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211. 미카엘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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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은 망설임 없이 추천 버튼을 누르고 리뷰를 이곳저곳에 퍼다날랐다. 최고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봐줬으면 좋겠다는 일념이었다. 이 영상이 잘나간다면 경민이 훨씬 더 영상을 많이 만들 거 아냐!
그리고 장봉이 남긴 리뷰는 레딧 게시판에서 번역까지 돼서 세계 이곳저곳에 퍼져나갔다. 리뷰를 보고 속이 뒤집히다 못해 천불이 난 미카엘은 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 강민 씨. 이건 너무하지 않나요! ]
“너무하긴 뭐가 너무합니까?”
[ 대놓고 마법 쓰는 건 그래요. 이건 별 문제 없다고 쳐요. ]
멍청한 인간들 같으니, 이걸 CG라고 믿다니. 미카엘은 CG 수준이 언제 이렇게까지 올라왔냐고 감탄하는 폰허브의 댓글을 보고 허탈함에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 아나이스의 팔다리를 대체 어떻게 한 거에요! ]
미카엘은 상상도 못한 신성 모독적 플레이에 경악했다. 십자가 모양 피어싱. 애널섹스. 거기에 사지절단이라니. 가장 악독한 악마들에게도 쉬이 내려지지 않는 형벌이었다. 도대체 강민은 5년 후에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 생각인가?
하지만 강민은 태평하게 대답했다.
“그거 자른 거 아닙니다. 잠깐 분리시켜놓은 거에요. 감각도 다 있고, 5년 후엔 깔끔하게 원복시켜서 되돌려 보낼거에요.”
강민의 반박에 미카엘은 어이가 없었다.
[ 그런 마법이 어디있어요, 말이나 되는! ]
소리를 지르던 미카엘은 잠시 멈칫했다. 주교가 붙잡아 놓고 싶어할 정도로 원하던 샤를. 그녀의 마력과 서큐버스의 마법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잠시 멈칫한 사이 강민이 심드렁하게 이야기했다.
“애초에 벌을 받고있는건데. 저 정도는 돼야 벌 아닐까요? 뭘 기대하셨는데요? 부드러운 키스에 음악. 촛불을 켜 놓고 분위기 있는 아날섹스? 미카엘도 첫날밤에 대해 뭔가 환상 같은게 있으신지?”
강민의 비꼼에 미카엘은 얼굴을 붉혔다.
환상이 있든 없든, 싸구려 모텔방에서 팔다리를 빼앗긴 채, 자궁을 괴롭힘당하는 동료를 보는 건 예상 외였다. 그러나 비꼼에 당황한 미카엘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강민은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하여튼. 아나이스한테 벌 주는 건 제 소관입니다. 5년 후에는 이전과 똑같은 상태로 되돌려 보낼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계약서 보셨죠?”
계약서를 보긴 했다. 5년 후 원상복구. 하지만 아나이스가 예전과 몸은 똑같아도 정신은 다른 사람이 될 것 같아 뭔가 말을 꺼내려 했다. 그러나 강민은 이미 전화를 뚝 끊어버린 후였다.
미카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강민의 처사는 심해도 너무 심했다.
‘애초에 남녀 사이의 성관계는 주님의 축복 속에 태어날 아이를 위한 건데, 항문 성교라니...!’
분노에 파들파들 떨며 주교실로 향했다. 이 사태를 도와줄 사람은 결국 주교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교는 미카엘의 보고를 듣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나이스 양이 무슨 일을 당하는 지 알고 있네. 하지만 천칭이 5년간 내린 벌이잖나. 아나이스가 자초한 일이니 받아들여야지.”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내용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미카엘이 분노로 주교를 노려봤다.
“...정말 아무 생각 안 드십니까? 당신에게 성당기사단은 그냥 소모품일 뿐입니까?”
그러자 주교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소모품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내가 성당기사단을 소모품, 혹은 체스의 말이라고 생각했다면 자네들이 한국에서 멋대로 움직이게 두지 않았겠지. 나는 아나이스의 의지를 존중했네. 그녀를 내가 억압하거나 강제한 적이 있었나?”
미카엘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주교는 경고만 내리고 그녀의 행동을 강제하진 않았다. 선을 넘은 건 항상 아나이스였다.
주교는 아나이스를 존중했다.
부모가 모든 행동을 금지하고 집에 가둬두지 않듯이, 주교도 똑같이 행동했다. 다만 아나이스가 스스로 책임지고 벌을 받을 뿐.
샤를에게 남자를 권한 것도 나쁜 뜻은 아니었다. 주교는 천칭의 판결에 따르고, 강민이 샤를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녀에게 최선의 방안을 제시한 것 뿐이었다.
‘샤를을 용서하는 건 예상 외였지만. 그것도 신의 뜻이겠지.’
어찌됐든 주교의 말은 정론이었다. 자유의지 존중. 그리고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
그러나 미카엘은 아나이스가 저렇게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두고 보실겁니까?”
주교가 차가운 눈으로 미카엘을 노려봤다.
“어쩌겠나. 애초에 이건 자네 탓도 있네.”
미카엘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 미카엘이 이렇게 아나이스의 편을 드는 건 그녀의 마음이 불편해서였다.
미카엘도 죄가 없진 않았다. 샤를의 심장에 박혀 있던 계약서를 억지로 뜯어내고 아나이스를 말리는 대신 부추겼다. 옆에서 그녀가 말렸다면 이렇게까진 되진 않았을 것이다.
