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165. 강민 오빠 우리 좋았잖아요. 그러니까 안녕, 안녕.
* * *
미카엘의 손에서 막대한 양의 마나가 뿜어진다.
곧 샤를의 갈비뼈에서 우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뼈가 끊어지는 중.
"흐극, 흐아아아"
샤를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미카엘이 하는 것은 영체 수술이다. 인간의 몸에 메스를 대지 않고 마나만으로 암을 제거한다던가 하는, 성직자들이 보여주는 기술.
미카엘은 그걸 거칠게 수행하는 중이었다. 아프지 않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고통을 준다. 샤를의 가슴을 따며 평온하게 말했다.
"스스로 계약서 내놓는 게 좋을 텐데요?"
"으그으으윽, 아, 안 돼"
하지만 저항은 허망하게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빛의 사슬은 마력의 사용도, 움직임도 모조리 봉쇄한다.
곧 미카엘의 손길이 가슴을 가르고 쿵쿵 뛰는 심장을 드러냈다.심장에 달라붙어 있는 계약서가 훤히 노출됐다.
"이렇게 될 걸 알면서 귀찮게 하시긴."
미카엘이 손을 뻗어 찌익, 계약서를 뜯어낸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의지에 반해 계약서를 탈취당한 샤를의 몸이 위아래로 펄떡 뛰었다.
"으으아아아아!"
샤를의 비명을 들으며, 미카엘은 솜씨 좋게 가슴을 닫았다. 개복된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붙고 부러졌던 뼈도 아문다.
하지만 아픔은 사라지지 않고 샤를의 몸을 달렸다.샤를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계약서를 든 미카엘을 봤다. 미카엘은 그런 샤를을 보며 씩 웃었다.
"보자. 직접 김강민 얼굴 보면서 계약 끊는 게 낫겠죠?"
미카엘은 스크린에 다시 김강민의 얼굴을 띄웠다.
병원 복도에 우두커니 서서, 예림이의 부모님이 낸 사고 피해자가 응급실 밖으로 나가는 걸 보고 있는 중이다.
"타이밍 좋네요."
그러며 미카엘은 계약서에 마력을 주입했다.
스크린에 나온 강민은 지금 계약서가 불타는 듯 뜨거워지는 걸 느낄 것이다.
예상대로, 강민은 당황하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가슴께에 손을 대 자신의 계약서를 빼낸다.
"보자... 어떻게 말하는 게 좋으려나..."
미카엘은 어두운 눈으로 강민을 노려봤다.
저 놈도 악마와 결탁해 멀쩡한 사람을 망가뜨린 죄인.
계약서의 내용은 아까 읽어서 대략 파악했다.
어차피 나중에 저 놈도 천칭의 처벌을 통해 성당기사단으로 압송당하겠지만.
그때까지 편하게 둘 순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계약서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
컥, 커헉!
내 가슴에 불타는 듯한 통증이 달렸다.
예전에 샤를이 뭐라고 했더라? 계약을 어기거나 하면 계약서가 뜨겁게 불타오른다고 했지?
샤를. 너,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연락도 안 받고.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남의 눈을 피해 화장실로 달려들어가 심장에서 계약서를 빼냈다.
원래 있던 글자들이 사라지고 새 글자가 꿈틀거렸다. 나는 경악에 차서 글을 읽었다.
샤를이 내게 이별을 고하는 중이었다.
[ 안녕 오빠. 샤를이에요.
거짓말 한 거 들켜서 미안해요.
그래도 알잖아요? 악마는 항상 거짓말을 한다는 거.
오빠가 저 좋아해 주는 게 웃기긴 했지만 거짓말 한 거 들켰으니까 얼굴 계속 보긴 좀 그렇죠?
우리 계약은 여기까지 하고 종료하고 싶은데. 괜찮아요? ]
계약 종료라고? 샤를. 잠깐만. 이럼 안돼잖아.
배신감에 이빨이 갈릴 지경이었다.
태연하게 거짓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들켰으니까 떠난다고?
항상 생긋 웃어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제발 자기 좋아해달라고 말했으면서!
그게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부들거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붙잡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 샤를. 설명해.
거짓말 한 거, 알았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
뭘 설명해야 하지?
