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92. 아니. 남편은 아닌데.
* * *
"헤헤..."
밥을 먹는 영선 누나의 얼굴에 생기가 가득하다. 어제 밤중에 죽도록 괴롭힘당한 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나보다. 하지만 나와 샤를, 유다 누나의 얼굴은 퀭했다. 숙취에 시달리는 중이다. 겨우 짬뽕을 먹을 동안 영선 누나는 멀쩡하게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이 누나, 진짜 무적이다...
"누나 체력 진짜 좋네요. 머리 안 아파요?"
"이 정도로 쓰러지면 안 되지! 강민이 너 체력이 너무 약한 거 아냐?"
일인당 소주 두병에 맥주 네 병씩은 마신 셈이라고! 누나가 이상한 거야! 내 반박에 누나는 머리를 긁었다.
"안 되겠어. 어차피 우리 둘 다 피씨방도 그만 뒀겠다. 내일부터 누나랑 같이 운동할래?"
어?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인데? 안 그래도 체력의 부족을 느끼던 터였다. 샤를도 반가운 소식인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오빠, 잘 됐다! 운동하면 좋잖아요! 건강해지고!"
이 둘에게서 운동을 하라는 거대한 압력이 느껴진다. 으음... 역시, 한 번 섹스할 때 세 번. 혹은 네 번 까진 쌀 수 있어야 하니까... 뭐, 운동을 해서 건강해지는 건 나도 바라는 일이니까...
"알았어요. 내일부터 같이 운동해요."
내 대답에 영선 누나는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유다 누나의 혀를 보고 깜짝 놀랬다.
"언니, 혀 왜 그래요?"
유다 누나가 짬뽕을 먹다 매워서 혀를 베 내밀고 있었다. 뱀처럼 갈라진 혀와 혀 끝의 피어싱을 처음 보면 엄청 놀랄만 하지. 유다 누나는 깜짝 놀라 입을 가리며 혀를 쏙 집어넣었다.
"봐, 봤어?"
영선 누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물었다.
"혀... 아프지 않아요?"
"나는 마취하고 한 거라서. 그렇게 아프진 않았는데. 메스로 한 번에 했거든."
혀를 한번 더 베 내밀어서 낼름거렸다. 혀가 뱀이 교미하듯 뒤섞이고 음란하게 움직였다. 영선 누나는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흥분을 느끼며 바라봤다.
음, 근데 확실히 저 혀는 그냥 입 밖에 내놓으면 그냥 야하네. 그런데 유다 누나가 혀를 뒤섞으며 내 쪽을 빤히 봤다.
'어, 어?'
착각인가 했지만 그렇지 않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도 빤히 바라보며 입술 주변을 양갈래 혀로 핥았다. 침으로 반질반질한 광택을 더하며 두 갈래 혀가 매끄럽게 움직인다. 그러다가 흠칫 놀라 혀를 집어넣었다.
"아우, 배부르네. 오늘은 이제 다들 뭐 할 거야?"
유다 누나가 자리를 마감하려고 황급히 서둘렀다. 시계를 보니 벌써 열두시 반. 영선 누나는 음식을 정리해서 내놓으며 기지개를 폈다.
"아으으 전 이제 한강변 따라서 10km 로드웤 하고. 미트좀 칠 것 같은데."
술 먹고도 그게 되다니, 정말 강철 체력이다. 샤를은 내 팔을 껴안으며 히 웃는다.
"전 오빠랑 집에서 노닥거리려구요."
파직. 순식간에 다른 여자 둘이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다 누나가 저렇게 노골적인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봤어! 둘은 잠깐 그런 표정을 보이다가 순식간에 거둬들이며, 그런 적 없다는 듯 음식을 마저 정리했다.
누나들은 역시 능숙하구나. 그래도 좀 더 살았다 이건가... 역시 무섭네.
방을 다 정리하고 문 밖으로 나가는데 영선누나가 내 팔을 두드렸다.
"내일 다섯시 반에 운동이니까 잊지 말고. 첫 날이니까 가볍게 할게."
"알았어요."
대답을 했지만 무섭다. 이 누나가 가벼운 운동이라고 하면 10km 뛸 것 같단 말이지! 누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유다 누나는 택시 탈 거라고 해서 같이 기다리는 도중, 누나가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알바비 줘야지!"
