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 170. 박지철 쇼생크 탈출
* * *
"됐다!!!"
나는 기쁨에 방 안을 뛰었다. 박지철, 동주, 그리고 그 부하까지 모조리 검거에 성공했다.
박지철이 경찰서로 도망치지 않았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까마귀가 그를 보고 있는 한 절대 도망칠 수 없다.
'예림이에게 가서 다 괜찮아졌다고 말해야지.'
예림이는 놈들이 찾아올지도 몰라 아직도 걱정할 터였다.
다 잘 해결됐다고 말하고 싶었다.
박지철 일당은 보험사기로 기소될 테니 오히려 예림이네 부모님이 배상을 받을 터였다.
기쁜 소식이라면 내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들어주긴 하겠지.
그렇게 신발을 꿰어 신다가 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
"..."
현관에 샤를의 하이힐이 남아 있었다.
가장 처음 육화했을 때 신고 있던 하이힐.
'젠장. 이딴 건 왜 아직도 남아 있어서.'
들고 보이지 않는 높은 곳의 신발장에 쑤셔박았다.
샤를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이후 아예 사라져 버렸다.
이틀 동안 몇 번이고 연락해도 받을 수 없다는 말만 떴다.
배신감이 상처에 소금 친 것처럼 스며들었다.
최소한 얼굴은 보고 이야기해야 할 것 아냐.
샤를의 마지막 말이 떠올라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 오빠. 지금까지 우리 좋았잖아요.
그러니까 마지막엔 깔끔하게 끝내요.
용서해 준다면서요. 그러니까 해지 도장 찍어 줘요. ]
그 말을 떠올리면 샤를이 날 비웃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됐어. 그래. 네 소원대로 계약 해지해 줬어.
솔직히 진짜로 좋아했는데. 알아서 살아.'
연세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예림의 부모님은 중환자실에서 하루 있다 일반 병실로 내려왔다.
천만다행으로 의식도 돌아왔고 장애가 의심되는 부위도 없다.
차가 반파되는 사고에 비해 부상은 적은 편.
두 달 정도만 불편하면 될거라고 의사가 말했다.
카운터에서 나는 다행이라고 말하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예림이의 부모님은 2인실에 입원중이었다.
6인실에 자리가 났다고는 했지만 내가 다 결제할 거라고, 2인실에서 바꾸지 말라고 이야기해놨다.
"저, 예림아..."
예림이는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 내가 들어오자 깜짝 놀라 일어났다.
부모님 두분은 다 주무시고 계신다. 잘 됐네. 예림이 입으로 듣는 게 훨씬 낫겠지.
"안 일어나도 돼. 그냥 좋은 소식이 있어서."
"뭔데요?"
예림은 잠이 덜 깬 상태로, 눈가를 비비며 물었다.
저번보다는 날카로움이 훨씬 줄어든 상태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군.
"너희 부모님 다치게 한 사기꾼 있잖아. 람보르기니 운전자랑 그 무당.
오늘 납치 계획 꾸미다가 전부 잡혔어."
예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납, 납치요? 진짜요?"
"응. 근데 이젠 걱정 안 해도 돼.
알아보니까. 얘네 전부 보험 사기에 죄질이 안 좋은 인간들이더라고.
아마 무당은 최소한 40년은 감옥에 있을 거고. 부하들도 다 잡혔어. 걱정 마."
그러자 예림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람보르기니 값이라던가, 그런 것만 보상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이놈들이 보험 사기 친 거라서. 부모님이 오히려 보상받을거야."
"다행이다"
예림의 얼굴이 풀어졌다.
하지만 내 앞에서 그런 표정을 보이기 싫은지, 금세 표정을 단속했다.
그러며 부모님을 돌아봤다.
"엄마 아빠가 믿을까요?"
예림의 부모님은 사고 충격으로, 그 날 있었던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박지철과 술을 먹던 기억조차 없다고.
오히려 박지철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이것도 가져왔지.
"이거 보여드려."
박성연이 준 자료의 복사본이다. 박지철이 얼마나 개 쓰레기같은 범죄를 저질렀는지 조목조목 나와 있다.
파일 철 하나를 꽉 채울 정도. 예림은 파일을 받아 확인하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팍 닫았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요."
내가 아는 분에게 부탁해서 받았어 라고 생색을 내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참았다.
이런 건 그냥 말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애초에 이런 일이 다 나 때문에 생긴 건데. 여기서 뻐겨 봤자 부끄러울 뿐이었다.
그 때 간호사가 복도를 돌며 내게 말했다.
"오늘 면회시간 종료됐습니다."
"아, 네. 지금 나가요."
빨리 용건만 전하고 가기 위해 일부러 면회 시간이 끝나기 직전에 왔다.
여기 있다간 주절주절 변명하고 싶어질 지도 몰랐으니.
"그럼 갈게."
"잠깐만요. 같이 가요."
그런데 이상했다. 예림이 모자를 눌러쓰고는 날 따라 나온다.
그러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불편해서 죽을 뻔 했다.
1층의 로비까지 내려와서, 내가 입을 열까 말까 하다 열기 직전 예림이가 먼저 말했다.
"오빠를 용서한 건 아니예요.
그래도. 오빠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라고 믿을게요."
다행이다! 지난 이틀간 예림이에게 인식 저해를 한참 설명한 효과가 있다!
마법에 대해 증명할 자료가 남아있어서 너무나 다행이었다.
