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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189화 (189/358)

〈 189화 〉 186. 프랑스로 향하다

* * *

안녕하세요. 예림이에요.

저는 지금은 강민 오빠랑 같이 밥을 먹는 중이에요.

두근거리긴 하지만­ 좀 졸리기도 해요.

사실 어제 잠을 완전히 설쳤거든요.

영선 언니가 울부짖으며, 실리콘 장난감으로 알을 낳는 모습이라던가.

관장이라던가­ 배뇨라니­

그걸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잠이 오지 않더라구요.

웃으면서­ 언니를 괴롭히는 영상 속의 오빠는, 제가 아는 오빠와는 다른 사람 같아요.

지금 저한테 웃으며 농담하는 오빠는 정말 상냥하고 부드러운데.

밥을 다 먹은 뒤엔 영화관에 갔어요. 제가 보자고 해놓고는 깜빡 잠들어 버렸는데. 오빠는 피곤했구나, 하고 더 묻진 않았어요.

자는 게 귀여웠다고 말해주며 넘어갔어요.

이렇게나 친절한 오빠인데.

지금... 모텔의 입구에 선 저는 왜 이렇게 무서울까요.

오빠가 저한테, 진짜로 할 수 있냐고 물어봐서 그럴까요?

아니면 오빠의 가방에 뭐가 들어있는 지 알 수가 없어서 그럴까요?

오빠가 상냥하게 제 귀에 속삭였어요.

"예림아.

진짜로 할 수 있겠어? 오빠랑 지금 들어가면, 오늘 새벽 네시까지 못 잘 텐데?"

이빨이 덜덜 떨려요.

못 해요. 그런 섹스를 어떻게 해요.

영상에 나온 영선 언니처럼 촬영하면서, 양쪽 구멍 다 능욕당한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빠의 유일한 여자친구가 되고 싶어서, 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할 수 있어요­"

"예림아. 그럼 관장부터 시작할까? 치마 벗어 볼래?"

"네, 네에­"

치마의 지퍼에 손을 갖다댔는데. 잡히지가 않아요.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네요.

왜 이럴까.

나는­ 오빠의 유일한 여자친구가 되고 싶은데­

그럴려면 이런 건, 아무렇지도 않게 해야 하는데.

지퍼와 고군분투하는데 강민 오빠가 한숨을 내쉬었어요.

"예림아. 그만 하자.

지금도 이렇게 힘들어하잖아."

"아니에요. 안 힘들어요. 진짜로. 할 수 있어요."

강민 오빠가 제 눈가를 닦아 줬어요. 눈물이 흐르는 중이더라구요.

몸도 무서워서 덜덜 떨리고.

그래도 안 돼요. 저는 필사적으로 말을 짜냈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강민 오빠가 절 꽉 안고, 미안하다고 속삭이는 순간.

그대로 무너져 버렸죠. 울음이 터져나왔어요.

"오빠, 너무해에­ 나, 무서워요.

미워, 미워요. 어떻게, 여자친구한테 그런 걸 시킬 수가 있어?

내가 많은 거 바라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나랑만 연애하면 되는데.

이런 것도. 더 오래 사귀면­ 못 이기는 척 해 줄수도 있는데. 이게 뭐야­"

원망의 말을 쏟아냈어요.

"오빠, 나빴어...

변태, 짐승, 쓰레기, 나쁜 새끼...

취소해요. 농담이라고 말해요. 그럼 나도 모른 척 그냥 오빠 여자친구 해 줄 테니까.

그냥 저만 만나겠다고 한 마디만 해 줘요­

내가, 좀 더 노력해 볼테니까. 제발."

하지만 오빠는 말이 없었어요.

날 더 꽉 껴안을 뿐.

그럼­ 결국. 저 혼자 오빠 여친이 될 수는 없네요.

...너무 슬퍼서 화가 났어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쏘아냈어요.

"그래요. 그럼 끝이네요. 갈게요. 3일간 남자친구 행세 하느라 고생했어요."

"데려다 줄게."

"필요 없어요.

프랑스 갔다 와서 오빠 다 차단할거야.

약속은 약속이니까 ­ 프랑스까진 갔다 올게요.

그 이후론 다신 연락하진 말아요.

오빠는 나랑 섹스하려고 만났던 거죠?

저 꼬드겨서 섹스하니까 좋았어요? 제 처음 가져가서 행복했겠네요.

아니다. 영상 찍어서 올릴 수 없어서 불행했으려나?"

