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93. 천하일미
* * *
나와 샤를은 20만원어치 장을 보고 낑낑대며 물건을 날랐다. 젠장, 신나서 너무 많이 사 버렸어. 이걸 들고 집까지 가는 건 무리다! 택시 불러!
택시에 탄 동안 샤를에게 딱히 장난을 치진 않았다. 영선 누나한텐 하드코어하게 대하지만, 샤를한테는 그게 안 되네. 그냥 손만 잡고 딱 달라붙어 있었다. 샤를은 그게 좋은지 깍지도 껴보고, 손바닥을 간지럽히기도 했다. 마음 속이 간질거렸다.
"드디어 집이다!"
봉투를 던져놓고 퍼지자 샤를이 먼저 화장실로 들어갔다.
"오빠, 저 먼저 씻을래요. 오빠 씻을 동안 요리하고 있을 테니까."
음. 알았어. 그 동안 물건들을 정리했다. 오늘 요리할 것들은 다 꺼내 놓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물품들은 탁자 위에 올려놓고. 푹 퍼졌다가 나온 샤를과 교대했다. 씻고 오라고 내 엉덩이를 툭툭 쳐준다.
"으으 살겠다아"
따뜻한 물이 몸을 뒤덮자 체력이 회복된다. 이제서야 머리가 좀 돌아가네. 그러고 보니 폰허브 수익을 한참 확인 안했네!
"와... 이게 다 얼마야...?"
우리의 영상은 조회수 상승세가 좀 둔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쭉쭉 늘어나는 중이었다. 금요일에 확인했을 때 5100달러였는데, 일요일 세 시에는 8000달러! 대략 9백만원...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뜨거운 물을 맞으며 일단 출금신청을 할 수 있나 봤지만, 아직 KYC 인증 대기 상태. 샤를의 얼굴과 여권 사진을 찍어 보내긴 했지만 아직도냐! 미국 새끼들 더럽게 느려터졌어.
툴툴거리며 한참 동안 물을 맞았다. 머릿속에선 여러가지 생각이 돌아다녔다. 4일 만에 900만원이라. 한 달이면 돈이 어느 정도 쌓일까? 4천만원? 하지만 이건 초반부라 조회가 폭발적으로 몰리는 거다. 좀 쉬면 가파르게 조회수가 떨어지겠지.
'일단 영상은 계속 만들어서 올린다고 생각하고.'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가온다. 돈이 더 모인다면 집을 사야할까? 차도 바꾸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관계겠지.
샤를과 영선 누나, 유다 누나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섹스를 하면서도 찔린다. 이 관계가 지속 가능한 거 맞아? 언젠가 사람들한테 큰 상처를 주게 될 것 같은데.
'하지만 별 수 없단 말이지...'
나의 욕망만으로 구성된 관계가 아니다. 모두들 원하는 바가 있다. 샤를은 정기와 마력을, 영선 누나는 하드코어한 괴롭힘을, 유다 누나는 남자와의 정상적인 관계를.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모두들 더 큰 욕망을 분출하겠지. 지금도 영선 누나나 샤를은 연인 관계를 원하고 있고. 나는 뭘 원하고 있지?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예림이랑 사귀고, 평범하게 대학생활을 하며 놀러다니는 거였는데.'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근 2주 좀 넘을 동안 내 인생은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엄마가 내 꼴을 보면 뭐라고 할 지 모르겠다. 폰허브에 여자의 영상을 올리며 섹파 둘을 두고 산다는 걸 알면 엄만 이렇게 말하겠지.
'너, 여자 눈물 흘리게 만들면 나중에 네 눈에서 피눈물 날 거야.'
아아 젠장! 알아요! 이렇게 가면 마지막엔 Nice Boat 엔딩이 기다릴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면 안돼? 굳이 꼭 관계를 정립해야 하냐고! 나는 괴로움에 욕조 속에서 몸부림쳤다.
'샤를도... 분명히 좋아. 그건 사실이야.'
사랑까진 아니지만 정말 아끼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예림이를 봤을 때처럼 정말 사랑해! 이런 감각은 아니다.
