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49. 세번째 계약
* * *
호흡을 진정시킨 유다는 다시 작업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어려웠다. 차오르는 눈물에 눈앞이 흐려진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트라우마가 심했다.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나도 편하게 남자와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멀쩡한 옛날을 돌려줬으면 좋겠어. 왜 나 혼자 이래야 해. 나한테 나쁜짓을 한 놈은 작년에 출소해서 멀쩡하게 살고 있을 텐데...
남자친구가 생기면 커플 타투도 해보고 싶었는데. 내가 새겨주고 싶었는데.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눈물이 뚝뚝 흘렀다.
"잠깐, 잠깐만요."
문신 작업을 멈추고 라텍스 장갑에 눈물이 닿지 않도록, 검정 가디건에 눈물을 찍었다. 그러자 예림이 몸을 일으키더니 티슈를 뽑아 유다의 눈물을 닦아줬다.
"아휴, 울지 마요."
왜 우는지도 물어보지 않고 자신을 달래 준다. 눈물의 이유를 아는 것처럼. 옛날에 있었던 사건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꾹꾹 감춰왔다. 털어놓을 사람따윈 없었으니까.
하지만 누군가 옆에서 위로해 주자 눈물이 더욱 터져나왔다. 유다의 마음 속 상처는 많이 곪아 있었다. 결국 유다는 샤를을 껴안고 펑펑 울었다.
"죄송, 죄송해요... 손님한테 이러면 안되는데. 제가 왜 이러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샤를은 유다를 토닥거리며 달래 줬다. 자신도 그 공포를 잘 안다. 창관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고 소리지르며, 목을 조르던 오크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샤를은 안쓰러움을 느끼며 유다가 안겨 있도록 놔뒀다.
'아이구, 안타까워라...'
거의 삼십분을 울고 난 유다는 훌쩍거리며 떨어졌다. 간신히 울음을 멈추고 구석으로 가 전기포트에서 허브차를 타서 가져왔다.
"...죄송해요. 이따가 10퍼센트 할인해 드릴게요. 손님 앞에서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예림이는 아무 말 없이 차를 홀짝거리며 유다를 빤히 바라봤다. 유다는 예림과 함께 있으니 왠지 모르게 안심감을 느꼈다. 무슨 이야기든 다 들어줄 것 같았다.
펑펑 울어서 후련해지고 나니 좀 더 말하고 싶어졌다. 유다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타투할 때 안 좋은 일을 겪었거든요. 작업실에서, 남자한테. 강..제로 당할 뻔한 적이 있어서."
"그랬군요. 힘드셨겠네요."
호들갑떨지도 않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눈빛이었다. 유다의 마음이 편해진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남자 손님이 오니까. 영 아니네요. 남자친구분 잘못은 아니니까 걱정 마시구요."
강민이 오는 걸 허락한 이유는 DM으로 보낸 사진때문이었다. 둘 사이의 풋풋함. 부끄러움. 행복함이 사진 너머로 전해져서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해보고도 싶었고.
결국 엉망으로 끝났지만.
"앗, 뜨거라."
허브차가 뜨거워서, 유다는 컵을 입에서 떼고 혀를 허공에 내밀었다. 그 모습을 예림은 빤히 바라봤다.
'혀가 갈라져 있네?'
스플릿 텅(Split Tongue)이라고 부르는 하드코어한, 신체 훼손? 패션이라고 해야 할까. 상상해 보라. 만약 혀 가운데를 따라 쭉 자른다면 어떻게 될까?
해부학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대답할 수 없다. 혀의 근육 구조는 신기하다. 왼쪽 혀 근육, 오른쪽 혀 근육이 합쳐져서 하나의 혀를 이룬다. 혀 가운데를 따라 자르면 왼쪽 혀와 오른쪽 혀는 따로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양 팔을 따로 움직이는 것처럼, 혀도 그렇다.
유다의 혀는 뱀처럼 가느다랗고 예뻤다. 그리고 왼쪽 혀에 살짝 박혀있는 은빛 피어싱까지.
"앗, 보셨나요?"
자신의 입을 가리며 유다가 멋쩍게 웃었다.
"그 사건 이후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피어싱이라던가 타투를 하면 그나마 좀 마음에 위안이 되더라구요. 1년 전에 출소 소식을 듣고는 버스에 뛰어들어서 죽어버릴까, 고민하던 도중에 스플릿 텅 생각이 나서. 버스에 치어 죽는것보다 혀를 가르는게 낫지, 싶어서 충동적으로."
자해에 가까운 행동이다. 스트레스를 외부로 표출하는 대신 자신의 몸에 발산하는. 예림은 걱정스런 마음에 유다를 바라봤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보이는데. 하지만 유다는 쾌활한 척, 머리를 한번 휘젓고 다시 작업대에 앉았다.
"죄송해요! 괜히 시간을 많이 끌었네요. 다시 시작할까요?"
레터링 타투의 마지막을 간신히 채운 유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 다 끝내려고 했는데. 지금 이 상태로는 작업하기 힘들겠네요. 죄송하지만 내일 다시 오실 수 있으신가요?"
손이 떨려서 바늘이 몇 번이고 라인 밖으로 나갈 뻔 했다.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간신히 예쁘게 타투를 마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시간을 울고 나서 진이 빠진 상태로 작업이라. 프로페셔널해야 하는데 사적인 감정이 타투를 망친다면 말도 안 될 일이었다.
"나가실 때 7만원 돌려드릴게요. 티셔츠 입으시곘어요?"
