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155. 박수무당
* * *
예림은 텅 빈 눈으로 자신이 나오는 영상물을 쳐다봤다.
분명히 이건 자신이다. 이런 영상을 찍은 적은 없었지만...
예림은 이제 분노할 힘도 없었다.
‘대체 너 누구야? 왜 내 얼굴을 합성해서 이런 영상을 만든 거야?’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영상을 처음으로 돌렸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자가 비참하게 섹스하는 영상.
예림은 새 동영상이 올라온 이후 몇 번이고 영상을 돌려봤다. 예전에 올라왔던 것까지 합하면 수백번 이상.
하지만 영상 속에 등장하는 남자는 정말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누군지 알아낸다면 짐작이라도 해 볼 텐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건데.”
예림은 그를 원망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며 남자의 얼굴을 보며 곰곰히 생각해봤다.
닮은 사람을 생각해 보려고 해도, 머릿속에 이상한 액체를 부은 듯 부글거리며 떠오르질 않는다.
목소리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
한참 동안 영상을 돌려보던 예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자신의 얼굴이 폰허브 사이트에 올라온 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지도 벌써 한 달째.
집 밖으로 나서는 게 무서웠다.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진짜같은 딥페이크가 폰허브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댓글에선 이 변녀 보이면 바로 강간해버릴 거라고, 꼴린다, 섹스하고싶네 그런 식의 성희롱 댓글이 수백, 수천개가 넘었다.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집 밖으로 나서지 않자 친구들이 대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다.
[ 예림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 아냐. 그냥 좀 아파서 그래. ]
친구들의 연락은 점점 뜸해졌다. 애초에 여성인 친구들도 많지 않았고, 남자들도 빠르게 관심을 끊었다.
‘남자들에게 연락 안 오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이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무릎 사이로 파묻었다.
조금만 말 걸어도 금방 착각하고, 멋대로 고백하고, 내가 꼬신 거 아니냐고 집 앞까지 찾아오고
‘아냐. 이런 생각하지 말자.’
예림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지금 자신에게 닥친 문제만으로 버거웠다. 옛날 일들을 생각해봤자 도움이 안 된다.
지금 예림에게 닥친 문제는 영상뿐만이 아니었다. 부모님도 문제였다.
자신이 방에 틀어박힌 이후 부모님은 평소 나가시던 불당에서, 이상한 사람들에게 홀렸다.
금지옥엽처럼 키워 온 외동딸이 한 달간 어디 아픈것처럼 방에 쳐박혀 나오지 않고, 울기만 한다고 이야기를 상담했더니 박수무당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그거, 마귀에 홀린 겁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원래였다면 택도 없는 소리였겠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방에 쳐박히니 눈이 뒤집혔다.
부적을 500만원 주고 써 오고, 귀신 떼는 물건이라고 천 만원짜리 벽사목 염주를 걸어주고.
기껏해야 원가 3천원이나 되는 물건일 텐데.
예림은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그러고 나면 자기가 왜 이렇게 됐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이걸, 어떻게 말해’
폰허브 영상을 어떻게 부모님에게 보여주겠는가.
솔직히 이 야동은 딥페이크가 아니라 진짜 자신이 찍은 영상 같았다.
부모님이 본다면 자신의 딸이 이렇게 된 이유가 남친에게 영상을 찍혀서라고 믿을 정도로.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않을 터.
설명할 방법이 없어 예림은 방에 쳐박힌 채 여기 등장하는 남자가 누군지 알아내려 시도를 했다.
남자가 누군지 알아내면 해결의 실마리라도 보일 테니까.
‘새로 올라온 영상... 다시 보자...’
예림은 채널에 새로 올라온 영상을 재생했다. 신음소리가 새나가지 않게 이어폰을 끼고 영상을 틀었다.
‘쓰레기 새끼...’
여자에게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합성해 놓고 애널섹스, 펠라치오, 보지 섹스...
거의 강간에 가까운 섹스였다.
‘나한테 이런 짓거리를 하고 싶었던 거야?’
분노를 꽉꽉 눌러담아 가며 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부분으로 커서를 옮겼다. 이 남자가 길게 이야기하는 부분에 뭔가 힌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 밖에서, 이어폰을 뚫고 희미하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림아.”
