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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60화 (60/358)

〈 60화 〉 57. 쓰레기토스강민의 기원

* * *

"저, 아침에는 좀 조용히 부탁 드립니다. 여자분 목소리가 너무..."

옆집에서 나온 남자가 피곤한 눈으로 지적하려고 했지만, 예림의 몸매와 얼굴을 보고는 말을 멈췄다. 눈이 크게 떨리는 걸 보니, 옆집에서 울리던 교성의 주인공을 보고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있으려나?

샤를은 부끄러운지 내 팔을 꼭 붙들고 머리를 박았다. 나도 샤를의 몸을 내 뒤로 감췄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저희가 좀 시끄럽게 했나요?"

"아뇨...아니...네, 네."

옆집 사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샤를의 몸매는 내 뒤에 숨은 정도로 감춰질 게 아니다. 얇은 허리에 대비되는 치명적인 엉덩이(테니스 치마마저 뚫고 나오는 볼륨감), 큰 가슴... 옆집 사람은 황급히 몸 절반을 철문 뒤로 숨겼다.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음. 샤를의 몸을 보고 이상한 상상을 했나 보군. 무례한 사람이야­

물론 나도 이런 몸과 교성을 합쳐보면 상상을 안 할수가 없지만. 샤를은 자신의 목소리가 옆집까지 들렸다는게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갰다. 좀 더 놀리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까 너 처음에 막, 저 사람이랑 잔다고 그러지 않았어?"

"몰라요, 그런 적 없어요! 빨리 내려가요!"

그러고 보니 헬스 트레이너라고 그랬는데, 몸이 왜 저렇게 빈약해. 허허. 시덥잖은 생각을 하는 동안 샤를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내 팔을 퍽퍽 쳤다. 귀여워라.

타투샵까진 금방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타투 받는 동안 난 또 나가서 기다려야 되려나?"

"글쎄요. 유다씨 반응이 어떨지에 따라 다르긴 한데. 아마 나가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타투샵 안으로 들어가자 유다가 반갑게 우릴 맞았다. 뭔가 어두운 표정이 가시고, 사람이 좀 밝아진 느낌이었다. 음침고스계 미인이 병약미인이 됐다고 해야 할까?

"어서 오세요! 앉아서 기다리시겠어요?"

종이컵에 차를 내 온다. 이번엔 내 몫까지. 총 세잔. 어라? 이거 나도 옆에서 같이 구경할 수 있는 건가?

"저, 유다씨. 실례가 안 된다면 옆에서 구경해도 괜찮을까요?"

그러자 유다가 살짝 망설이더니 입을 가리고 미소지었다. 손가락 틈 사이로 혀의 피어싱이 반짝였다. 안경 너머의 다크서클도 많이 옅어져 있다.

"음, 오늘은 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샤를의 꿈 속 만남이 효과가 있었나 봐! 근데 웃으니까 예쁘시네. 오늘은 가디건도 안 입고 있어서, 어깨의 장미와 고래 문신이 빤히 드러났다. 내 시선은 신경쓰지 않고 바로 작업대에 앉아 도안을 출력했다.

"바로 작업 들어갈게요. 치마 걷어 보시겠어요?"

작업대에 누은 샤를이 흰색 테니스치마를 걷어올렸다. 그러자 검정 레이스 속옷이 드러난다. 맨 처음에 나에게 왔을 때 입고왔던 옷. 손바닥 크기하고 비슷하지. 그리고 끈 형태. 유다는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과, 과격한­ 아니 작업하기 편한 속옷 입고 오셨네요. 잘 하셨어요."

샤를이 끈을 풀고 골반쪽이 잘 드러나게 자세를 바꿨다. 나는 옆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샤를도 알아서 찍고 있겠지만. 카메라로 담아보는 것도 재미있으니까. 유다는 그걸 보며 작게 헛기침을 했다.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다.

"음, 골반이랑 허벅지 작업까지 다 찍으시는 거예요?"

"네, 그럴 생각이예요."

"알겠어요. 그럼 타투지 붙이고. 이제 시작합니다."

이 타투는 외곽선이 없어서, 희미한 분홍 라인만 골반에 잡고 시작했다. 타투지가 살에서 떨어지자 샤를은 달콤한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의 골반을 보며 입술을 핥았다. 샤를도 나름 긴장되나보다.

"따끔할 수 있어요."

유다의 문신기가 위잉, 소리를 내며 골반에 닿았다. 샤를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새나왔다. 나는 흥분에 휩싸여 살 위를 바라봤다. 아, 샤를이 날 위해 타투를 하고 있어. 이제 몸을 다시 얻기 전까지는 저기에 분홍 리본이 영원히 박혀 있겠지.

수영장 같은 곳을 가지 않는 이상 저곳에 있는 타투는 나만 볼 수 있는 셈이었다. 내가 소유한 존재라는 표식. 샤를의 자기만족이 아니라 내 만족을 위해서 받는 타투­ 샤를의 흰 도자기같은 피부에 분홍빛 타투가 새겨지는 걸 보자 발기할 것 같았다.

예로부터 타투는 비천한 자, 죄지은 자들이 받는 표식이었지. 패션이나 부족의 증명인 곳도 있다지만 최소한 한국에서는 아니다. 샤를은 나처럼 야한 성벽을 가진 사람과 계약한 탓에 이런 걸 당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허벅지 가터벨트 타투까지 새겨지고 나면, 그걸 보는 사람들은 샤를을 천박한 여자로 생각할 거야.

