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133화 (133/358)

〈 133화 〉 130. 유다누나와 영화관 데이트

* * *

...그래도 같이 살 집 구하는 데 샤를 혼자 보내는 건 좀 양심없는 짓이겠지.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진정이 된다. 어제는 유다 누나와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쳐서 잠깐 엇나갔나보다.

그보다 아쉬운 건... 예림이 얼굴 말고, 샤를 본 모습으로 엄마랑 뵙게 할 걸.

아쉬움에 샤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깜빡, 깜빡. 잠에서 깨어난 샤를이 배시시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오빠~ 왜요?”

“예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샤를 본 모습으로 엄마한테 소개할 걸. 그런 생각도 했어.”

“그런 거였구나~”

샤를이 히힛, 웃음소리를 내고 날 껴안았다.

“샤를, 아예 그냥 본 모습으로 돌아갈래? 뿔만 감추고.”

샤를은 날 껴안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렇게 되면, 유다 언니랑. 영선 언니한텐 뭐라고 말하려구요?”

“앗차.”

그게 좀 걸리네. 유다 누나야 오컬트 좋아하고, 꿈 속의 이야기도 꽤 믿어줬지만. 영선 누나한텐 뭐라고 하지?

성당 기사단이 악마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하려나?

그런 생각이 꾸물꾸물 머리를 뒤덮었다. 샤를의 본모습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의외로 걸리는 게 많네.

“근데 이번에, 박성연 씨랑 이야기해보니까 성당기사단이 그렇게 빡빡한 것 같진 않아요.”

“하긴. 니모나가 벌을 받은 것도 사람을 습격해서 그런 거지?”

“어떻게 털어놓을 지 고민을 해 보죠.”

악마 커밍아웃이라. 감도 안 잡히는군. 나는 머리아픈 문제는 저리 치워버리고 말했다.

“오늘은 오전에, 같이 집 보러 다니자.”

“앗, 좋아요! 옷은 뭐 입고 나가지?”

간단하게 시리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린 외출준비를 했다. 샤를이 옷 앞에서 고민한다.

“좀 얌전한 옷 입고 나가고 싶은데...”

온통 돌핀팬츠, 나시, 레깅스, 튜브탑, 탱크탑 등 노출 많은 옷뿐이다. 아무래도 쇼핑을 대대적으로 해야겠네. 엄마한테 돈 다 드리지 말고 좀 남겨놓을 걸...

“이거 입어볼래?”

내 박스핏 와이셔츠를 건네줬다. 끈나시 위에 입으면 남들 눈은 덜 타겠지. 샤를이 입고 날 돌아봤다.

“어때요?”

본판이 좋으니까 뭘 입어도 예쁘네. 청바지에 이 정도면 괜찮다.

“예뻐.”

샤를이 웃었다. 이러고 있으니 완전히 동거하는 커플, 아님 신혼부부 느낌이 나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우릴 안내하는 공인중개사도 마찬가지였다.

“신혼집 구하러 다니시나봐요?”

“맞아요.”

대충 대답하며 물건을 이리저리 보러 다녔다. 아파트 매매가 8억~ 9억이라. 3억정도만 더 있으면 아파트 한 채 사겠는데. 차라리 집을 사겠다고 돈을 빌릴 걸 그랬나?

‘아니다. 전세자금 대출이니까 이렇게 금방 해 줄 수 있다고 했겠지.’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보다 박성연 아저씨가 끼니까 대출이 엄청 잘 나오네. LH 대학생 대출 되는 원룸 찾는다고 발품 판 게 너무 억울하게 느껴졌다.

‘역시...부르주아지들에게는... 죽창이 필요해...’

“오빠, 무슨 생각해요! 여긴 어때요?”

3억 2천짜리 빌라. 쓰리룸. 샤를은 집안 이곳저곳을 살피며 어지러워 보였다.

“세상에. 집 진짜 넓네요!”

“좋죠? 여기 전세 물건 잘 나왔어요.”

잘 나왔다고?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집안 상태를 점검했다. 군대 제대하고, 멀쩡한 곳에서 살고싶다는 일념으로 무수히 많은 발품을 판 나에게 이 집은 하자투성이었다.

“샤시가 20년은 넘어보이는데요. 올수리라면서 시트지 붙인 곳도 보이고.”