예림은 한 쪽 이어폰을 빼고 영상에서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말했다.
“예림아. 잠깐 나와 봐. 엄마가 진지하게 할 말 있어.”
“알았어요. 나갈”
그 때, 끼고 있는 이어폰에서 들어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예. 여러분. 안녕하세요. 슬슬 샤를한테도 질려가고 있습니다.]
길고, 깔끔한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영상들은 모두 샤를이란 여자의 교성이 섞여 남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 남자의 깔끔하고 긴 목소리.
혼자서 길게 이야기하는 걸 듣자 누군가가 떠오를 것 같았다.
‘누구지?’
예림은 다시 이어폰을 끼려고 했다. 하지만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더 격해졌다. 거의 문을 부술 기세였다.
“알았어요, 나갈게요!”
예림은 저항할까, 하다가 텅 빈 눈을 한 채 거실로 나갔다. 어차피 이따가 다시 들어보면 되겠지. 아마 기억해 낼 수 있을거야.
그런데 거실에 이상한 사람이 서 있었다.
‘누구야...?
오색 부채로 입을 가린 남자가, 뱀같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거실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거실에 가득 차려진 제삿상. 가운데에 놓인 작두까지.
“엄마, 이게 다 뭐야?”
예림은 겁먹고 물었다. 뭔가 불길했다.
그리고 그 예감대로, 박수무당이 자신에게 쌀을 던지며 소리질렀다.
“저것 봐라! 아주 마귀가 가득 끼었구나!”
촤악! 쌀이 예림의 머리카락 위로 얹혔다. 예림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이 남자는 누구지?
“엄마, 이 사람 누군데 우리 집에서 이러고”
하지만 어이없게도, 예림의 부모님은 박수무당의 편을 들었다.
“예림아, 앉아 보렴.”
예림은 이를 악물었다.
“엄마. 이런 거 소용 없어. 나 진짜 개인적으로 일이 있어서 그래 왜 이런 걸 믿는데!”
그러자 박수무당이 부채를 한번 휘저었다. 예림의 부모는 이를 꽉 악물고 박수무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여러분의 따님은 마귀에 씌인 겁니다. 아주 독한 놈이예요. 천도굿이 필요 없다고 우길 겁니다. 절대 놓치지 마세요. 팔을 붙잡고 계시면 제가 천도굿을 하겠습니다.’
그걸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예림아, 이게 다 너를 위한 일이야!”
그러며 부모는 양 팔을 붙들고, 방 가운데에 놓여진 대자리에 예림을 눌렀다. 예림은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허사였다.
“아빠, 엄마, 진짜 왜 이러는데”
그 순간 박수무당이 부채를 접어, 예림의 윗가슴을 툭툭 건드렸다. 예림은 소름끼치는 감각에 이를 악물고 소리질렀다.
“뭐 하는 짓이야!”
예림의 엄마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주저하며 박수무당에게 물었다.
“저... 부채로... 거길 건드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그러자 박수무당이 눈을 버럭 뜨고는 예림의 부모님에게 고함질렀다.
“어허!!! 저를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지금 믿지 않으시면!!! 예림이는 영원히 저 모양 저 꼴입니다! 집에서 시체가 실려나가야 정신 차릴 겁니까!”
사이비 무당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가스라이팅을 통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마음대로 조정하려 든다.
평소였다면, 예림의 부모님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그만뒀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달이 넘도록 딸을 걱정하느라 신경 쇠약 직전이었고, 박수무당은 자신을 믿게 만들기 위해 모든 뒷조사를 다 마쳤으며, 이미 한 달간의 밑작업을 통해 둘이 자신에게 완전히 빠지게 만들었다.
"예림아! 조금만 참으렴! 원래대로 돌려 줄게!"
결국 이게 예림이를 위한 것이라 믿고 팔을 더 세게 내리눌렀다.
예림이를 누르는 데 집중하고 있어서, 지금 박수무당의 표정을 보지 못한다.
밑에 누운 예림에게는 그의 표정이 훤히 보인다. 예림은 눈에 불을 켜고 박수무당을 노려봤다.
