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48. 유다의 비밀
* * *
"여긴가?"
예림과 나는 보내준 주소로 도착했다. 일단 ATM에서 80만원정도 인출했다. 남은 잔고는 170, 월급날은 3주 뒤. 등 뒤에서 땀이 났다.
예림이도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애써 괜찮은 척 했다. 투자라고 생각하지 뭐. 어짜피 폰허브에서 대박치면 월 3천만원이잖아. 불안감을 무시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육중한 철문이 우리를 맞았다. 꼭 요새같이 생겼다.
"안녕하세요. 계신가요?"
철문 앞에서 벨을 누르자 카메라가 지잉 돌아갔다. 우리를 보는 중인가?
"어서 오세요."
우리를 맞이한 건 음울한 분위기의 미인이었다. 사람의 눈을 피하고 짙은 다크서클이 특징이다. 귀에 피어싱. 묶어서 뒤로 올린 회색 머리. 대부분 탈색을 하고 검은 머리를 중간중간 남겨놓은 것 같다. 가디건으로 봐서는 노출을 별로 좋아하진 않나보네. 입을 열때 입 안에서 작은 혓바닥 피어싱이 반짝거렸다.
"..."
내 눈길을 피하며 어깨 아래로 내려온 가디건을 올린다. 슬쩍 보인 장미 문신... 왜 다 가려놓지. 예쁜데 아깝네. 유다라는 타투이스트는 나와의 이야기를 피하고, 예림을 컴퓨터 앞으로 데려갔다.
"앉으시죠. 일단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가 있으신가요?"
그러자 예림이가 에밀리의 사진을 꺼냈다. 하고 싶은 타투 부위에 동그라미를 쳐 놨다. 유다는 안경 너머로 부위를 보며 끄덕거렸다.
"아하. 가터벨트 문신이랑. 골반 양쪽에 리본 타투."
"그리고 여기 2001.10.05, 생년월일. 필기체로 새길 거거든요. 이렇게요."
오른쪽 쇄골을 손가락으로 따라 내려오며 계획을 설명했다. 하지만 생일을 들은 유다는 코끝을 찡그렸다.
"갓 스무살이신데. 타투 하고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네, 오빠가 좋아하니까. 후회 안할 거예요."
내 팔을 붙잡고, 웃으며 날 본다. 하지만 유다는 오히려 더 탐탁지 않은 듯 했다. 예림이를 빤히 바라보며 진짜로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묻는다.
"허벅지 문신은 하고 나면 커버업도 어려워요. 지우려면 돈도 많이 들고. 진짜로 괜찮은지 고민 많이 해 보셨나요?"
예림이야 새로 육화해버리면 되니까 상관 없는 문제다. 예림이 고개를 끄덕이자 컴퓨터 앞에 앉아 도안을 뽑았다.
허벅지 타투, 리본 초안, 필기체 생년월일. 이제 저게 예림이의 몸에 새겨지는 건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걸 다 하고 나면 얼마나 섹시할지.
"일단 비용 먼저 말씀드릴게요. 허벅지 45만원. 생년월일 7만원. 리본 타투 두개 해서 15만원. 총 육십 칠만원이시구요. 현금결제 먼저 부탁드릴게요."
타투를 처음 해 보니 싼지, 비싼 건지 모르겠군... 그래도 80만원 꺼내온 것 치곤 선방했네!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자, 유다가 한숨을 쉬고 예림을 봤다.
"돈도 이 사람이 내는 거예요?"
"네."
"하... 진짜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타투하는 거 후회 안해요? 나중에 헤어지면 어쩌려구요?"
"음, 제가 진짜 하고 싶어서 그래요."
유다는 더 설득하는 걸 포기했는지 돈을 금고에 넣고 잠궜다. 그리고 얌전히 준비를 시작했다.
"여기 위에 누워주시구요. 티셔츠 벗으실게요. 쇄골 타투 먼저 작업할 거예요. 전체 작업시간은 여덟 시간 생각하시구요."