그러며 변기 물을 내려봤다. 수압도 영 시원찮고, 올라오는 길에 엘리베이터도 없다. 중개인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변명하려 했지만, 나는 차가운 얼굴로 쏘아붙였다.

“다시 말씀드릴게요. 예산 4억5천. 엘리베이터. 남향. 5년이내 신축. 옵션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주차장 있어야 하고.“

차도 살 거라고!

“어휴. 남편 분이... 상당히 꼼꼼하시네요.”

그렇게, 지옥의 집 찾기 여정이 시작됐다. 두 시간동안 열 다섯군데를 돌아봤지만 내 마음에 차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되면 유다 누나와 약속을 좀 미뤄야 할 지도 모르겠는데.

다섯 군데를 더 돌자 ‘일단 식사를 좀 하시고 움직이는 건 어떨까요?’ 라며 공인중개사가 다리를 후들후들 떨었다. 샤를도 얼굴이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일단 OK 하고, 근처의 제육집에 같이 들어갔다.

“저 이렇게 꼼꼼하신 분 처음 봤습니다.”

기가 다 빨린다는 듯 공인중개사가 한숨을 쉬었다.

“다리 아파요...”

“샤를, 미안.”

공인중개사는 흘끔 샤를을 쳐다봤다. 맨 처음엔 샤를의 미모에 꽤 신경썼지만, 스무 군데를 도는 극기훈련급 사이클을 돌자 이젠 아무래도 좋은 듯 했다.

“두 분 진짜 보기 좋으시네요.”

“감사합니다.”

다행히 선을 넘는 질문은 하지 않는 공인중개사였다. 여자친구 어디서 만났냐­ 되게 어려보이신다­ 등등의 불쾌한 질문.

물건 보는 재주가 없는 것 빼고는 괜찮네.

식사가 나오자 우리 셋 다 기쁜 얼굴로 쌈을 집었다. 그렇게 한 입, 베어물려는데 공인중개사의 폰이 울렸다.

슬픈 눈으로 쌈과 폰을 바라보다, 우리에게 먼저 드세요­ 라고 말하곤 폰을 받았다.

“네. 행복공인중개사입니다­ 네. 네. 아, 전세 물건 맡기고 싶으시다구요. 잠시만요. 지금 손님이랑 같이 있어서. 네. 아, 파크빌 14층이요? 음. 남향­ 건대부고 뒤에 있는, 신축 맞죠? 넵. 넵.”

이야기를 하는 공인중개사의 표정이 점점 밝아진다. 전화를 끊고는 내게 신나서 말했다.

“저, 손님 찾으시는 조건 물건이 지금 딱 나왔거든요?”

“아, 그래요? 다행이네! 일단 식사 먼저 하시고 같이 보러 가죠!”

집주인은 인상 선해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집도 멋졌다. 안도 깨끗했고, 볕은 잘 들어서 습하지 않았다. 어둡던 원룸과는 차이가 심했다. 샤를도 이 집이 마음에 드는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손을 팔락팔락 흔들며 자세한 사정을 털어놨다.

“아들내미 산다고 해서 도배까지 새로 다 했는데, 이 놈이 지방 발령이 떡하니 나버렸지 뭐야­, 아휴. 집 보러 오신 분들은 신혼이에요?”

“네.”

“아휴, 이쁘네! 여기 살면 아마 복 들어올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향 큰 창.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층고. 신축. 정말 우리가 원하는 조건이었다.

“그냥 바로 계약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즉시 입주도 되나요?”

“이번 주말이면 바로 들어올 수 있어요!”

집주인의 쾌활한 말에, 공인중개사도 덩달아 신난 듯 했다.

“그럼 가계약금 4천 6백만원. 바로 거시겠어요?”

“잠시만요.”

나는 박성연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 계약서 사본만 보내주면 전세금 통째로 쏴주겠네. 가계약은 무슨. ]

아무래도, 니모나를 빨리 우리에게 보내고 싶어서 안달난 듯 했다. 아이고. 그래요. 아주 찐한 처녀상실 영상부터, 엉엉 우는 것까지 다 촬영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집주인과 공인중개사에게 말했다.

“그냥 오늘 본 계약까지 바로 끝낼게요. 입주일자는 이번 주말로.”

“어, 이렇게 빨리 결정하셔도 괜찮겠어요...?”

