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 177. 산타 코스프레 유다누나
* * *
"저, 그럼 먼저 퇴원해 보겠습니다."
다행히 난 일주일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젊어서 그런지 허벅지의 상처도 회복이 빨랐다.
그렇게 영선 누나랑 같이 택시 타고 집 가면 되는 거였는데.
어째서 예림이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왔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엉거주춤 인사를 건넸다.
예림이의 부모님은 침대에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참 보기 드문 청년이야."
양심이 따끔거린다. 내 잘못때문에 입원해 계신 건데.
예림이가 뭐라고 말을 해 놨는지, 나를 사고나자마자 달려와 준 고마운 오빠로 알고 계신다.
무서울 정도다. 예림이는 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 거야?
"잘 가요."
어머님의 배웅을 받으며 문 밖으로 나왔다. 예림이가 따라나오며 생글생글 웃었다.
"오빠. 내일도 병문안 올 거죠?"
"응 응?"
예림이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내 물음표에 예림이는 바로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오빠. 안 와도 돼요. 괜찮아요.
집에서 쉬어요. 편하게.
다만 프랑스 가는 건 좀 생각해 봐야겠네요"
"아냐! 올게! 잘못했어!
와야지. 그럼. 다 내 잘못인데."
예림이는 내 반응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옆에 서 있는 영선 누나를 힐끔 쳐다본다.
누나는 내게 팔짱을 끼려고 했지만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뿌리쳤다.
웬지 모르겠지만 팔짱을 끼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
버림받은 강아지같은 표정을 짓는 영선 누나를 필사적으로 외면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가 볼게. 내일 봐, 예림아."
"네, 내일 봐요! 강민 오빠!"
몸을 돌려 부모님의 병실로 돌아간다. 영선 누나는 부들부들 떨다가, 예림이가 들어가고 나자 울상을 지으며 날 봤다.
"나, 나 상처받았어! 야! 김강민! 너 방금 내 손 쳐냈지! 왜 그래!"
"아니. 예림이가... 뭔가... 이상해서. 미안해요 누나."
옛날 피시방 알바할 시절이었으면 퍽퍽 쳤을 텐데.
나랑 사귀고 몸을 수십차례 겹친 이후로는 완전히 온순한 양처럼 바뀌었다.
하지만 진짜로 팔짱 끼면 안 될 것 같았다고!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 말에 영선 누나는 인정하기 싫어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예림이의 지금 상태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시작했다.
"예림이가 예전에 네 고백 거절했었다면서?
내 생각은 그때 싫어서 거절한 게 아닐걸?
아마 무서워서 그랬을 거야."
나는 의아했다.
"무서워요? 대체 뭐가? 저런 외모를 가지고도?"
하지만 영선 누나는 한숨을 쉬었다.
여자 마음도 모르는 녀석같으니 말하며 나를 살짝 꼬집는다.
"예쁘니까 더 그런 거야.
얼마나 남자가 많이 꼬였겠니.
나도 엄청~ 꼬였어.
그 중에서 괜찮은 남자를 가려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시간이.
넌 거절당하자마자 도망쳤잖아."
윽. 가슴 한 구석이 푹 찔렸다.
내가 가난때문에 자격지심이 상당하긴 하지.
전액장학금 따내느라 바빠서 다른 여자를 만나본 적도 없고.
매일 알바에 가난에 찌들다 보니 그땐 그랬다.
"뭐, 그 덕분에 내가 강민이 만난 거지만."
영선 누나는 내 팔짱을 껴오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아마 예림이 쟤. 너한테 관심 무지하게 있을걸?"
"그런가요?"
혼란스럽다. 하지만 영선 누나는 100% 장담했다.
"같이 프랑스 가자는 말을 괜히 했겠어?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샤를때문에 참는다, 진짜."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만 있자 입술을 내밀며 쪽쪽 키스를 바랬다.
아기새처럼 연신 다가온다.
뭐랄까. 샤를이 없는 틈을 타 다들 세력 확장을 꾀한다.
하지만 나도 솔직히 영토를 조금 내주고 싶은 심정이다.
