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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131화 (131/358)

〈 131화 〉 128. 모자상봉

* * *

“응. 부모님 뵙고 가자.”

“잠깐, 잠깐만요.”

샤를은 걸려 있던 옷을 점검했다. 윗가슴이 보이긴 하지만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선 제일 얌전한 편이었다. 강민의 부모님에게 보여줘도 눈살만 조금 찌푸리고 말 정도.

‘돌핀팬츠나 민소매 터틀넥 입혀서 왔으면 좆될뻔했다...’

멀쩡한 옷이라도 하나 사 줘서 다행이다. 하지만 샤를은 내 부모님을 만난다니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한 듯 했다.

“강민 오빠 어머님이요? 으으... 일단... 알겠어요...”

샤를은 그렇게 말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 듯 했다. 뭐, 남자친구 부모님 얼굴 보는 게 처음이긴 하겠네.

나는 폰허브에 수익금 출금 신청을 넣으며 계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번엔 엄마에게 연락했다.

[ 엄마. 나 강원도 왔거든. 내일 점심에 엄마 일하는 데 가도 돼? ]

[ 뭐할라고왓냐 ]

[ 일 있어서 왔죠. 괜찮아요? ]

[ 그려들려라 ]

여자친구 샤를이랑 같이 왔다는 사실은 만나서 알려드려야지. 반응이 기대됐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신혼부부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저희 가 볼게요.”

“자리잡히면 연락하게. 니모나는 그 때 짐 들려서 보내도록 할 테니.”

“알겠습니다.”

박성연이 우리를 배웅했다. 니모나는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다. 계약서 허점도 제대로 파악 못하는 것도 그렇고, 행동도 멋대로인걸로 봐선 나이가 어린 것 같은데.

‘설마 미성년자는 아니겠지?’

순간 등 뒤에 소름이 쫙 흘렀다. 에이. 설마 그렇겠어. 악마잖아? 미성년자일리 없겠지?

내가 불안에 떨자 샤를이 의아하게 물었다.

“오빠. 무슨 일 있어요? 표정이 왜 그래요?”

“엉, 아무것도 아냐...”

니모나가 오면 확인해 봐야겠다... 미성년자일린 없겠지만. 박성연 저 아저씨가 그 정도로 돌아이일린 없겠지.

진짜로 작별인사를 하고, 명함을 받았던 택시를 불러 터미널로 향했다. 택시 기사는 궁금한 듯 질문을 던졌다.

“여기 사는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예요? 집도 으리으리하던데.”

“몰라요. 성당 신부래요.”

생각하기도 귀찮아 대충 대답하자 샤를이 풉 웃었다. 택시 기사는 충분히 이해를 한 건지 그 이상으로 말 걸진 않았다.

엄마가 계신 곳은 강릉. 춘천과 강릉은 같은 강원도지만 의외로 거리가 있다. 강릉까지 버스를 타고 간 후 터미널에서 내렸는데, 내린 샤를이 바로 가게로 향하지 않고 이곳저곳에 들려 물건을 샀다.

“뭘 그렇게 사?”

“오빠 어머니 뵈러 가는 거잖아요! 빈 손으로 어떻게 가!”

샤를이 나를 타박했다. 이럴 때는 샤를이 나보다 예절에 밝은 것 같단 말이지.

엄마가 일하고 계신 곳은 바닷가 근처의 조개구이집이었다. 낮이지만 은근히 손님이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저 안에서 수저를 닦던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아이고­ 강민아! 바쁜데 뭐하러 여기까지 와!”

“엄마 얼굴 보려고 들렀죠.”

입으로는 왜 왔냐고 하면서도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피었다. 들르길 잘했네.

그런데 엄마가 왼손을 등 뒤로 감춘다. 손목으로 보호대가 슬쩍 보였었는데. 다친 게 다 낫지도 않으면서 또 일하고 있는 거야? 순간 속이 시큰했다.

“아니, 엄마. 아프면 말 해요. 무식하게 일하다 덧나지 말고.”

“일없다. 너한테 빌린 돈도 갚아줘야 하는데 일 해야지. 근데 이 아가씨는 누구냐?”

