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 외전 ] 비슷한 일을 겪은, 열 여덟의 샤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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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르쉴라는 끙끙 앓았다. 눈이 뜨겁다. 머리를 불로 지지는 듯 하다.
샤를을 불러 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언제 집을 나간 거지?
뭘 하러 갔을까. 챠르쉴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샤를이 이마를 닦아주며 지은 슬프고 결연한 표정으로 짐작이 갔다. 첫 경험을 팔러 창관으로 간 것이다.
'샤를, 넌 현실에서 연기의 재능이 없어. 꿈에서만 손님을 받으렴.'
이런 거짓말로라도 샤를을 지켜주고 싶었는데.
수백 년 전의 서큐버스는 인간계 꿈 속을 떠돌며 정기를 가져왔다고 한다. 인간과 몸을 섞고 싶은 서큐버스는 직접 섹스를 하고, 꿈 속에서만 정기를 취하고 싶다면 꿈만 떠돌며.
서큐버스 자체가 성행위를 좋아하는 종족이긴 했으나, 개인차는 존재한다. 그리고 챠르가 볼 때, 샤를은 성교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꿈에서 버는 마력만으로도 만족하는 타입. 읽는 책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리어 왕, 드라큘라. 셰익스피어. 성인용 야설 같은 건 손대지 않고 문학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창관 일이라니...
하지만 자신이 아파 쓰러지니 어쩔 수가 없다. 몸을 팔지 않으면 삶을 걱정해야 한다.
'샤를에겐 직접 몸을 팔게 하고 싶지 않았어.'
챠르는 이불을 덮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인간계로 넘어갈 수 있었던 시절에 서큐버스들은 번성했지만, 괴테의 책이 나온 이후에 모든 게 바뀌었다.
파우스트가 쓰여지기 전까지만 해도, 인간계로 직접 건너가는 악마는 드물었다. 하지만 마계에 퍼진 파우스트는 악마의 허황된 환상을 부추겼다. 1900년대의 골드 러시처럼.
인간계로 건너가기만 하면 막대한 영혼을 들고 돌아올 수 있대.
그 이후 악마들은 인간계로 몰려갔다. 소문을 믿고 넘어간 악마들 중, 멍청한 악마들은 인간에게 속아 부려먹혔고 일반적인 악마는 둘 모두에게 해악이 되는 거래만 했으며, 가장 교활한 악마들만이 왕을 속여 전쟁을 일으키고 죽은 자들의 영혼을 낚아채 왔다.
지혜로운 악마는 마계에서 걱정을 했다. 과연 이래도 괜찮을까?
그리고 걱정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게이트가 무너졌다.
악마들 입장에서야 한 탕 해먹고 돌아오면 끝이겠지만. 악마와의 거래로 비참한 꼴을 당한 인간들은 소문을 퍼트렸다. 악마와 계약하면 영혼이 타락한다고. 모든 걸 빼앗기게 된다고.
사람들은 악마를 믿지 않게 되었고 성당 기사단은 열린 게이트를 찾아내 모조리 닫았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던 서큐버스, 가벼운 장난으로 먹고살던 임프, 그리고 하급 악마들은 당황했다. 게이트가 닫히고 인간들에게 갈 방법이 사라졌다.
태어난 자식들은 굶주림에 내던져졌다.
그 이후, 마계는 진정한 지옥이 되었다. 실제 지옥(비유적인 의미가 아닌)은 멀쩡했고 살만한 곳이었다. 벌을 받는 자들을 받아들이는 게이트는 신이 직접 주조했기에 닫히지 않았고,애초에 그쪽은 지옥의 왕 사탄이 관리하기에 신과도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게이트가 닫힌 마계는 말라 죽어갔다. 오죽하면 지옥의 간수들이 마계의 존재를 보고 죄인만큼 불쌍하다고 했을까.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하는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자는 극소수. 챠르같은 하급 서큐버스는 꿈도 꾸지 못할 혜택. 다른 악마들도 마찬가지. 마계에선 지옥도가 펼쳐졌다.
