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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161화 (161/358)

〈 161화 〉 158. 강민 개같이 멸망

* * *

“근데 오빠, 몸 꽤 좋아졌네요?”

“그래?”

솔직히 내가 봐도 그렇다. 배에 서서히 복근이 생기는 중.

여자 네 명과 매일같이 유산소 운동에, 최근엔 영선 누나랑 같이 복싱까지 하는 중이라 몸에 근육이 늘어났다.

풀파티에 와도 꿀리지 않을 정도였다. 옆에서 영선 누나도 내 복근을 손가락으로 슥슥 쓰다듬는다.

“체지방 조금만 더 걷어내면 장난 아니겠는데?”

“누나. 남들이 봐요.”

샤를과 영선 누나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보니 쏟아지는 눈길이 장난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우리에게 눈이 꽂혀 있다. 솔직히 여기 있는 외국인 여자 포함해서, 샤를 가슴이 제일 클 거다.

저절로 어깨가 으쓱거린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향기가 있는 꽃에 벌들이 꾀이듯 귀찮은 놈들이 달라붙었다.

“저. 혹시 남자 하나에 여자 세 분 오셨어요? 저희 남자 두명인데 같이 노실래요?”

사람 좋은 척 다가오지만, 샤를의 가슴쪽으로 시선을 향하는 게 신경쓰인다.

그리고 우리끼리 놀 거거든. 나는 손을 저었다.

“아, 저희끼리 놀고 싶어서요. 괜찮습니다.”

거절했지만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아, 그래도 성비 맞춰서 노는게­”

“됐어요.”

샤를이 평소와는 다른, 정말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에 날카로운 눈매로 노려보기까지. 웬만한 남자들은 버티기 힘들다. 놈들도 풀파티에서 괜히 얼굴 붉히긴 싫은지 고개를 숙이며 자기 카바나로 돌아갔다.

“히히, 잘했죠?”

샤를이 날 빤히 바라보며 히히 웃었다.

나 아니면 필요없다는 태도에 저절로 허리가 펴졌다.

슬쩍 살펴보니 외곽에서 여길 보며 혀를 차는 소리도 들린다.

아쉬움에 더 안타까워해라! 세 명이랑 놀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으쓱거리던 나는 샤를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는 걸 눈치챘다.

시선을 따라가보자, 거대한 유니콘 튜브가 보인다.

“샤를. 저거 타 보고 싶어?”

“...네.”

잠깐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해 주고 싶어서 지나가는 점원 한 명을 붙잡아 세웠다.

“혹시 저 튜브 구할 수 있나요?”

“저... 그게...남아있을 지 모르겠는데...”

“제 여자친구가 타고 싶어해서요. 렌탈 되면 좀 부탁드려요.”

내 여자친구라는 말에 샤를 쪽으로 눈을 돌렸다가 입을 떠억 벌린다.

묘한 자부심을 느끼며 알바생에게 카드를 건네줬다.

나도 몰랐는데. 이런 곳에 오니 지갑이 저절로 느슨해진다.

게다가 폰허브 수익금도 환전해 와서 완전 무적인 상태!

“남아있는 게 있으면 가져다 드릴게요.”

수영복 모습에서 최대한 눈을 돌리며 풀사이드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샤를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인 건지 뭔지.

역시 예쁘면 다야. 남자라는 건 슬픈 생물이란 거지.

잠시 후 거대한 조개 모양 튜브 하나와 비치볼까지 낑낑 들고 돌아온다.

“MD가 하나 주라고 하시던데요. 혹시 스위트룸 숙박자신지...”

“아, 네. 맞아요.”

“최대한 편의 봐 드리고 있으니까, 마음껏 부탁해 주세요!”

뒤따라온 다른 알바생이 아이스버킷과 보드카, 샴페인까지 카바나에 내려놓았다.

영선 누나 덕분에 이런 황제같은 체험도 해 보고, 좋네.

근데 튜브가 샤를이 원하던 모양은 아니었다.

“조개 모양인데, 괜찮아?”

“완전 좋아요, 오빠­ 빨리 올라와요!”

샤를은 이미 보드카에 오렌지쥬스를 섞은 스크류 드라이버 두 잔을 만들어 조개 모양 튜브 위로 휙 올라탔다.

튜브가 흔들리고 가슴이 출렁거린다. 음, 좋네.

내가 올라가고, 영선 누나도 바로 올라온다. 하지만 유다 누나는 아직도 카바나에서 머뭇거리는 중.

우리가 소리쳐서 불렀지만, 유다 누나는 얼굴을 붉히며 푹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너무 쳐다봐...”

그러니까, 젖소무늬 비키니는 너무 나갔지.

심지어 목에 있는 종 모양 초커도 차고 왔다.

우린 왁자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누나! 여기 올라오면 덜 부끄러워요!”

유다 누나는 한참 망설이다 폴짝, 뛰어 올라탔다.

조개 모양 튜브가 밀리며 풀의 한 가운데로 나아갔다.

“진짜 좋다...”

솔직히 음악도 그렇고. 온 곳에서 번쩍거리는 야광 팔찌도. 물 위에서 흔들리는 조명들도 좋다.

‘어쩌다 이런 곳에서 놀 수 있게 됐지?’

흙수저 중의 흙수저인 내가 풀파티 꼭대기에서 호사를 즐기고 있다니.

이게 어찌 보면 다 샤를이 맨 처음에 나한테 와 줘서 그렇겠지.

튜브 위에서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샤를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어, 어어?”

샤를은 깜짝 놀라며 이쪽을 봤다가, 마주 배시시 웃으며 내 손을 꽉 쥐었다.

나한테 와 줘서 고마워. 덕분이야.

그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샤를도 얼굴이 붉어진다.

