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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146화 (146/358)

〈 146화 〉 143. 샤를의 억울함

* * *

“아니, 니모나, 왜 저렇게 재수없게 굴어요? 너무 심하네! 오빠! 저렇게 구는 걸 참을 생각이예요?”

샤를은 울먹이며 나한테 따졌다. 니모나의 태도는 내가 봐도 선을 넘었다. 들어오자마자 샤를을 무시,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무례하게 굴기.

솔직히 리림이란 종족에 대해 잘 몰랐지만 두번째 만남만으로 알 것 같다. 무례하고 오만불손한 종족. 하지만 동거 첫날부터 싸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샤를을 달랬다.

“샤를. 내가 나중에 말할게. 네가 좀 이해해 줄 수 있어? 니모나 입장에선 신혼도 못 즐기고 여기 온 셈이니 짜증났지 않을까?”

하지만 샤를을 달랜 건 역효과였다. 이미 분노가 임계점까지 차오른 듯, 얼굴을 붉히고 내게 따졌다.

“오빠. 오빠는 왜 저 리림 편을 들어요? 저보다 저 리림이 좋아요?”

젠장! 실수다!

“샤를, 그게 아닌 거 알잖아.”

땀을 뻘뻘 흘리며 샤를을 달래는데 갑자기 폰도 웅웅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박성연이었다.

“젠장. 샤를. 잠깐만 전화좀 받을게. 여보세요?”

“아, 강민 군. 니모나가 도착했다고 연락했네. 좀 어떤가?”

벌써부터 샤를을 들쑤셔놔서 죽을 지경이네요, 라고 턱밑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고 말했다.

“뭐,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샤를을 달래면서 니모나의 행동을 순화해서 말하느라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박성연 이 인간도 한술 더 떠 내 속을 긁었다.

“그... 강민 군. 자네가 니모나랑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믿네. 우리 니모나가 워낙 성격이 더러워야지.”

말에서 상쾌한 느낌마저 풍긴다. 이 인간, 니모나의 더러운 성격을 받아내는 건 나에게 떠넘기고, 내가 찍어서 보내는 영상만 즐길 생각을 하니 좋아 죽는 거군! 빌어먹을!

내 짜증따윈 상관하지 않고, 박성연은 전화 너머로 자기 할말만 해댔다. 특히 영상 찍는 것에 기대가 많은지 요구조건을 좔좔 늘어놓는다.

”니모나 영상 찍을 때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말고. 그냥 처녀상실에 청소펠라. 낙서플 정도면 충분하네. 아, 우리 둘이 같이 찍은 사진도 있는데 그것도 침대맡에 놓고 찍어주고. 반지는 절대 빼지 못하게 하고. 촬영할 때는 지현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네!”

나는 아파오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심한 것 같은데? 하지만 박성연 이 양반은 아직도 말할 게 많은지 계속 떠들었다.

“자네, 애널섹스도 좋아하지? 하지만 애널 개통은 내가 생각해 둔 플레이가 있으니 그 때까진 조금만 참게! 꼭 그렇게 해 줘야 할 필요는 없네만. 참고만 하라고 보내는 거야.”

참고만 하라는 소리를 하는 인간들은 항상 그대로 해주지 않으면 화를 낸다. 알고리즘 교수가 딱 이랬었지. 참고자료의 구조대로 설계하지 않으면 A+가 A0로 변한다. 머리를 누르며 답했다.

“보내주는 것 참고해서 잘 만들어보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음, 좋네.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군. 이런 느낌은 10년만에 처음일세! 허허허! 니모나가 자네 밑에서 좋아서 몸부리치는 걸 빨리 보고 싶구만!“

순간적으로, 니모나에게 좀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니모나가 안하무인이고 재수없긴 했지만 어쩌다 이런 남자랑 결혼할 생각을 해서...

“뭐. 안 받아들이면 이혼하겠다고 했는데. 어쩌겠는가?”

이 쓰레기같은 인간이! 하지만 욕을 해 주기엔 내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 인간에게 들어야 할 게 있다.

“저, 그보다 물어볼 게 있는데요. 성당기사단과 접선은 어떻게 합니까?”

영선 누나도 성당 기사단에 대해 걱정하니 빨리 해결하는게 낫지 않겠어?

