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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166화 (166/358)

〈 166화 〉 163. 샤를. 왜 거짓말했어?

* * *

시간대는 살짝 뒤로 돌아가서 강민이 예림에게 전화하고 있을 때.

샤를은 유다에게 연락했다.

[ 언니. 뭐해요? 같이 커피 한잔 할래요? ]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샤를은 나갈 준비를 하면서도 이상 행동을 보였다.

옷을 입는 중간중간 한숨을 쉬거나 벽에 기대거나.

누가 봐도 고민이 있어 보였다.

'강민 오빠한테, 예림이 일을 어떻게 말하지...?'

강민을 속였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못하면 쓰러질 것 같았다.

최근 강민에게 다 털어놓고 싶어 몇번이고 입을 열었다가도 포기하길 부지기수.

다 털어놨을 때 강민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죽도록 두려웠다.

만약 마계로 날 쫒아낸다면 어떻게 하지­ 그게 아니어도, 강민 오빠가 날 미워하게 된다면?

같이 영화를 볼 수도 없고, 손 잡고 도서관에 갈 수도 없겠지?

강민이 자신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상상만 해도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아팠다.

샤를은 눈을 꼭 감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에 유다 언니랑 이야기해 보고 결정할래­'

문제에 맞닥뜨리는 걸 최대한 미룰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고해성사하듯 털어놓고 싶었다.

유다 언니는 그런 점에서 적격이었다.

'너무 빨리 와 버렸네.'

유다와 약속한 카페에 도착했는데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은 일렀다.

도저히 약속 시간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빨리 와 버렸다.

카페 안엔 외국인들이 많았다.

샤를은 구석 자리를 찾아 앉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봤다.

'하아... 진짜 어떻게 하지.'

축 처진 어깨와, 계속 내쉬는 한숨의 무게에 짓눌릴 정도였다.

누가 보더라도 큰 고민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주문하지 않은 샤를에게 딱히 눈치주는 사람은 없었다.

샤를은 고민에 빠져들어 한참동안 홀로 고민했다.

그때 목소리가 샤를을 상념에서 건져올렸다.

"샤를! 거기 있었구나!"

유다였다. 유다가 샤를을 발견하고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그런데 샤를이 평소와는 달랐다.

고민이 흘러 넘치다 못해 우울한 표정이었다. 유다가 앞에 앉아 걱정스럽게 물었다.

"샤를. 무슨 일 있어?"

샤를은 말하는 걸 꺼렸다. 유다가 허브티 두잔을 가져올 동안 샤를은 입도 떼지 않았다.

허브티를 앞에 놓고도 유리잔만 손가락으로 연신 문질렀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유다가 한번 더 물었다.

"샤를. 말해 봐.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상냥하고 사근사근한 목소리였다. 샤를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혼자 끙끙 앓기를 거의 이 주째.

유다가 말해보라고 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이 툭 열렸다.

"언니. 언니는요. 거짓말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어요?"

거짓말? 유다가 턱을 괴었다.

"글쎄? 얼마나 큰 거짓말이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혹시 나한테 거짓말 한 거 있어?"

유다는 걱정되는 마음에 물어봤다. 하지만 샤를은 고개를 저었다.

"언니한테 거짓말 한 건 아니구요...제가, 강민 오빠에게 큰 잘못을 했어요."

"어떤 잘못?"

"강민 오빠랑 처음 만났을 때, 강민 오빠가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오빠를 너무 붙잡고 싶어서. 그 사람이 헤픈 여자라고 거짓말했어요."

그냥 거짓말 정도가 아니었다.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고소당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비방이었다. 샤를은 자신이 했던 음해를 모두 털어놨다.

전남친, 카페 사장, 걸레 등등. 이야기를 듣던 유다는 은근슬쩍 몸을 뒤로 뺐다.

'샤를이, 악마가 맞긴 하구나?'

그 뒤로도 예림의 말을 한참 듣다 물었다.

"강민이가 네 거짓말을 믿었어?"

"네. 거짓말 말고도 나쁜 짓을 했는데요.

오빠가 그 여자 연락 못 받게... 연락처 전부 차단해 놨어요."

유다는 큼,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녀로써 이해 못할 행동은 아니었다.

자신도 가끔 강민이 다른 여자와 연락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일단 샤를이 그렇게까지 한 이유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 거짓말은 너무 심하지 않아? 너라면 그런 거짓말 안해도, 충분히 강민이가 좋아했을 것 같은데."

"그건요..."

샤를은 강민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원룸에서 폰허브를 뒤지다가, 자신이 나타나자 깜짝 놀라던 강민이 똑똑히 기억났다.

그때 샤를은 강민보다 더 긴장했었다. 강민이 바지를 벗고 있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강민 오빠하고 계약을 하지 못하면 바로 마계로 돌아가야 했었으니까...'

게이트와 한 약속 때문이었다.

샤를이 마계에서 모았던 마력은 게이트를 넘기엔 부족했었다.

망연자실했지만 다른 방법을 찾았다. 게이트를 설득했다.

'가지고 있는 마력을 다 줄 테니 게이트를 넘어가게만 해 줘.

맨 처음 본 남자와 바로 계약할게.

계약에 실패하면 마계로 돌아갈 테니까...!'

게이트는 약속의 내용에 만족하며 샤를을 게이트 너머로 보내줬다.

그래서 처음 본 강민과 무슨 일이 있어도 계약해야했다.