그 증명 자료란건... 내가 나오는 폰허브 영상이었다. 인식저해 마법이 걸린.
'자, 이거 봐! 폰허브에서 내 얼굴 못 알아봤지? 왜 못 알아봤을까?
인식 저해 마법을 걸어서 그래!
예림이 너랑 샤를이랑 똑같이 생겨서, 네가 피해입을까봐. 마법을 걸었다니까?
본인이어서 인식 저해 마법이 안 걸린 거라고!'
예림이는 처음엔 그게 말이나 되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내 사진과 폰허브 영상을 같이 놓고 실험해 보고는 겨우 인정했다.
내 사진을 옆에 놓고 폰허브 영상을 보면 나인지 알아먹겠다고 한다.
'솔직히... 진짜 하나도 안 믿기긴 한데.
제 눈으로 봤으니 믿을 수밖에 없네요.'
그래서 지금은 카페 알바할 때보다는 훨씬 어색하지만.
맨 처음 분노하던 것에 비하면 천사 같다.
입을 다물고 한참을 걷던 예림이 내게 물었다.
"그래서. 그 악마는 지금 어디있어요?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솔직히 저는 악마한테도 사과받고 싶거든요.
저한테 걸레라던가, 뭐 카페 사장님한테 꼬리친다던가.
그런 헛소문이 너무 화나요. 심지어 악마니까 오빠가 믿은 거잖아요?
거기에 오빠랑 저랑 연락 못하게 차단까지 하고."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순간 가슴이 꽉 막혀왔다.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지만 말해야 했다.
"그게... 도망쳤어."
"예?"
"맨 처음에 나한테 거짓말 한 게 들키니까 도망쳤다고."
예림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뭐 그런 악마가 있어요?
아니, 악마라서 그런 건가? 그리고 오빠는 또 멍청하게 뒤통수 맞았고?"
도저히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샤를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소금 맞은 민달팽이가 되는 기분.
"하긴. 뭐. 이상형이 그랬으면 믿을 만도 하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날 쏘아봤다.
"오빠. 진짜로 제가 이상형이었어요?"
뭐지? 여기서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의외의 상황에 멍청하니 말 못하고 있자 예림이가 숫자를 셌다.
"삼. 이. 일. 됐어요. 들어가요. 저도 올라갈 거예요."
그리고 뒤로 돌아 휙 가 버린다.
음
모르겠네. 사이를 극복할 희망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나는 걸어가는 예림의 뒤에 인사했다. 하지만 예림은 반응 없이 그대로 가 버렸다.
"...지친다. 좀 쉬어야지."
그리고 병원 정원의 벤치에 풀썩 주저앉았다.
한 여름의 봄바람이 사락, 볼을 스쳤다.
그래 이제는. 거의 다 끝났어.
남은 건 성당 기사단의 벌을 기다려야 하겠지.
언제쯤 올까.
그래도, 저 박수무당을 처리해 버린 건 정말 다행이야.
예림이도 내 설명을 이해했으니까. 벌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찾아온 휴식을 즐겼다.
***
박지철은 수갑을 찬 채 멍하니 경찰의 취조에 시달렸다.
"어이. 인정하냐고. 네가 여기 대부업체랑 성매매업소 주인 맞잖아.
이 새끼 이거 아예 악질이네? 사기쳐, 빚더미에 앉혀. 포주 노릇 해.
완전 공장이네. 내가 살다 살다 너같은 새끼는 처음 본다."
"그런 적 없습니다."
"없긴, 이 새끼야! 그럼 이 장부가 왜 있냐고!"
경찰이 들고 있는 증거물들이 목을 조였다. 자신조차 존재를 까먹고 있던 장부들.
심지어 은밀한 비밀 금고에 들어있던 자료까지 모조리 꺼내왔다.
'이 새끼들 대체 어떻게 알았지?'
물론 박성연이 쥐들로 훔쳐봐서 알려준 정보다.
그걸 알 노릇이 없는 박지철은 속으로 이번 사건과 연결된 인간들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김강민, 이예림. 전영선. 이 년놈들이 엮이고 내 인생이 망했어
씨발놈들... 나가면... 복수하고 만다...!'
그러며 경찰의 질문엔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경찰도 침묵에 질려 잠시 휴식하러 나갔다.
'이때다. 기회는 단 한번뿐이야.'
박지철은 품에 고이 모셔뒀던 약을 CCTV를 피해 입에 넣었다.
언젠가 경찰에 잡혔을 때. 기회라도 한번 만들어보자 싶어서 놔뒀던 도구.
'씨발 더럽게 쓰네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다 뒈졌어 다 죽이고 필리핀으로 뜬다'
그리고 곧 박지철은 경찰서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시작했다.
입에서는 거품을 뿜고, 눈은 새하얗게 뒤집혔으며 이빨은 다물려 벌어지지 않는다.
쿠당탕. 의자가 차여 나는 소리에 경찰이 들어왔다.
"어, 이거 뭐야! 야! 정신차려! 이새끼야! 너 수 쓰냐?"
박지철의 뺨을 때리며 깨워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상황이 심각해진 걸 깨달은 경찰은 새하얗게 질려 다른 사람을 불렀다.
"어이! 병원 이송 지원바람! 환자 발생!"
박지철을 업고 동료 경관과 순찰차에 올라탔다.
범죄자 관리를 어떻게 하냐고 한 소리 들을까봐 걱정하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