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165화 (165/358)

〈 165화 〉 162. 강민의 죄는 무엇인가

* * *

세브란스 병원으로 실려온 예림이의 부모님은 의식이 혼미한 상태였다.

딸이 와도 눈도 못 뜬 채 의미불명의 신음만 흘렸다.

의사는 예림이에게 수술 동의서를 받기 위해 담담하게 상태를 설명했다.

"에어백에 들이받아서 코가 부러졌구요. 다른 차를 얼마나 강하게 박았는지 안전벨트를 맨 갈비뼈가 압박골절이 됐어요. 그 외에 무릎 외상, 복합골절도 있고.

들이받는 각도가 조금만 안 좋았어도 죽었을 수도 있어요."

예림이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아버지의 하반신에는 시트가 덮어져 있다.

시트 아래를 보기 무서워 눈을 질끈 감고 물었다.

"수술, 수술하면... 혹시, 장애같은 건 남을까요?"

의사는 머리를 볼펜으로 벅벅 긁으며 차트를 노려봤다.

"아직까진 몰라요. 수술 해 봐야 알죠. 여기 싸인하세요.

수술 중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이해했고 설명을 들었으며 동의했다.

수술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이해했고, 동의한다."

예림이는 이를 악물고 동의서에 싸인했다. 그리고 누워 있는 아빠에게 외쳤다.

"아빠! 대체 왜 술 마시고 운전을 했어요!"

그러자 순간적으로 의식이 돌아왔는지 아버님의 입에서 더듬더듬 말이 흘러나왔다.

"선생님이랑... 술... 마시고... 있다가... 기억이... 안 난다...

예림아... 넌 괜찮니...?"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왜, 왜 그랬어요! 왜 이상한 사람을 불러들여선!!"

하지만 아버님의 눈이 다시 감겼다. 간호사들이 달려와 어머님과 아버님의 침대를 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예림은 부모님 두 분이 수술실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옆의 의자에 주저앉았다.

내가 가까이 다가갔지만 내 꼴도 보기 싫은지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마요!"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났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우두커니 서 있는 내게 예림이 소리질렀다.

"이게 다 오빠 때문이예요! 내가, 오빠가 만든 영상때문에 방에 쳐박혀 있으니까, 부모님이 내가 어디 아픈 줄 알고, 이상한 사람한테 홀려서­ 그러다 오늘 사고도 난 거라구요!"

예림은 자신의 몸을 감싸고 계속 중얼거렸다.

"우리 부모님은 절대 음주운전 할 리가 없어요.

뭔가 잘못된 거에요.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 없다구..."

예림이를 달래주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머릿속에 아까의 상황이 어지러이 재생됐다.

수술실로 실려들어가던 예림이의 부모님. 시트에 남은 핏자국들.

피투성이로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어있던 얼굴.

결국 저 가족을 망쳐놓은 건 나였다. 모든게 내 잘못이었다. 정신이 어지러웠다.

나도 어딘가에 주저앉아버리기 직전에, 누군가가 예림이를 불렀다.

"어이, 방금 들어가신 분 따님이요?"

껄렁껄렁해보이는 남자였다. 팔에는 깁스, 머리에 붕대.

예림이 텅 빈 눈으로 올려다봤다. 남자의 눈이 예림이의 얼굴을 쓱 훑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듯한 눈빛.

섬뜩함을 느낀 예림이가 옷매무새를 고치며 물었다.

"누구신데요?"

"그, 당신 부모님이랑 사고난 사람인데. 어쩔 거요?"

싸아악. 예림이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새하얘져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저, 죄송합니다. 많이 다치셨나요?"

"보시다시피. 전치 12주 정도 나왔는데."

"저... 보험 처리 해 드릴게요."

"뭐? 보험 처리?"

남자가 콧방귀를 뀌며 예림이의 어깨를 툭 쳤다. 기세등등한 태도였다.

예림이의 약점을 잡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보험 처리는 무슨! 아까 경찰 와서 채혈해 갔는데 술냄새가 풀풀 나더만!

음주운전 사고 보험처리를 어떻게 해! 내 차 박살난 건 어떻게 보상할 건데?"

그러며 멀쩡한 손으로 사고 차량의 사진을 보여줬다.

나도 뒤에서 흘끗 훔쳐봤다. 그리고 눈앞이 새하얘졌다.

'...어떻게 하냐.'

사진 속엔 외제차 한 대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딱 봐도 비싸보이는 노란색의 낮은 차체.