실제로는 나 하나만 바라보고, 뭐든 다 해주는 여자애인데­ 미안함과 흥분, 그리고 내가 샤를의 목걸이를 쥐고 있다는 흥분이 내 척추를 통과했다. 빳빳이 솟는 자지를 감추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어디 아파요?"

"네. 허리가 좀 아프네요."

유다의 말에 당황했다. 이런 상황을 들키면 정말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 성벽이 이상하다는 걸 안다! 가학적이고 뒤틀려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영상을 찍어서 올린다는 발상에 기겁하겠지. 타투도.

하지만 내 본성은 그런 걸 원한다. 상대방을 부끄럽게 만들고 싶다. 울게 하고 싶고, 치욕을 주고 싶고, 부끄럽다고 그만하라고 말해도 림잡을 해주고 싶고, 엉덩이로, 애널로. 평범한 여자라면 한번도 쓰지 않을 구멍으로 섹스하고 싶고. 싫다고 할 수록 더욱 괴롭히고 싶고. 저 흰 허벅지를 울 때까지 때려주고 싶고.

문제는, 이런다고 상대를 싫어하는 게 아니란 것이다. 도구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이해할 진 모르겠지만.

하지만 보통 상대는 그런 행동을 하면 기겁한다. 그래서 나는 평생 감추고 살 생각이었다. 내 성벽을 받아줄 여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예림이와 사귀었더라면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향자들의 예의는 일단 의향이 있는 것부터 물어보는 것이지만 물어보는 행위 자체가 너무 쪽팔리고 부끄럽다. 애널 섹스에 관심이 있냐고 묻는 남자친구라니, 좀 끔찍하잖아!

"예쁘네요..."

샤를은 자신의 골반 한쪽에 거의 다 새겨진 리본을 보며 감탄했다.맞아. 샤를은 이런 걸 받아줄 사람이지.

"그러게, 이쁘다."

내가 본성을 처음 자각한 건, 야설 하나를 읽고 나서였다. 미인자매­치욕의 이력서였나? 내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하드코어한 플레이를 총망라한 소설이었다. 이건 그 소설에 달린 태그만 묘사해도 정신 오염이 올 것 같으니 말하진 않겠어! (궁금한 분들을 위해 조금만 말해보자면 윤간, 관장, 애널... 으음­)

NTR을 다뤄서 좀 꺼림칙했지만, 소설에 나오는 플레이들은 내 자지를 아플 정도로 발기시켰다. 평소의 심심한 야동따위와는 다른­ 그걸 읽은 순간 나는 알았다. 아, 나는 다른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성벽이 있구나. 가학적인 사람이구나.

아니, 물론 거기 나오는 쓰레기들처럼 섹스하고 싶은 건 아니야! 최소한 합의는 할 거라고!나한테도 룰은 있다. 세이프워드를 외치면 그만둘 거라고!

잠깐, 내가 무슨 소릴 지껄인 거야? 샤를이 타투를 받는 걸 보자 내 뇌는 정말 김이 나올 정도로 과열됐다. 뜨거워진 머리는 순식간에 폭주해서 내 부끄러운 성벽의 기원까지 파고들고, 이상한 생각을 한참동안 하게 만들었다. 정신 차리자.

"....어요?"

"예?"

"두 분 사귀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이런, 유다씨가 말을 걸었었구나! 나는 손가락을 꼽아봤다.

2주정도 됐으려나? 열흘? 손가락으로 세 보자 열흘 정도였다. 세상에. 열흘 내내 붙어있다 보니 시간 감각이 무뎌진다. 매일 섹스하고, 하루하루가 너무 충실하다 보니 한 달 넘게 붙어있었던 것 같다.

다른 커플들은 일주일에 두 번 만나니까. 우리는 한달 하고 일주일치 경험을 열흘만에 한 셈이네. 그보다, 사귄다고 말해도 괜찮으려나.

작업대에 앉은 샤를은 나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아, 알았어! 사귄다고 말하면 되잖아!

"네, 한 달 정도?"

음, 진짜로.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진. 사귄다고 하지 뭐! 오늘 타투도 해주고. 그렇게 진심으로 뭐든 다 해주는 여자애를 쉽게 생각했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어제 밤에 있었던, 울먹이는 샤를도 그렇고.

"세상에, 한달밖에 안 되셨어요?"

"뭐, 그렇죠?"

한 달이라곤 하지만 내 머릿속엔 있을 리 없는 추억들이 섞여있다. 군대 면회온 샤를, 같이 카페 알바하던 예림이의 기억이 섞여서 6개월 이상은 사귄 기분이었다.

'흐으음...'

유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 꿨던 생생한 꿈. 그 속에서는 둘이 대학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다고 했는데. 그 꿈은 거짓말인가? 그렇기엔 너무나 생생한데?

오늘 아침, 유다는 펑펑 울면서 깨어났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로해 준 것은 처음이었다. 장롱 안에서 퀴퀴하게 썩어가던 홑이불을, 누군가 꺼내어 세탁하고 풀을 먹여 한낮의 햇빛 아래 말려준 감각. 마음 속의 그늘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녹아갔다. 근 5년 동안은 꿈에서도 잠에서도 술에서도 얻을 수 없었던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 커플과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었다. 강민과 샤를은 내 손을 꼭 잡고 달래줬으니까.

공방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를, 다시 먼 바다로 데려가 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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