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125. 어째서 나야?
* * *
리림을 데려가서 성인 동영상을 찍어달라고? 상상하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어봤다.
“한번만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
“리림을 데려가서 영상을 찍은 다음 폰허브에 올려달라고 했네.”
더 자세하고 심각한 문장이 됐다. 아파지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박성연은 개의치 않고 리림이 동영상을 찍어야 할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상을 왜 찍어야 하나. 첫째. 일단 내 몸이 한계라네. 내가 몇 살쯤 되보이나?”
“글쎄요. 한 쉰 다섯?”
종잇장처럼 얇아진 피부, 회색빛 머리카락. 주름진 피부. 그걸로 봐서는 55살쯤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박성연이 고개를 저었다.
“올해로 마흔이라네.”
마흔이라고? 말도 안 돼. 하지만 박성연은 82로 시작하는 민증을 내밀었다. 민증의 사진은 젊고 활기가 넘쳤다.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진짜네요...?”
리림에게 생명력을 빨린 대가는 가혹했다. 박성연은 산채로 죽어가는 중이었다. 박성연은 한숨을 쉬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내 생명력이 이렇게 빨려나가면 곧 죽겠지. 그러고 나면 혼자 남은 리림은 어떻게 되겠나?
흡정의 손길을 못 쓰게 만드는 목걸이를 140년동안 차고 있어야 하는데.
금방 굶어 죽지 않겠나? 아니면 성당기사단의 감옥에 자진 입소하던가.”
...음. 그건 좀 불쌍한데.
박성연은 내 죄책감을 자극하며 리림이란 종족에 대해 설명했다.
“리림도 어엿한 서큐버스계 악마야. 성관계를 통해 마력을 수집할 수 있다네. 종족이 선입견을 갖고 성관계를 혐오할 뿐이지. 이건 오히려 구호 행위라고 할 수 있네.”
내가 망설임을 보이자 더 밀어붙였다.
“리림을 영원히 데려가 달라는 게 아니네. 그냥 5년 정도?
자네 폰허브 성장세를 보아하니, 내 다리를 치료할 마력. 그리고 리림이 평생 먹고 살 마력이 5년이면 모일 걸세. 딱 그 동안만 부탁함세.”
하지만 별로 내키지 않는다. 샤를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데, 리림을 집 안에 들였다가 어떤 험악한 꼴을 당하려고! 나는 대안을 제시했다.
“직접 영상을 올리시죠. 뭐, 리림의 자위 영상이라던가. 그런 걸 올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마력은 모이는데.”
그러자 박성연이 손을 저으며 질색했다.
“젠장, 성당기사단이 내 마법 사용을 아예 금지했다니까! 마법으로 계약서 쓰는 것도 들킨다면 극형일세! 그런데 내가 마력을 모으는 걸 폰허브에 대놓고 광고하라고?”
이 양반, 진짜 대책 없구만. 하긴, 그러니 죽은 사람을 살릴 생각도 했겠지. 다른 방법은...
“그럼 리림한테 마법 쓰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말해봤지만 박성연도 수없이 생각한 문제였다.
“저 리림은 마법도 제대로 못 쓰는 꼴통이라고! 마법을 가르치는 동안 내가 죽게 생겼네!”
그러며 오히려 내게 목소리를 높여가며 따졌다.
“젠장! 대체 뭐가 문제인가! 왜 영상을 안 찍는데! 자네에게 양심은 없지 않나!
자네 폰허브 영상 보니 서큐버스를 무슨 좆집마냥 취급하던데! 문신에다가, 거의 강간 수준의 플레이! 거기에 배우 한 명 더 추가하면 자네 좋은 일 아닌가!”
이 미친 변태 늙다리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듣는 사람 기분나쁘게! 안 그래도 자꾸 폰허브 댓글로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이래서 빡치는데!
“폰허브는 그냥 컨셉 잡고 촬영한 것뿐입니다! 억지 부리지 마세요!”
