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 168. 사악한 계획난도질비열한 습격
* * *
예림은 좀 더 사진을 살펴보고 싶었다.
강민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진짜로 자기와 닮은 사람이라면?
강민이 생각 없이 영상을 올린 건 맞지만 정상 참작의 여지는 생기는 셈.
"잠시만요..."
예림은 폰의 사진을 확대해 봤다.
문신만 빼면 자신과 완벽하게 똑같은 이목구비.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본인이다. 자신의 부모님을 데려와도 속을 터였다.
'나라면 이런 옷은 절대 안 입을 거지만'
브래지어에 가까운 윗도리, 하복부를 감싼 손바닥만한 바지.
보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노출도가 높은 복장이었다.
부끄러움을 참으며 자세히 확인했다. 사진 안엔 자기만 찍힌 게 아니었다.
'영선이라고 했나?'
예림은 곁눈질로 영선을 살짝 봤다.
영선이란 사람도 사진에 찍혀있었다.
가짜 예림이와 같이 라운드걸 알바를 한 모양.
예림은 일단 시치미를 떼며, 사진에 찍힌 게 자기가 맞는 척 민수를 속였다.
"아, 생각해 보니 정선에서 뵌 분이구나!
제가 오늘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기억이 잘 안 났네요."
그러며 민수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오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제 번호 드릴테니까 혹시 궁금한 거 있으면 전화주세요.
저한테도 번호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 네. 여기 있습니다.
둘은 서로 번호를 교환했다. 예림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성공이다.
이제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을 터였다.
부모님의 수술은 아직도 정말 걱정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렇다면 지금은 강민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조사할 때.
두 달간 자신을 괴롭힌 폰허브 영상의 실마리를 잡은 예림은 분노로 타오르는 중이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할 일을 마쳤다고 생각했는지 민수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가서 열반농원이라는 곳 한번 조사해보겠습니다.
수상쩍은 게 한두가지가 아니네요.
영선아. 넌 어쩔거냐?"
"음, 난 강민이랑 이야기좀 더 하다 들어갈게."
"알았어."
민수는 빠른 걸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자동문 너머로 떠나자 예림이 시선을 영선쪽으로 돌렸다.
일단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와 주셔서 고마워요."
이건 정말이었다. 민수와 영선이 와 주지 않았다면 저 깡패들에게 휘둘렸을 터였다.
험한 꼴을 당할 게 분명했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런데 말이죠"
감사인사는 마쳤다. 이젠 진짜 궁금한 걸 물어볼 차례.
"강민 오빠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신가요?"
"음, 어"
영선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여자친구라고 해야 하나?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이 얼굴 본 기억이 있다.
'샤를을 맨 처음 만났을 때 이 얼굴이었지?
이름은 예림이라고 했었고?'
강민이 맨 처음에 예림이가 자기 사촌동생이라고 거짓말했었는데.
샤를은 악마고, 아마 예림이의 얼굴을 훔친 거겠지?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머리가 핑핑 돌았다.
한 발만 잘못 딛어도 지뢰를 밟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무난한 대답으로 회피해 보려고 했다.
"응 그냥, 예전에 같이 PC방 알바하던 동생이예요.
많이 친해져가지고. 오늘도 도와주러 오게 됐고요."
"그렇군요 그럼 있잖아요."
예림이 대놓고 가운데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을 던졌다.
"영선 씨랑 정선에 같이 간 여자분은 누구예요?
저랑 똑같은 얼굴 한 사람 있잖아요.
쇄골이랑, 허벅지에 문신한 여자."
예림은 자신의 몸을 짚어가며 이야기했다.
영선의 눈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루킹 삼진! 시원한 헛스윙! 영선 타자 아웃!
"저, 전 잘 몰라요. 강민이가 알지 않을까요?"
바로 대답을 회피했다. 영선의 감이 경보를 울렸다.
여기서 조금만 잘못 이야기하면 좆된다!
하지만 예림은 쉽사리 놓아 줄 생각이 없었다.
"글쎄요 저 오빠는 거짓말 할 것 같아서 말이죠."
예림은 응급실 밖의 유리문에서 누군가와 통화 중인 강민을 차갑게 바라봤다.