남자는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질렀다.

"이게 뭔진 알아? 람보르기니 에보 스파이더! 삼억 오천짜리야!

당신네 부모님이 부담해야 할 수리비, 렌트비, 손해배상, 합의금, 그리고 내 일 못하는 거 보상까지!

다 합치면 얼마나 나올 것 같아? 집에 돈 좀 있어?"

예림이는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넋이 나갔는지, 손을 모으고 연신 죄송합니다,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예림이를 밀치며 더 거세게 소리쳤다.

"이거 합의 못 보면 니네 아빠 바로 구속되는 건 알지? 어쩔 거야? 어?"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건 내 잘못이다. 그러니 내가 해결해야 한다.

남자를 막아서고 소리질렀다.

"합의금 제가 내겠습니다! 전세금 빼서라도 낼 테니까. 저랑 이야기해요!"

"뭐?"

순간 남자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스쳤다. 그러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피식 웃었다.

"야, 꺼져라. 기껏해야 대학생같아 보이는데. 니 원룸 보증금 빼 봤자 얼마 나오겠냐?

여자애한테 잘 보이고 싶은 건 알겠는데, 니가 낄 데가 아니야."

낄 곳인지 아닌지는 내가 정해. 나는 폰을 열어 내 통장 잔고 기록을 보여줬다.

"지금 잔고 5천만원 있구요. 여기 돈 나간 기록 보이죠?"

4억 1400만원을 남의 통장에 입금한 기록이었다.

박성연 씨에게 빌린 빌라 전세금. 그걸 본 남자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박성연 씨한텐 사정 설명하고, 어떻게든 해 보자.'

전셋집 빼고 원룸 살면서 어떻게든 돈 벌어서 박성연 씨에게 빌린 돈을 메워줄 생각이었다.

박성연 씨가 나한테 불리한 계약을 몇 개 더 걸어도 좋으니까, 지금은 예림이를 구하는 게 먼저였다.

사고 피해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생각좀 해 보겠다며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걸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무슨 수를 써서든, 내가 해결해야 해.

왜냐면. 이건 내 죄다.

천칭이 말한 죄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내가 깨닿지 못한 죄는 예림의 가족을 망쳐놓은 죄였다.

그러니... 이건. 내가 해결해야 했다.

***

응급실 밖으로 나온 남자는 어디론가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저, 지철 형님. 어떻게 하죠? 갑자기 웬 남자가 와서는 자기가 합의금이랑 수리비 다 내주겠다고 하는데?"

"뭐?"

전화를 받은 박수무당 박지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음주운전 사고는 박수무당 박지철의 작품이었다.

예림의 부모에게 잔뜩 술을 먹이고 차에 태운 후, 자신의 부하에게 들이받게 시킨 것이다.

음주운전 사고라 보험이 안 되니, 예림이의 부모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천문학적이다.

빚을 잔뜩 안겨준 후, 그들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대부업체를 소개한다.

괜찮은 곳이란 소개를 믿고 돈을 빌려가지만, 점차 목줄을 붙잡힌다.

박지철은 그렇게 빚으로 족쇄를 채운다.

그것이 박수무당 박지철의 수법이었다.

여기서 소개한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는 건 수십 가지 방법 중의 하나일 뿐.

사람마다 다른 수법을 써서 독니를 박아넣는다.

이렇게 그의 마수에 걸려든 인간들만 거의 백의 자리에 달한다.

빚에 시달리다 자살한 가족들까지 있다.

박지철은 그 사실을 술 마시며 자랑한다.

'이거야말로 연금술 아닌가?'

박지철은 이딴 짓거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미친 놈이었다.

그리고 강민의 방해에 눈이 뒤집힐 정도로 분노해서 발광하는 중이다.

박지철은 손톱에서 피가 날 정도로 깨물며 부하에게 소리쳤다.

"어떤 새끼인데? 가족 조사할 때 돈 있는 기미는 안 보였잖아!

너 이 씨발새끼. 조사 제대로 안 했냐?"

"아니, 형님! 저 사돈의 팔촌까지 긁었어요! 근데 진짜 처음 보는 애새끼라니까요!"

"이 새끼야! 그런 놈이 뭐, 5억을 태워? 장난쳐?"

박지철은 짜증이 솟구쳐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부하에게 자신의 람보르기니까지 빌려줘서 설계한 대규모 공사인데, 이걸 방해해?

"야, 잠깐 기다려. 이야기좀 해 보고 결정할 테니까."