“저, 성당기사단에게 알려서, 저희 사정을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말이 멈췄다. 성당기사단을 만나는 방법을 찾고 있는 듯 했다. 서고를 뒤적거리는 소리, 그리고 한참이 자니서­

박성연이 알려준 것은 11자리 전화번호였다. 그것도 010으로 시작하는. 내가 어이없어하면서도 메모하자 그도 멋쩍은 지 이야기했다.

“여기 전화하면 알게 될 걸세! 나도 이 번호로 날 찾아오겠다고 전화가 왔으니! 가끔 니모나의 근황을 조사하기도 하고 그렇네.”

시발... 무슨 배민 배달번호도 아니고... 여기에 전화하면 끝이라고? 진짜로 핸드폰 전화번호에?

전화 너머의 박성연은 유쾌하게 말했다.

“그 쪽,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근무 시간이라니 그때 전화하게. 그 전에 전화하면 무참하게 무시할 걸세!

시발. 성당기사단... 생각 속의 근엄하고 엄격한 이미지가 팍팍 깨져간다. 널널한 곳일 지도 모르겠군.

물음표를 백개쯤 띄우고 번호를 적었다. 그 동안 이쪽의 아쉬움을 인질 삼아, 박성연이 계속 이야기했다.

“그래서, 언제부터 영상을 찍을 생각인가? 니모나의 영상, 금방 보내 주겠지? 설마 이번 주를 넘어갈 거라곤 생각하지 않네!”

아무래도 이 인간, 몸이 바짝 달은 모양이다. 자신의 아내 니모나가 빨리 영상을 찍었으면 좋겠는 모양이다. 은근히 채근하는 목소리에서 압박마저 느껴진다.

그래.... 내가 찍어준다고 했으니 최대한 빨리 찍어줘야지. 머릿속으로 니모나에게 사과하며 찍을 날을 앞당긴다. 원래는 일주일 정도 적응기간을 가질까 했지만 날을 확 줄였다.

“글쎄요. 모레 정도면 괜찮을까요? 편집까지 해서 주말에 올라올 겁니다.”

“알았네!”

박성연은 환호를 하며 연결을 끊었다.

‘촬영...촬영이라.’

그러고 보니, 촬영을 샤를이랑 같이 하는 건 좀 꺼려졌다. 일단은 니모나와 단독 촬영하고 싶긴 했다. 2:1보단 1:1로 진득하게 찍고, 나중에 슬슬 질릴 때쯤 2:1 플레이로 하면 박성연씨도 더 좋아하지 않을까?

내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고! 박성연 씨를 위해서! 그런 거니까! 우리 채널 구독자들도 그래야 더 흥분할 거 아냐! 처음부터 강하게 가면 약한 거 내놨을 때 밋밋하다고 싫어한다니까?

“그치, 샤를?”

나와 박성연의 통화를 듣고 있던 샤를에게 동의를 구하자 샤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게 맞는 거야!

‘그럼 문제는 샤를에게 있는 촬영 기능을, 내가 쓸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인데.’

촬영 관련 이야기는 니모나가 듣는다면 좋을 것 없다. 샤를에게 잠깐 나갔다 오자고 말하고 방문에 소리쳤다.

“니모나 씨, 저희 나갔다 올게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주시고.”

아무 대답이 없다. 나는 방문을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 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샤를이 눈물 맺힌 눈으로 화를 냈다.

“처음부터 저렇게 재수없게 굴 줄은 몰랐어요! 같이 살 거니까 친절하게 대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이래요? 무시하고, 그래도 되는 거예요?”

아까 한 이야기를 또 한다. 굉장히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상태. 어떻게든 달래야 했다. 샤를의 어깨를 잡고 똑바로 바라보면 말했다.

“샤를. 기분 풀어. 내 여자친구는 너야. 내가 박성연이랑 무슨 거래를 했어도 네가 항상 먼저야. 니모나한테는 내가 책임지고 따끔하게 벌 줄게.”

굴러온 돌이 박힌 돌에게 행패를 부리는 걸 볼 수야 없지!

샤를이 눈물 덮인 눈으로 날 쳐다봤다. 조금 안심한 듯 보였다. 하지만 뭔가 말하기 힘든 게 있는지 한참 입을 달싹거렸다.