영선은 그 눈빛을 보며 소름이 쫙 돋았다.
예림이라는 여자 강민이한테 독기를 품었는데. 왜지?
게다가 예림이의 얼굴을 보자 이상하게 몸이 움츠러든다.
강민과 3P를 할 때면 항상 샤를에게도 깔려서 그런가
움츠러들어 있는 영선에게 예림이 한번 더 물었다.
"같이 사진도 찍으셨던데. 누군지 진짜 몰라요?"
"저, 저 진짜 몰라요"
"후우. 알았어요."
예림은 한숨을 내쉬고는 통화중인 강민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유리문 너머로 강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유다 누나. 샤를이랑 약속했는데 안 왔다고?
연락도 없고?
... 알았어. 약속은 언제 한거야? 낮에?
이따가 집에 가서 이야기해 줄게. 어. 샤를, 나도 연락 안 돼"
통화를 마친 강민은 골치가 아픈지 이마를 문질렀다.
그러다 앞에 서 있던 예림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어, 어어어. 예림아. 왜? 무슨 일이야?"
강민의 앞에서 팔짱을 끼고 대뜸 질문했다.
"오빠. 오빠랑 같이 정선 간 여자 누구예요? 저랑 똑같이 생긴."
'샤를 이야기인가?'
강민은 골치가 아파졌다.
하지만 둘러댈 수도 없다.
결국 솔직히 이야기할 수밖에.
예전에 유다와 영선에게 털어놨을 때도 믿어줬으니까 이번에도 통할 거라고 믿고 이야기했다.
"이런 이야기 하면 믿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아까도 말했었잖아.
너랑 얼굴 꼭 닮은 사람이라고."
"이상하잖아요. 얼굴은 똑같다고 쳐요. 근데 점 위치도 똑같은 사람이 어디있어요."
폰허브를 수십 번 돌려보며 찾은 결과다.
허벅지 안쪽의 점. 목 뒤의 점.
그런 것까지 똑같았다.
"딥페이크도 아닌 것 같고. 대체 뭔데요?"
강민은 눈을 꽉 감았다.
예림이가, 악마를 믿으려나.
떨어지지 않는 입을 뗐다.
"저 그게, 혹시 서큐버스라고 알아? 아니, 이상하게 들린다는 건 아는데!"
예림의 표정이 이상해지는 걸 보고 난 황급히 설명했다.
"악마가 내 이상형인 여자로 변신해 준 거거든?
그 내가, 원하는 걸 다 해 줄 수 있다고 하면서.
그래서 너랑 완전히 똑같이 생겼어. 점 위치가 같은 것도 그것때문이고."
예림의 표정이 더 구겨졌다.
"오빠... 지금 그걸 믿으라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요. 그거 진짜 점 위치까지 구현한 딥페이크 아니에요?
오빠, 내 목 뒤 점이랑. 허벅지 점이랑. 그런 것까지 관찰하고 있던 거라던가..."
"봐! 이렇게 안 믿을 걸 아니까 말하기 싫었다고! 진짜 악마라니까!"
예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니까 악마가 이상형인 내 모습으로 변한 다음에.
강민오빠가 원하는 걸 다 해줬다?
"오빠. 술 마신거 아니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냐."
"좋아요. 일단 악마 짓이라고 쳐 봐요. 그럼 오빠가 원하는 걸 해 준 건"
잠깐 그럼
예림이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하얘졌다가 하며 색이 바뀐다.
분노에 휩싸여 소리쳤다.
"오빠. 저랑 섹스한 걸 촬영해서 인터넷에 올리고 싶었다는 거예요?"
앞뒤관통 섹스영상 인터넷 개제.
강민은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파면 팔수록 괴담만 등장하는 중.
"아냐!!! 그건 마력을 모으려고 한 건데!!! 이거 보이지!!!"
팔목에 있는 룬 문자를 보여줬다.
하필이면 투명 UV 잉크로 새겨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상처자국만 보인다.
"이게 마법진이거든! 잠깐만!"
강민은 팔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빛나, 빛나라고! 시팔!! 저번처럼 빛나기라도 하면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왜 안 빛나는 거야!'