박지철이 전화를 끊자, 옆에 앉아있던 거대한 떡대가 머리를 흔들었다.

박지철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돈 받고 끝내. 어차피 차도 바꿀 생각이었잖아. 니 람보르기니 사고 이력만 몇십갠데.

지금 이거 보험사도 주의깊게 보고 있을 텐데, 5억이 뉘집 개 이름이야?

그냥 폐차처리하고 끝내. 욕심내다 망한다."

하지만 박지철은 자신의 동업자가 하는 멍청한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 동주, 이 병신아. 좀 닥쳐봐.

그 집 딸내미가 씨발 존나 이쁘다니까? 걍 연예인 싹 다 압살해! 이름도 예림이래. 존나 이쁘지 않냐?

데려와서 오피에서 굴리면 한 달에 오천씩은 땡길 와꾸인데. 뭘 받고 끝내!"

박지철은 한 달 전, 예림의 부모님과 마주쳤을 때를 생각하며 눈을 번득였다.

한 달 전, 불당에 온 이예림의 부모님이 자식때문에 기도를 올리길래 옳다꾸나 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중소기업 사장이라고 하니 집에 돈도 좀 있는 것 같다.

집안에 액운이 가득한 것 같다고 하며, 점을 봐준다.

[ 이상한데요. 집에 할아버님의 수호령이 없어요.

시체를 못 찾으시지 않았습니까?

몇 번이고 점을 쳐 봐도 아버님이 물 속에 있다고 나옵니다. ]

그걸 들은 엄마 쪽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 맞습니다. 지리산에서 실종되셔서 시체도 못 찾았는데... 대체 어떻게 아셨어요? ]

[ 제가 점을 좀 봅니다. ]

박수무당 박지철은 웃음이 나올 것 같은 입꼬리를 부채로 가렸다.

점은 개뿔. 부하에게 시켜 모든 가족력을 조사하고 외워서 써먹는 것 뿐이다.

거기에 그럴싸한 말을 더하면 그대로 함락이다.

[ 집에 수호령이 없으니 온갖 마귀들이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는 겁니다. ]

그러며 부적을 팔고, 레이저로 지진 대추나무를 벼락맞은 대추나무라고 팔아먹는다.

이 전에도 몇백 번이고 해왔기에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이렇게 순박한 부부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

물건만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친절하게 굴며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한다.

그리고 다른 더러운 방법도 쓴다.

[ 저, 아무래도 꿈을 꿨는데. 두 분 떨어지는 화분에 다치시더군요.

제가 부적 한 장 써드리겠습니다. ]

부적을 써 주고, 자신의 부하에게 그들이 지나가는 길에 화분을 떨어뜨린다.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게.

결국 예림의 부모님은 박지철을 깊숙히 믿고, 전적으로 의지했다.

하지만 예림 부부의 돈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아이 씨발. 중소기업 사장이라면서 집에 돈이 왜 이렇게 없어?'

등기를 떼 본 아파트도 대출이 잡혀 있다. 최근 사업이 원활하지 못했던 모양.

박지철이 팔아먹은 부적같은 걸 다 합쳐봐야 칠천만원.

그것도 대출, 사금융권까지 싹 다 긁어모은 금액.

처음에는 똥 밟았다 싶었다. 그냥 여기서 더 구슬려서 바닥까지 짜내?

아니면 사채 쓰게 만들어서 최대한 땡겨봐? 아니면 보험사기쪽으로 돌려?

그러다 이들이 딸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딸내미가 어떻게 생겼나 보자.'

그리고, 박지철이 예림의 사진을 본 순간. 그의 목적은 단 하나로 고정됐다.

'내 업소로 데려와서 아랫도리 헐 때까지 굴려야겠네.

이런 와꾸는 살다가 처음 본다.'

그리고 자신도 겸사겸사 한번 쯤 손대보고.

'그럴 생각이었는데­'

박지철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휴대폰을 노려봤다.

날 방해하는 새끼가 누군진 몰라도. 너 잘못 걸렸어.

"동주야. 일단 합의금 받는 건 좀 미룬다고 하고.

현장 나가서 남자새끼 누군지좀 알아봐."

동주라고 불린 남자는 거구를 일으켜 밖으로 향했다.

박지철은 혼자 남아서 예림에게, 어떻게 독니를 박아 넣을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 시각­ 샤를은­

성당 기사단과 함께 프랑스로 떠나는 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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