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116. 문이 열렸다!
* * *
“같이 손 잡고 있던 사람, 여자친구야?”
“샤를이요? 네. 여자친구예요."
고개를 끄덕이자 말레이곰의 눈에서 광기가 흘러나왔다.
“저번에 나랑 이야기할때, 영선이한테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그때 영선이랑 사귀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봤잖아. 아냐?”
등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그때야 샤를이 여자친구가 아니었으니까 그랬죠! 좋은 게 좋은 거야~ 하다가 곰들에게 둘러쌓일 줄은 몰랐는데! 일단 최선을 다해 변명을 했다.
“아, 저는 그냥 궁금해서... 영선 누나가 많이 예쁘잖아요?”
그 말에 말레이곰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옆에 물었다.
“영선이가 예쁘냐?”
“예쁘지.”
“난 걔 다섯 살 때부터 봐서 잘 모르겠는데.”
“사실 나도. 관장님이 워낙 예뻐해서 나도 그런갑다 하긴 하는데.”
이 사람들은 영선 누나를 너무 어렸을 때부터 봐서, 연애 상대가 아니라 보호해 줘야 할 새끼곰처럼 보이나보다.
한참 동안 영선누나의 외모에 대해 토론하다가 결론이 나왔다. 이녀석이 영선이에게 적합한 남자인지 알아보자.
막내 곰에게 집적대는 나를 시험해보고 싶은지, 곰들은 나를 문짝 앞으로 데려갔다.
“턱걸이 잡아봐.”
아니, 왜 호텔 문짝에 조립형 턱걸이 바가 달려있는 건데?
“운동 못하면 근손실 나니까 가져왔지. 자, 풀업!!”
안 하면 끔찍하게 살해당할 것 같다. 끄으으읍! 겨우 턱걸이 두 개를 하고 떨어졌다. 신기록 갱신이다. 평소엔 하나만 하고 떨어졌는데. 하지만 이 곰들은 내 나약함에 입을 떡 벌렸다.
“턱걸이 하나뿐이라고? 세상에!”
“이 녀석... 길을 걷다 쓰러지진 않으려나? 프로틴 좀 먹을래?”
이 뇌까지 근육인 미친 인간들이!
“강민아~ 안에 있어?”
다행히 영선 누나가 호텔 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그러자 말레이곰이 다가가 진심으로 당황해 말했다.
“야, 저 녀석 턱걸이를 두 개밖에 못해!”
“어, 진짜? 하나밖에 못 했는데, 늘었네?”
영선 누나가 활짝 웃으며 다가와 내 엉덩이를 두드려줬다. 그걸 보며 곰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영선이가 저러는 거 봤냐?’
‘못 봤는데.’
‘아무래도 영선이가 쟤 좋아하는 거 아냐?’
‘그럼 어째? 여친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
곰들은 과부하가 걸려서 로댕의 동상처럼 변했다. 영선 누나는 신경쓰지 않고 풀업 바 앞에서 어깨를 돌렸다.
“나도 해볼까?”
그리고 거침없이 풀업. 정자세로 열 여덟개. 정말 깝치면 안 되겠다...
“민수 오빠! 나 강민이랑 같이 둘러보고 올게!”
풀업 바에서 내려온 영선 누나가 내 손을 잡고 빠져나갔다. 곰들은 아직도 멍한 눈치. 호텔의 복도로 나오자 영선 누나가 쑥쓰러워하며 머리를 긁었다.
“혹시 오빠들이 이상한 짓 하진 않았지? 어렸을 때부터 봐서 좀 유난이야.”
“뭐, 좋은 오빠들인 것 같네요.”
영선 누나한테 평소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안다면, 정말 죽일지도 모르겠군...
내 머릿속에 과거의 플레이들이 스쳐지나갔다. 낙서플, 관장, 결박 후 아날섹스, 울 때까지 애널 비즈로 괴롭히기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
마음 속에서 불굴의 용기가 솟아오른다. 곰들에게 찢겨 죽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이번 주말에 영선 누나가 자신의 처녀를 내게 바치게 만들겠어!
그리고 영선 누나도 좋아서 하는 플레이라고!