마력을 흘려넣으면 움직일까 싶어 시도해 봤지만.
'아니, 애초에 마력이란 걸 어떻게 움직여?'
샤를에게 나눠받기만 했을 뿐이지 쓰는 법을 모른다.
강민은 땀을 뻘뻘 흘리며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팔을 돌려보기도 하지만 마법진은 요지부동이었다.
예림은 그걸 한숨을 쉬며 지켜볼 뿐이었다.
강민의 모습은 딱 알콜 중독 환자같았다.
병원에서 상처 자국을 마법진이라고 주장하며 손을 흔들고 있는 미치광이.
심지어 악마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친 건가?'
머리가 어지러웠다.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호감이 있었던 오빠는 파렴치한 성범죄자라는 걸 알게 됐고, 부모님은 사고를 당했다.
예림의 뇌는 혹사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하아... 일단. 오빠. 저 생각좀 정리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러며 몸을 돌려 보호자 대기실이 있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강민은 따라 올라가려고 계단 난간에 손을 올렸지만 예림이 차갑게 말했다.
"됐어요. 따라오지 마요."
그러며 계단을 돌아 사라져 버렸다.
강민은 버려진 강아지처럼 쓸쓸하게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며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하아... 안 믿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걸 어떻게 해명하냐"
샤를을 직접 보여줄 수도 없고.
결국 옛날 사진이라던가, 샤를이 보내준 속옷 영상 등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나는 영선 누나에게 터덜터덜 돌아가며 사진첩을 뒤적거렸다.
"강민아! 미안해. 아까 민수 오빠가 정선에서 샤를 찍힌 사진 보여주는 거, 못 말렸어"
영선 누나가 정말 미안한 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니예요, 누나. 제가 설명을 제대로 못한 탓이죠.
잘했어요. 샤를이 악마란 거 말했는데 안 믿더라구요."
"그래서, 쟤가 예림이야? 너랑은 무슨 관계인데 샤를이 예림이 얼굴을 하고 나타난 거야?
그리고 왜 너한테 저렇게 화를 내? 무슨 짓 했어?"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설명하기 너무 길다.
"나중에 유다 누나랑 같이 있을 때 말해드릴게요."
그리고, 진짜 예림이에게도 설명을 해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어떻게 셋을 모아놓고 설명할 지 고민을 시작했다.
***
강민 일행을 내버려 두고 나온 동주와 양아치는 병원 뒷쪽의 흡연 구역으로 향했다.
CCTV도 없는 어두침침한 흡연장.
앞장서 올라가던 양아치는 흡연장에 누가 통화중인 걸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아니, 아까 젊은 새끼가 나한테 따박따박 반말하면서! 담배피는 거 처음 보냐고 지랄을 하는데!
요새 놈들은 왜 이렇게 버릇없는지 모르겠어! 옛날같았으면 반 죽여놨을텐데."
아까 화장실에서 자신과 말싸움하던 꼰대다.
양아치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등 뒤로 다가가, 그대로 등을 걷어찼다.
"크흑 어어어?"
산의 계단을 거의 날아가듯 떨어져, 몇십 칸 아래로 구르며 추락한다.
다리가 부러졌는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다.
하지만 양아치는 그걸 차갑게 내려다보며 침을 퉤 뱉었다.
그리고 다가온 동주에게 담배불을 붙여드렸다.
"뭐야. 누군데?"
"아, 형님. 아까 꼴받게 하는 꼰대가 있어서. 죄송합니다."
그들에겐 죄책감도 없는지 담배를 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양아치는 웃으면서도 속으로 욕을 했다.
'하. 동주 형님이 몸은 잘 쓰는데. 대가리는 존나게 멍청하단 말이지.'
"저. 일단 손해사정사가 붙었으면 저희도 상당히 곤란한데요."
"뭐?"
동주의 이마가 일그러졌다. 양아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빠르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 잘하는 방식으로다가.
끼어든 놈들 어디 한군데 부러뜨려서 쫓아내죠?"
사악한 계획이, 다리가 부러진 아저씨의 비명을 배경으로 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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