T자 작업대 위에 예림이 티셔츠를 벗고 얌전히 누웠다. 검정 레이스 브래지어가 도드라졌다.
유다는 인쇄한 필기체 생일 도안지를 물에 불려 예림의 피부에 대보며, 위치를 가늠한다. 피부에 옮겨진 도안지를 따라 그대로 색을 채우는 듯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유다의 손이 덜덜 떨린다. 거울을 통해서 나를 흘끔흘끔 훔쳐보는 중이었다. 보는 사람이 있으면 집중이 안되는 건가?
그런데 예림이가 갑자기 일어났다.
"음, 잠깐 시작하기 전에 화장실좀 갔다올게요."
유다가 눈에 띄게 안도했다. 그러면서 손을 쥐었다 폈다 한다.
"아, 네. 그러세요. 작업 시작하기 전에 갔다오시는 게 좋죠."
"오빠도 같이 가요."
예림은 티셔츠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표정이 복잡하다.
"어, 오빠. 그러니까. 오빠는 여기 안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엥? 왜?"
"저 분, 남자가 있으니까 엄청 불안해해요. 기억을 읽어봤는데."
예림이 슬쩍 안쪽을 봤다. 듣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예전 타투샵 막 열었을 때, 남자 손님한테 강간당할 뻔한 적이 있어요."
켁.
"비상벨 눌러서, 경찰이 바로 오긴 했지만... 저항하는 도중에 폭행당해서 전치 8주. 게다가 범인은 강간 미수라서 5년 받고 작년에 출소. 작업실도 다 옮겼지만 남자 손님은 여전히 불안한가봐요."
그래서 자꾸 내 쪽을 힐끔힐끔 보는 거였군. 유다가 계속 내 쪽을 살피던 태도가 이해가 갔다. 세상에, 그런 쓰레기같은 놈이... 쩝. 어쩔 수 없군. 타투받는 거 보고 싶었는데...
"촬영 마법으로 녹화해서 보여줄게요. 걱정하지 마요."
음, 그럼 또 괜찮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집 연습도 해 볼 겸. 잘 됐네.
"그럼 난 PC방 출근할게. 문신에 8시간정도 걸린다고 하니까. 딱 끝날때쯤 데리러 오겠다."
"알았어요 오빠. 그때 봐요!"
예림이 강민을 꼭 껴안고 배웅했다. 강민이 가고 나서야 다시 출입문 벨을 눌렀다.
"...남자친구분은요?"
강민이 사라지자 유다의 손 떨림이 사라졌다. 불안하게 흘끔거리는 눈도 편안해졌다.
"자기 있으면 유다 씨가 불편할 것 같다고. 먼저 가셨어요."
유다가 라텍스 장갑을 끼며 말을 머뭇거렸다.
"...티가 많이 났나요? 제가 남자를 좀 꺼려하거든요."
"저희 오빠가 눈치는 빨라서요."
실제로는 별로 없는 편이지만. 눈치 없이 영선언니랑 놀아나구... 참 나. 이번에 타투 해주면 나랑 좀 더 붙어있겠지. 샤를은 투덜거리며 또 하나 요청했다.
"혹시 가터벨트의 장미꽃 잎, 하나만 비워 주실 수 있어요? 남자친구가 나중에 채워줬으면 해서."
"그러시죠."
도안지를 예림의 쇄골에 붙이고, 전사액을 뿌린다. 그리고 떼내면 피부에 도안만 남는다. 그 위로 바늘을 움직여 잉크를 채우는 것이다.
"아. 타투받는 장면 녹화해도 되나요?"
"제 얼굴만 안 나오면요. 인터넷에 올리는 부분 있으면 모자이크 해 주시구요."
"당연하죠."
강간 미수 범죄자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겠지. 샤를은 한숨을 쉬고 셀프 카메라 모드로 바꿨다.
마법으로 녹화하고 있지만 카메라로 녹화하는 척도 해야지.