'마계로 다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겠어.'

창관에서의 희망 없고 우울한 삶을 견디게 해 주는 건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언니 차르, 다른 하나는 게이트 너머의 삶에 대한 기대.

하지만 언니 차르는 샤를이 인간계로 가길 바랬다.

남자를 만나는 것보다 연애소설 읽는 걸 좋아하는 바보같은 서큐버스가 마계에서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게이트가 보이면 무조건 뛰어들어.

연약하고 착한 너한테 마계에서의 삶은 어울리지 않아.

그러니까 인간계에 가서 살아. 가 있다가 마력이나 벌면 나도 불러 주던가.'

'언니, 그런 말 하지 마. 나 그러다 게이트 보이면 진짜 뛰어든다?'

'멍청아. 당연히 그래야지.'

언니는 진심이었다.

그래서 게이트를 본 순간 언니를 두고 떠나왔다.

평생 모아온 마력은 게이트를 넘어 오며 다 써 버렸다.

밀입국자가 전재산을 모아 브로커에게 건네준 셈.

만약 여기서 강민과 계약하지 못하면 마계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꿈도 희망도 없는 창관으로. 모았던 마력도 모두 잃은 채.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 이후의 희망 없는 삶이 너무나 두려워서 샤를은 강민에게 거짓말을 했다.

'오빠. 예림이 전남친이랑 질싸 후싸 다 해본 걸레라니까요?'

거짓말은 성공했다. 그 이후로 예림이와 연락하지 못하게, 강민이 잘 동안 휴대폰 잠금을 풀고 차단까지 해버렸다.

그 행동으로 얻은 것은 많았다.

강민의 여자친구 자리, 마계에선 꿈도 못 꿀 양의 마력. 행복한 삶.

하지만 샤를은 자신이 한 짓이 너무나 괴로웠다.

강민에게는 정당한 계약을 통해 마력을 얻어야 한다고 해 놓고서, 맨 처음부터 거짓말을 늘어놓아 계약한 자신.

오빠가 원래 좋아하던 사람의 모습을 훔치고 연락조차 못 닿게 해버린 자신.

강민 오빠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받고 싶었다.

예림의 모습이 아니라 샤를의 모습 이후로 지낸 후엔 더더욱.

하지만 몇 번의 시도는 시도만으로 끝났다.

길고 긴 고백을 마친 샤를은 자신의 어깨를 감쌌다.

"강민 오빠가 뭐라고 할 지 너무 두려워서... 말 못하겠어요..."

유다는 모든 고백을 듣고 머리가 아파와 이마를 짚었다.

"샤를...잠깐만."

유다는 자신의 혀 피어싱으로 머그잔을 긁었다.

생각을 골똘히 할 때의 버릇이다.

'이게 다라면, 강민이 용서해 줄려나?'

강민의 성격으로 봤을 때 화는 좀 내겠지만 꾸준히 사죄한다면 용서할 가능성이 많았다.

강민은 섹스가 거칠다 뿐이지 기본적으로는 상냥했으니까.

"그거 말고, 다른 잘못은 없어?"

"없어요."

샤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일단, 솔직하게 털어 놓는 게 제일일 것 같은데­"

그 때, 옆에서 누군가가 유다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샤를. 당신 잘못이 없다구요?"

샤를과 유다가 그 쪽을 돌아봤다.

금발, 녹색 눈. 외국 영화배우같은 얼굴.

아까 유다의 주문을 받아 준 바리스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유다는 당황해서 물었다.

"누, 누구시길래 끼어드세요?"

하지만 유다를 무시한 채 바리스타는 손을 휙 저었다.

"샤를. 잘 봐. 네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카페 안의 빔프로젝터용 스크린에 영상이 떠올랐다.

그걸 본 유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 어? 이거 샤를. 네 옛날 얼굴...?"

말하던 유다가 흡, 입을 막았다. 샤를의 예전 얼굴이라던가, 악마라던가.

이런 이야기는 위험할 거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늦었다. 바리스타가 흥미를 느끼며 유다를 쳐다봤다.

"어머. 옛날 얼굴이라니. 샤를의 형상 변환까지 알고 있네요? 당신도 이 악마랑 꽤 친한가봐?"

"그런 거 아니예요!"

하지만 바리스타는 신경쓰지 않는지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렸다.

"뭐. 같이 차 마실 정도면 친한 거겠죠? 잘 됐네요. 같이 봐요. 이 악마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려줄 테니까."

유다는 입을 막은 채로 꼼짝도 못하고 스크린을 봤다.영상에선 본 적 있는 얼굴이 나왔다.

샤를의 옛날 얼굴과 닮았지만 뭔가 다르다.

한참 동안 영상을 보던 유다는 무슨 차이인지 알아냈다.

'문신이­ 없어­'

예림이가 자신이 등장하는 폰허브 영상을 보며 우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방에 얼마나 쳐박혀 있었고, 어느 정도로 슬퍼했는지. 우울해 했는지. 유다는 그걸 보며 충격에 빠졌다.

'샤를이, 아냐. 누구야?'

바리스타가 웃으며 샤를에게 말했다.

"폰허브 영상에 인식 저해는 걸었었다­ 뭐, 좋은 태도긴 해.

근데 본인이 직접 보면 어떻게 되는지는 검증을 하나도 안했더라고?"

샤를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바리스타가 그걸 보며 이죽거렸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볼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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