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86. 유다 누나의 알바
* * *
"오빠 콘티대로 영상 편집하고 있을게요. 부족한 거 있으면 재촬영 하구!"
토요일 아침. 샤를은 날 웃으며 배웅했다. 영상 편집은 섹스만큼 신나는 일인 듯 했다. 하긴. 마나랑 돈이랑 다 가져다 주는데 신나지 않을 리가 없지! 물론 자기가 출연한 야동을 스스로 편집하는 게 흔한 상황은 아니지만.
뭔가... 이걸 이용해서 꼴리는 플레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 일단 집을 나섰다.
"알바하고 올게!"
"앗, 잠깐만요, 오빠."
내 볼에 키스하려던 샤를은 쑥스럽게 웃으며 내 허리를 잡았다.
"어, 어? 잠깐, 인사 림잡을 진짜 하려고? 그냥 영상 컨셉일 뿐인데?"
하지만 샤를은 이미 마음을 굳히고 내 바지를 내렸다. 엉거주춤하게 선 내 엉덩이골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위로 핥아준다. 짜릿한 쾌감이 엉덩이 사이에 머문다.
"나빴어요. 오빠. 키스도 못하게 하고."
오늘은 엉덩이 안에 혀를 넣지 않고 그냥 핥아줬지만 쾌감은 똑같이 컸다. 심지어 현관문이 살짝 열려있는 상태다. 누가 보면 어떻게 하려고!
하지만 샤를은 들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 거의 30초 가량 내 애널을 그루밍해줬다. 자지가 빳빳하게 서자 샤를이 입을 뗐다.
엑, 여기서 끝?
"갔다 와요~"
바지를 올려준 다음 내 등을 밀며 소악마처럼 웃는다. 젠장, 아슬아슬하게 출발한 게 잘못이었어. 시간만 있었다면 한 발 사정하고 갈 텐데... 배웅 키스 대신 림잡은 내 손해일지도. 남자친구 맞아주는 키스만 림잡으로 대체할걸.
불평해봤지만 어쩔 수 없다. 어기적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팽팽한 자지가 1층에서도 가라앉지 않아서 스쿼트를 하고 나서야 겨우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
'그래도, 유다 누나랑 알바는 같이 갈 줄 알았는데.'
샤를은 같이 알바 가자는 말을 거절했다. 아무래도 어제 유다 누나를 만나서 이야기를 꽤 나눈 것 같았다. 67만원을 받아온 것도 그렇고. 무슨 이야기를 했으려나?
'뭔가 계획이 있나 보지. 샤를 말을 듣자. 샤를 이야기를 들어서 손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
버스를 타고 유다 누나의 작업실로 향했다. 오늘은 무슨 알바를 하게 되려나? 걱정하며 벨을 눌렀다. 앞의 카메라가 움직이더니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누나가 안경을 고쳐쓰며 나왔다.
"강민 오랜만이야"
은발의 병약한 외모. 수많은 피어스. 영선 누나보다 좀 더 큰 가슴. 오랜만에 봤지만 여전히 예쁘다.
"안녕하세요. 유다 누나."
어우, 근데 좀 춥네... 누나는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긴 팔 가디건을 입고 있다. 가게 안에 에어컨을 얼마나 틀어놨는지 추울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도 가디건을 입고 있었지? 문신을 많이 했지만 함부로 드러내기는 싫은 듯 했다.
나는 함부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 앞에서 머뭇거렸다. 나를 거부하는 듯한 옷차림과 쩔쩔매는 태도에 좀 불안했다. 유다 누나가 또 패닉 일으키면 어쩌려고!
"저, 샤를이 없어도 괜찮으신가요? 저랑 단 둘이 있는데."
"음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
유다 누나는 입을 가리고 살짝 웃었다. 입 안에 있을 두 갈래의 스플릿텅을 생각하니 저절로 침이 꿀꺽 삼켜진다. 남의 혀를 상상하며 흥분하는 건 좀 무례한 일이지만, 꿈 속에서 저걸로 내 항문을 빨아주거나, 정액을 빼 줬다고! 오히려 둔감한 쪽이 이상한 거지!
"일단은, 앉아서 잠깐 이야기좀 할래?"
유다 누나가 허브티를 타며 이야기했다. 소파를 가리키기에 털썩 앉았다.
"혹시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웬만한 티 종류는 다 되는데."
음, 밀크티가 있으려나. 홍차 섞어서. 내 지갑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먹는 것에서 돈을 줄이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카페같은 곳에도 안 가고 집에서 해결하려고 했지. 하지만 본격적인 음료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 덕에 내 찬장엔 둥글레차, 보리차밖에 없다.
차 종류도 마셔보고 싶은 건 많지만 만들 수 있는 건 제한적이니.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홈즈가 밀크티를 맛있게 마시는 걸 보니 무슨 맛인지 궁금했다.
"음, 밀크티도 있나요?"
"좋은 취향이네."
유다 누나는 살짝 웃으며 각설탕, 우유, 홍차. 세 가지를 솜씨 좋게 섞어 내게 내밀었다. 피어오르는 달콤한 냄새만으로도 엄청 맛있어 보인다. 밀크티를 후후 불며 가게 안을 둘러봤다.
"오늘은 손님이 없나봐요?"
"오전에 하나 끝났구, 오후에 하나. 나름 인기는 많아."
타투 솜씨는 정말 뛰어났으니까 인기 많을 법 하다. 이야기를 나누며 밀크티를 한 모금 마셨다. 뭐야 이거, 엄청 맛있잖아?
"음. 누나. 밀크티 진짜 맛있네요? 누나 지금 마시는 허브티도 그렇고. 차 좋아해요?"
