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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147화 (147/358)

〈 147화 〉 144. 마력 공유

* * *

“일단 그릇을 만들어야 해요.”

샤를이 배실배실 웃으며 설명했다.

“오빠는 마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예요. 평평한 바닥에 물을 흘리면 어떻게 되죠? 그대로 바닥에 흘러내릴 뿐이죠.”

그러며 샤를이 내 몸을 스윽 훑었다.

“옛날, 고대의 전사들이 몸에 문신을 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그 곳에 마력을 담아 주술을 사용하기 위해서였어요. 공포의 주술, 용기의 주술, 광폭화의 주술...”

샤를이 내 약점을 잡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나도 솔직히 약점을 잡힌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촬영 프로그램을 쓰려면 마력이 필요하니까, 어딘가에 문신을 해야 한다?

“저, 샤를. 혹시 문신 말고 다른 건 없어?”

“다른 거요? 음. 원격 마력 전송? 동영상 한 편 찍는데 엄청 많이 들긴 하겠네요.”

젠장, 그러니까... 폰으로 스트리밍 풀로 감상하는 거랑 똑같다 이거군. 다른 건?

“마력 저장용 보석을 쓰거나, 아니면 마력 스택용 아티팩트? 하나에 2억은 넘을 것 같은데요.”

샤를의 제안은 마치 내게 다른 옵션들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나는 오들오들 떨었다.

젠장, 내가 샤를이나 유다 누나한테 문신 하라고 강요할 때 이런 기분이었구나! 나는 잠깐 머뭇거렸다.

‘...그래도, 내가 문신 하라고 강요해 놓고는, 내가 안 하면 쓰레기겠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물었다.

“보통 어디에 많이 해?”

“음... 전사들은 주로 얼굴. 선원들은 팔뚝? 오빠는 문신 한다면 어디에 하고 싶어요?”

솔직히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샤를이랑 커플 위치에 타투할까? 쇄골? 아니면 팔뚝이 제일 나을 것 같긴 한데.

샤를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의 팔짱을 꼈다.

“일단, 유다누나한테 가서 고민할까요?”

그리고 바로 택시를 잡았다. 나는 덜덜 떨며 끌려갔다. 꼭 돈까스 사준다는 말에 속은 아이가 된 기분.

게다가 공교롭게도 손님이 빈 시간대라 ‘이런, 손님이 있네'라는 핑계도 쓸 수 없었다. 나는 덜덜 떨며 의자에 앉았다. 유다 누나도 이게 무슨 일이야? 물었다가 내가 타투할 거란 말에 눈을 빛내며 날 쳐다봤다.

...도망칠 수가 없네. 게다가 샤를은 이미 이런 날을 예상했는지 마력을 담을 도안이라고 유다에게 제공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크기가 그렇게 크진 않다. 샤를의 허벅지 가터벨트 문신 절반의 두께?

“많은 마력이 필요하진 않아서 좀 얇게 해 봤어요.”

그래도 두께 2cm의 긴 끈 형태. 이걸 어디에다가 해야 해? 내가 고민하자 샤를이 잠깐 타투를 어레인지한다.

손목에 두 번 둘러서 감을 수 있는 형태. 여기 정도라면 나중에 시계로 가리던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정작 시술을 해야 할 유다 누나가 멈칫거린다. 어? 혹시 나 도망갈 수 있는 건가?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유다 누나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샤를. 나... 커플 타투같은 거 하고 싶었거든. 근데 이런 형태의 커플 타투는 내 취향이 아냐. 그래서... 혹시, 여기에 내 이름 이니셜이라던가. 네 이름 이니셜 넣을 수 있어?”

샤를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어?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아냐! 좋지 않아!”

내가 끼어들었지만 샤를이 바로 따박따박 지적했다.

“오빠. 내 허벅지랑. 가슴이랑. 골반에. 이런 타투 박아놓고 자기는 내 이름 이니셜 하나도 못 새기겠다는 거예요?”

반항할 길이 없는 정론 펀치다. 으으으...

“너희들한테, 아니면 니모나나 영선 누나한테 먼저 내 이니셜 새기고 싶었는데...”

내가 안타까움에 중얼거리자 유다 누나와 샤를이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아니...뭐, 저희야... 네가 새기고 싶다면야...”

“하지만 오빠가 먼저예요.”

샤를이 얼굴을 붉히면서도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유다 누나는 걱정스레 물었다.

“혹시, 타투가 좀 꺼려져? 안 보이는 타투가 있는데, 그걸로 해볼래?”

그러며 누나가 이상한 도료 하나를 가져왔다. 투명해 보이는 액체다. 그걸 조금 펴서 내 팔목에 바른다.

근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잉크라면 색깔이 있어야 하는데 무색으로 투명하다. 뭐지?

“잠깐 기다려봐.”

그러더니 불을 껐다. 그리고는 이상한 빛이 나는 손전등을 내 손목에 비췄다.

“어?”

손목의 도료에서 번쩍, 형광빛이 났다. 야광별처럼 어두운 색이 아니라 찬란한 형광빛. 설마 이거­

“맞아. UV 도료로 하는 타투. 블랙라이트 비추면 이렇게 번쩍 빛난다?”

이건 금태양을 넘어선 야광태양이잖아! 이런 젠장할! 어두운 곳에서 섹스할 때 내 손목에서 은은하게 야광 불빛이 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하지만... 블랙라이트가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닌데. 평소에 안 보이다 섹스할 때(그것도 블랙라이트 있을 때) 양아치 타투 빛나기 vs 평소에나 섹스할 때나 항상 양아치 타투 생기기.

으음. 이거 닥전인데? 너무 밸런스 붕괴 아니야?