샤를, 나한테 거짓말을 했었다니.
연인 사이에서도 사람은 고쳐쓰지 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부정적인 일을 한번 겪고 나면, 혹시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샤를이 아무리 날 사랑한다고 말해도 샤를을 의심하게 되겠지.
한숨이 저절로 새나온다.
'하아... 빨리 프랑스 가고 싶네.'
답답한건 딱 질색이었다. 빨리 가서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예림의 부모님이 퇴원할 때까지는 이 주나 남았다.
결국 그 동안은 폰허브 영상이나 찍는 수밖에.
"그러고 보니, 강민아. 니모나는 아직도 집에 안 들어왔어?"
애널 면간을 당했다는 걸 안 니모나는 박성연과 대판 싸우고 가출했다.
안 찾아오면 죽인다는 말만 남기고. 결국 박성연은 니모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동분서주 중.
"프랑스 가기 전까진 안 돌아올 것 같은데요."
한숨이 푹 나왔다. 폰허브에 나올 만한 유일한 배우가 사라진 셈.
그런데 옆에서 영선 누나가 열심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중이다.
얼굴도 붉어지고 숨도 가쁘다.
음, 혹시?
"영선 누나. 왜요. 폰허브 영상 출연에 관심 있어요?"
"어? 어??? 아냐, 무슨. 아냐. 전혀 없어.
애초에 그 인식 저해란 것도 좀 허술했잖아?
전혀. 하나도 안 해보고 싶은 걸."
얼굴이 확 붉어진 채로 손사래를 친다.
음. 이렇게나 격한 부정이라. 의심스러운데.
게다가 씹마조 영선 누나의 취향이라면.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
택시 정류장으로 향하며 누나의 손을 꼭 잡고 귓가에 속삭였다.
"누나. 혹시 만약에 내가 누나한테 가면 씌우고.
누나 주연으로 해서 폰허브 영상 꼭 출연시키고 싶다면, 어쩔 거야?"
꼴깍.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허벅지를 비비 꼬며 서로 마찰시키는 중.
아무래도 상상만으로 젖어드는 것 같다.
역시 입으로는 싫다 싫다 하면서, 몸은 정직하군.
"오, 오늘은 안 돼
저녁에, 약속 있단 말야"
오늘 찍을 생각은 아예 없었는데.
이건 싫은 게 아니라 기대하고 있는 거잖아?
"오늘 안 되면. 내일."
내일이라고 말하며 손을 꽉 쥔다.
그 순간, 영선 누나의 티셔츠 아래에서 유두가 솟아오른다.
상상만으로 흥분해 버린 것.
"싫, 싫지만 강민이 네가, 시키면 어쩔 수 없이, 해야겠지?"
"알았어요. 내일."
그러며 손을 잡고 같이 택시에 올라탔다.
집까지 향하는 동안 영선 누나는 한마디 말도 없이 얼굴을 붉힌 채, 손만 꼼지락거린다.
귀여워라. 내일 엄청 울려주고 싶네.
집에 도착하자 택시에서 내리는 걸 도와줬다.
거의 다 나아서 괜찮다고 해도 요지부동.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나서야 작별인사를 했다.
"이제부턴 유다 언니가 도와줄 거야."
"아니. 그렇게 안 아프다니까요"
"시끄러워. 들어가."
영선은 강민을 억지로 밀어넣었다.
말을 들으라면 들을 것이지!
'유다 언니가 무슨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오늘은 둘이서만 있게 해달라고 했으니까. 도와줘야지.'
안 그래도 병원에서 자기 혼자만 즐긴 것 같아서 미안했는데.
오늘은 강민의 집에서 둘이서 오붓한 시간 보낼 수 있길!
니모나도 없겠다!
집 안으로 들어간 강민은 툴툴거렸다.
'아니 진짜로 다 나았는데.
이틀 전에 니모나랑 동영상도 찍을 정도로.'
그런데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아, 강민아. 왔어?"
유다 누나가 활짝 웃으며 날 맞이했다.