예림은 저런 남자들의 눈을 지긋지긋하게 봐 와서, 저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자신의 가슴을 흘끔거리며, ‘이 정도면 거의 G컵이겠는데’ 하고 낄낄대는 눈.
음흉하고, 소름끼치는 눈빛.
옛날에 자신에게 고백했던 동아리 선배도.
일하던 커피숍의 알바생도.
내가 크로스백을 멘 날엔 저런 눈으로 날 쳐다봤었던, 쓰레기 새끼인데
잠깐.
커피숍?
번개같이, 머릿속에서 이름이 불려나온다.
그 커피숍에서, 강민 오빠도 같이 알바하지 않았었나?
아까 영상에서 들었던 목소리 그거, 강민 오빠 목소리 아냐?
“비켜!”
예림은 있는 힘을 다해 일어났다. 부모님들은 서슬에 밀려 넘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박수무당도 휙 밀어버렸다.
박수무당은 어어, 하고 중심을 못 잡고 있다가 쿠당탕! 작두 쪽으로 넘어졌다.
촤악!
왼팔이 크게 베였는지 피가 철철 흘렀다. 하지만 예림은 힐끔 쳐다보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꼴 좋다, 성추행범 이 씹새끼!
지금 중요한 건 한달간 매달려 왔던 남자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였다. 방으로 들어가 영상을 마저 재생했다. 눈을 감고 목소리를 듣는다.
"이거... 강민 오빠 목소리잖아."
확실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예림은 혼란에 빠져 연신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검증했다.
'목소리는... 강민 오빠인데... 얼굴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 때 등 뒤에서 성난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림아! 이게 무슨 짓이야! 세상에!"
그리고 그 뒤에 박수무당이 팔에서 피가 철철 나는 채로 예림을 노려보고 있다.
광기.
그의 눈에서 광기가 흐르고 있었다. 귀기어린 목소리로 소리친다.
“두 분, 저 따님을 잡아야 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그가 피 철철 흐르는 팔을 내밀었다. 뼈가 보일 정도로 크게 베였다! 하지만 예림은 꼴 좋다, 이런 표정으로 박수무당을 노려봤다.
부모님은 정말로 놀랐다. 평소에 얌전하고, 말 잘 듣던 예림이가 이렇게 눈이 뒤집혀서, 사람이 다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다니.
아무래도 예림이에게 마귀가 들려도 단단히 들린 법 했다.
물론 예림의 입장에선 박수무당이 찢어죽일 성추행범이다.
하지만 부모님에겐 한 달간 열심히 상담해주던 고마운 선생님이다.
이 굿도 싸게 해주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은인을 다치게 해놓고는 이런 반응이니 놀랄 법도 했다. 부모님은 무당의 말대로 예림을 잡으려고 했다.
"놔!"
예림은 가방과 지갑을 들고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무래도 여기 있다간 부모님들의 손에 잡혀 괴상한 굿을 당할 터! 저 무당도 멀쩡한 놈은 아닌 듯 싶었다.
뛰쳐나가며, 문 뒤에서 소리쳤다.
"엄마! 저 사람, 믿지 마! 나, 완전 멀쩡해!"
그리고 계단을 몇 개씩 뛰어 내려갔다. 단독주택의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한참을 달렸다.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먼 곳까지 도망치고 나서야 숨을 뱉었다.
갑자기 다리가 덜덜 떨렸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봐, 혹시, 폰허브에 나온 여자 아니야? 이렇게 이야기할까봐.
'그럴 일 없어...'
필사적으로 자신을 달래며 영상을 확인할 곳을 찾았다.
최대한 빨리, 폰허브 영상에 등장한 남자가 강민 오빠가 맞는지 알아봐야 했다.
'설마, 아닐 거야..'
예림은 최대한 부정해봤다. 강민 오빠가 그럴 리가 없잖아.
같이 일하는 알바생이 자신의 가슴 크기 보고 이야기할때, 얼굴 찌푸리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면박 주고.
항상 어두운 길을 지나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고.
동아리 오빠가 수작부려서 왕따시킬 때 옆에서 술 마시며 위로해 주고.
'그런 친절한 오빠가... 이런 영상을 만들었을 리 없잖아'
예림은 필사적으로 부정하며, 자신이 안전할 만한 공간을 찾아 헤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