시작부터 잘못됐는데?
애초에 샤를은 거짓말로 나를 속여서 관계를 시작했다.건물의 기초공사를 허술한 모래톱에 한 셈이다.
그 위에 무엇을 올렸든 부질없다.
'아냐, 그럴 리 없어... 시작은 그랬어도... 중간부턴 진실이었을거야.
어제까지 풀파티 안에서 내 손을 붙잡고 웃었던 건 대체 뭔데?
침대에서 항상 나한테 속삭였잖아. 좋아한다면서. 사랑한다면서!
힘든 일 있으면 너한테 이야기해 달라고 했잖아!
그게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계약서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 샤를. 너.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어? 예림이가 걸레라고 거짓말하던 것부터 전부? ]
돌아오는 대답은 차가웠다.
[ 오빠가 저 좋아하는 거. 좀 웃겼어요.
악마랑 진짜 연애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나요? 웃겨라.
악마랑 계약은 쉽게 하지 말라는 걸 이번 기회에 깨달으셨을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애초에, 우리 그냥 성적 욕구만 충족하기로 한 계약이었잖아요?
그냥 상호 동의 하에. 계약 종료해요.
괜히 서로 힘 빼지 말구요.
아니면 뭐, 날 진심으로 좋아하기라도 했나? ]
씨팔! 뭐라고 해야 해! 나는 화장실 안을 맴돌며 벽을 손으로 쾅쾅 쳤다.
너무나 많은 일을 겪은 머릿속은 하얗게 불타오르기 직전이었다.
배신감에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으아 으아아아아!"
나는 터져나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벽을 쾅쾅 내리쳤다.
퍼석. 타일 하나가 깨지고 손가락이 피투성이가 된다.
하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샤를.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
미카엘은 스크린 안의 강민을 보며 피식 웃었다.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꼴이라. 예림이 겪었을 고통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겠지만.
미카엘은 계약서를 흔들며 샤를에게 말했다.
"추종자가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했나 보네요?
천칭이 확실히 효과가 좋아요.
심판받는 사람이 가장 고통을 느낄만한 방법을 추천해 준다니까.
계약 종료만으로 이렇게 괴로워 할 줄은 몰랐네."
"그만, 그만해! 제발! 그만해주세요!"
샤를은 빛의 사슬에 묶여서 울부짖었다.
"난, 저런 말을 하지 않아. 오빠. 제발. 눈치채줘요.
내가 말하는 게 아니야!"
"과연 그럴까요?"
미카엘은 한번 더 마력을 불어넣었다. 계약서에 글자가 떠올랐다.
[ 샤를은 김강민과의 계약을 종료하고자 합니다.
이에 동의합니다. 이름 김 강 민 (인) ]
"안 돼! 동의하지 마요, 오빠!"
샤를이 격렬하게 소리쳤다.
지금 미카엘은 천칭의 힘을 빌린 상태.
인간으로 따지자면 개인간의 계약 위에 존재하는, 헌법같은 역할.
개인끼리의 계약을 무효로 돌리고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인) 위에 올라가 있는 강민의 손이 덜덜 떨린다. 여기에 엄지를 누르면 피가 새나오고, 끝.
미카엘은 덤덤히 그 광경을 지켜보며 말했다.
"예림이란 분도.자기가 하지 않은 일로... 고통받았겠죠.
남이 자신을 멋대로 사칭하는 거, 당해보니 기분이 어떤가요?"
샤를은 고개를 쳐박고 중얼거렸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에서 피가 새나오는 느낌이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제발. 한번만. 오빠한테 말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지만 미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저지른 죄를 깨달으세요.그 인간 남자가 그렇게 좋나요?
축하해요. 아마 10년동안은 못 보겠네요.당신 계약자는 평생 거짓말한 당신을 원망하겠죠?"
샤를의 눈이 텅 빈 채로 미카엘을 올려다봤다. 미카엘은 입술을 내밀고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강민이 지장을 찍지 못하고 거칠게 숨을 쉬는 중이었다.
"흠... 지장을 찍을 생각을 안하네요.보자... 뭐가 있을까?"
미카엘은 샤를의 옆으로 와 머리에 손가락을 찔러넣었다.