“왜, 샤를. 말해봐. 다 들어줄게.”

조금 건드리자 샤를이 털어놨다.

“오빠... 솔직히... 저런 얼굴이 취향이죠?”

순한 눈매, 강아지상의 얼굴, 그리고 초커까지. 입은 더럽지만 외모는 취향이 맞다. 순간 내 약점을 찔려 당황했다. 내가 말하지 못하자 샤를이 입을 내밀었다.

“맞죠? 예림이랑 좀 닮은 게 있어서 혹시 했는데.”

등 뒤로 땀이 뻘뻘 흐른다. 그 때 샤를이 울먹이며 말했다.

“저, 솔직히 이런 말 하면 오빠가 이상하게 볼까봐 싫었거든요. 근데... 저, 처음부터. 리림이란 종족 자체가 진짜 싫었거든요. 나랑 언니 괴롭힌 종족도 리림이고. 창관 포주들 다루는 것도 리림이고...”

히끅. 히끅. 어깨를 떨며 이야기한다.

“그런데 쟤는, 특히 싫어요. 외모도 그렇고, 처음 만났을 때 나한테 걸레라고 하고, 근데 오빠는 자꾸 싸고 도는 것 같아서...”

알았어! 멈춰! 샤를이 우니까 주변을 지나는 사람이 흘끔흘끔 쳐다본다.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모습.

눈물을 닦아주며 샤를을 옆에 앉혔다.

“샤를. 약속할게. 네가 항상 첫 번째야. 응? 이런 착하고 귀여운 여자친구를 버리고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 생각을 하겠어?”

떡정도 잔뜩 들었고, 나한테 반해서 머뭇거리는 모습도 귀엽고 요리 배우는 것도 그렇고. 같이 데이트 할 때도 즐겁고. 가학적인 플레이도 다 해 주는데!

“진짜죠...?”

샤를은 훌쩍거리며 그제서야 좀 진정했다. 다른 곳으로 이야기를 돌릴 요량으로 전화기에 찍힌 전화번호를 보여줬다.

“아까 박성연 씨가 성당기사단 전화번호라고 줬거든?”

순식간에 샤를의 관심이 끌린다. 할머니부터 지긋지긋하게 말해줬던 성당기사단. 과연 어떤 곳일까?

“일단 한번 전화만 해보자. 그래서 이상하면 바로 끊고.”

“그, 그럴까요?”

샤를도 두근거리며 폰을 쳐다봤다. 전화를 걸고 스피커폰 모드로 바꾼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동안, 갑자기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아무 말도 없다. 뭐지? 잘못된 번호인가? 둘 다 당황해서 쳐다보는데 갑자기 뚝뚝 끊어지는 무기질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김 강 민.

샤 르 아 이 스

지켜보고 있다.

곧 찾아가겠다... ]

뚝.

“...뭐야?”

우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솔직히 엄청 오싹했다. 내 이름을 알고 있다고? 그리고 샤를의 이름도?

박성연 아저씨가 말하던 느낌과는 다른데? 헐렁한 조직은 아닌 것 같았다.

“...뭘까요? 얘네 진짜 무서운데?”

“그러게...”

다시 전화를 해 봤다. 하지만 이번엔 없는 번호라고 뜬다.

“...”

“...”

불길한 느낌이 타고 올라왔지만, 딱히 떨어뜨릴 방법은 없다. 우리 둘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음­ 맞아, 그러고 보니까 촬영을 어떻게 할 지가 문제네...”

“맞아요.”

성당 기사단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 우린 일단 현실적인 문제로 도피했다.

근데 진짜 어쩌냐? 샤를을 카메라맨으로 세우기엔 문제가 있는데. 분위기라던가 잡기 힘들 것 같은데. 니모나가 프로 배우도 아니니 자꾸 샤를 흘끔거리고 그럴 텐데.

그 때 샤를이 갑자기 방법 하나를 제시했다.

“저... 오빠가 마력으로 촬영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데...”

“오? 진짜? 뭔데?”

“근데... 그럴려면, 오빠도 문신 해야 하거든요.”

엥? 뭐?

갑자기? 내가? 문신을 해야 한다고?

뭔가 업보를 되돌려 받는 느낌에 당황스럽다. 그리고 샤를이 웃고 있는 것도 착각이 아니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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