찬장 안에 다구라던가 유리병들이 잔뜩 있어서 물어봤다. 유다 누나는 신나서 대답했다.
"응. 마음 불안할 때 허브티 종류를 마시면 좀 진정되거든. 페퍼민트라던가 로즈마리. 화분도 꽤 있어."
창가 햇빛 받는 자리에 올망졸망한 화분들이 많았다. 꽤나 멋지네. 차를 마시며 누나를 좀 더 칭찬했다.
"밀크티는 어디 레시피에요? 꼭 파는 것 같아요."
실제로 파는 밀크티를 마셔본 적은 없지만. 유다 누나가 활짝 웃었다.
"인터넷에서도 보고, 유명한 카페 혼자 가서 마셔보면서 물어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까 남자친구 있으면 같이 할 법한 것들이었네."
으음. 갑자기 무거운 이야기라니... 아무래도 유다 누나의 마음 속 어둠이 크구나. 일단 이건 체크해놔야겠다. 마음속에 적으며 주제를 돌렸다.
"오늘 하는 알바는 뭐예요?"
유다 누나에게 물어보자, 갑자기 내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어째 너무 가까운데?
"샤를한테 이야기 못 들었어?"
일부러 이야기 안 해준 것 같은데. 내가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자, 유다 누나가 손가락을 뻗어 내 손끝을 톡톡 두드렸다.
"음, 일단은 남자랑 익숙해지려면 이야기를 나누고, 손 잡는 게 제일 좋대. 가장 마지막 단계는 천천히 밟으라고 하더라고."
마지막 단계? 내가 오늘 할 일은 짐 나르는 거 아니었나? 갑자기 누나가 내 손을 톡톡 두드리기에 물음표를 백 개쯤 띄우자, 유다누나가 조금 더 가까이 왔다. 속삭이는 숨결이 볼에 닿는다.
"샤를이, 강민이 너 나한테 빌려주겠다던데? 자기 남자친구니까 아예 넘겨줄 순 없고, 렌탈하는 형식으로 익숙해지라던데. 렌탈 계약서도 썼어."
샤를... 그랬던 거니...
뭐, 반쯤은 장난이겠지. 그리고 내가 유다누나랑 자고 싶어하는 것도 아니까 마음 편하게 만나고 오라는 뜻으로 배려해주는 거겠지. 하지만 팔려나가는 건 처음이라 혼란스러운데.
"알바비는 시간당 5만원으로. 괜찮아?"
괜찮고말구요. 혼란따위는 싹 사라졌다.
"다만... 돈은 맨 나중에 줬으면 좋겠는데요!"
벌써 주섬주섬 돈을 꺼내는 유다 누나를 말렸다. 유다 누나는 먼저 돈을 줘서 날 묶어놓고 싶어했다. 자존감이 낮다 보니 '돈을 안 주면 나에게서 도망칠 거야'란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돈 주는 걸 제지하자 순식간에 어깨가 축 쳐졌다. 그러며 울 것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진짜 돈 안 받아? 나중에 돈 안 받겠다고 하고 중간에 가면 안돼. 다른 사람 연락 와도 안 보내줄거야..."
유다 누나는 버림받는다던가, 누군가가 자신을 거절하는 것에 엄청난 트라우마가 있는 듯 했다. 하긴, 부모님한테 안정감을 배울 틈이 없었으니 그랬겠지.
부모의 할 일은 그것이다.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자식을 믿어주고 지지해주기. 우리 집안은 아빠의 구타, 폭력으로 개박살났지만 난 그래도 멀쩡하게 컸다. 다 엄마가 날 우직하게 믿어준 덕분이지.
딱 한 사람이라도 날 믿고 지지해준다면 괜찮다. 아무리 좆같은 세상이라도 내 편 한명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지는 법.
유다 누나는 그게 안 됐던 거고.
'주변에서 애정을 부어주는 수밖에 없나...'
솔직히 내가 심리치료사도 아니고. 나 혼자 하기엔 무리다. 샤를이랑 같이 오랜 시간을 보듬어 줘야 할텐데. 경험적으로 봤을 때 대충 학대받은 시간과 비슷한 기간의 사랑을 받으면 사람이 멀쩡해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유다누나의 과거를 꼽아봤다. 초, 중, 고, 12년동안 부모에게 학대받고 친구도 없이 거의 감금 생활을 했다니까.
앞으로 12년...?
조금 정신이 아득해지는 수치였다. 게다가 집을 나와서 강간 미수까지 겪었으니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보이겠지.
'일을 잘 해내는 걸로 봐서는 기능은 괜찮은데.'
꿈 속에서 시무룩해지던 모습이라던가, '나한테 친구 따위가 있을리 없잖아'라는 대사로 미루어 봤을 때 직업적 자존감은 크지만 개인적인 애정을 드러내는 부분에선 엄청 소심할 듯 했다.
복수전공으로 심리학과 선택하길 잘 했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전문적으로 배우진 않았지만 그래도 상담심리, 집단상담, 임상 등 다양하게 듣긴 했다.
'학과 공부가 이런 쪽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누나.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 어디로 도망 안 가요."
"정말?"
유다 누나의 눈에 불신이 차오른다.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은, 뭐랄까. 좀 길고 피곤하겠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으로 누나와 깍지를 꼈다. 화악, 누나의 얼굴이 붉어진다. 일단은, 옛날 이야기부터 좀 하며 친밀감을 쌓아볼까.
"누나, 누나는 남자친구 생기면 가장 해보고 싶은 게 뭐였어요?"
내 질문에 누나가 흐음 하고 고민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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