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126. 니모나. 나랑 결혼하자.
* * *
“오빠. 좋네요. 수락해요.”
“...괜찮겠어? 내가 리림이랑 섹스해도 싫지 않아?”
그러자 샤를은 방긋 웃었다.
“동영상만 찍는 거잖아요? 마음 줄 것도 아닌데 괜찮아요. 그 대신 나한테 했던 것보다 훨씬 심하게 해야 해요. 낙서플, 관장. 앞뒤관통. 똥까시, 강간플 할 수 있는 건 전부
리림은 성관계를 혐오하는데. 엄청 괴롭겠죠? 아마 엉엉 울게 될 거야.“
샤를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어렸다. 이런 표정은 처음이네... 리림 종족과의 악연이 깊었나보다. 리림의 자업자득이다. 왜 처음에 샤를의 성질을 긁어서, 어휴.
“그런데 집은 어떻게 할까?”
샤를의 허락을 받았지만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 원룸은 이미 샤를과 사는 것으로 꽉 찼다. 리림과 같이 살기엔 너무 좁은데.
샤를도 골머리가 아픈지 턱을 괴었다.
“폰허브에서 수익 나온 건 어떻게 됐어요?”
“아직 진행중이야.”
“집을 새로 구해야 할 텐데...”
한참 고민하던 샤를은 머리를 저었다.
“됐어요. 마법사들 돈 많아요. 빌려달라고 하죠. 우리가 영상까지 찍어서 올려줄 테고, 마력 벌어서 다리도 치료해 줄 텐데. 좀 뻔뻔하게 굴어봐요!”
엥? 그게 돼?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우린 서재로 들어가 박성연에게 집을 구하기 위한 돈을 요구했다. 그러자 박성연이 당황해했다.
“돈은 많이 없네만... 일단 기다려보게.”
자신의 다이어리를 뒤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자, 대출, 상가 정리? 혼잣말을 계속하다 다이어리를 덮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출 받아서 빌려주겠네. 나도 건물주긴 하네만, 세금 내고 컨설팅 비 내고 하면 현금은 별로 없어.”
이 마법사 아저씨, 부르주아지구나... 죽창 마렵네...
“왜 날 그렇게 쳐다보나?”
“정원에 대나무 자라나 궁금해서요.”
“그런 건 없네만.”
박성연은 이곳저곳으로 전화를 돌렸다. 금리, 담보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니 은행과 통화하는 듯 했다. 전화를 끊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는지 날 봤다.
“자네, 그러고 보니 아직 폰허브에서 정산을 못 받았지? 기다려 보게나. 자네 계정으로 동영상 올릴 거면 이런 것도 다 해결해 줘야겠지.”
그러며 어디론가 통화를 한다. 유창한 영어. 대체 무슨 이야길 하는 거지? 잠깐 기다리자 대화를 마친 박성연이 내게 말했다.
“자네 폰허브 계정 확인해 보게.”
“예? 어?, 잠깐, 이거 뭐야!”
노란색 Pending이 떠 있던 인증 상태가 초록색 Success로 변했다. 이야, 이 마법사 아저씨 서비스 확실하네? 그럼 페이팔 출금으로 7천만원 전부 출금이 가능하다는 거야?
“샤를! 이제 출금할 수 있어!”
“와! 진짜요? 세상에, 감사합니다!”
샤를은 폴짝폴짝 뛰며 박성연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음. 미친 변태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능력 있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건대쪽 전세시세가 2억이더군. 하지만 그런 데에서 살면 병 걸린다네. 여기로 하게. 빌라 전세 4억 5천. 올수리 포룸. 채광 좋고. 최상층. 이거면 되겠지? 대출 상담 끝냈으니 걱정 말게.”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벌써 대출이 나왔다구요?”
“뭐, 내가 지역은행 VIP라 바로바로 잡아주는 편이지. 계약서 보내면 바로 처리해 주겠네.”
갑자기 허리가 수그러든다. 역시 돈의 힘은 위대하다. 아까까지 변태 아저씨라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다.