각오를 불태우는 나에게 영선 누나가 물었다.
“아빠가 샤를이랑 같이 사무실로 오라던데. 같이 갈래?”
“뭐, 할 일도 없겠다. 그러죠.”
셋이서 같이 사무실로 가는데, 문 안에서 아버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황이 가득 담긴 목소리.
“아니, 복장이 이게 뭐야!”
셋이서 슬쩍 들여다봤다. 아버님은 옷걸이에 걸린 흰 옷을 들며 화를 내고 있었다. 삼각형 두 개밖에 없는(그리고 상당히 작은) 상의, 그리고 팬티 사이즈의 백색 숏 청바지. 밑단은 와일드하게 실을 뿜어내고 있다.
여자가 입는다면 시선이 집중될만한 옷이네. 근데 옷에 문제가 있는지, 아버님과 이야기하는 상대는 엄청 쩔쩔맸다.
“학범아. 우리가 옷을 잘못 가져왔다. 미안하다니까! 그래도 한번만 입혀 주면 안 되겠나?
라운드걸 없이 어떻게 진행할 건데!
그리고 막말로, 자네 딸내미가 입고 온 레깅스랑 무슨 차이야!”
“하이고 그 레깅스도 꼴보기 싫어 죽겠는데! 이런 걸 어떻게 입혀!”
아버님은 사무실 탁자를 두드리며 화내는 중이었다.
아, 대략적으로 상황이 짐작이 간다. 누나와 샤를이 할 알바는 라운드 걸. 매 라운드마다 판때기 하나씩 들고 나와서 알려주는 여성분들의 역할을 해 줄 거다.
근데 복장의 노출이 너무 심하니, 아버지 입장에선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거군.
“저... 아빠, 무슨 일이예요?”
영선 누나가 묻자, 아버님이 잘 왔다는 듯 옷을 내밀었다.
“영선아, 너는 이런 옷 입을 수 있겠냐? 말도 안 돼지? 아가씨도 그렇죠?”
샤를에게도 동의를 구했다. 그런데 영선 누나가 옷을 흘끔 보고는, 내 얼굴을 봤다. 엥? 무슨 말을 하려고?
“강민이 네 생각은 어때?”
날 걸고 넘어지다니. 솔직히 말하면 입어주면 좋긴 하겠다. 하지만 이걸 곧이곧대로 말했다간 아버님한테 100점이겠지.
“노출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아버님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아버님의 표정이 옳지! 잘 한다! 로 바뀌었다.
하지만 영선 누나는 내 마음을 완전히 읽고 있었다. 얼굴을 붉히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음, 그래도 저는 괜찮은 것 같은데요. 사무장 아저씨랑도 오래 봤는데. 대신 나중에 제 부탁이나 들어주세요. 이번엔 제가 입어드릴게요.”
“아이고, 영선아! 고맙다!”
사무장이라고 불린 사람이 다가와 연신 감사인사를 했다. 하지만 아버님은 혼이 빠져나간 표정이다.
‘내 딸내미가 이런 노출증 환자라니... 레깅스만 주구장창 입을 때부터 꼬롬하긴 했는데...’ 란 표정.
아버님을 뒤로한 채 영선 누나와 샤를은 옷을 하나씩 들고, 나에게 슬쩍 보여주며 웃었다. 어우... 내일이, 기대되는데...
***
솔직히 말하면, 결승전 선수보다 라운드걸에게 관심이 끌리는 대회라니. 전대 미문이다.
하지만 관심을 뺏긴 결승전 진출자들도 크게 상관 없는듯했다. 오히려 샤를과 영선누나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특전에 황공해 몸 둘 바를 모른다.
사회자는 큼큼, 기침을 하고는 허리를 활처럼 꺾었다. 온 몸의 흉통을 열어 라운드걸의 입장을 알렸다.
“그럼, 라운드걸, 영선 양과 샤를 양 입장하겠습니다아아아아아!!!”
전용준에 비견될만한 사회자의 목소리. 그리고 영선 누나와 샤를이 활짝 웃으며 ROUND 1 이라 적힌 판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남자들의 함성으로 하이원 리조트의 철골이 부서질 지경이었다.
