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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190화 (190/358)

〈 190화 〉 187. 예림, 샤를을 용서할 것인가­? 과연 3P를 할 수 있을까?

* * *

깜짝 놀란 건 예림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얼굴을 한 악마가 앉아있을 줄 알았는데.

그리고 뿔이라도 달려있을 줄 알았지만.

방 안에 앉은 샤를은 평범한 사람 모습이었다.

물론 정말­ 예뻤다.

자기도 상당히 예쁘다고 자신하지만, 샤를은 다른 방향으로 예뻤다.

도도한 여왕님처럼 올라간 눈매. 자연상태에선 볼 수 없는 보라색의 머리.

길 가던 남자 열 명중 열 둘은 뒤돌아볼만한 언밸런스하게 큰 가슴.

자기보다 큰 키에 길쭉한 몸매.

예림은 하려고 했던 말을 잊은 채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게 당신­ 원래 모습이에요? 악마 맞아요? 평범한 사람 같은데?"

"원래는 뿔도 있는데... 너무 눈에 띄니까, 숨겼어요."

"그렇군요."

예림은 샤를의 앞에 앉아 할 말을 찾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막상 보니 뭐부터 이야기해야 될 지 몰랐다. 한참 헤매다 결국 입에서 나온 건 비꼼이었다.

"제 얼굴 훔쳐서 야동 찍으니까 좋았어요?"

샤를은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너무나 컸다.

예림을 걸레라고 음해하고, 부모님을 3주간 입원하게 만들고. 폰허브에 출현해 멘탈을 부숴놓고.

마계에서 너무 배가 고파 도둑질하다가, 주인에게 잡혀 혼날 때보다 더욱 부끄럽고 치욕스러웠다.

도저히 댈 변명이 없었다.

"이예림 씨... 제가, 잘못했어요."

샤를은 도저히 뻔뻔하게 앉아있을 자신이 없어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마음 속에서 죄책감이 뭉클 솟아올랐다.

인간과 정당하게 계약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맨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

단추를 300개쯤 더 끼우고 나서야 잘못된 걸 알아챘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그 결과로 여기까지 와 버렸고.

샤를은 몸둘 바를 모르고 무릎을 꿇고 벌벌 떨었다. 예림은 그 모습을 보며 화가 치밀었다.

자신은 아직 샤를을 용서할 준비가 안 됐는데. 샤를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연신 죄송하다고 말한다.

차라리 악마답게 뻔뻔했으면 좋겠는데, 지금의 샤를은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서 더 비꼬았다.

"좋겠네요. 샤를 당신 찾으려고 오빠가 여기까지 와줘서.

제 얼굴 훔쳐서 오빠랑 연애하니까 좋았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제가 거짓말했으면 안 됐는데, 맨 처음에 강민 오빠 만났을때 너무 절박했어요.

그래서 거짓말했어요. 죄송해요. 뭐든 다 할게요. 제발요."

뭐든 다 한다는 말을 듣자 속에서 인내의 끈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이 강민에게 뭐든 다 한다고 말했을 때. 강민이 자신에게 내건 조건들이 떠올랐다.

그래. 샤를. 너한테도 한번 심한 조건 걸어 볼까?

"그거 알아요? 제가 당신 용서하지 않으면 당신 여기 죽을 때까지 갇혀있을 거래요.

뭐든 다 한다고 했으니까. 평생 여기 있을 수 있어요? 강민오빠 안 보고?"

샤를은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도 남자의 정기 부족으로 죽을 것 같은데.

여기에서 며칠동안 더 버틸 수 있을까? 이틀? 사흘?

저지른 죄의 벌은 달게 받아야 하지만­ 강민을 한 번 보고 싶었다.

샤를은 무릎꿇고 빌었다.

"죄송해요. 그런데, 저­ 제발. 강민 오빠 한번만 보게 해 주세요.

오빠한테­ 말해야 해요. 계약서에서 오빠랑 계약 끝내고 싶다고 말한 거, 제가 아니에요.

성당기사단 사람이 가짜로 그렇게 하게 만든 거에요.

한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강민 오빠 보는 것만 허락해 주세요."

예림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제가 왜 그래야 해요?

내가 걸레라고 거짓말하고. 연락처도 차단하고.

그것 때문에 나는­강민 오빠랑 헤어지고. 사귀지도 못하고!"