오히려 공인중개사가 걱정하며 말렸지만, 이미 내 마음은 확고했다. 집 발품을 많이 팔아본 경험으로 봤을 때 여기가 제일이다. 여긴 돈 바로 안 주면 이틀 만에 나갈 물건이라고!

사무실로 이동해 바로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칼같은 입금. 공인중개사가 황망하게 머리를 긁었다.

“...이렇게 빨리 계약해 본 건 처음이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공인중개 수수료는...”

통장에 남은 돈을 닥닥 긁어 전송했다. 이제 진짜 완벽하게 빈털터리다. 폰허브에서 수익금을 한번 더 출금하기 전까진 먹을 것도 못 사겠군. 뭐, 유다 누나한테 오늘 치 알바비 받지 뭐.

공인중개사가 타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밖으로 나와 테이블에 앉았다. 잠깐 휴식해야겠다.

그런데 반대편에 앉은 샤를이 기쁜 얼굴로 날 쳐다봤다.

“오빠, 근데 왜 신혼부부라고 물어봤을때, 전부 네라고 대답했어요?”

“굳이 여자친구라고 말하기도 좀 귀찮고. 착각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잖아.”

“흐응... 의외네요. 오빠가 ‘그냥 동거하는 사이에요' 이런 말 할 줄 알았는데...”

“그 정도로 눈치 없진 않아.”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 빨며 대답했다. 샤를은 미소를 참으려고 하는 듯 했지만, 볼 근육이 이미 씰룩거리는 중이다.

“우리 신혼집도 구했겠다. 주말엔 이사 도와줄 사람좀 구해봐야겠네.”

“시, 신혼집이라니...”

히히 웃으며 내 옆에 옮겨 앉았다. 샤를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뺨에 뽀뽀해주며 도와줄만한 사람 목록을 생각해 봤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유다 누나나 영선 누나. 그리고 내 대학 친구 한 놈­ 오랫동안 연락 안 했었는데. 오랜만에 일이나 좀 시킬 겸 얼굴 한번 봐야겠다.

“이런, 오늘 유다 누나랑 약속 있는데. 샤를, 집에 혼자 가도 괜찮겠어?”

오늘 샤를한테 점수도 땄고. 슬슬 헤어져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다행히 샤를은 별 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저 이제 버스도 잘 타거든요!”

그 말 들으니까 더욱 안심이 안 된다. 샤를이 탈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반대편 가는 버스를 타려는 샤를을 정방향에 태워주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 유다 누나. 오늘 영화는 뭐예요? ]

영화관 기둥에 기대서 카톡을 보내자,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몰라. 프랑스 코미디 영화 리메이크라던데?”

남들 시선을 피하기 위해 머리에 눌러쓴 캡, 여름에 어울리는 레이스 가디건. 얇은 나시티. 무릎까지 내려오는 7부 바지. 전체적으로 트렌디한 느낌이다.

“언제부터 기다렸어요?”

자연스럽게 허리를 꼭 껴안았다. 부끄러운지 주변을 둘러보다, 마주 안아왔다. 그러며 속삭였다.

“밖에서 포옹하는 거 부끄러운데...”

뭐, 익숙해져야죠. 그보다 역시 스플릿텅은 꼴리는구만. 가까운 곳에서 말하니 두 갈래 혀가 생생하게 보인다.

공공장소에서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접어둔 채 매점으로 향했다.

“뭐 마실래?”

누나가 물었다. 아, 근데 오늘은 돈 없는데.

“누나. 오늘은 알바비 먼저 주면 안 돼요?”

“어? 응. 응. 알았어.”

유다 누나가 황급히 지갑을 꺼내 돈을 건내줬다. 엥, 근데 왜 이렇게 많아?

“누나. 돈 잘못 센 거 아니예요?”

거의 100만원은 되는데? 스무 장이라니. 왜 이렇게 많아?

그러자 얼굴을 빨갛게 붉히고, 내 주머니에 돈을 쑤셔넣었다.

“아니. 누나. 왜­”

“조용히 해...! 오늘, 나, 내일까지 같이 있을 거니까...!”

아하.

그런 거구나.

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기둥서방처럼 돈 받고. 내일 아침까지 같이 있어드리는 수밖에­

웃음이 실실 나왔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