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156. 산사태가 되기엔 아직도 + 예림이 홍보 만화 완성!
* * *
“언니. 고마워요... 며칠만 신세 질게요.”
“뭘. 네 집처럼 있다 가.”
급작스러운 예림의 연락에도 불구하고 친척 언니는 살갑게 맞으며 방까지 내줬다.
“방은 여기 쓰면 되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이거야.”
게스트 룸이지만 컴퓨터부터 침대까지 있을 건 다 있었다.
주섬주섬 짐을 정리하는데, 친척 언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예림아. 요새 안 좋은 일 있니? 이숙이랑 이모가 저번에 네 걱정을 엄청 하셨었는데.”
“별 일 없어요.”
예림은 거짓말을 했다.
지금도 절망으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강민 목소리가 실마리라는 생각 하나만 붙잡고 억지로 버티는 중.
영상에 나오는 사람이 정말 강민 오빠가 맞는지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뭔가 더 필요한 게 없냐고 묻는 언니에게 둘러댔다.
“언니... 저 좀 쉬고 싶은데.”
“미안해. 푹 쉬렴.”
언니가 미안해하며 방을 나갔다. 예림은 컴퓨터를 켜고, 폰허브 동영상을 바로 재생했다.
[ 안녕하세요, 경민입니다. ]
조용한 상태에서 듣자 더욱 확실해졌다.
이건 확실히 강민 오빠의 목소리가 맞았다. 헷갈릴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한 강민오빠의 목소리였다.
입 속에서 이름을 발음해봤다.
경민, 강민, 경민, 강민.
이름 한 글자만 바꾼 게 아닐까?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하지만 영상에 등장하는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예림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설마, 이것도 딥페이크일까?’
영상에 등장한 여자에게 자신의 얼굴을 붙여놓고, 강민 오빠의 얼굴은 다른 사람으로 교체한 건가?
설득력이 있었다. 예림은 입술을 깨물며 한참 망설이다 휴대폰을 꺼냈다.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주소록의 ‘커피알바강민오빠’를 검색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물어봐야 해...!’
눈을 꽉 감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림의 마음속에서 해야 할 말의 목록이 혼란스럽게 메아리쳤다.
‘오빠, 제 얼굴로 합성 야동 만들었어요?’
‘이 영상에 나온 사람 오빠에요?’
아니면, 궁금한 건 또 있다
‘왜 고백하고 도망쳤어요?’
‘그 이후로 왜 제 연락 안 받았어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고백하고 도망쳐 버린 것에 대한 책망.
왜 연락이 그 뒤로 없었는지.
그리고 이 동영상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는지.
고백을 찬 복수로, 이 영상을 만든 건지.
하지만 통화는 강민에게 닿지 않았다.
스피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후에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
예림은 끌어모았던 용기가 모조리 사라지는 걸 느꼈다.
‘왜... 전화를 받을 수 없지? 번호 바뀌었나? 아니면 차단한 건가?’
그녀의 얼굴에 깊은 먹구름이 끼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언니 폰 빌려서, 전화해 볼까...’
하지만 두려웠다.
방금 강민 오빠에게 전화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무서웠는데.
이걸 한 번 더 겪어야 한다고?
‘어쩌면 난 이 이후에 벌어질 일을 회피하고 싶은 걸지도 몰라’
예림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절망적인 상상이 꾸물꾸물 솟아올랐다.
통화가 됐는데, 영상을 만든 사람이 자신이라고 인정한다면 어쩌지?
경찰에 신고하고 그 다음엔
세상에 대한 믿음이 모두 불타서 사라지겠지.
예림은 의외로 강민을 정말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슬퍼할 때 옆에 있어 주고.
매일 집까지 데려다 주고.
그러면서도 과도하게 들이대거나, 기분나쁘게 집적거리지 않고 친한 오빠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래서 호감이 갔다. 하지만 강민의 고백은 무서웠다.
어쩌면... 강민 오빠도 다른 남자들이랑 다 똑같지 않을까.
고백을 거절했다고 자신에게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욕을 하거나, 주변에 꽃뱀이라고 소문을 내고 다닐지도 몰랐다.
그래서 거절했다.
고백을 거절했다고 사라져버릴 사이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안 만날래
그리고, 고백을 거절당한 강민 오빠는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
혹시나 했지만 맥이 탁 풀렸다.
‘그래... 이런 인연이었으면, 안 만나는 게 더 나았을거야.’
하지만 계속 생각이 났다. 2주가 넘도록.
진짜로 연락 안 할 셈인가, 화를 내며 폰을 뒤적거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래. 내가 먼저 말하고 만다.’
그리고 카톡을 보냈다.
[ 오빠. 왜 갑자기 그만뒀어요? ]
아직도 읽지 않음 상태다.
그 뒤로도 보낸 카톡이 쌓여 있었다.
[ 오빠. 뭐하세요? ]
[ 진짜 저 평생 안 볼거예요? ]
차단을 한 모양인지 읽을 기미조차 없었다.
그래, 연락 받지 말아라 하고 잊어버리고 냅뒀었다.
겁쟁이 같으니. 앞으로 평생 만날 일 없겠지. 하고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폰허브 영상으로 재회하게 될 줄이야.
예림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강민 오빠, 내 얼굴을 합성해 폰허브에 올릴 줄은 정말 몰랐어요.
고백을 거절했다고 딥페이크를 만들 만큼 내가 미웠어요?’