살아있는 자를 쥐어짜내고, 고되게 일해도 입에 들어올 음식이 없는 세상. 자고 일어나도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는 삶. 노새처럼 채찍을 맞으며 견디는 삶.
그리고, 이 황량한 세상에서 남은 하나의 보석.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 샤를.
아, 샤를. 너에겐. 너에겐 창관에서 일하고 싶게 만들지 않았는데. 이런 불행한 세상을 겪는 건 나 혼자서라도 충분했는데.
챠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열이 올라왔다. 며칠째 물만 마신 몸이 덜덜 떨렸다. 추위에 몸을 움츠리는데 문이 열렸다.
"언니, 저 왔어요!"
"샤를... 왔어...? 근데, 손에 뭐야?"
샤를의 바구니는 가득 차 있었다. 챠르쉴라는 아찔한 감각에 눈을 감았다. 돈이 어디서 났을까. 의문에 답하듯 샤를이 말했다.
"사실, 오늘 첫 경험 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제 알몸만 보여주고 끝났어요. 좀 무섭긴 했지만..."
밝게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목에 난 빨간 손자국이 눈에 띄었다. 눈가의 눈물 자국. 뺨에 남은 구타의 흔적. 샤를은 애써 쾌활한 척을 하며 부엌에 섰다.
"금화 세 개나 받았어요! 고기랑 귀리도 있으니까. 죽 먹고싶어지면 언제든 이야기하구요. 꿀이랑 소금은 물에 타 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언니. 누워 있어요!"
샤를이 금세 꿀물을 타 챠르에게 가져왔다. 동생이 비참한 꼴을 겪으며 사 온 음식이라니. 입에 넣기 싫었지만 손은 무의식적으로 컵을 받았다. 사흘간의 공복 끝에 나타난 음식은 뱃속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챠르는 죄책감에 훌쩍거리며 액체를 마셨다. 입 안에 달콤함이 퍼졌다.
"미안해, 샤를. 미안... 언니가 괜히 아파서... 아프지 않았으면 이럴 일은 없는데..."
"언니, 이건 그냥 일일 뿐인걸요... 왜 울어요. 울지 마요."
샤를은 웃으며 언니의 무릎에 머리를 기댔다. 이제 언니는 살았어. 그러니까 다 괜찮아.
일주일간의 병간호 끝에 챠르는 간신히 적사병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챠르는 안심감에 몰래 한숨을 쉬었다.
다 나았으니 괜찮아. 이제 샤를이 몸을 팔게 될 일은 없어. 꿈만 꾸게 해줘도 될 거야.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창관에서, 샤를이 만든 꿈을 꾼 손님들이 하나같이 불평을 늘어놨다.
'꿈이 이상하던데? 꿈에서 나온 여자가 벌벌 떨더라고. 어디 아픈 거 아냐?'
'어우, 야한 꿈이 아니라 악몽을 꿨어! 젠장! 환불해 달라고!'
샤를의 첫 경험이 강간 직전에서 멈춰서, 샤를의 머릿속에 상처가 깊게 남은 듯 했다. 챠르쉴라는 한번 더 꿈을 꾸게 해주는 식으로 그들의 불만을 잠재웠지만 샤를을 낫게 해 줄 방법은 찾지 못했다.
그 날 이후로 샤를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앉아 있을 때가 늘었다.
'샤를, 괜찮아?'
'괜찮아요. 근데 전 반편인가 봐요. 그 날 이후 너무 무서워서... 꿈을 만드는 것도 힘들어요.'
삽입당하진 않았지만 폭력적인 사태를 겪은 샤를은 움츠러들어 있었다. 챠르쉴라는 슬펐다.
'샤를.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누구나 그런 일을 겪으면 아프고 힘들 거야...'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 샤를.여긴 지옥이야. 넌 여기서 살기엔 너무나 연약해. 인간계로 가서. 사람과 살아.