누군가는 배때지가 불렀네 하겠지만, 이유가 있다.
샤를은 내가 해달라는 건 뭐든 해주지만... 그럴수록 마음 속엔 암울한 상상이 뭉게뭉게 넘친다.
내가 계약자라서 잘 해주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나와만 섹스한다는 제약이 없다면?샤를은 그 때도 과연 내 옆에 남아 있을까? 저렇게 매력적인 외형을 가졌는데. 주변에서 다른 사람이 달라붙는다면.
어쩌면 샤를은 게이트가 열릴 때, 우연히 내가 앞에 있어서 이렇게 된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을 만났어도 똑같이 대해주지 않았을까.
내가 아니었어도, 내가 아니었어도...
꾸욱. 가슴 안쪽에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 든다. 답답했다.
"후우우..."
샤를에게 가학적으로 대하는 것은 내 취향도 있지만. 일부러 더 심하게 대하는 것도 있다. 이래도, 이래도 내 옆에 있을 거야?
'젠장. 내가 부자고 돈이 많았으면, 아니면 가족이 정상적이었다면. 이런 고민을 안 했으려나.'
한심한 가정이란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나같이 가난하고 부족한 놈을 왜, 어쩌면 샤를은 금방 떠나가지 않을까
이런 상상은 샤를과의 관계를 마음놓고 진전시킬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런 걸 터놓고 이야기하면 내 크리피함에 질색하겠지. 젠장할.
"아, 몰라. 골치아파."
나는 대충 샤워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내 복잡한 마음은 샤를을 보자 사르르 녹아내렸다.
"샤를, 우와..."
샤를이 내 목소리를 듣고 싱긋 웃으며 뒤돌아봤다. 분명히 있어야 할 옷들이 없다. 바지, 윗옷, 브라, 속옷 하나도 없다. 나올 덴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야한 몸매가 훤히 드러난다.
샤를은 지금 알몸에 앞치마만 입고 요리하는 중이었다.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오빠. 오늘 요리 마음에 들 거예요. 제가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어요!"
야한 모습과는 별개로 부엌에선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온다. 식욕과 성욕이 합쳐져서 나를 흥분시켰다. 얼떨떨한 마음에 식탁에 앉았다. 맥주 두 캔이 올려져 있다. 한 캔을 따며 샤를의 뒷모습을 감상했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 잘 빠진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 뒤에 끈처럼 묶인 가터벨트 타투. 문신을 한 노는 여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알몸 에이프런으로 주방에서 요리해주는 착한 여친... 갭이 엄청 꼴리네.
뭐랄까, 엄청나게 배덕적이다. 참지 못하고 뒤로 다가가자, 샤를이 엉덩이를 만지기 편하게 쓱 내밀었다. 강하게 움켜쥐자 하읏 하는 신음이 흘러나온다. 손바닥 전체에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각을 즐기며 귀에 물어봤다.
"샤를, 이거 뭐야. 왜 이렇게 야하게 입었어?"
"응 오빠가, 좋아할 것 같아서요"
달뜬 눈으로 날 쳐다보며 뺨에 쪽, 뽀뽀한다. 내 손이 더욱 강하게 샤를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음, 아직 안돼요오빠아 밥 먹구우"
샤를은 콧소리를 내면서도 가볍게 거부한다. 하긴. 좀 배고프긴 하지. 내가 물러나자 샤를은 히히 웃었다. 숟가락으로 요리를 살짝 떠서 후후 불며 내게 내밀었다.
"한번 드셔 보실래요?"
한 입 먹자 부드러운 맛이 입안에 퍼져나간다. 주방에 올라와 있는 재료를 보자 무슨 요리인지 대략 짐작이 간다. 감자 포타주. 으깬 감자와 우유, 양파를 함께 끓인 스프.
"우와, 엄청 맛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좀 가난한 맛이다. 하지만 그걸 굳이 말해서 샤를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 다행히 내 칭찬을 들은 샤를은 기뻐했다.
"맛있어요? 다행이다!"