잠깐, 근데 4억 5천 대출이면 이자만 해도 얼마야...? 월 100만원 가까이 나오지 않으려나? 이자는 어떻게 하지?
“어, 그러면 4억 5천중에 7천만원은 내 돈으로 넣고, 3억 8천만 대출받는 건 어떠실까요? 제가 이자때문에 좀...”
그러자 이마를 찡그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자네 칠천만원으론 집안 가전이나 채우게. 이자는 됐어. 내 다리 치료해 줄 사람에게 그깟 이자따위를 받겠나. 나중에 전세 빼면 원금만 갚고. 자네 뭐 도박 하거나 그런 건 없지?”
“아휴. 없습니다.”
“그럼 됐네. 여기 종이로 된 채무 계약서 한 장 쓰게. 대출 실행 시 4억 5천, 이자 없이 상환.
그리고 샤를 자네가 리림과의 계약서 한 장 만들어 주겠나?“
마법을 쓰는 계약서는 샤를이 담당하기로 했다. 샤를에게 박성현이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대충 이걸 보고 만들면 될 걸세. 내가, 큼. 아내랑 플레이할 때 썼던 건데.”
대체 무슨 플레이를 했길래 계약서까지 쓴 거야?
“으아... 으으...”
샤를은 계약서를 받고는 말을 더듬었다. 그러며 열심히 자신의 계약서를 작성한다. 대체 무슨 내용이였길래 저래?
채무계약서를 완성하고 샤를이 쓴 계약서를 살펴봤다.
***
리림 니모나는 계약서에서 성지현이라 표현한다.
강민과 샤르아이스는 계약서에서 새 주인이라 표현한다.
1. 박성현의 아내 성지현은 5년간 새 주인님에게 대여된다.
2. 성지현은 새 주인에게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새 주인님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3. 성지현은 주인님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3번 조항은 좀 미친 것 같은데요?”
꼴리긴 하지만.
“뭐. 상식적인 명령을 내릴 거라 믿네. 내 아내는 좋아했었어.”
나는 항변하는 걸 포기하고 계속 읽었다.
4. 성지현의 폰허브 영상을 통해 얻는 마력은 성지현에게 지급한다. 금전은 성지현이 80%를 가진다.
5. 이상의 조항을 어기거나 거부할 시, 폰허브로 벌어들인 모든 마력을 두 배로 보상한다. 보상이 불가능할시, 성당기사단에게 통보한다.
***
꽤 괜찮은데? 하지만 이상한 게 있었다. 1번 조항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니모나... 저 리림이 아내인가요? 아까 싸우는 걸 보면 아니신 것 같던데.”
“아직은 아냐.”
아직?
“저 리림한테도 당근은 있어야겠지. 최근에 나와 결혼하고 싶어서 생떼를 부리던데. 결혼하는 대신, 5년간 이 계약서까지 같이 도장찍게 만들 생각일세.”
저 리림도... 마음 고생이 심하구나. 어쩌다 이런 미치광이 마법사와 엮인 거야?
뭐? 샤를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아니거든? 우린 서로 좋아서 이러는 거야! 박성연은 자네나 나나 별 다를 바 없어 이런 말로 속을 긁었다.
“뭐. 어쨌든 이 정도면 충분하네.”
박성연은 리림을 불렀다. 들어오면서 샤를을 한번 노려봤다가 생글생글 웃으며 박성연에게 달라붙었다. 안 그러는 게 좋을 텐데...
“자기. 왜 불렀어?”
말없이 탁자 위에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계약서?”
내용을 읽던 리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가, 다 읽어갈 때 쯤엔 분노로 이를 악물었다. 얌전해 보이는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고래고래 소리치며 따졌다.
“지금... 장난해? 나보고 서큐버스의 노예가 되라고? 당신 미쳤어? 내가 싫다고 했지! 인간한테 안기는 것도 수치스러운데, 심지어 서큐버스랑 같이? 제정신이야?”
씨근거리며 성연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성연은 차갑게 말했다.
“그럼 굶어죽을래?”
“뭐, 뭐?”