도안지를 떼자, 오른쪽 쇄골 위에 도안이 입혀졌다. 2001.10.05. 마계에서 자신이 태어난 날.
샤를은 침을 삼켰다. 그녀도 문신 시술을 받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앞으로 강민과 섹스하고, 촬영해서 올리면 사람들은 내 생일에서 눈을 떼지 못하겠지. 아마 내 어릴 적을 상상하며 더 흥분할거야.
쇄골 위의 생일은 판매하는 고기의 신선도를 표시하는 느낌을 줬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스무살의 갓 성인 된 샤를의 하드코어 섹스를 보며 더욱 흥분할 터였다. 남자들은 상대가 어릴수록 더 흥분하니까.
흥분감에 침을 꿀꺽 삼키는 동안 유다가 문신기에 바늘을 끼웠다. 도안 위에 위이잉, 소리를 내며 바늘이 닿았다.
"살짝 따끔해요."
"으으읏..."
피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감각에 샤를은 신음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카메라는 흔들림 없이, 피부에 새기는 바늘을 따라갔다. 외곽선만 있는 도안 안에 천천히 색이 채워진다.
강민 오빠가 좋아하겠네. 실제로 자신의 하얀 피부 위에 올라오는 생일은 놀랍도록 선정적이었다. 이제 앞으로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샤를의 생일을 알 수 있을 터였다. 처음 만난 사람마저. 그리고 그 아래의 H컵 가슴을 흘끔거리며 샤를과의 나이차이를 상상하겠지.
절반쯤 채워졌을까. 유다가 입을 열었다.
"...남자친구 많이 좋아하시나봐요?"
"음, 뭐. 그렇죠."
그리고 예림은 배시시 웃는다. 그늘따윈 없는 행복한 미소였다.
유다는 아까 강민을 바라보던 예림의 열렬한 눈빛을 생각했다. 오빠가 타투를 하라고 해도 괜찮아. 나는 후회하지 않을거야, 하는 눈빛. 언젠가 헤어진다고 해도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한숨이 나왔다. 유다도 꿈이 있었다. 타투샵을 차리고,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행복하게 결혼을 해서 사는 상상. 하지만 그 꿈은 악몽이 되었다.
어쩌면 타투샵을 시작한 것부터가, 하나의 거대한 실수는 아니었을까.
가게에 예약을 하고 찾아온 손님은 유다의 얼굴을 보고는 자꾸 이상한 소리를 했다. 사타구니에도 타투를 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 지금 바지를 벗고 보여주면 해 줄 수 있느냐. 혹시 남자친구가 있느냐. 어깨의 타투가 정말 섹시하다.
남자의 체격은 보통이었지만 연약한 유다가 느끼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두려움과 혐오감을 꾹꾹 눌렀다. 나가라고 자극했다가 이 남자가 돌변할까봐 비위를 맞추며 비상벨을 눌렀다.
이럴 때를 대비해 설치했지만, 경비업체가 오는 데는 한참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최선을 다해 응대하는데, 남자가 결국 폭발했다.
'야, 가만히 있어. 다친다.'
작업대에 자신을 강제로 엎드리게 하고, 목덜미를 내리누르던 손길. 들고 있던 문신기로 허벅지를 찔러버리자 비명을 지르곤 바닥에 자신을 패대기쳤다. 그리고 자신을 수 차례 걷어차고, 아픔에 비명을 지르는 자신의 옷을 찢는데
그 때 경비업체가 들이닥쳤지.
유다는 가쁘게 숨을 쉬는 자신을 깨달았다. 트라우마 반응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까 강민이 들어왔을 때부터 과호흡의 전조가 있었다. 커플이니까 괜찮겠지 했지만 실제론 아니었다. 작업실에 남자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몸이 떨린다. 눈도 마주치기 어렵다. 만약 강민이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패닉에 빠졌을 터였다.
"잠시, 잠시만요."
문신기를 옆에 내려놓고, 숨을 거칠게 내쉰다. 예림이가 그 모습을 보고 걱정스레 옆에 다가온다.
"괜찮으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