유다 누나가 지갑을 꺼냈다. 그런데 두께가 장난이 아니다. 지갑 안에는 5만원권으로 빡빡하게 차 있었다. 타투가 현금 장사에 세금도 안 내니 돈이 되는구나! 그걸 보고 있는데 유다 누나는 5만원권 여섯장을 착착 뽑았다. 내 주머니에 푹 찔러줬다.
"어, 누나. 이렇게 많이요? 어제 술도 누나가 샀는데!"
괜찮아. 신경쓰지 마. 그러며 누나가 내 귓가로 다가와 속삭였다.
"내일도 타투 샵 놀러 와. 내일도 알바 필요해서..."
귓속을 간질거리는 속삭임. 알바라.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내 손을 잡고 있던 샤를은 손을 꽉 쥐었지만 다른 액션을 보이진 않았다.
내일 유다 누나 도와주는 일이라. 내일도 같이 손 잡고 키스하는 정도로 끝나려나.
"택시 왔다. 다들 조심히 들어가."
"가세요!"
우린 유다 누나를 배웅했다. 우리 둘만 남자 샤를이 날 보며 환하게 웃었다.
"오빠! 오늘은 제가 저녁 해 드릴게요! 감자 사러 가요!"
샤를 정말 너밖에 없다! 다들 뭔가 나한테 바라지만 샤를은 날 편하게 해준다. 아, 행복해. 어제 저녁까지 내 밑에 깔려서 애널로 자지 받아주고, 입으로 청소까지 해 줬으면서 오늘은 밥을 해주겠다니! 누가 해 주는 저녁을 먹어본 게 얼마만이지? 웃으며 샤를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샤를. 왜 이렇게 착해?"
"힛. 몰라요."
그러며 내 팔을 껴안았다. 푹신푹신한 거유가 팔을 감쌌다. 흰색 나시티가 모양을 바꾸며 가슴 골을 드러낸다. 저절로 눈이 가네.
우린 길을 걸으며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샤를은 저녁 메뉴가 내 마음에 안 들까봐 걱정했다.
"제가 할 줄 아는 요리는 별로 없어서. 오빠가 먹고싶은 건 있어요? 알려줘도 잘 못할 것 같지만..."
아냐. 뭐든 괜찮아. 감자만 쪄서 내와도 행복하게 잘 먹을 수 있어.
"샤를이 해 주는 거면 뭐든 괜찮은데?"
"음, 알았어요! 노력해 볼게요!"
샤를은 한 손을 꽉 쥐며 투지를 불태웠다. 귀여워라. 열의를 보이는 샤를을 데리고 이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샤를이 입을 떠억 벌렸다.
"여, 여기... 무슨 시장이예요? 며칠마다 열리는 거야?"
아무래도 집 근처의 전통시장을 생각했나본데. 높이 4m가 넘는 공장형 마트를 보면 놀랄만 하긴 했다. 얼이 빠진 샤를의 팔을 잡고 마트 안으로 향했다. 카트를 보며 신기해하던 샤를은 입구의 농산물을 보며 한번 더 놀랬다.
"세상에, 과일이 몇 종류야?"
수박, 사과, 배, 레몬 등 온갖 종류의 과일 샤를은 그걸 들어보며 눈을 빛냈다.
"엄청 크네요! 마계에서는 크기도 다들 들쑥날쑥하고. 못생긴 것들밖에 없었는데. 이건 왕 식탁에 올라가겠다."
샤를은 메론을 보며 이건 무슨 과일일까 턱을 괴고 있었다. 그러다 들고 살핀다. 샤를 가슴 크기만하네.
"샤를, 과일 먹을래?"
"어, 어? 그래도 돼요?"
샤를 오고 먹을 일이 없었으니까 뭐. 자취생이 가끔 과일 먹어줘야지. 멜론을 담으며 샤를에게도 사고 싶은 것 있으면 다 사라고 했다. 샤를의 눈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음~ 감자랑. 베이컨! 양파! 우유랑. 또 뭐가 있을까!"
뭐든 사라고 했어도 일단 내 저녁 메뉴부터 먼저 고른다. 뭐랄까. 음. 날 챙겨 준다는 기분이 정말 확실하게 드네.