새삼 강민에 대한 배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멀쩡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남자 알바생이 자신의 가슴을 흘끔거면서, 존나 크지 않냐면서 낄낄댔을때 일그러지던 그의 미간.
어두운 길을 걷는동안 옆에 딱 붙어있어줬던 발걸음.
그런 것들이 다 거짓말이었던 걸까.
생각에 빠져 있던 예림은 머리를 붕붕 저었다.
‘아냐... 내가 목소리를 착각한 걸 수도 있어.’
필사적으로 부정하며, 강민에게 카톡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 오빠. 말할 게 있어요. 연락줘요. ]
남의 전화로 다시 연락해서 묻기에는 두렵다.
예림은 문제에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싶었다.
가장 늦게 사실에 직면하고 싶었다.
그래서... 강민이 자신에게 답신을 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3일. 딱 3일만 기다려 보자. 그 이후에도 답신이 없다면 그 땐 남의 폰으로 연락해야지.’
카톡을 보내 놓고 부모님에게도 연락을 할까 망설였다.
변해버린 부모님에게도 통화를 하는 건, 무섭다.
한 달간 방 안에 박혀 있던 예림의 정신은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천성적으로 쾌활하고 밝았지만 강간 위협과 불안에 시달리다 보니 긍정적인 부분은 많이 빛바랜 상태.
‘그래도... 말은 해야지.’
남아 있는 힘을 끌어모아 메시지를 남겼다. 칭찬해줘야 할 정도의 굳센 마음가짐이었다.
[ 엄마. 저 멀쩡해요. 괜히 이상한 사람 말 듣지 마세요. 제발. ]
웅, 우웅, 우우웅.
바로 엄마의 답신 전화가 왔다. 하지만 듣는 게 무섭다.
예림은 폰을 무음 상태로 바꾸고 침대에 누웠다.
언니를 내보내며 피곤하다고 거짓말을 한 줄 알았는데, 실제로도 너무나 피곤했다.
낡고 지쳐버린 정신은 휴식을 요구했다.
‘자자. 자고 일어나자...’
예림은 그렇게 꿈의 영역으로 도피했다.
물론, 꿈도 안온하진 못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수군거리는 악몽
벌거벗고 길거리를 걷는 악몽.
외출했는데 갑자기 치마가 사라지는 악몽.
예림은 꿈 속에서 외쳤다.
제발. 제발. 누가, 알려줘.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누가 이런 영상을 만들었는지 알려달란 말야!
목이 터져라 외치다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몸은 땀 범벅이었다.
일어나자마자 폰을 확인했지만 강민 오빠의 연락은 없었다.
예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번 더 카톡을 보냈다.
[ 오빠. 연락... 제발. 연락좀 해 주세요.
저 너무 힘들어요. ]
그리고 다시 잠들려고 애썼다. 이번엔 악몽을 꾸지 않길 빌며.
악몽 같은 하루였다.
***
카톡, 카톡.
‘누구지?’
나는 울리는 카톡을 살폈다.
영선 누나였다.
[ 강민아! 여름 다 가기 전에 놀러 가자! ]
그러며 동봉한 이번 주말의 풀파티 티켓 세 장.
게스트 데려올 수도 있고, 안 데려와도 되고. 반얀트리 스위트룸 + 카바나(대충 누워있거나 앉아있을 수 있는 아지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 보드카 세 병 + 샴페인, 기타 부재료까지 포함한 화려한 구성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스위트룸 가격만 백만원.
깜짝 놀라서 물었다.
[ 누나. 이거 어디서 난 거예요? ]
[ 저번에 호텔 알바했을 때~ 거기 총재님이 고맙다고 하면서 준 거야! ]
[ 당연히 가죠!! ]
그렇게 대답하고, 세 장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샤를, 나, 영선누나, 유다누나. 여기에 니모나까지 데려가면 되려나?
“됐어. 남편 만나러 갈거야.”
니모나는 차갑게 말하며 강원도로 향할 짐을 챙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꼬리엔 미소가 서려 있다.
그도 그럴게, 니모나가 등장하는 영상으로 마력을 어마어마하게 벌었으니까.
샤를과 나눈다고 쳐도 상당한 양이었다. 정말 3년 내로 필요한 마력을 다 벌 수 있을지도 몰랐다.
‘리뷰어에게 고마워해야겠지.’
인터넷 커뮤니티에 니모나가 나온 야동을 리뷰해 준 사람이 있었다.
동영상 사진 캡쳐부터 후기까지 꽉꽉 채워서 쓴 정성스러운 후기였다. 누군지 안다면 돈을 주고 싶을 정도. 누군진 몰라도 고맙구만.
“하여튼, 안 간다 이거지? 알았어.”
그럼 또 갈 사람이 있나? 대학 친구를 부르기엔... 좀 뭐하고. 밤중에 스위트룸에서 섹스할 건데, 친구를 부르면 그게 안 되잖아.
나중에 밥 사주마, 생각하며 멤버는 여기서 끊기로 했다.
그럼 주말에 풀파티 갔다 와서, 성당 기사단에게 접촉할 방법을 한 번 더 찾아보고.
그 전엔...
샤를이랑, 누나들이랑 수영복 쇼핑이나 갈까?
웃음이 절로 나온다.
행복하네. 폰허브 출금도 잘 되고. 돈도 마력도 순조롭게 벌리고 있고!
정말,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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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처녀 홍보 만화가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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