영체를 자극해 기억을 찾아보는 중.머릿속을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샤를은 불쾌한 감각에 이를 악물었다. 누군가 자신의 머릿속을 뒤적거리는 건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신경쓰지 않고 샤를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음 써 먹을 만한 게, 여기있다!"
샤를이 필로우 토크 중에 말했었다.
'오빠...제가 잘못한 게 있는 데. 용서해 주실 건가요?'
강민이용서해 주겠다고 했었지?
미카엘은 손을 떼고 계약서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새로운 말이 떠올랐다.
[ 오빠. 지금까지 우리 좋았잖아요.
그러니까 마지막엔 깔끔하게 끝내요.
제발. 제 마지막 부탁이에요.
오빠가 예전에 그랬잖아요. 제가 잘못했어도 용서해 주겠다고.
오늘 제 잘못 용서해 주시면 돼요.
도장, 찍어 주실 거죠? ]
그 문장을 읽은 강민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용서해 주겠다는 말을 인질로 이런 부탁을 할 줄이야.
"샤를...너, 끝까지. 잔인하구나."
스크린 너머로 목소리가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엄지를 내려
도장을 찍었다.
"안 돼 안 돼!"
샤를은 울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계약이 풀리는 게 느껴진다.
미카엘이 들고 있는 계약서가 녹아서 허공으로 사라져간다.
"미카엘!"
스크린 속의 강민은 머리를 감싸쥔 채 주저앉았다.
그걸 본 샤를의 입에서 짐승같은 외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사슬이 꿈틀거리며 소리를 못 내도록 목을 감았다. 경동맥을 솜씨좋게 졸라서 기절시킨다. 기절하자 다시 느슨하게 돌아온다.
다른 기사단원들이 찬트의 음계를 조절해 솜씨 좋게 처리한 것이다. 미카엘이 박수를 쳤다.
주교급이야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프랑스에서 온 성당기사단의 엘리트들은 모두 악마를 혐오한다.
"잘 했어요. 이제 인천공항에서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죠."
샤를 드골 공항이라. 프랑스의 공항도 이름에도 샤를이 들어가는군. 미카엘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스크린 속의 강민을 봤다. 아직도 일어나지 못한 채 훌쩍거리는 중이다.
'뭐... 곧, 저 자도 심판받게 되겠지만. 편안한 휴식은 없을 거야. 기대하라고. 우린 곧 다시 올 테니까.'
손을 저어 빔 프로젝트를 껐다. 그리고 바닥에 누워 있는 유다에게 다가갔다. 아까 샤를을 보던 표정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온화했다.
미카엘이 천칭에게 물었다.
"천칭이시여. 이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잠시의 침묵 후, 천칭이 끼익거리며 대답했다.
"성당 기사단의 신비가 새어나가지 않게 해라.
치료해주고. 여기서의 기억을 지워라."
미카엘이 유다를 일으켜 세워 의자에 앉히고 마력을 뿜었다.
손 끝에서 환한 빛이 새어나오고, 화상을 입었던 피부에 새살이 돋아난다.
열기에 타 오그라든 머리카락도 돌아왔다.
그리고, 이마에 손가락을 스친다.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이 이마에서 뽑아져 나왔다.
영체수술로 기억을 빼낸 것이다.
"그럼... 이제 됐겠군."
미카엘이 카페 안을 둘러봤다.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 유다의 옷매무새를 고쳐준 후, 나가며 카페의 문을 닫았다.
딸랑
차임벨이 울리는 순간, 카페 안이 순식간에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사라져 있던 사람들이 나타난 것 같았다.
그 소음에 의자에 기대어 있던 유다가 일어나 눈을 비볐다.
"아우 뭐였지? 샤를 기다리다, 잠깐 잠들었나...?"
꿈을 꾼 것처럼 머릿속이 멍했다. 꿈에서 무서운 외국인이 나왔던 것 같은데.
눈을 몇번 깜빡이자 모래처럼 기억이 흘러나간다.
기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유다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손목의 시계를 봤다.
"어라. 벌써 네 이십분이야? 샤를이랑 네시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왜 안 오지?"
그렇게 유다는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