문신기를 내려놓고 손을 휘휘 젓는 유다를 샤를은 빤히 바라봤다. 타투에 대해서 찾아본 바로는, 색이 빠지니까 정기적으로 보수해줘야 한다고 했지. 그때마다 추가금이 들 거고.
유다가 가지고 있는 욕망도 해소되면 꽤 마력이 나올 듯 싶은데.
금전적으로도, 마력적으로도 이득이라면.
그리고 울며 떨고 있는 이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창관의 어두컴컴한 방. 그 안에서 소리지르는 남자. 사람이 달려와 막아줬지만 그 기억은 오래도록 샤를을 괴롭혔다.
사실 샤를도 아직 그 꿈을 꾼다.
샤를은 마음을 굳히고는 유다에게 말을 걸었다.
"유다 씨, 혹시 악몽도 꿔요?"
"...그렇죠."
유다가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예림이 주머니에서 작게 접힌, 예쁜 부적을 꺼냈다. 계약서를 예쁘게 봉해 부적 형태로 만든 것이다. 유다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바라봤다.
"편안한 꿈을 꾸게 해주는 부적인데요. 살래요?"
평소라면 믿지 않았겠지만, 예림이 내미는 부적은 딱 봐도 이상한 분위기를 풍겼다. 피로 쓴 듯한 붉은 부적. 게다가 자신의 일을 다 아는 듯 초연한 태도. 그리고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유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얼만데요?"
"육십 칠만원에 플러스 알파. 후불이에요. 효과 없으면 안 받고, 효과 있으면 나중에 따로 계산하구."
육십 칠만원. 타투를 하기 위해 받은 금액 전부였다. 하지만 효과 없으면 안 받는다고? 유다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부적을 붙잡는데 손끝에 따끔한 감각이 달렸다.
"한번 믿어 볼게요."
"그래요! 좋은 선택이예요."
예림은 유다가 돌려준 7만원을 받아 주머니에 넣으며 방안을 쓱 둘러봤다. 곳곳에 걸려있는 오망성이라던가 해골 타투 도안이 눈에 띈다.
아무래도 타투하는 사람들은 이런 오컬트를 잘 믿는 경향이 있단 말이지. 옛날에 마녀랑 계약한 사람들도, 몸에 마녀의 문신이 있어서 색출당하기도 했었고.
오늘 집에 가면 강민 오빠랑 이야기좀 해봐야겠다. 타투샵 올 필요 없어요. 집에서 기다릴게요! 문자를 보낸 예림은 문 밖으로 나왔다. 강민 오빠는 지금쯤 출근했으려나?
***
"..."
"..."
영선 누나는 내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지도 못한 채 삼십분째 청소중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후다닥 도망치고. 첫날 밤에야 분위기를 타서 나한테 왔지만 이제 생각하니 너무 부끄러운 건가.
반짝반짝한 바닥을 보며 곰곰히 생각했다.
나랑 정서적인 교감도 누리면서 꽁냥거리고 싶은 건지, 아니면 섹파 관계로만 지내고 싶은 건지 영 모르겠네?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다. '섹파주제에 아는 척 하지 말라고!' 이러면서 내장진탕 펀치를 날릴지도 몰랐으니까. 참 읽기 힘든 사람이야.
게다가 오늘은 복장도 긴 트레이닝 바지, 긴팔 바람막이다. 여름에는 안 어울리지만 내게 피부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듯 했다.
'아, 어떻게 해야 해!'
영선은 바람막이 안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 청소만 했다. 그것 말고는 뭘 해야할 지 모르겠다. 강민과 가까이 다가가면 머리가 새하얘진다. 어제 저녁에 있었던 애널 섹스가 생각나서 도저히 아무 말도 못하겠다.
강민이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확확 달아오른다. 미친년. 진짜. 저번엔 손을 대기라도 했지, 이제는 쳐다보기만 해도 몸이 찌릿찌릿하니? 스스로의 음란함에 치를 떨어가며 밀걸레를 민다.
사람들이 바닥에 자빠질 정도로 박박 닦는데, 창고에서 강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재고좀 같이 봐요!"
콜라, 핫바, 과자 등을 쌓아놓는 자재 창고다. 영선은 밀걸레를 두고 문을 잠깐 바라봤다. 혹시 저 안에서 키스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자재 창고를 정리하는 강민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했다. 표를 보며 재고만 맞춰볼 뿐이다. 영선은 그 옆에서 라쿤처럼 기웃거렸다.
"누나, 잠깐"
"히양!"
강민의 손이 영선의 옆구리 쪽을 건드리자 괴상한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영선은 깜짝 놀라 철제 트레이에 딱 달라붙었다. 그리고 목까지 붉게 물들인 채, 눈을 감고는 바닥쪽으로 고개를 향한다.
강민도 당황스럽다. 같이 알바하는 애들에게 매일 헤드락, 옆구리 꼬집기, 음담패설 농담하기 등 털털하기 그지없던 영선누나가 이런 쑥맥처럼 당황하는 건 적응이 안 됐다.
"아니, 누나.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요..."
"나, 나도 잘 모르겠어. 나도 이런 건 처음이라..."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당황해 말을 떤다. 으음... 어떻게 하지. 이렇게 풋풋하게 부끄러워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어어어어엄청 부끄러운 짓을 시키는 것도 재밌어 보이긴 한데...
일단 강민은 잠시 박스를 내려놓고 영선의 허리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그리고, 볼에 살짝 키스.
영선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