그렇게, 영원과도 같은 순간을 즐기며 둥둥 떠 있었다.

“뭐 해요! 이런건 엎어야지!”

갑자기 물에서 놀던 커플 한 명이 선동을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들도 그거 재밌겠네­ 하며 튜브 옆으로 달라붙었다.

주변 사람들이 튜브를 가볍게 들어올리며 뒤집으려고 시도한다.

영선 누나가 기겁하며 사람들한테 물을 첨벙첨벙 차댔다.

“아, 하지 마요! 어떻게 해!”

그러면서도 깔깔 웃는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장난으로 뒤집으려는 걸 알기에 물장구를 퍼붓는 건 자제한다.

영선 누나가 진심으로 물을 끼얹으면 아마 소방호스 정도의 압력으로 튀어나가겠지?

수영장 안의 사람들도 즐겁게 소리질렀다.

“뭐해요! 쏴요!”

그러며 몇 명은 우리에게 물총을 쏘고, 물을 끼얹는다. 유다 누나, 영선 누나, 샤를 모두 머리칼이 물에 젖어 몸에 달라붙고 수영복이 젖어들어간다.

뭐랄까. 엄청 즐겁고­ 재밌다.

아래에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선망, 시기, 그리고 순수한 즐거움.

네 명이나 타고 있는 튜브를 뒤집는건 쉽지 않았는지 금세 지쳐 떨어진다.

그걸 보며 나는 잔을 들어올렸다.

“다 같이, 건배!”

튜브 근처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에게 잔을 내밀고 건배를 하자 그 중 술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목이 터져라 소리질렀다.

“건배!!!”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그 쪽을 보자 여기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한 사람이 있었다.

검정색, 하얀색이 섞인 온 몸을 가리는 옷.

‘이슬람권 사람인가?’

아랍인은 여성이 이런 풀파티에 오게 된다면 몸을 꼭꼭 싸매야 한다.

아무래도 아랍에미리트 부자의 넷째 부인쯤 되나보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여자가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명백히 내게 보내는 인사. 눈도 마주쳤다.

‘뭐지? 그냥 즐거워 보여서 그런 건가?’

일단 나도 손을 흔들어 줬다. 그러자 여자가 끙, 하며 카바나에서 일어나 DJ 부스 쪽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DJ가 노래를 틀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는데 부스로 들어간 여자가 노래를 끄고, 새 노래를 시작했다.

나는 이 상황이 무슨 이벤트인 줄 알고 멍하니 바라봤다.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건 알 수 없는 프랑스어로 된 노래였다.

“Je vous salue, Marie pleine de grâce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le Seigneur est avec vous.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Vous êtes bénie entre toutes les femmes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심지어 풀사이드 옆에 앉아있던 외국인들 중 몇 명도 따라서 노래를 불렀다.

풀파티에서 진지하게 눈을 감고 가스펠을 흥얼거리는 외국인들.

어이없는 광경이었다.

“Et Jésus, le fruit de vos entrailles, est béni.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Sainte Marie, Mère de Dieu,Ave maria...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나는 갑자기 울려퍼지는 성가 풍 노래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풀파티하고는 거리가 백만 광년쯤은 될 노래.

저런 DJ 테이블보다는 파이프오르간이 훨씬 어울릴텐데. 웃으며 내 옆에 있는 샤를의 어깨를 툭 쳤다.

“샤를. 무슨 이벤트 하는 것 같은데? 진짜 뜬금없다.”

하지만 내 손은 허공을 갈랐다.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뭐, 뭐야!!”

나는 경악하며 비명을 질렀다.

정신을 차려 보자 풀파티 회장 안도 텅 비어있다.

엄청나게 조용하고, 고요했다. 나는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튜브에서 뛰어내렸다.

‘잠깐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 많던 사람이 어디로 간거지? 도망쳐야 하?’

하지만 풀 사이드마다 검은색 사제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서 있었다.

아까 샤를과 나를 쳐다보던 외국인들이다.

도망갈 길은 없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물 속에 멍하니 서 있자, 노래를 부르던 여자가 날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반가워요. 김강민 씨.”

내 이름을 안다고.

등 뒤가 서늘해지는 감각이 들었다.

설마. 이 자들이...

아니길 바라며, 불안한 마음에 여자를 응시했다.

여자는 아름다운 노래를 마치고 DJ박스를 벗어나 수영장으로 다가왔다.

‘어... 지금, 그렇게 들어오면 빠질 텐데...’

하지만 내 예상을 비웃듯, 여자는 물 위에 발을 올린다.

물 위에 찰랑­ 하고 동심원이 퍼진다. 그리고 다음 발을 뻗는다.

다음 발도 물 속에 빠지지 않는다.

물 위를 천천히 걸어온다.

마치 물 위를 걸어오는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어오는 인간은 없을 터. 아마 마법사던가, 아니라면­

'미친, 좆됐다. 진짜로.'

가까이 걸어오자 여자의 복장이 눈에 확 들어온다.

검정색, 흰색으로 된 온 몸을 감싸는 옷.

아랍권의 부르카나 차도르인지 알았는데 아니다.

이건... 옛날에 군대 종교행사때 본 적이 있는 옷이었다.

‘수녀복?’

역시, 이 여자는...

천천히 걸어온 여자는 가까이 오자 물 위에서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수녀복을 살짝 들어올리는 우아한 기품이 배인 인사였다.

그러며 자기소개를 했다.

“성당기사단의 아나이스라고 해요. 반가워요. 김강민 씨.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방해해서 죄송하지만.

잠깐 이야기좀 할까요?”

그녀의 인사는 밝았지만, 눈 안은 무저갱같이 깊고 어두웠다.

마치 혐오스러운 것을 보는 것처럼.

나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침내­ 성당기사단이, 내 앞에... 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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