“우아아아!!! 영선!! 전영선!! 영선누나 절 가져요!!!”
“눈나 나죽어!!!!!!”
“샤를!! 여기 한번만 봐줘!!!!!”
“문신 한번만 보여주세요!!!!!!!”
샤를이 엄지손가락으로 쇄골 부분을 슬쩍 밀어, 자신의 생년월일을 자랑한다. 남자들이 발구름으로 회장을 덜덜 떨리게 만든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샤를은 내가 있는 쪽을 향해 윙크하며, 손으로 키스를 날렸다. 이 쪽 방향의 남자들이 목이 찢어져라 고함을 질렀다.
“샤를이 날 봤어! 날 봤다고! 나 샤를이랑 결혼할래!!!”
“입닥쳐! 내 아내한테 상회입찰 하지 마 이 씹새끼야!!”
이 난장판을 보니 논산 훈련소의 실로암이 생각나네...PTSD 올 것 같아서 기분나빠. 물론 내 여친이랑 영선 누나가 예쁘다는 게 객관적으로 느껴져서 좋긴 하지만...
그리고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영선 누나의 아버님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복싱이 더럽혀졌어.”
죄송해서 한 마디 거들었다.
“뭐, 이렇게라도 살아남는다면 다행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아버님은 통나무같은 팔뚝을 풀었지만, 얼굴은 여전히 구겨진 상태. 그리고 샤를과 영선 누나가 링을 내려와 내 옆에 찰싹 앉자 더욱 구겨졌다.
영선 누나는 그것도 모른 채 내 팔을 붙잡고 히히 웃으며 물었다.
“강민아. 이 옷 어때? 예쁘지?”
솔직히 예쁘다. 특히 흰색 옷과 갈색 피부의 대비가 엄청 야하다. 역시 누나한텐 흰 옷이 잘 어울려.
샤를도 질세라 나한테 물어봤다.
“오빠, 전 어때요?”
허벅지의 가터벨트 타투가 훤히 드러나고, 분홍 리본의 아랫부분도 살짝 보인다. 아버님은 민망한지 고개를 살짝 돌려 링을 쳐다봤다.
‘좋긴 한데 내 평판이 작살나진 않았을까? 난 잘못이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둘은 내 사정따위는 생각하진 않았다. 옆에서 영선 누나가 아빠를 흘끔거리다, 내게 속삭였다.
‘사무장님한테 부탁해서, 이 옷 받았다? 오늘 저녁에... 기대해...’
자지가 갑자기 설 것 같다. 어제 저녁엔 넷이서 같이 카지노 갔다가 와서 술 퍼먹느라 섹스도 못했는데. 오늘 저녁은 진짜로, 화끈한 저녁이 될 것 같다
체스 복싱의 승자따위야 별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는 샤를과 영선 누나와 같이 사진 찍을 수 있는 것에 기뻐했다. 사진 찍고 난 뒤 영선 누나의 번호를 물어봤지만 거절당했다.
음. 승자는 모든 걸 가진다고 하지. 결국 체스 복싱의 진정한 승자는 내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밤. 우린 유다 누나의 호텔방에 모였다. 적당히 맥주를 마시며, 셋은 내 눈치를 봤다.
“음 강민아, 이제 너 씻을래?”
셋은 각자 샤워하고 나와서, 머리를 정돈하며 내게 물어봤다. 아, 그럼요. 씻어야죠.
깨끗이 씻고, 부푼 마음을 가지고 나왔다.
오우, 젠장.
내가 씻을 동안 셋 다 옷을 갈아입었다. 불은 스탠드 하나만 어렴풋이 켜진 상태.
모두 라운드걸 옷을 입고, 침대에 걸터앉아 날 보며 침을 삼킨다. 허벅지 여섯 개가 훤히 드러났고, 아찔한 분홍빛 안개가 내 몸을 덮는 듯 하다. 눈을 반짝거리는 게 모두 안달이 난 상태. 셋이 입을 열어 날 불렀다.
"""강민아””오빠”,
누구랑 첫 라운드 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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