“컨셉은 무슨! 아주 좋아 죽으려고 했지 않나!”
젠장, 이 늙은이 말이 안 통해! 설득이 불가능하다!
"제발 부탁일세. 저 리림을 데려가 주게!"
박성연은 이제 대놓고 내 바지자락을 잡으며 비는 중이었다.
아니, 왜 내가 리림을 맡아야 하는 건데! 마나 원격 수집 계약서만 쓰면 되는데! 나 말고 다른 마법사한테 부탁하시죠!
아니면 혹시, 우리 속여서 개짓거리 하려는 수작 아냐? 그걸 지적하자 박성연이 헛기침을 했다.
“큼. 내 선의를 그렇게 말하다니 섭섭하군. 성당 기사단에 쫓겨본 선배의 입장으로써 조언해주려고 부른 것이네!”
하지만 말하면서도 시선을 피한다. 그걸 보니 감이 온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 박성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굳이, 제가 리림을 맡아야 하는지 똑바로 말해요. 안 그러면 돌아갈 겁니다.”
“내가 성당 기사단에게 벗어날 방법까지 가르쳐 줬는데도 그러긴가!”
뭐... 성당 기사단을 직접 부르란건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었으니까. 알려준 건 고맙다.
하지만 너무 사소한 해결책이라 이득 본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리림을 맡길 사람으로 왜 나를 지목했을까?
뭔가 수작을 부릴 생각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계약서를 들고 소리쳤다.
“이 계약서 들고 성당기사단한테 갈까요? 극형이라면서요?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젠장, 알겠어! 알겠다고! 이야기하겠네.”
그제서야 박성연이 더듬더듬 실토했다.
“좀 말하기 부끄럽네만... 내가 아내하고 주로 즐기던 플레이는 아내를 다른 남자한테 빌려주고, 촬영한다던가. 그런 쪽이었네.
물론 아내도 그런 취향이라서 나와 결혼한 것이라네."
...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러니까... 죽은 아내분의 성벽도, 결혼한 채 다른 남자에게 범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리림에게 그걸 부탁하자 리림이 질색하며 거절한거고?
거절한 리림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내 표정을 무시하고 성연은 계속 말했다.
"이런 걸 다른 마법사 친구한테 어떻게 부탁하겠나? 자네같은 이상 성욕자라면 내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의 영상에 꽂혔네! 낙서플이라던가, 오나홀 대용이라던가... 내 아내가 그런 꼴을 당한다고 상상해 보니 마비된 하반신에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었네! 부탁이야! 반드시! 자네가! 리림을 맡아줬으면 좋겠네!"
젠장... 박성연 이 아저씨의 사랑 스토리가 죽고 못 사는 로맨틱한 이야긴줄 알았는데, 결국은 그냥 변태 마법사 부부란 소리잖아...
“그리고 내 아내, 예쁘지 않은가?”
“아니, 예쁘긴 하지만...”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 서글서글한 웃음. 예쁘긴 하지. 인스타 팔로워 20만에 매일 협찬 받으면서 살 것 같은 외모긴 하다.
하지만 괜히 풍파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데... 계속 다른 대안을 제시해 봤다.
“그냥 저희한테 마력을 사 가시죠? 샤를도 마력 팔아서 먹고살았다던데. 다리 치료할 마력은 충분할텐데. 리림이 먹고살기도 그렇고.”
하지만 박성연은 고개를 저었다.
“게이트가 조건으로 내 건 것 중 하나야. 리림이 모은 마력만이 날 치료해줄 수 있네.”
젠장할. 아주 꼼꼼하게 덫을 파놨군. 아마 샤를과 내 폰허브 영상을 봤을 때부터 계획을 세운 모양인데.
박성연은 이제 자신의 취향을 감추지도 않고 소리쳤다.
”그리고 난 저 리림이 어떻게든 다른 남자와 자는 걸 보고 싶네!