"응, 응. 그리고 여기에 버터랑. 파슬리 조금 넣어서 마무리하면 진짜 최고겠다!"
"정말요? 알았어요!"
샤를은 냉장고에서 다른 재료를 꺼내 섞었다. 그러고는 눈을 반짝 떴다. 뭐, 버터가 들어가면 맛없을 리가 없지.
이젠 프라이팬에 불을 켜고, 베이컨을 마저 구웠다. 나는 샤를의 허벅지를 쓸어내리며 익어가는 걸 구경했다. 알몸 에이프런 모습을 즐기며 목에 쪽쪽 뽀뽀를 하고 있으니, 예림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냥 이런 나날들이 쭉 이어졌으면.
요리를 마친 샤를이 식탁에 음식들을 내왔다. 걱정 반, 기대 반의 얼굴. 나는 베이컨과 감자 포타주를 먹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음, 진짜 맛있다!"
"오빠 말대로 버터 넣으니까, 훨씬 좋네요!"
아니, 이거. 정말로 맛있다. 마계에서 먹는 걸 좋아했다더니. 은근히 요리에도 조예가 있구나. 특히 양파가 완벽하게 카라멜라이징이 되어 있는거. 투명해 질 때까지 볶아서 달콤하게 만든 거다. 샤를을 칭찬하며 즐겁게 식사했다.
"있잖아요. 오빠."
요리를 다 먹어가는데, 샤를이 은근한 눈빛을 보내며 내 손을 잡았다. 귀에 바람을 불어넣으며 속삭였다.
"오빠, 우리 처음에 약속했죠? 하루 한 번이라고. 아까 주방에서 오빠가 제 몸 맘대로 만져서, 좀 흥분했거든요"
그러며 앞치마를 슬쩍 올린다. 털 한 가닥도 없는 비부가 애액으로 살짝 젖어서 빛나는 중이다. 알몸 에이프런은 생각보다 파괴력이 세네.
"젖은 거, 오빠가 책임져야 해요"
내 손을 끌고 바로 침대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내 바지를 벗겼다. 삽입할 줄 알았는데 아니다.
"콘티 부족한 부분도 보충할 겸 오늘은 좀 오래 봉사해 드릴게요오♥"
샤를은 음탕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내 불알 뒷 부분을 핥았다. 잠시 내 자지 전체를 맛보고 난 뒤엔, 세상 순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럼, 이제 촬영 시작할게요."
샤를도 영상 올리는 걸 참 좋아한단 말이지. 마력을 벌어야 된다고 열의 넘치게 편집하고, 부족한 영상 보충해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촬영은 나만 원하는 게 아니라고! 소리없이 변명을 해 봤지만 절조없는 몸은 다리를 벌린다. 알몸 에이프런의 샤를이 눈을 치뜨며, 정성스레 나에게 똥까시를 시작한다.
영상에 부족한 부분은 초반부인 모양이었다.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묻는다.
"오빠,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오빠가 보여준 동영상 보고 연습해 봤는데 기분 좋아요?"
"응. 존나 잘하네."
일부러 천박한 말을 써가며 대사를 말한다. 이건 촬영이니까 험하게 말해도 어쩔 수 없지(평소에도 험한 것 같지만 뭐 어때). 두번째 영상은 샤를이 이미 편집해서 올렸다. 15분짜리로, 샤를이 절정할 때까지 섹스하다 내가 질싸를 한번 더 하는. 그런 간단한 영상이다.
그리고 이번 영상은 저번에 말한 대로 림잡 특집.
내 영상의 컨셉은 그거다. '순진한 여친의 몸에 타투를 박아버리며, 전 여친은 이런 것까지 해 줬는데 등등의 뻔뻔한 핑계로 울먹거리는 여친에게 온갖 가혹한 짓을 시켜대는 쓰레기 남친! 여친은 맨 처음엔 싫다고 엉엉 울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체념하고 남친의 마수에 몸을 맡겨가는데'
엥? 안 꼴린다고? 그래도 한 발 빼기엔 정말 흥분되는 소재 아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