나와 같이 들어온 샤를을 보며 물었다. 170cm의 늘씬한 키. H컵 가슴. 아이돌같은 외모. 하늘하늘한 흰색 원피스. 이 아리따운 처자는 누구여? 하고 소처럼 눈을 꿈벅거리신다.

샤를은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과일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근처 청과물점에서 산 것이다.

“안녕하세요! 강민 오빠 여자친구인 샤를이예요!”

엄마는 샤를이 내민 과일박스를 받았지만 얼떨떨한지 샤를의 얼굴만 쳐다봤다.

“샤, 뭐라고? 사라?”

“아뇨! 샤를이요. 강민 오빠 여자친구예요.”

“캐나다 교포야.”

내가 덧붙이자, 엄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돈도 없어서 매일 아르바이트만 하던 아들놈이 사근사근한 여자친구를 데려왔으니 그럴 수밖에. 엄마는 정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샤를을 환대했다.

“우리 아들 여자친구라고? 아이구, 참 곱다. 우리 강민이가 힘들게 하진 않아요?”

“아뇨. 되게 잘 해줘요!”

아이돌같은 미소로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의 손을 꼭 붙들고 재잘재잘 내 자랑을 한다. 요리도 잘하고­ 친절하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다 샤를의 쇄골에 붙은 파스를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어깨는 왜 이런대. 어디 아파?”

“아. 좀 결려가지구요. 아프진 않아요!”

샤를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삐진 듯, 나를 살짝 노려봤다. 나는 딴청을 피웠다.

아까 과일 사며, 어른들은 별로 안 좋아할 거라고 생년월일 타투를 파스로 가려놓았다. 내가 하라고 시킨 거니 내 탓이지. 엄마는 호들갑을 떨며 샤를을 앉혔다.

“아휴. 내가 너무 오래 세워놓았네. 앉어, 앉어!”

우리가 자리에 앉자 금새 불을 피우고 조개를 가득 채워 가져다줬다. 백합, 가리비, 새우, 피조개­ 쟁반 하나를 가득 채울 양. 나는 머리를 긁었다.

“엄마. 이거 다 못 먹는데.”

“어휴, 다 못 먹긴.”

샤를이 잽싸게 끼어들어 웃었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저 조개 진짜 좋아해요! 잘 먹을게요!”

“아이구. 싹싹하니 이쁘다. 잠깐 기다려봐. 라면도 끓여줄게.”

어머니가 라면을 가지러 주방으로 향하자, 샤를이 고개를 숙이며 나한테 속삭였다.

“이게 조개에요? 마계에선 한 번도 못 먹어봤는데, 맛은 어때요? 냄새는 좋은데...”

벌써 가리비에 올라간 치즈와 초장이 녹아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보글보글 끓는다. 속살을 발라내 샤를의 입에 넣어주자 눈을 반짝 뜬다.

“음! 으음!! 음음!!”

맛잇나보네. 다행히 해산물도 입에 맞나보다. 샤를에게 조개를 좀 더 발라주는데 엄마가 라면을 들고 오며 웃었다.

“하이고~ 사이 좋구나.”

그러며 자리에 털썩 앉아 맥주 한 병, 소주 한 병을 땄다. 당황해서 물었다.

“엄마, 아직 일하는 중 아냐?”

“사장님한테 퇴근한다고 했다. 어차피 손님 많은 시간은 다 지났어. 평일 낮에 무슨 조개를 먹겠다고 사람이 오겠니.”

아직 홀에 사람이 꽤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아들과 아들 여자친구랑 이야기하고 싶으신지 이른 퇴근을 하셨다.

나와 샤를은 얌전히 술을 받았다. 소맥 한 잔을 비우며 엄마가 물었다.

“만난 지는 얼마나 됐나?”

“한 달 좀 넘었어요!”

“좋을 때네.”

그러며 샤를을 빤히 보고, 나를 한 번 본다.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참으시는 듯, 연거푸 소주만 마셨다. 걱정이 되어서 말렸다.

“어우, 엄마. 술을 왜 그렇게 드세요.”

“그냥... 어느 새 다 컸다 싶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엄마의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힌다. 샤를은 당황해하면서도, 술잔을 내미는 엄마에게 술을 더 따라드렸다.

술병이 순식간에 쌓여갔다. 술도 잘 못 드시는데 오늘 왜 이러시지. 엄마가 취한 듯 탁자 위를 손으로 짚고, 샤를을 향해 혀 꼬부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는 결혼 할 생각이 있어?”

