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182. 예림아, 노콘질싸할게. 응급실 가서 피임약 먹자?
* * *
"하아... 진짜 할 생각 없었는데."
젠장. 남자. 유혹에 약한 생물이여. 내 절망에도 불구하고 예림이가 웃으며 달라붙었다.
눈물로 빨갛게 달아오른 눈꼬리와 촉촉한 속눈썹으로 날 보며 밝게 다가오는 모습에 '오늘부터 1일인 거야.'따위의 말을 홀라당 하고 싶다.
젠장. 절대 안 돼! 하지만 예림이는 내 속도 모르고 말을 걸었다.
"오빠 좋아해요."
좋아한다는 말을 듣자 가슴 속에 천 개의 종이 울리는 듯 했다. 예림이 생글생글 말했다.
"기분 좋았어요? 이제 저랑 사귈 마음이 좀 드시나요?"
아찔하다. 눈을 뜨고 천 길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다. 기분이야 좋긴 좋았지만. 너랑 사귀는 건 문제가 많다니까!
"아, 왜요! 말도 안 돼! 이렇게 제 처음도 가져가 놓고는 지금도 엄청 아픈데에"
예림이 우는 시늉을 하며 눈가를 훔쳤다. 젠장. 도저히 가슴이 아파서 두고볼 수가 없네.
"알았어! 일단 울지 말고 이야기하자. 우리 가치관이 맞는지부터 점검해 봐야겠지?
근데 진짜! 나랑 사귀면 엄청 힘들걸. 내가 너랑 사귀면서 다른 여자 만나는 거 이해해 줄 수 있어?"
그러자 예림이가 이건 용납할 수 없다며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망할. 역시나다. 평범한 연애관을 가진 예림이에게 내 급진적인 폴리아모리 연애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종류의 것. 예림이 거세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싫어요! 이상하잖아요. 어떻게 여러명이랑 동시에 사귈 수 있어요!"
"난 그러고 있는데. 내 여자친구들도 다 좋아해."
예림이 손가락으로 가위표를 만들며 머리를 붕붕 저었다.
"오빠. 제가 말했잖아요. 제가 혼자서 세 명 분량만큼 사랑해 드릴게요! 오빠 여친들이 해 주는거, 저 혼자서 다 해 줄 수도 있어요! 그, 그 야한, 야한 것도!! "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너도 내 폰허브 영상 봤을 거 아냐. 그걸 다 할 수 있다고?"
"이, 있어요!"
허세 부리긴. 한숨을 쉬고 예림이를 눕힌 다음 위쪽에서 지그시 내리눌렀다. 예림이의 몸이 긴장으로 꽉 움츠러들었다.
"할 수 있긴 개뿔이. 야. 지금도 긴장으로 벌벌 떠는데. 내가 지금 너랑 노콘으로 섹스하고 싶다면 어쩔 거야?"
그러자 예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아, 안 돼요! 저, 지금 가임기란 말이에요!"
"봐. 안되잖아.
영선 누나가 어떻게 해 주는 줄 알아? 피임약 먹으면서 콘돔 절대 안 쓰거든?"
예림의 목소리와 눈이 떨렸지만 꿋꿋이 입을 열었다.
"저, 저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오늘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랬던 거거든요? 준비만 했으면 며칠 전부터 피임약도 먹고 왔을 거에요!"
피임약 사 본 적도 없으면서 허세를 부린다. 아무래도... 강하게 나가서 날 포기하게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나로써도 영선 누나와 유다 누나, 샤를을 포기할 순 없다.
예림이가 더 큰 상처를 받기 전에, 미리 상처를 내서 관계를 끊는 게 더 나을수도.
게다가 예림이와 사귄다고 하더라도, 한번 뚜껑이 열린 내 하드코어 섹스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예림이에게 낙서플을 요구하고. 똥까시를 요구하고. 관장을 요구하고. 애널 처녀까지 바치라고 하고. 헤나에 피어싱, 문신까지.
하나하나 단계를 올려가며 시도하겠지. 그러다 둘 다 상처를 받을 거고.
안 될 말이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내뱉었다.
"그래. 노콘으로 섹스할 수 있다 이거지?
알았어. 다리 벌려.
지금 질싸 섹스하고 응급실 가서 사후피임약 먹자.
응급진료비는 내가 대 줄게. 13만원정도 나오려나?"
내 잔인한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예림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젠장.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하지만 더 잔혹하게 내뱉었다.
