 열차칸으로 돌아왔다. 옆자리에 앉아 손을 잡고, 아무것도 안 하고 느긋하게.
순진한 연인처럼 가끔 볼에 뽀뽀. 입술에 뽀뽀정도 하며 부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앗차. 렌트카 빌리려고 했는데."
생각조차 안하고 무의식적으로 맥주를 마셔버렸다, 젠장! 이렇게나 멍청한 짓을!
내가 당황하자 영선 누나가 웃으며 내 팔을 퍽퍽 때렸다.
"야. 괜찮아! 택시 타자!
그리고 렌트카 끌면 저녁에 술 못 먹잖아!"
"...생각해보니 그렇네?"
체크인을 해놓고, 택시를 타고 벽화마을로 향했다. 사진이 잘 나오기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을 삥삥 돌아 올라가는 단점만 빼면 말이지.
"히. 어때? 귀여워?"
천사 날개 앞에서 선 영선 누나는,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뭇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예쁘게 탄 피부. 백금발의 머리카락. 그리고 170cm가 넘는 늘씬한 키. 운동으로 다져져서 흑표범처럼 날렵한 몸.
역시. 새삼 영선 누나가 얼마나 예쁜지 실감이 난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사진을 몇십 장에 가깝게 계속 찍었다.
"강, 강민아? 누나 부끄럽거든?
이제 그만해도 될 텐데?"
"에이. 예쁜데 왜요?
이렇게 놀려주는 재미도 있네. 누나의 얼굴이 새빨개져서 주변의 눈치를 살핀다.
"죄송, 죄송합니다. 남자친구가 바보라서..."
가까이 다가와서 내 옆구리에 일인치 펀치를 날렸다. 아주 짧은 거리에서 내지르는 이소룡의 주특기!
맞으면 아마 간에 전해지는 충격으로 무릎을 꿇고 위액을 토해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피했습니다!
영선 누나와 같이 운동한 짬빱은 허투루 먹은 게 아니다.
영선 누나는 피한 나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다.
"피해? 감히?"
진짜 죽일 기세로 옷깃잡기를 시도하는 영선 누나에게서 최대한 멀어지며 이야기를 돌렸다.
한 번은 피했지만 여기서 제대로 잡히면 진짜 죽는다!
눈이 곰처럼 변했잖아! 지금 완전히 전투 모드로 들어간 거라고!
"누나, 멈춰요! 카페 갈래요?"
카페에 가자는 말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다.
"카페를 가느니 차라리 일찍 술 먹는게 낫지 않아?"
이런 선머슴같은 성격은 변하질 않는군.
"음. 그러면 한군데 더 보고 회시장 가죠!"
이번엔 국제시장으로 무대를 옮겼다. 사람들 눈 피해서 가게 구석에서 뽀뽀도 하며 주변을 돌아봤다.
"우와. 예쁜 거 많다!"
누나가 옷들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나도 구제샵에 재미있는 물건이 있어서 하나 샀다. 영선 누나는 좋아하려나?
"그러고 보니까 누나 부모님 선물 사가야 하나?
아빠한테는 뭐라고 하고 왔어요?"
그걸 물어보자 영선 누나가 얼굴을 붉혔다.
"어, 음. 사실 이번에 정식으로 말했거든.
아빠한테 강민이랑 사귀게 됐다고."
"..."
언젠가는 말해야 할 문제였지만. 소름이 돋았다.
"뭐라고 하셔요?"
"나중에 같이 밥 한번 먹자고 하시네.
도장으로 찾아오래."
"...죽이시진 않겠죠?"
"나도 옆에서 막아줄게...
혹시 모르니까 선물로 호박엿이랑. 꿀좀 사가자.
화를 좀 누그러지게 할 수도..."
완전히 곰한테 주는 간식 수준이네!
물건만 정해놓고 돌아갈 때 사기로 이야기 한 후 우린 시장을 한참 돌아다녔다.
“이거 봐! 움직인다!”
영선 누나는 초등학생처럼 주변에 보이는 모든 골동품들을 만져보며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이런 순수한 모습이 참 끌린단 말이지.
맨 처음에 피시방에서 알바 누나로 만났을 때도 장난도 잘 쳐주고. 즐겁고.
예림이랑 만나지 않았더라면 영선 누나와 잘 됐을지도 모르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나가 날 바라봤다. 웃으며 묻는다.
"무슨 생각해?"
"누나 처음 만났을 때 생각.
누나 그때도 예뻤거든요.
물론 옷이 항상 스포츠브라. 레깅스. 이래서 눈 둘덴 없긴 했지만."
누나가 뭐야, 하면서 나를 툭툭 쳤다.
이번엔 곰이 아니라 고양이네.
쑥쓰러워하면서도 나와 손깍지를 끼어오며 헤헤 웃는다.
"음. 나 술 마시고 싶어!"
“그래요? 그럼 갈까요?”
어시장에서 회를 떠서 맥주 피쳐와 소주를 들고, 광안리 바닷가로 향한다.
먼저 온 손님들이 많지만 그래도 넓디넓은 바닷가.
우리가 앉을 자리는 충분했다.
자리에 앉아 간이 야외 술판을 펼쳤다.
"...멋지다..."
노을지는 광안리 대교를 보며 술을 마시고. 중간중간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헌팅을 시도하다 실패하는 남자들을 보며 킥킥 웃고.
정말 완벽한 첫째날 여행이다. 풋풋한 연인들같이.
우린 적당히 취한 상태로 호텔로 돌아왔다.
“누나 먼저 씻어요.”
“응, 응...”
누나는 새삼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샤워도 하고. 묶지도 않고. 부끄러운 옷을 입는것도 아니라니. 진짜로 완전 순애 커플같다.
누나가 내가 씻는다. 샤워가운을 두른 누나의 옆에 앉자 영선 누나가 촉촉한 눈동자를 하고 내 손을 잡았다. 솔직히 이러고 있으니 나도 떨린다. 제대로 된, 연인 사이의 첫날밤을 다시 겪는 기분.
떨리는 목소리로 누나가 물었다.
“강민아...
오늘은 상냥하게 해 줄거야?”
“그럼요.”
영선 누나의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하며 가운을 벗겨간다.
옷 입고 하는 섹스도 아니고. 촬영도 안하고. 애널섹스도 안하고.
부드러운 키스에 영선 누나의 표정이 녹아내린다. 사랑에 빠진 소녀같은 모습. 강간에 가까운 플레이로 매일 울부짖던 영선 누나에게선 볼 수 없던 표정이다.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강민아, 사랑해♥”
“저도요.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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