청바지에 흰 티. 수수한 복장이지만 그 위에 입은 에이프런.
유다 누나는 노출이 싫은지 치마 종류는 잘 입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묘하게 풋풋한 새댁같은 분위기가 난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물어봤다.
"누나. 무슨 일이에요?"
"으응 오늘은, 강민이 너 퇴원하니까. 축하 파티라도 해 줄려고.
샤브샤브 좋아해?"
"아, 좋아하죠."
주방에서 나던 맛있는 냄새의 정체는 샤브샤브였구나.
정확히 내가 올 시간에 맞춰 식탁에 올려놓는다.
브루스타로 보글보글 추가로 끓이며, 맥주 두 캔을 꺼낸다.
"마실 거지?"
"당연하죠."
자리에 앉자 유다 누나가 고기를 덜어준다.
음. 역시 맛있어. 맛없기 힘든 요리긴 하지만.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유다 누나가 말을 걸었다.
"고생 많았어. 강민아.
나도 도와주고 싶었는데... 내 일이 있어서 많이 도와주지도 못하고.
이런 것 밖에 해 줄게 없네."
자존감이 낮은 누나답게 자신을 비교해 가며 스스로 우울해한다.
그럴 필요 없는데. 누나를 위로하려고 쾌활하게 말했다.
"에이. 병문안도 자주 와 주고! 밤엔 누나가 간호해줬잖아요.
오늘도 퇴원 기념으로 요리도 해 주고. 얼마나 고마운데요."
"그, 그래에?"
유다 누나의 얼굴이 헤실헤실하게 풀린다.
피어싱 가득해서 쎄게 생겨가지고, 이런 얼굴을 하다니. 반칙 아닌가?
그 이후로도 맥주 몇 캔. 소주까지 꺼내 오며 술자리가 이어졌다.
슬슬 버스 끊길 시간인데. 택시타고 가려나?
그런데 내 예상을 깨고 유다 누나가 주저하다 말했다.
"강민아. 오, 오늘.
자고 가도 괜찮아?"
아하. 그런 거군.
얼굴이 빨개지는 유다 누나. 안경 너머로 눈을 이리저리 방황 중이다.
귀여워라!
"그래요. 자고 가요.
니모나 방도 비어 있으니까!"
유다 누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울상이 됐다.
놀리는 재미가 있단 말이지.
"농담이에요. 침대에서 같이 자요.
여자친구인데 왜 각방을 쓰려고 그래."
"나빴어!"
유다 누나는 울상을 지으며 입을 쭉 내밀었다.
나는 웃으며 식탁 위를 정리했다.
"누나 먼저 씻어요. 제가 설거지 할 테니까."
"응, 응..."
누나가 욕실에 들어가 먼저 샤워를 시작했다.
오늘은 뭐. 관장플같은 거 말고. 진짜 연인처럼 꽁냥꽁냥 자 볼까?
이따 침대에서 스플릿텅과 진한 딥키스를 할 생각을 하니 갑자기 자지가 솟아오른다.
그리고 물소리도 내 기분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음... 빨리 같이 자고 싶네'
침실에 간접등만 켜놓고, 불은 다 껐다.
아쉽게도 유다 누나는 샤워 가운도 다 챙겨 왔다. 가운을 입고 침실로 들어간다.
빨리 씻고 나왔는데
"누나. 어 옷이, 뭐에요?"
"이, 이상해?"
"아니, 그건 아닌데"
유다 누나의 복장이 충격적이었다.
산타를 연상시키는 붉은 컬러의 브래지어.
양 쪽으로 훤히 갈라져 팬티의 본분을 하나도 수행하지 못하는 빨간 속옷.
보기만 해도 가슴이 쿵쿵 뛴다.
왁싱을 마친 백보지가 훤히 드러나는 음탕한 속옷이었다.
뒤로 돌면 아마 애널까지 다 보이겠지.
그리고 침대 옆의 탁자에, 붉은 벨벳으로 쌓인 반지 케이스같은 게 있다.
뭐지? 콘돔 담아놓는 건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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