"이런 것도 못하면서 둘이서만 사귀는 게 가능할 것 같아?"
오늘 처녀를 잃은 순진한 알바 후배에게 할 만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예림이가 날 거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예림은 말을 잃은 채 공허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못 하지?
...그러니까. 나랑 사귀고 싶다는 말 하지 마.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냐."
그리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심장 안 쪽이 기다란 바늘로 찌르듯 콕콕 아팠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빨리 옷 입고 떠나야지. 팬티를 다리에 꿰는데 잘 들어가지 않는다. 젠장, 빨리 내 맘이나 예림이 마음이 바뀌기 전에 가야
가냘픈 예림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 할게요..."
"뭐?"
충격에 예림을 바라봤다. 하지만 입은 필사적으로 비열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젠장. 그러지 마. 예림아.
몸으로는 쓰레기를 연기했다. 속옷을 다시 벗고, 아직 정액으로 번들거리는 자지를 예림이의 다리 사이로 가져가며 물었다.
"진짜로 콘돔 안쓰고, 질내사정 해도 돼?"
그러자 예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절망감에 눈이 캄캄해질것 같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은 더 충격이다.
"그냥, 오빠랑 한번 더 섹스하고. 응급실 가서 비타민 먹는다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그렇죠?"
예림은 눈물 방울을 최대한 가리고, 닦아내면서도 다리를 벌렸다.
"해... 해 주세요. 저 할 수 있어요."
자지를 보지 위에 두고, 웃으며 내뱉었다.
"진짜 한다?"
예림은 이를 악물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귀두를 꾸욱 눌렀다. 보짓살이 양 옆으로 벌어진다.
예림은 눈을 감고 멈춰달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날 받아들일 준비를 끝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이제 진짜로 삽입을
"어떻게 해! 내가 쓰레기 새끼도 아니고!"
한숨을 푹 쉬고 허리를 뗐다. 예림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날 놀렸다.
"헤헤... 봐, 오빠도, 결국은 못 하잖아..."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예림이의 얼굴은 아직도 핏기가 없었다. 정말로 무서워서 죽기 직전인 듯 했다.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야. 너는 진짜...내가 진짜 하면 어쩌려고 그랬어?"
"몰라요. 난 상냥했던 오빠를 믿는걸."
아, 젠장. 진짜로. 내 업보다. 나는 예림이 옆에 누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솔직히 말했다.
"예림아. 너랑 사귄다고 해도... 다른 여자들이랑 헤어질 순 없다니까. 너도 헤어지고, 못 만나는 게 얼마나 아픈 지 알잖아."
하지만 내 설득은 소용이 없었다. 예림이를 더 슬프게 만들 뿐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예림이의 어깨가 위아래로 떨렸다.
"나 프랑스 가는 걸로 협박하는 것도, 이젠 싫단 말이야.
그냥 나 좋아한다고. 나랑만 사귄다고 한 번만 해 줘요, 오빠.
한번만 이야기하면 되잖아."
그럼 경기 끝이잖아! 포기란 걸 모르는구만!
"안 된다니까..."
말 끝을 흐리다, 좋은 생각이 났다.
작전 변경이다.
예림이에게 달콤한 미끼를 하나 던지고. 물게 만든 다음. 도저히 나랑은 못 사귈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걸어야겠어!
이번에 질싸로 협박하는 건 너무 와일드한 계획이었다. 좀 더 거미줄처럼 촘촘한 함정을 짜야겠어.
머릿속으로 계획이 착착 섰다. 미끼로는 영선 누나를 써서 예림이가 날 거절하게 만들 계획이 섰다! 좋아!
일단 떡밥부터 뿌려야겠다.
"예림아. 모레 데이트 한번 더 해 보고 결정하게 해줘. 나도 생각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잖아?"
예림이의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졌다. 이게 괜찮은 조건인지 아닌지 가늠해 보는 중. 떡밥 한 스푼 더 추가요!
"같이 한강에 피크닉 갈래? 날씨도 슬슬 선선해지는데."
"...기억하고 있었어요?"
예림이가 예전에 한강변에서 도시락 먹으면서 맥주 마시는 게 꿈이라는 말을 했었다.
뭐 잊어버리진 않았지.
내가 내민 달콤한 제안에 예림이는 앞뒤 재지 않고 바늘을 꽉 물었다.
"...좋아요. 그럼. 모레. 한강변 같이 놀러가요. 그땐 꼭 대답해 줘야 해."
좋아!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태연하게 약속을 잡았다.