샤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엎드렸다.

예림은 손 안에 얼굴을 파묻고 웅얼거렸다.

"내 모습으로 변해봐요."

강민이 말하길, 자신의 모습으로 변신한 거랬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차라리 거짓말이고 딥페이크여서 강민에게 한번 더 욕할 기회라도 생긴다면.

하지만­ 샤를의 몸이 꿈틀꿈틀 변해갔다.

예림의 말대로 순순히 모습을 변신시켰다. 예림은 그걸 보며 충격에 입을 막았다.

진짜로­ 악마였다. 샤를은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세상에."

몇 가지 디테일을 제외하면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예림은 놀라며 샤를을 살폈다.

허벅지의 문신과 골반 옆의 리본 타투. 생년월일. 강민의 취향에 맞춘 가슴크기 차이까지.

폰허브 영상 속에서 지겹게 본 모습이었다.

"그래요. 이 모습으로 폰허브 영상을 찍었었죠.

어떻게 할까요. 제가 강민 오빠는 용서했지만... 샤를 당신은 용서 못하겠어."

예림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커졌다.

"내가 아픈 만큼 너도 아팠으면 좋겠어!

왜 나는... 왜 나 혼자만 이렇게 괴로워야 해?

내가 용서해주면, 넌 강민 오빠랑 즐겁게 살겠지?"

샤를은 다시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

"잘못했어요. 제발­"

그러며 예림의 발치에 살짝 손을 얹었다. 차륵. 기억이 흘러들어온다.

예림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성당 기사단에서 보여주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자신이 직접 겪고 있는 듯한 생생함.

죄책감에 몸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하지만­ 예림의 기억을 읽자 방도가 있을 것 같았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이 보였다. 샤를은 예림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예림 씨. 제가­ 강민 오빠랑 이어지게 해 드릴 수 있어요."

"뭐?"

예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 목소리 안에 묻어있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대신에. 시간이 좀 필요해요. 처음부터 강민 오빠를 혼자 가질 수는 없어요."

악마는 인간이 원하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

샤를의 말이 독처럼 달콤하게 예림에게 스며든다.

"저랑... 유다 언니랑. 영선 언니. 다들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요.

의외로 ­ 싸우지도 않고.

예림 씨. 꼭 온전히 혼자 가져야 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예림 씨라면, 대부분의 시간은 예림 씨가 가질 수 있어요."

대부분이라는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갈 것 같다.

하지만 예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싫어. 난 나 혼자이고 싶어."

"안 돼요. 맨 처음에 예림 씨가 너무 무리한 조건을 걸었어요."

모든 연애상대를 정리하고 오라는 건 강민도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예림의 표정이 울 것 같이 변했다. 그러자 샤를이 잽싸게 덧붙였다.

"물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맨 처음에 무리한 조건을 걸었으니까. 예림 씨가 조금 양보하면 강민 오빠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심리학에서 쓰는 면전에서 문 닫기 수법이다. 무리한 부탁을 한 뒤, 강도를 낮춰서 부탁하기.

"게다가 강민 오빠, 지금 죄책감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옆에 붙어 있어야 희망이 생기는 게 아니겠어요?

지금 예림씨가 힘든 이유는 처음부터 너무 무리한 교섭조건을 들이밀어서에요.

딱 한 발. 한 발만 양보해요."

꼴깍. 예림은 침을 삼켰다.

이 악마가 말하는 걸 듣고싶진 않은데.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덧붙이는 말은 더욱 달콤했다.

"영선 언니한테 하는 것처럼 힘든 건, 제가 다 해 드릴게요.

오빠가 하고 싶어하는 가학적인 플레이는, 옆에서 제가 다 당할테니까."

그 무서운 플레이를 대신 다 해 주겠다고? 귀가 솔깃해져서 뾰족 설 지경이었다.

"예림 씨는 ­ 일단 강민 오빠랑 붙어있으면 기회가 있는 거에요.

강민 오빠를 독차지까진 못해도. 기회를 봐야죠.

나중에 예림 씨한테 푹 빠질 수도 있고. 지금 강민 오빠를 놓치고 싶진 않죠?"

예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돌아가서 강민을 차단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솔직히 차단은 자신에게 해만 된다.

예림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강민을 손에 넣는 것이다.

