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167화 (167/358)

〈 167화 〉 164. 샤를의 처벌

* * *

스크린에서 영상이 계속 재생됐다.

예림의 부모님이 불당에 찾아가고 사기꾼에게 속는 장면.

굿을 하고, 사기꾼이 예림이의 부모님에게 술을 먹이고 차에 태우는 장면.

도로에서 다른 차가 부모님을 향해 달려드는 장면.

거기서 유다는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가렸다.

하지만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콰앙! 하고 충돌하는 소리는 눈을 감아도 들려왔다.

끔찍한 소음이었다.

'이, 이런 걸 카페에서 보여줘도 되는 거야­?'

유다는 눈에서 살짝 손을 떼고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어느 새 카페 안의 손님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손님으로 가득찼던 카페의 군데군데, 외국인들이 앉아있을 뿐.

'뭐야­? 다들 어디 갔어­?'

유다가 당황할 동안 스크린은 병원으로 실려간 예림의 부모님과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병원 안으로 예림과 강민이 달려오는 장면을 끝으로 스크린이 암전했다.

둘은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굳었다.

바리스타가 씨익 웃으며 샤를에게 말했다.

"어때? 이게 지금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일이야.

우리 성당기사단 일 잘하지?

마법으로 읽은 기억을 한번 구성해 봤는데.

이제 너의 죄를 알 수 있겠니?"

딱딱히 굳어 대답 못하는 샤를을 바리스타가 날카롭게 노려봤다.

"네가 맨 처음에 검증도 제대로 안하고.

폰허브 올렸을 때.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몰, 몰랐어요!"

샤를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바리스타는 차갑게 말했다.

"이젠 알았겠지? 그럼 이제, 벌을 받아야겠지?"

버, 벌? 유다는 당황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누, 누구신데 당신이 벌을 준다 만다 결정해요, 당신 뭐 경찰이라도 돼?"

유다는 일단 소리쳐봤다. 자신이 샤를보다 언니니까 샤를을 지켜줘야지.

무의미한 저항이었지만,바리스타는 마음에 들었는지 정중하게 인사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성당기사단의 아나이스라고 해요.

이런 악마들 잡아넣는 게 제 일이죠."

"성, 성당기사단?"

성당기사단. 예전에 강민에게 들은 적이 있다.

악마를 잡아서... 합당한 벌을 준다고.

유다는 꼿꼿이 굳었다.

어느 새 아나이스의 손에 천칭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사악하게 웃으며 천칭에 속삭였다.

"그래서. 샤를은 무슨 벌을 받아야 할까요?"

끼익, 끼익, 끼익.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천칭이 움직인다.

한참 동안 좌우로 움직이다투박하고 무기질적인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벌을 내리는 신탁처럼. 소름이 돋게 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샤를. 이예림의 부모님을 다치게 한 죄.

이예림의 형상으로 음란물을 올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죄.

10년간 성당기사단이 구금한다.

김강민과 맺은 인간계 거주를 위한 계약을 해지한다.

형은 지금 즉시 집행한다."

그걸 들으며 아나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10년이라. 그렇게 길진 않네? 아무래도 예림이란 사람의 부모님이 크게 다치진 않았나봐?

그래도 일찍 잡혀가서 다행이네. 앞으로 죄를 더 쌓았으면 정말 죽을 때까지 갇혀 있었을 텐데.

자, 여러분들. 구금하세요."

아나이스의 말에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들이 일어나 이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입을 열었다.

성가의 첫 소절이 울려퍼진다. 카페 안이 환해지며 빛의 사슬이 모여들었다.

빛으로 된 악마용 포박진이 카페 유리창에 촘촘히 새겨졌다.

"젠장, 그냥 순순히 끌려갈 것 같아­?"

샤를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벌떡 일어서서 마력을 모은다.

팔뚝에 어두운 붉은 빛 마력 고리가 모여든다. 일곱 개가 넘는 띠가 생겼다.

주변을 둘러싼 남자들의 표정이 새하얘졌다.

하지만 아나이스에겐 별 위협이 되지 않는 듯했다. 평온한 얼굴.

고리를 본 아나이스의 눈이 뱀처럼 가늘어졌다.

"샤를. 반항하지 마세요.이건 진짜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여기서 쓸데없이 반항했다간 천칭이 무슨 벌을 내릴 것 같나요?"

샤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

그 동안 빛의 띠가 빠르게 조여들었다. 샤를의 몸이 감싸지기 직전유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잠깐만요! 이야기 먼저, 하고­"

샤를을 밀쳐내고 대신 섰다. 빛의 사슬이 유다를 포박한다. 샤를은 충격으로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당황한 것은 남자들도 마찬가지. 성가의 톤이 눈에 띄게 낮아지고 유다를 감싼 빛의 고리가 희미해진다.

하지만 아나이스가 목소릴 높였다.

"계속 불러요!"

그리고 유다를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아, 정말. 귀찮아. 악마 숭배자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너도 악마랑 얼마나 붙어다녔니? 악마의 냄새가 풀풀 나는데."

"일단, 대화 먼저 해도 늦지 않­"

조여드는 빛의 고리를 손으로 헤치며 유다가 소리질렀다.

아나이스가 질렸다는 눈으로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주문을 외웠다.

아나이스는 어제 김강민을 놔 주느라 짜증이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거기서 끝났으면 모를까. 주교가 잠시 머리를 식히라고 근신 처분까지 내렸다.