"알았어. 오후 네시 괜찮아? 노을 지는 거 보자."
"좋아요."
예림이가 헤실헤실 웃었다. 그리고는 피로가 몰려오는지 길게 하품을 했다.
꿈도 없이 잠들었다. 꽁냥거리는 연인처럼 자고, 일어나고. 예림이 집에서 옷을 챙겨 병원으로 보내주고. 날은 흘러
데이트 날.
***
안녕. 예림이예요.
데이트가 너무 기대돼서, 옷 고르느라 두 시간이나 걸렸어요. 결국엔 예전에 알바할 때 입었던 흰색 블라우스와 검정 치마를 입고. 그리고 가슴을 가로지르는 가방을 맸지만요.
솔직히 이렇게 가방을 매면 주변의 시선이 엄청 부담스럽지만, 강민 오빠가 관심 없는 척 하는 걸 보고 싶었어요.
옛날에 알바할 때도 최대한 내 가슴 안 보려고 노력하면서도, 결국엔 힐끔 쳐다보고. 미안한 듯 주방에서 한숨 푹 쉬고.
...귀여웠었는데.
그 때 그냥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주고. 거절하지 말 걸 그랬지만 어쩌겠어요. 이번 데이트에서 나한테 푹 빠지게 만들 수밖에!
이번 데이트는 오빠가 돗자리랑 도시락을 다 챙겨오겠다고 했어요.뭘 해 올지 궁금했는데, 돗자리를 깔 때부터 우와. 감탄했답니다.
귀여운 아기 라이언 돗자리. 유부초밥과 매콤하게 구운 닭봉(센스있게 은박지 손잡이까지), 남은 유부초밥 속을 계란 지단으로 감싼 간이김밥.
그렇다고 빈 손으로 올 순 없잖아요? 저도 준비한 건 있었어요. 억센 부분 하나도 없이 깎은 파인애플과 파낸 키위. 바나나 그리고 가볍게 만든 버터 쿠키.
윗면이 갈색으로 참 예쁘게 노릇노릇, 잘 구워졌어요. 한 입 먹고 놀라던 강민 오빠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
강민 오빠의 손이 제 손 위로 얹히기도 하고. 제가 얹기도 하고. 맥주를 나눠 마시면서 웃고, 떠들고.
주로 이야기를 하는 건 저였어요.
예전 학교생활 이야기도 하고. 오빠가 병실 문을 두드릴 때 얼마나 안심이 됐었는지. 그리고 오빠가 그 이후로 찾아올 때마다 얼마나 설렜는지.
영선 언니 담배피러 갔을 때만 커피 사들고 뻔질나게 찾아간 거 눈치는 챘는지(역시나. 눈치 못 챘더라구요). 나중에 프랑스 가면 어디어디 가보고 싶은지. 먹어보고 싶은 프렌치 요리는 뭔지. 다른 곳은 가 본 적이 있는지.
저는 가족여행으로 해외에 나가본 적 많은데. 강민 오빠는 제주도도 가 본적이 없대요. 그래서 같이 놀러가보자고 이야기하면서. 제주도 맛집 다 아니까 다 가보자고.
강민 오빠는 웃으며 그러자고 약속했죠. 이게 영원히 이어지길 바랄 만큼 참 완벽한 데이트였어요.
오빠가 마지막으로 말한 것만 아니면. 참 완벽했을 텐데.
강민 오빠가 마지막으로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요.
영선 언니가 나오는 야동을, 내가 주연이 돼서 똑같이 따라할 수 있다면.
나랑만 사귀어 주겠대요.
그래요. 솔직히 제가 뭐든 다 해 준다고 했으니까. 영선 언니가 할 수 있는 건 똑같이 할 수 있어야겠죠?
저는 집에 가서 두려움에 떨면서도, 영선 언니가 나오는 영상을 틀었어요.
할 수 있다, 그런 다짐을 하면서요.
아, 하지만 영선 언니는, 대체 무슨 하드코어 플레이를 하고 계신 걸까요.
얼굴에는 아이라인만 겨우 가리는 흰색 가면을 쓰고.
좋아서 지르는 비명인지, 부끄러워 지르는 비명인지 구분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울부짖으며 웨딩드레스같은 가터벨트를 입은 채 엉덩이로, 아랫입으로 달걀 모양의 굵은 실리콘 알을 짜내는 모습이라니.
남아 있는 영상의 길이는 여섯 시간.
저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처음부터 보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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