“결, 결혼이요?”

“엄마, 취했어요. 만난 지 한달 됐는데 무슨 결혼이야!”

샤를은 당황해서 자신의 원피스를 이리저리 매만졌다. 하지만 엄마가 하려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다.

“결혼하라는 게 아니라, 하기 전에 생각 잘 하라는 거예요.”

우울하게 낮게 깔린 목소리. 엄마도 어렸을 때 나를 임신하고, 결혼하고, 그러고 이혼하고­ 인생의 꽃다운 시기를 날 키우느라 모조리 보내 버렸다.

나는 그게 못내 미안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청춘을 아까워한다.

엄마는 술에 취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강민이 너도, 여자친구좀 아껴주고. 너는 애비처럼 무책임하게 굴면 안 된다. 여자친구 예쁘다고, 무작정 임신시키려고 하지 말고­”

“알았어요.”

쿵. 엄마의 몸이 휘청거리며 테이블을 짚고 엎드렸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으셨다.

...어렸을 적 자주 보던 모습이네. 아주 가끔 술 마시고 들어오셔서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쓰러져서 잠들어 버리시고.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다. 나는 엄마를 부축해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집 주소를 말했다.

강릉의 옛 시내. 반지하 쪽방. 그 곳으로 어머니를 데리고 내려가자 샤를이 문가에서 같이 받쳤다. 이런 우울한 집은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문도 열쇠키다. 우유 주머니 안에 둔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어머니를 집 안에 눕혔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지긋지긋한 반지하방. 습기는 가난의 냄새를 품고 가라앉아있다. 이불도 모두 해지고, 노란 장판은 습기를 품고 들떠있다.

샤를은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웃으며 샤를에게 말했다.

“이온 음료좀 사러 갔다 올까?”

손을 잡고 가까운 편의점으로 말없이 걸어갔다. 중간에 샤를이 중얼거렸다.

“오빠는 치사해요. 자기 이야기는 한번도 안 했어. 왜 부모님 이야기나. 옛날 이야기는 한 번도 안 했어요?”

“이런 걸 말해서 뭐해?”

진짜로. 이런 우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뭐하러?

“그래도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샤를은 내 손을 놓고, 훌쩍훌쩍 울며 날 쳐다봤다.

“오빠가... 어떻게 지냈었는지. 어렸을 땐 어땠는지. 힘들었던 이야기나. 어렸을 적 이야기나. 오빠가 이야기해주면 뭐든 들어주고 싶어요...

혼자서 걱정하거나 앓지 말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다고 해도. 난 여자친구잖아요. 그냥 아무 이야기나 해 줘요.”

샤를의 눈 안에 별빛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긁었다. 묘한, 안심감이 들었다.

예림의 얼굴을 했지만 예림과는 아예 다른 존재. 샤를. 내 여자친구.

그리고 뭐든 이야기해도 괜찮은. 그런 관계.

마음 속에서 따뜻한 온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알았어.”

다시 샤를의 손을 잡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드실 걸 걸 사고, 업비트를 켜 입금을 확인했다.

“아, 돈 들어왔다.”

폰허브에서 환금신청을 마친 비트코인이 내 두나무 계좌로 들어왔다. 호가에 바로 던져버리고, 7천만원 상당의 현금을 출금신청했다.

“은행좀 들렀다 가자.”

편의점 근처의 은행으로 향했다. 7천만원을 모두 출금하겠다고 했다. 손에 쥔 돈은 얼마 안 돼 보였다. 양으로 따지면 비타500 박스에 다 들어갈 정도의 얼마 안 되는 돈. 은행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오빠. 어머니한테 드릴 거예요?”

“괜찮겠어? 어떻게 보면 샤를 네가 번 돈인데?”

“안 드리겠다고 하면 오히려 실망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샤를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따뜻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리고 기대가 됐다. 엄마는 이 돈 드리면 어떤 반응일까?

“돈 드리고, 서울로 올라가자.”

“여기서 안 자고 가요?”

“저런 단칸방에서 자면 우울증 걸려.”

그러며 다시 반지하 방으로 향했다. 엄마가 좋아했으면 좋겠네. 집도 좀 좋은 데로 옮겼으면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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