“너도 느끼고 있지 않아? 내 몸도 슬슬 한계잖아. 인간 하나에서 정기를 빨아서 네 목숨을 연명할 수 있겠어?”
아득. 니모나의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지금 박성연을 천천히 죽게 만들고 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거기에 성현이 독설을 퍼부었다.
“내가 죽으면 어쩔 건데? 목걸이를 차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성당기사단에게 길러 달라고 목숨을 구걸할 거야?”
“그럴 바엔 차라리 죽겠어! 내가 우습게 보였나봐? 이런 수치스러운 계약서를 내 앞에 들이밀어?”
니모나의 손에서 검은색 번개가 튀었다. 성연의 몸에 닿자 피부가 조금씩 주름진다.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중. 박성연은 고통스러운지 이마를 구겼다. 그걸 보며 니모나는 소리질렀다.
“성연 오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지난 1년간. 모든 걸 다 해줬는데! 그 대가가 고작 이거야?”
성연은 피식 웃었다. 지난 1년간 니모나가 어땠었지?
사용인들에게 행패를 부려 다 쫒아내고, 자신을 독점하려 들고. 다른 남자와 자는 걸 보고싶다고 하니 극도로 혐오하고, 매일 달라붙어 정기를 취해가고, 쇠약해가는 성연의 몸을 보고는 며칠 동안 굶다가, 눈이 뒤집혀 정기를 빨아내고 필사적으로 아내인 척을 하면서 자기를 봐 달라고 애원하고
그런 바보같음이 사랑스러웠고. 미웠다.
강민에게 빌려줘, 니모나가 엉망으로 우는 걸 보고싶을 만큼.
성연이 입을 열었다.
“지현아. 정말로 날 사랑하니?”
지현이란 말을 들은 니모나의 손이 탁 풀렸다. 박성연의 몸이 휠체어로 털썩 떨어졌다. 니모나는 그 위에 무릎꿇고 엎드려 눈물을 떨어뜨렸다.
“사랑해, 사랑한다고!”
“그럼 결혼하자.”
뭐? 니모나의 눈이 크게 커졌다. 놀란 니모나에게 박성연이 속삭였다.
"결혼하고 딱 5년. 5년만 강민 씨랑 같이 있어. 그거면 될 거야.
내 다리를 치료할 정도의 마력은 5년이면 다 모여. 그리고 네가 평생 먹고 살 정기도 그렇게 되면 네가 나에게서 정기를 빨아가지 않아도 될 거야.""
악마처럼 니모나를 꼬드긴다. 하긴. 옛날에도 멍청한 악마들은 간악한 마법사에게 속아 공짜로 일을 해줬다고 했지. 지금은 박성연이 훨씬 악마처럼 보였다.
"5년 뒤엔. 어떻게 되는데?"
니모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5년? 가슴이 쿵쿵 뛴다. 5년을, 인간 남자 아래에 깔려 있으라고? 하지만, 그 다음엔 어떻게 되지?
박성연이 달콤하게 속삭였다.
"너랑 나랑 결혼해서. 오래도록 사는 거야. 여기 강원도에서 같이 살자.
그때도 네가 다른 남자랑 자는 게 싫다면. 그땐 고민해 볼게.
하지만 이번엔 제발. 딱 5년만. 지현아. 부탁이야.
네가 거절한다면, 난 아마 곧 죽을 거야."
사랑하는 남자의 목숨이 걸린 부탁. 그리고 결혼이라는 미끼. 니모나는 어찌할 줄 모르고 성연을 올려다봤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하지?
"잠깐...잠깐만 생각하게 해줘."
니모나는 비틀비틀 문을 나섰다. 나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입이 말랐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니모나가 받아들일까요?"
"글쎄. 모르겠네. 반반의 확률이 아닐까 싶네만."
"니모나가 거절하면 저도 방법 없어요. 다시 생각해서 제안 부탁드립니다."
"젠장."
박성연은 내키지 않는 상황인 듯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니모나가 싫다고 하면 나도 방법이 없다고!
한참 뒤, 니모나가 눈물에 젖어 방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