하지만 방도가 보이지 않으니 눈 앞에서 보이지라도 않았으면 싶은 것.

샤를이 살짝 부채질을 하니 금방이라도 넘어가고 싶었다.

"제가 효과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방안까지 가르쳐 드릴게요!"

세일즈와 협상은 악마의 기본 요건. 결국 예림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일단 언니라고 불러요.

예림 씨라고 하니까 엄청 거리감있게 느껴지네.

그래서. 방안이 뭔데요?"

"저, 그 전에...

오빠가 절 꺼내주고 싶어하나요?"

예림은 내키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 오빠가 프랑스에 올 정도니까.

"그럼. 저를 꺼내주는 조건으로 협상을 하는 거에요.

주 2일 이상, 특히 주말은 언니에게 달라고요."

예림은 으으­, 신음을 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민 오빠를 전부 차지하고 싶었는데.

"다른 여자랑 평일에 놀러나가면 속 터질 것 같은데..."

"이대로 영영 놓치면 속 더 터질걸요."

악마의 능력으로 훑어본 예림의 내면은­ 거의 상사병 말기 환자 수준이었다.

매일 강민오빠 생각. 특히 모텔에서 돌아온 이후 강민에게 수십번 연락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

예림의 부모님도 예림이가 이상해 진 건 눈치챘지만 말을 아낄 뿐.

누구나 예림이 이상해졌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강민 오빠가 매력적이긴 해...'

샤를은 자신의 남자친구가 인기 많다는 사실에 자부심과 질투를 동시에 느꼈다.

그러면서도 긴장해서 예림을 바라봤다.

만약 여기서 거절한다면­ 그땐 어떻게 하지?

나한테 복수하겠다는 생각에 가득차 판을 엎는다면?

샤를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이 쿵쿵거리는 마음을 안고 예림을 쳐다봤다­

***

샤를과 예림이 이야기하고 있을 동안 나는 성당 기사단의 미카엘과 이야기를 했다.

미카엘이 한 이야기는 간단했다.

"아나이스 양이... 천칭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 강민 당신에게 ­ 5년간 봉사하라는 것도 있었거든요."

처음 듣는 소리였다. 미카엘은 그 사실을 알려주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녀가 한 짓이 있으니 살살 다뤄달라는 부탁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성당 기사단이 보고 있으니­ 너무 심한 건 자제 부탁드립니다."

"글쎄요. 최소한­ 아나이스가 했던 대로 돌려받아야 할 것 같긴 한데."

"...그래요."

미카엘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낙인으로 수인의 피부에 문장을 새기던 아나이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네 업보려니, 그러려니 하렴.'

그 때 이야기가 끝났는지, 위의 방에서 예림이 내려왔다.

용서를 할 거면 샤를을 데리고 내려오고. 용서를 못하겠으면 방 안에 두고 그대로 내려오면 된다고 했는데.

혼자 내려온걸 보니, 결국엔 용서하지 못했나 보군.

'그럴 수도 있지.'

미카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샤를의 마법에 대해 연구할 기회가 남아 있는 셈.

'곧 남자도 부를 텐데­ 그럼 그때부터 연구 시작이겠­ 엥?'

미카엘은 자기가 뭘 잘못 봤나? 하고 눈을 비볐다.

눈을 비비고 나서도 똑같았다.

예림이 두 명 서있었다.

'엥? 예림 씨가 둘?'

한 명은 허벅지에 문신. 한 명은 깨끗한 피부.

쌍둥이처럼 서서 강민을 뜨겁게 바라보는 중.

"오빠. 우리 이제 갈 시간이에요."

강민도 자신의 허벅지에 커피가 뚝뚝 흐르는 걸 모른채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는 중.

문신이 없는 쪽이 강민의 손을 붙잡아 밖으로 나선다.

그 뒤의­ 샤를­ 은 고개를 푹 숙이고. 뒤를 총총 따라간다.

"세상에."

미카엘은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

뭔가­, 처음으로 자신이 자위를 했던 날처럼. 숨이 가쁘고 얼굴이 빨개진다.

음욕의 악마를 본 듯한 느낌. 저 세 명이 호텔로 돌아가 행할 너무나 야한 장면이 상상이 되서 어쩔 수 없었다.

"...아멘. 아멘. 주여... 이 어두운 계곡을 걷는 내가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가 나와 함께하심을 아는 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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