그게 아니란 건 알아요. 꼬드긴 것도 나였고.

그래도 어떻게든 상처를 주고 싶은 걸.

나 혼자 가질 수 없으면­ 최소한, 오빠 마음에 길게 상처라도 남겨놓을 거야.

내 말이 상처가 된 듯, 강민 오빠가 절 슬프게 바라봤어요.

쏘아붙인 문장을 부정하지도 못하고, 긍정하지도 못하고.

가슴 한 구석이 짜릿하게 통쾌하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아파요.

바보, 멍청이. 짐승. 색골.

욕을 더 퍼부어 봤지만 속이 더 아파지기만 할 뿐이었어요.

"김강민, 이 나쁜 새끼. 꺼져. 따라오지 마.

따라오면 프랑스고 뭐고 아무데도 안 갈 거야!"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왔어요.

솔직히 이렇게 엉엉 울고 있는 걸 들키기 싫어요.

오빠가 위로해 준다면. 또 바보처럼 오빠한테 기대게 될 것 같아서.

다른 여자랑 사귀어도... 날 제일 좋아해 주면 괜찮다고 타협할 것 같아서.

그리고 결국, 오빠가 날 제일 좋아하지 않게 되어도 구질구질하게 매달릴 것 같아서­

그래서 혼자 뛰쳐나왔어요.

"김강민, 나쁜 새끼. 멍청한 새끼. 쓰레기같은 놈."

나 같이 멋지고 예쁜 여자가 또 어디 있는 줄 알아?

저런 야한 것도, 천천히 시간 두고 권했으면.

나만 봐준다고 했으면­ 해 줬을 텐데.

"멍청이. 나 놓친 거 후회하게 될 걸. 진짜로 후회할거야."

그대로 오빠를 혼자 남겨두고 집으로 향했죠.

그런데­ 가면서. 눈물이 왜 이렇게 날까요?

후회하진 않지만.

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오빠는 나한테 더 좋은사람 만나라고 하는데.

"...나쁜 새끼. 뭘 날 위해서야. 결국엔 자기 여자친구들도 포기 못한다는 거 아냐.

됐어. 나도 매달릴 생각 없어."

하지만.

강민 오빠가 날 선택해 줬으면,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날 위로해주던 목소리. 내 손을 잡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주던 손길.

따뜻하게 날 봐 주던 눈동자들. 부끄러운 듯 쩔쩔매는 표정.

그게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멍청이같이, 이게 뭐야­

이것저것 재지 말고, 그냥 맨 처음 고백할 때 수락할걸.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이­"

저는 집으로 가는 어두운 길 한 복판에 서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고 말았어요­

***

그 이후 2주간. 예림은 한 번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날 저녁, 만약 우리 둘 자리가 붙어있으면 떨어진 자리로 바꿔달라는 연락뿐이었다.

'...뭐. 그렇겠지.'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다. 프랑스에 갔다오면 예림이와 연락하는 것도 끝이겠지.

솔직히 예림이와 같이 사귄 3일간은 엄청­ 즐거웠다.

원래 같이 알바할 때도 이야기가 잘 통하는 편이었고.

카톡으로 계속 이야기하고.

유다 누나나 영선누나, 샤를과는 다른 풋풋한 연애 느낌이 물씬 났다.

하지만 그럴수록 알게 된다.

나랑 같이 있으면 예림이는 불행해질 거라고.

나는 결국 나머지 여자를 놓을 수 없을 거다.

나 말고 다른 남자와 잘 수 없게 됐다고 부탁하는 영선 누나.

우울해져서 틀어박힐 유다 누나.

그리고 ­ 날 유혹해 올 샤를까지.

그 사이에서 예림이를 놔두고 바람도 필 거고.

더 가혹한 것도 요구하게 될 거고.

'그러니 놔 주는 게 맞겠지.'

한숨을 푹 쉬고 짐을 마저 쌌다. 여권도 쌌고. 그러고 보니 비행기 예약할 때 기입한 여권번호는 잘 썼으려나?

비행기 예약과 맞는지 확인해 보려고 여권을 들었다.

그런데 툭. 그 안에서 예림의 사진이 떨어졌다.

철렁 하고 심장이 떨어졌다.

환히 웃는 눈꼬리. 부드러운 미소.

나와 같이 사진찍으러 가서 행복하다는 듯 웃는다.

사진관에서 현상한 후, 서로 사진 교환하자면서 한 장씩 가져갔지.