아마 호위기사단장인 미카엘이 보고했겠지.

그래서 지금 수녀복도 못 입었는데. 악마 추종자가 방해하기까지.

"춤추며 불타라."

짧은 영창이 튀어나왔다.

화륵. 불꽃의 고리가 샤를과 유다의 주변에 원을 그리며 타올랐다. 그걸 본 호위기사장 미카엘의 눈이 커졌다.

"잠깐! 멈추세요, 아나이스­! 지금 이게 뭐하는 짓­"

말리기엔 늦었다. 불의 고리가 땅에 새겨지고 격렬하게 타올랐다.

산소가 불타 사라지고, 뜨거운 열기가 머리카락을 구부러지게 만든다.

샤를은 가슴이 조여드는 고통에 바닥을 굴렀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유다 언니­'

마력을 두른 자신도 이렇게 괴로운데 유다 언니는 괜찮을까?

마력을 뿜어 주변의 불길을 뚫으려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성당기사단의 전투수녀 아나이스와, 싸움이라곤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샤를. 둘의 차이는 깊디 깊었다.

부족한 산소에 기절하기 직전, 갑자기 시원한 공기가 몰려들었다.

그리고 아나이스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미카엘. 뭐하는 짓이예요? 이봐요. 직접 불이 닿지도 않았어요. 그냥 산소만 태워서 기절시킨 거라구요."

하지만 미카엘은 아나이스에게 소리쳤다.

"이건 선을 넘었습니다! 아나이스! 근신 중이지만 작전에 참가시켜 줬는데.이런 짓을!"

아나이스의 능력 자체는 높게 봐 줄 수 있었다. 마력으로 일곱개의 고리를 두른 샤를을 간단하게 제압했으니까.

하지만 너무나 과격했다. 일반인이 말려들었는데 이렇게 행동할 줄은!

"현장 지휘자의 권한으로 명합니다. 한국 지부에서 대기하세요!"

"뭐? 이봐요. 미카엘. 지금 그거 진심으로 하는­"

"대기하세요."

의심의 여지 없는 명백한 명령이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아나이스를 벨 기세였다.

아나이스는 미카엘을 노려봤다. 그러다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렸다.

"젠장, 그래요... 좋아, 좋다고."

그리고 문 밖으로 나가 사라졌다.

샤를은 그 틈을 타 유다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미카엘이 손을 들었다.

빛의 고리가 샤를에게 옮겨간다.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사슬은 온 몸을 묶고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마력을 내뿜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절망으로 축 늘어진 샤를을 미카엘이 담담하게 내려다봤다.

"샤를. 형의 집행은 지금부터입니다.

천칭이 내린 벌대로 성당 기사단이 당신을 구금합니다.

한국 지부에서 구금할 수도 있지만... 아마 오늘 저녁 프랑스 지부로 향하게 될 겁니다.

높으신 분들이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하거든요."

"프, 프랑스요?"

샤를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대로 프랑스로 실려간다면 10년간 강민에게 연락할 수도, 볼 수도 없다.

할머니의 할머니에서부터 내려온 성당 기사단의 악명. 이들은 그렇게 하고도 남을 것이다.

샤를은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부탁했다.

"갈게요. 얌전히 갈 테니까 가기 전에 한 번만, 강민 오빠한테 연락하게 해 주세요­!"

샤를은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미카엘에게 간청했다.

아나이스를 말리고 유다를 구해주는 걸 보니 상식이 통하는 사람 같았다.

미카엘은 잠깐 고민하며 자신의 턱을 긁었다.

"흠... 그 사람과 연락을 원하는 겁니까?"

"네, 네!"

샤를은 희망에 차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이 무릎을 꿇고 샤를의 옆에 다가왔다.

그리고 샤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악마년아. 내가 널 도와줬다고 착각하지 마. 나도... 아나이스처럼 악마가 증오스러워."

샤를은 얼어붙어서 미카엘을 올려다봤다. 미카엘은 샤를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여기 성당기사단의 엘리트들이 왜 엘리트가 됐을까?

악마를 어지간히 증오하지 않는 이상... 제정신으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악마를 사냥할까?"

그러며 자신의 셔츠를 풀어 그 밑을 내보였다.샤를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걸 바라봤다.

그의 셔츠 밑에는 사람 얼굴을 한 흉터 자국 수십 개가 꿈틀거렸다.귀신들림의 증거 중 하나인 인면창이었다.

미카엘은 아무래도­ 악마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받은 듯 했다. 미카엘의 입이 비틀리며 말을 쏟아냈다.

"나는 너희 악마들이 고통받았으면 좋겠어. 아나이스처럼 적극적이지 않을 뿐이야.

네가 잘못이 없었다면 용서해 줬겠지만. 네게는 죄가 많은 것 같군.

가만히 잘 있었을 가족 하나를... 부숴 놓은 거야. 네가 말야."

그러며 증오가 번뜩이는 눈으로 샤를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김강민과의 계약서 넘겨."

악마의 계약서. 심장에 보관하고 있는 걸 넘기면 강민과의 관계도 끝일 터였다.

샤를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돼. 못 넘겨. 통화 한 번만 하게 해 줘­그럼 순순히 말 들을 테니까­"

하지만 미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후회할 짓을 하는군."

미카엘의 손이 샤를의 가슴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득, 소리가 카페 안에 생생히 울려퍼졌다.

"꺄아아아아아­­­­!"

샤를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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