죄책감에 입술을 깨무는 미카엘에게 주교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천칭의 리바운드를 아나이스 양이 혼자서 뒤집어쓰고 있는 셈이지. 자네도 비슷한 꼴을 당할 뻔 했는데, 그녀가 죄를 대속한 덕분에 여기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거야.”
“...”
주교는 서류를 탁탁 정리하면서 이야기를 마치고 싶어했다.
“어찌됐든 번복할 순 없어. 천칭의 결정이라네. 자네들이 저지른 죄값을 되돌려 받는 거지. 그게 싫다면 강민에게 가서 부탁하게. 아나이스를 용서해 달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에 미카엘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더 이상 할 말 있는가? 나는 이만 정무를 봐야겠으니, 없으면 물러가게나.”
미카엘은 부들거리며 인사를 하고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온갖 상념이 떠돌았다.
‘내가, 내가...? 가서, 용서를 빌라고?
강민이 용서할까...?’
아나이스가 당하고 있는 짓을 똑같이 당하면 무서워 죽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동료가 자신의 죄값까지 대신 치르는 걸 보고만 있을 거야?
하지만. 하지만.
미카엘은 강민이 만든 악마의 농간 같은 영상을 떠올렸다. 아기를 키우는 여자의 소중한 곳을 드러내며, 울어도 빌어도 봐주지 않는 난폭한 섹스.
조금이라도 심기를 거스르면 얼굴이 전 세계에 공개되고, 강민에게 제발 그만해달라고 빌게 되겠지...
상상만으로도 다리가 풀려왔다. 결국 미카엘은 벽에 기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아나이스를 그대로 둘 수도 없어. 미카엘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가자, 한국, 한국으로...’
***
미카엘이 강민을 두려워하며 벌벌 떨 동안 강민은 영선과 같이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다.
“아니, 누나! 왜 자꾸 2박 3일 여행 중간에 헬스장이 끼어드냐구요!”
“아, 근손실 난다니까!”
“누나. 나랑 같이 여행 다니면 잘 시간도 없을 텐데?”
“그, 그래도! 운동은 꼭 할 거야!”
아, 이런 헬창같으니! 나는 고집불통인 누나의 말에 이마를 감싸쥐었다. 누나가 제비뽑기에서 가장 먼저 여행갈 권리를 획득했기에 계획을 짜는 중이었지만 첫 단추부터 암초에 충돌한 꼴이었다.
“...알았어요. 오케이! 각자 취향에 맞춰서 간다고 했으니까!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은 있어요?”
“음... 둘이서 갈래.”
오케이. 유다 누나와 샤를도 평소엔 같이 붙어다니지만 이번 여행은 따로 가고싶다고 했다. 같이 가면 5박 6일까지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의외로 인기가 없네.
‘5박 6일이면 해외도 한번 더 가보고 싶었는데...’
예림이랑 같이 갔던 프랑스 여행의 기억이 좋게 남았는데. 어쩔 수 없지. 그냥 소소하게 갔다오는 수밖에.
“누나. 회 좋아하죠. 그럼 그냥 부산 칼 호텔 잡을게요? 수영장도 있고. 헬스장도 있고.”
“그래. 회 먹고 같이 돌아다니면 되겠다!”
헬스장이 있다는 말에 영선 누나는 기뻐하며 내 옆에 달라붙어 꼼지락거렸다. 아기새처럼 뽀뽀를 조른다.
쪽쪽 뽀뽀해주자 헤실헤실 웃는다.
“그렇게 좋아요?”
“응. 남자친구랑 여행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엄청 설레! 잠도 못잘 것 같아.”
“으으... 내가... 먼저... 갔어야 했는데...”
옆에서 샤를은 엄청 분해했다. 샤를은 뽑기 운이 없는지 맨 꼴찌였다.
“샤를. 그래도 먼저 간 사람들 참고해서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정할 수 있잖아?”
“음. 그건 그렇네요.”
후발주자는 앞사람들을 참고해서 더 재미있는 여행계획을 짤 수 있으니까 좋지. 게다가 유다 누나도 샤를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중이었다. 인간계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샤를이 무슨 계획을 짤지 궁금했다.
‘그건 그때까지의 즐거움으로 두지 뭐.’
그렇게 영선 누나와 뒹굴거리며 거실을 둘러봤다. 유다 누나와 영선 누나, 샤를, 그리고 구석 쇼파에서 아예 다른 집단인 것처럼 홀짝홀짝 차를 마시고 있는 니모나까지.
드는 생각은
‘좁다.’
4룸인데도 방이 부족하다니. 이게 말이야? 영선 누나와 유다 누나는 손님 방을 하나 차지하고 올 때마다 자고가는 수준에, 샤를 방. 내 방. 거기에 니모나 방까지
‘아나이스도 언제까지 모텔방에 둘 순 없는 노릇이고.’
옆에 두고 괴롭히고 싶지만 여기에 데려왔다간 그런 난장판이 없을 터였다. 지금 저금된 돈을 살펴봤다. 이 정도면 같은 층 빌라 하나는 더 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몰라. 누나랑 여행 갔다 와서 생각하지!’
집 계약같은 복잡한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고 싶었다. 일단 지금은 내일 부산 내려가는 열차나 예약해야지.
그리고 아침, 유다 누나가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서울역까지 데려다 줬다.
좋아! 그럼 이번엔 둘이서 여행을 즐겨 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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