그러고 이렇게 손 잡고 카트를 밀고 있으니 뭐랄까. 신혼 부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걸 참기 힘들었다. 샤를은 계속 재잘거리며, 내 손을 한시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행복하네.
"만두 판촉 중입니다! 드셔 보세요!"
샤를은 의심스레 시식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뭘 하는 사람인지 살피고 있는 듯 했다. 게이트에서 지식을 알려주는 기준은 알다가도 모르겠군. 의심하는 샤를 대신 내가 나서 만두 두 컵을 받았다.
"이건 뭐예요?"
샤를이 의심스레 쳐다봤다. 냄새를 킁킁 맡길래 이쑤시개로 찍어 입 앞까지 가져다 줬다.
"아, 에헷."
부끄럽게 웃다가 앙 입을 벌리고 오물거렸다. 만두를 맛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음, 이거 정말 맛있네요!"
"맛있어?"
내 몫의 만두도 찍어 샤를의 입에 넣어준다. 아, 오빠도 먹어야 하는데 그런 말을 했지만 입 앞까지 가져다 주자 거절하지 못하고 또 먹는다. 우리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판촉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아휴, 맛있죠? 오늘 1+1 행사인데. 들여가세요. 남편 분도 한번 드셔보면 진짜 좋아할텐데."
나... 남편...
우리 둘은 큼, 큼. 기침을 하며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근데 여기서 부정하기도 그렇고. 그냥 만두나 담아야지. 한 봉을 집어 카트에 넣었다. 만두 아주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릴 배웅하고, 또 다른 손님에게도 접객했다.
"잘 사셨어요! 맛있게 드세요! 거기 가는 꼬마 손님! 손님도 만두 드셔보시겠어요?"
만두 아주머니가 부른 꼬마는 만두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여자애가 갑자기 샤를의 허벅지를 가리켰다.
"엄마! 저 언니 허벅지는 왜 저래?"
돌핀팬츠 아래로 훤히 드러난 가터벨트 문신. 순간 당황해서 샤를을 쳐다봤지만, 샤를은 여자애의 의문에 친절하게 답해 줬다.
"으응, 언니는 남자친구를 너어무 좋아해서. 남자친구가 해 달라는 건 다 해주거든. 이건 허벅지에 그린 그림이예요~."
"우와! 언니! 그림 진짜 멋져요!"
다섯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애는 눈을 반짝거리며 샤를의 허벅지를 열렬히 쳐다봤다. 하긴. 가터벨트도 일종의 레이스니까 예쁘긴 하지. 어린애가 보기엔 좀 공주님 같을지도.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멀리서 후다닥 달려와, 아이를 감싸고 멀어졌다. 그러며 사과했다.
"아휴, 죄송합니다."
죄송하단 말을 하면서도 아주머니의 눈은 차가웠다. 뭐. 어르신들 입장에서 이런 문신은 좀 꺼려지긴 하지. 샤를은 멀어져 가는 어린애에게 손을 흔들어 주다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다음번엔 좀 긴 바지 입을까요? 여기 허벅지 가릴 수 있게."
음. 하지만 이 가터벨트 타투. 남들한테 자랑하고 싶은 걸. 샤를이 날 좋아해서 이렇게까지 한다는 걸 감추고 싶진 않은데!
"됐어, 샤를. 진짜 예뻐. 감추면 아깝잖아."
"그렇죠~?"
샤를은 웃으며 내 손을 꽉 잡았다.
하지만 강민은 모른다. 샤를이 돌핀팬츠를 살짝 끌어내려 문신을 가리려 해 본 걸. 강민이 기뻐하니 좋지만, 이런 타투는 샤를에게도 좀 부끄럽단 걸.
'아으 남자들 지나갈 때마다, 다 내 가슴이랑 허벅지만 쳐다봐'
샤를은 복잡한 마음으로 강민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아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알겠지만! 그래도 옷장 전부가 돌핀팬츠나 나시티, 크롭티같은 것밖에 없는 건 좀 심하지 않아?
남들 눈 안 타게 집 안에 좀 모셔두고, 질투도 해주고, 그럼 어디 덧날까!
샤를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민의 손을 좀 더 세게 잡았다.
'에휴, 먼저 반한 내가 죄인이지 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