내 아내의 얼굴과 똑같다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다 참아줬어! 내 정기를 빼앗아 가는것도! 인간을 습격해 날 이런 꼴로 만든 것도!
하지만 지현이를 흉내낼 거면 성적인 부분에서도 똑같이 해야지!
이젠 못 참네! 내 아내가 다시, 다른 남자에게 깔리는 꼴을 꼭 봐야겠어!”
...이 미친 인간이...
“만약 자네가 거절한다면. 난 리림에게서 도망갈 걸세. 그럼 리림은 굶어 죽고 말겠지.
자네가 죽이는 걸세!"
나는 머리가 아파져서 한숨을 내쉬었다. 박성연의 말대로라면 이 리림은 몇 년 내로 굶어 죽을 것이었다. 일단 사람이 죽는다는데 구해줘야지.
"리림은 뭐라고 합니까?"
"리림 설득은 내가 할 테니 그냥 OK 싸인만 내리게.”
“샤를이랑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여자친구 말도 들어봐야지요. 저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어요."
"여자친구?"
박성연이 의아하게 물었다. 왜 저러지?
"저 악마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폰허브 영상에선 그냥 계약자라는 위치로 갑질하는 줄 알았는데.
자네, 뭐. 악마와의 연애라도 즐기겠다는 것인가? 장난치지 말게. 말이나 되나."
"제 여자친구인데 말이 심하시네요. 서로 좋아서 사귀는 상태인데."
그러자 갑자기, 박성연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악마의 사랑한다는 말을 믿지 말게. 그들이 아무리 선량하게 태어난다 해도 사는 곳은 마계.
회수의 귤을 심으면 탱자가 되듯. 마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거짓말과 속임수로 몸을 감을수밖에 없네. 악마의 말은 믿을 게 못 돼.
날 보게. 나도 이 꼴이 되었지 않나.”
“...조개껍데기는 녹슬지 않아요."
태생이 선한 자는 악에 물들지 않는다는 속담. 물론 근묵자흑이라는 사자성어도 있지만 샤를이 그럴리가.
얼마나 착한 앤데. 방금 하신 말은 못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불길하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말하고는 샤를과 이야기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샤를, 어디있어?”
어디 간 거지? 복도를 지나 1층으로 내려가려는데, 아래층에서 바이크 슈트를 입은 여자가 문을 열고 나를 노려봤다.
“남편이랑 무슨 이야기 했어?”
리림이라고 불리는 걸 싫어했지? 성지현 씨라고 했나?
“아, 지현 씨. 별 이야기는 없었는데요.”
“그래? 그러면 빨리 저 서큐버스 데리고 꺼져 주겠어? 남편이랑 있는 곳에 서큐버스가 들어와 있다는 게 맘에 안 들거든."
리림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보자, 샤를이 씨근거리는 중이다.
발치엔 화분이 깨진 채로 떨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리림이 던진 모양이었다.
"젠장, 이게 무슨 짓이야? 샤를. 가자!"
샤를의 손을 끌고 올라오며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다. 하지만 샤를은 분한 지 눈물을 닦아내는 중이었다.
“전 역시 리림이란 종족이 너무 싫어요. 마계에서도 그랬고, 정말 싫어 깔보고, 무시하고.”
샤를이 훌쩍거린다. 하, 어떻게 하지. 이런 리림이랑 어떻게 같이 살게 시켜...
"저, 샤를. 사실 박성연 씨가 우리한테 한 말이. 리림을 데려가서. 음. 뭐라고 해야할까. 야한 동영상을 찍어서 마력을 벌게 해 달라는데."
순간, 샤를의 눈동자 안에서 뭔가 빛이 난 것 같다.
어... 뭐지.
뭔가 불길하다? 근데 나 말고, 뭔가, 저 리림이. 엄청나게 괴롭힘당할 듯한 예감인데.
뭐지? 뭐지? 내 착각일 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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