'샤를. 내 말 명심하렴. 게이트가 보인다면 뛰어들어. 우리 같은 하급 서큐버스들이 살아나가려면, 그 방법밖엔 없단다'
언니 챠르쉴라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샤를은 퍼뜩 눈을 떴다.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뭐지. 옛날 꿈인가?'
손을 뻗자 푹신한 이불이 만져졌다. 옆을 보자 강민이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유다와의 꿈은 유다가 잠든 시점에서 끝난 듯 했다. 강민도 그때 같이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샤를은 옛날 꿈을 꿨다. 유다가 겪은 일이 자신의 일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리라.
'오랜만에, 옛날 꿈을 꿨네...'
잠이 확 달아난 샤를은 강민의 볼을 콕콕 찔렀다. 으음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틀었다. 이러고 있으면 귀엽네. 섹스할 때 과격하긴 하지만. 샤를은 턱을 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강민 오빠는 내 마음을 알까?'
게이트를 넘어올 때. 마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제약을 걸고 마력을 좀 더 받았다. 게이트에서 나와 처음 본 남자와 계약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게이트는 만족해하며 그 약속을 받아들였다. 옛날의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떠돌이에게 도움을 받은 대상인이, 자신이 집에 들어가 맨 첫번째 본 것을 당신에게 주겠노라고. 그리고 상인이 집에 들어서자 그의 딸이 웃으며 상인을 맞아, 딸을 떠돌이에게 시집보낸 것처럼.
그래서 샤를은 게이트에서 나오며 긴장했다. 이상한 사람이 걸릴까봐 두려웠지만 강민은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의 기억도 재밌었다. 특히 자기와 같이 가난한 시절을 겪었다는 것에 동질감을 느꼈고, 섹스 취향이 격렬한 것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강민은 자신이 진심으로 싫다고 하면 멈춰줄 터였다. 그때의 오크와는 다르게. 그 점이 안심이 됐다.
'그래도 날 쫓아내려고 해서, 엄청 무서웠는데. 만약 계약하지 못했다면, 게이트가 날 마계로 돌려보냈겠지.'
자신을 거부하며 주저한 강민과 한 첫 경험은 좋았다. 꿈 속에서야 많이 해 봤지만, 몸으로 직접 섹스해 보는 건 정말 달랐다. 당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주도적으로, 강민의 위에 올라타서.
'맨 처음엔 오빠가 NTR당하는 걸 좋아하는 줄 알고, 실수를 많이 했는데.'
샤를은 처음에 강민의 취향을 잘못 읽고, 치녀 + NTR 취향으로 다가갔다. 일부러 치녀인 척, 다른 사람과 하는 건 어때요? 이런 식으로 마음고생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건 한참 뒤였다. 웃긴 일이지, 샤를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다른 남자랑 섹스할 걱정이 없는 것도 좋아.'
샤를이 걱정한 건 그 점이었다. 혹시 창관에서처럼, 다른 남자에게 몸을 팔게 하진 않을까?
하지만 강민에게 치녀인 척 하며 떠본 결과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순애를 좋아한다니까.
'그러면서도 하드코어한 플레이는 좋아하네. 뭐, 그건 오빠의 취향이니까. 나도 그렇게 싫지많은 않고... 오빠가 좋아하니까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된단 말야...'
샤를은 얼굴을 붉혔다. 관장, 애널, 아마 나중엔 더 하드코어한 플레이도 하겠지. 그래도 괜찮았다. 언니인 챠르쉴라는 몰랐겠지만, 침대 밑에 숨겨져 있는 야한 책이 몇 권 있었다. 문학소설만 읽는 쑥맥은 아니다.
샤를이 걱정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강민 오빠는 날 사랑하는 걸까?솔직한 마음으로는, 강민이 자신을 사랑해 준다면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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