"아오, 젠장. 이런 건 대체 왜 나와서­"

버릴까 생각해봤지만.

...가슴이 아프다. 버리긴 싫었다.

서랍 속 사진 모아놓는 앨범 구석에 살짝 끼워놨다.

예림의 얼굴이 나를 빤히 응시했다.

한숨이 나온다.

예림아.

미안해.

내가 ­ 바보같았지.

거절당했다고 무서워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카페를 그만두는 대신 계속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무서워하던 대가를 이제 치뤄야 하겠네."

이젠, 보내줄게­

그러며 서랍을 닫았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서랍에 갇혔네.

***

예림이의 비행기 좌석은 좀 떨어진 곳에 잡아줬다.

괜히 날 신경쓰지 말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예림이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잠을 설쳐서인지 비행기 멀미를 심하게 했다.

결국 나는 옆 자리로 옮겨가 등을 두드려 주거나.

손을 주물러 주거나­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

예림이는 내가 꼴도 보기 싫은지 모포를 얼굴까지 덮고 누워만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자리를 다시 옮기려고 하면, 내가 데려와서 이렇게나 힘든데 옆에도 안 있어 주냐고 화를 낸다.

진퇴양난. 어쩔 수 없이 옆에 앉아 이것저것 수발을 들어줄 수밖에.

한참의 시간을 거쳐­ 우린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 또 성당기사단 본부까지 어떻게 가냐...

결국 택시를 탔다. 다행히 바가지는 쓰지 않았지만.

예림이는 계속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창 밖만 본다.

미안해서 죽겠군.

샤를을 빨리 구해내서 집에 가고 싶다.

샤를은 지금 뭐하고 있으려나­

***

샤를은 강민이 입원하고, 퇴원하고, 프랑스로 오는 3주동안 고통받는 중이었다.

강민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없다. 그저 영상만 보며 자위하는 생활이 3주.

'오빠 보고 싶어...'

이젠 강민이 자신에게 주는 것이라면 살을 불로 지지는 고통이라고 해도 달콤할 것 같았다.

'몸이, 몸이 뜨거워­'

샤를의 몸은 금단현상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서큐버스에게 남자와의 섹스도, 꿈에서의 접촉도 없는 3 주라니. 너무나 긴 고통이었다.

3일만 되도 대부분의 서큐버스는 격렬한 허기를 느낀다.

마력이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인 결핍, 배고픔. 남자를 취하지 않으면 허기는 계속 심해진다.

이게 심해진다면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

성당기사단 대주교는 남자의 꿈이라도 제공해 주겠다고 했지만 샤를은 결단코 거절했다.

성당측도 초반에는 '그러던가. 굶으면 알아서 달라고 하겠지­'했다.

보통 가둬둔 서큐버스들이 남자, 아니 여자의 꿈 속에라도 들어가게 해달라고 비는 건 1주일이 지날 무렵.

하지만 샤를은 2주일이 넘어가도록 거부했다. 성당 측에서는 이제 제발 남자를 들이라고 비는 중이다.

하지만 죽었으면 죽었지, 다른 남자의 꿈 속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샤를의 손톱은 얼마나 침대 시트를 긁었는지 네일아트가 다 벗겨져 있었다.

'아­이것도, 유다 언니랑 같이 한 건데.'

샤를은 불에 눌어붙은 듯한 눈으로 멍하니 자신의 손톱을 응시했다.

한국에서­ 강민 오빠와. 친구들과 같이 있었던 시간이 이제는 먼 곳의 꿈 같다.

그런데.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드린다.

"저. 샤를 양. 손님이 왔습니다."

"네?"

"한국의 손님인데­ 일단 옷을 갈아입으시죠."

한국? 혹시? 강민 오빠? 기대에 차 시종을 봤지만 말해줄 수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누굴까­'

정신을 차린 샤를은 멍하니 자신의 몰골을 봤다. 속옷만 입고, 잔뜩 발정난 몸까지.

누군진 몰라도 이런 꼴을 보여줄 순 없다.

'예, 예쁘게 보여야 하는데­'

옷을 갈아입고. 몸을 가라앉히기 위해 찬물로 샤워하고 기다린다.

그런데­ 들어온 것은.

자신이 모습을 훔쳤던. 예림이었다.

예림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샤를을 노려봤다.

'예림이가­ 어째서 여기에?'

샤를은. 입을 막고, 예림을 바라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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