“...UV타투로 할게요.”

그러자 샤를이 도끼눈을 뜨며 노려봤다.

“저희 이니셜은 블랙 타투로 해요. 그게 아니면 우리 부끄러워 하는 줄 알거야.”

이건 도저히 도망칠 수가 없군. 알았어.

“누나, 이니셜 넣어서 타투 해 줘요... 근데 애초에 유다나 샤를은 이니셜이 없잖아?”

“음, 그렇네? 그냥 애칭으로 해야겠다!”

여섯 글자 짜리 타투가 열 글자로 늘었다. 여기서 싫다고 우겼다간 풀 네임으로 늘어날 것 같다.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둘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2cm 두께의 손목을 두바퀴 두르는 선 형태의 마력 그릇 타투(UV 도료 사용) + 샤를과 유다 누나의 애칭 레터링 타투.

유다 누나가 시트지를 붙여 주자, 실감이 났다. 이거 생각보다 흉악하네. 샤를도 맨 처음에 두려움을 느꼈겠는데.

“이제야 아셨어요? 오빠 진짜 나빴다.”

그러며 얼굴을 붉히고, 자신의 허벅지 타투를 손가락으로 쿡쿡 눌렀다. 으음. 은근 미안하다...

시트지를 떼자 외곽선 도안이 손목에 자리잡았다. 마력 그릇 팔찌 아래로, 손목 안쪽에 샤를과 유다의 이름이 보인다. 이제 여길 채우면 되돌릴 수는 없는 거겠지?

‘에휴. 내가 샤를한테 문신 박은 대가겠지. 받아들이자.’

그리고 나는 손목을 내밀었다. 유다 누나가 침을 꿀꺽 삼키고 타투 작업을 시작했다.

유다 누나의 손이 좀 떨리긴 했지만 한 시간만에 금방 작업이 끝났다. 나는 손목을 휘휘 돌려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UV타투는 진짜 티가 안 나네?”

감쪽같다.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착각할 지경. 그러자 유다 누나가 웃으며 전등을 끄고 블랙라이트를 비췄다.

“어우, 이건...”

야광 팔찌를 찬 것같이 화려하게 손목이 빛난다. 게다가 비비 꼬인 라인워크가 힙한 룬 문자처럼 보이게 배치되어 있다.

의외로 꽤나... 멋지긴 한데. 양아치같네.

“양아치 같다.”

유다 누나도 솔직히 감상을 뱉었다. 젠장. 어쩌겠어? 샤를이 다시 불을 켜고 웃으며 내게 착 달라붙었다. 아무래도 내 손목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넣은 게 몹시 마음에 든 듯 하다.

“샤를, 그럼 이제 나도 촬영 마법 쓸 수 있는 거야?”

그러자 샤를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며 악마처럼 히히 웃었다.

“음, 이건 그릇을 만든 거구요. 저랑 마법 공유나, 마나 공유를 쉽게 하기 위해선 계약을 맺어야 하거든요. 일단... 언니. 혹시 여기 암실 있어요?”

암실? 유다 누나가 눈을 크게 뜨고는 창고를 들여다본다. 문을 닫고 철문을 닫으면 암실처럼 될 것 같은데. 그러자 샤를이 머리를 꼬며 생각에 빠졌다.

“밤은 아니지만... 음... 허브 있고, 촛불 있고, 검정색 그릇 있으니까... 빨리 계약 맺어버리려면 지금이 낫겠지...?”

한참 중얼거리다가 결정을 한 듯 손바닥을 탁 쳤다. 그리고 나를 창고 안으로 집어넣고는 유다 누나에게 물품을 빌려 같이 들어왔다.

그리고 촛불을 켜고, 창고 전등을 끈다. 그러자 빛 한점 없는 칠흑같은 어둠이 우릴 덮쳤다. 순간적으로 불안해졌지만 샤를이 내 손을 잡아온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마음 한 구석에 안심감이 퍼진다.

그 다음은 샤를이 말했던 ‘계약.’ 샤를이 물에 송곳니로 엄지를 콕 찔러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허브 한 다발, 그 다음에는­

따끔. 내 엄지손가락에도 통증이 달렸다.

샤를이 날카로운 송곳니로 내 엄지에도 작은 구멍을 냈다. 희미한 촛불을 배경으로 내 엄지를 깨문 샤를의 얼굴이 묘하게 색기있어 보여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후훗. 오빠. 부끄러워요? 볼 거 다 봤는데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샤를도 목소리가 살짝 떨리더니, 후 하고 촛불을 불어 껐다.

완벽한, 어둠.

그러자 샤를이 조용히 뭔가를 읊는다.

사각사각. 깃펜으로 양피지를 긁는 듯한 소리가 우리의 주변을 덮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지켜보는듯한 느낌. 샤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천천히 커져, 내 귀로 들어온다. 이미 한참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지금은 교향곡의 가장 마지막 부분처럼 높게 노래한다.

“나, 샤르아이스. 나의 불에게 나를 나눠주려고 하니. 불의 이름은 김강민이요. 이름 외에는 그의 믿음만 필요할 뿐이니.

이 계약은 ­­의 부재가 우릴 갈라놓을 때까지.

대답해요. 받아들이겠습니까?”

“어? 응, 응.”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런데 내가 대답하는 순간, 손목의 고리에서 파랗게 빛이 난다. UV램프도 없는데­ 이게 무슨­ 룬 문자를 따라서 새파란 불이 흐르고, 손목의 고리를 감싸더니. 그대로 꺼졌다.

하지만 손목은 타는 듯 뜨겁다. 그리고, 샤를이 힘이 풀린 듯 풀썩 쓰러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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