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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48화 (48/358)

〈 48화 〉 47. 타투이스트를 찾자

* * *

다른 남자가 예림이의 피부에 문신을 새긴다는 상상만 해도 싫다.

골반을 만지고, 허벅지를 더듬고 몸을 눈으로 훑고 그러겠지. 어휴, 끔찍해! 내가 직접 해주고 말지!

라네보 영상 마법을 보관하고 문신 마법으로 검색하자 눈 앞의 책장이 차올랐다. 하지만 영상 관련 마법보다 훨씬 적었다. 조건도 안 걸었는데 다섯 권 정도. 왜 이러지?

"문신 새기기, 탬플릿 별도. 실제 이미지를 문신으로 바꿔주는 마법 별도... 이것도 100에테? 뭐야? 영상 찍는 마법이랑 비슷하다고? 왜 이렇게 비싸지?"

그러자 예림이가 손으로 턱을 받쳤다.

"음, 아무래도 이쪽은 마법사들이 관심을 덜 갖는 분야인 것 같네요. 마법으로 문신 그리는 걸 싫어하나? 직접 바늘로 새기는 게 좋은 건가?"

"아, 그런 거네."

문신 마법 개발이 왜 인기가 없는지 짐작이 간다. 손으로 새기는 문신은 수공예품이고, 마법으로 그리는 문신은 공장제 제품 같은 느낌이로군. 그러니까 개발도 지지부진하고. 경쟁이 안 붙으니 마법 가격은 비싸고. 악순환이로군.

"이것까지 사기엔 마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이건 그냥 돈으로 해결해야겠다."

그러자 예림이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여자 타투이스트를 찾아야겠네.

"이따가 맛있는 거 사줄게. 화 풀어."

"제가 맛있는 거에 항상 넘어가는 사람인 줄 알아요?"

그러면서도 눈동자가 반짝반짝하다. 일단 마음은 돌린 모양이다. 다행이다.

"그럼 영상 마법만 배울게요. 배우고 나면 마력이 없어서 접속이 끊기겠네! 꼭 잡아요."

예림이 자신의 허리를 손으로 톡톡 쳤다. 잡으라는 소리겠지? 다가가서 허리를 감싸자 내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더니 볼에 쪽 뽀뽀를 했다.

"아우, 뭐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러자 예림이도 날 보며 킥킥 웃었다.

"귀여워서요. 꼭 잡아요!"

예림이 구매 버튼을 누르고 그와 동시에 도서관이 까맣게 물들기 시작한다. 저번처럼 어지럽진 않았다. 불이 하나 둘 꺼지고 우리는 밧줄을 잡은 것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가.

침대 위로 돌아왔다.

"저번처럼 어지럽진 않네."

"익숙해졌나봐요. 다행이다."

알몸의 예림이가 침대를 뒹굴 굴러 내 쪽으로 왔다. 예림이를 껴안고 샴푸 잔향을 훅 들이마셨다. 이렇게 포근한 몸뚱이를 안고 있으니 또 설 것 같네. 하지만 예림이는 지금 섹스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빠, 촬영 마법 켜볼게요."

응? 아, 맞아. 샀으면 한 번 써봐야지. 예림이가 이불을 끌어당겨 우리 둘의 목까지 덮었다. 그리고 허공을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오빠도 웃어요!"

"근데 예림아, 어딜 봐야 해?"

카메라가 없다 보니 어딜 봐야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우리 둘이 다른 곳을 쳐다보는 이상한 영상이 나올 곳이다.

"앗차. 오빠한테도 보자. 마커 기능..."

예림이 손을 휘젓자 허공에 초록 점이 떠올랐다.

"튜토리얼이 친절하네요. 같은 곳을 봐야할 때 사용할 것."

헤에. 라네보는 생각보다 훨씬 좋은 기능을 제공했다. 나도 누워서 초록 점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자 예림이가 내 볼에 연거푸 뽀뽀하며 V를 그렸다.

"안녕하세요, 예림이예요. 오늘은 저랑 오빠랑 아침에 어떻게 지내는 지 보여드리고 싶어서, 영상을 찍어봤어요!"

그러며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이불을 쑥 내렸다. 우리 둘의 상체가 드러난다.

"보시다시피, 저희 맨날 벗고 자요. 언제든 하고 싶을때 하려구! 영상, 끝!"

엥? 벌써? 그리고 대사도 좀 이상한데.

하지만 예림이는 영상이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안달난 듯 했다.

"오빠, 눈 감아요! 눈 감는게 편집에 도움이 될 거래요."

"어, 어."

눈을 감자, 갑자기 바로 전의 영상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나와 예림이가 누워서 카메라­ 카메라가 있어야 할, 초록 점이 있는 곳을 보며 웃는다.

브이로그에 나올법한 완전한 부감샷. 영상 안에서 예림이가 밝게 웃으며 내게 뽀뽀하고 가슴께까지 드러냈다. 대사를 말하고, 영상 끝.

"세상에..."

영상의 화질은 정말 깔끔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내가 영상 안을 돌아다니며 시점을 설정할 수 있다. 지금은 초록 점의 위치에서 우릴 내려다보지만 시점을 바꾸면 우리의 옆모습을, 예림이의 가슴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점을 모두 설정 가능하다.

이것만 있으면 한 장면에서 모든 각도로 영상을 딸 수 있다. 나는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짧은 영상이지만 라네보의 강력함을 체험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걸로 포르노를 찍고 올려서, 마나를 벌고. 예림이가 여러 사람으로 변신해가며 더 많은 영상을 찍고, 우린 부자가 될 거야!!!!

"세상에. 이 마법 엄청 대단하네요...!"

편집 모드에서 빠져나온 예림이와 나는 침대에 멍하니 앉았다. 진짜같은 영상에 압도되서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리고...

"거울이랑은 다른 느낌이네요. 움직이니까 이상해."

"나도, 내 얼굴 안 같네. 못생겼어."

영상에 나온 내 얼굴은 평소보다 조금 못생겨 보여서 조금 상처받았다. 이상하다. 거울 볼 때는 잘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음? 아닌데. 오빠 귀여운데."

예림이는 진짜로 내가 귀엽다고 믿는 표정이었다. 뭐야, 설레게.

그러며 손을 뻗어 내 볼을 죽죽 늘렸다. 손을 움직이면 예림이의 가슴도 출렁출렁 흔들린다. H컵의 가슴은 참 보기 좋구나.

하지만 가슴을 보고 있어도 섹스하고 싶은 마음은 저 멀리 사라졌다. 빨리 영상을 찍고 싶어서 흥분 상태다. 어떤 컨셉으로 찍어볼까? 첫경험? 아니면 하드코어한 영상? 아, 미치겠네!

생각에 빠진 나를 눈치챘는지 예림이 슬쩍 운을 띄웠다.

"으음­ 밥 먹구. 타투 해 주는 곳부터 찾아볼까요?"

아, 맞아. 타투. 타투를 해야 영상을 찍지. 근데 방금 영상은 아무리 봐도 진짜 예림이같다. 타투 하고 나서도 방안을 좀 생각해 봐야겠어.

침대 옆에 널부러진 바지와 티셔츠를 대충 입고 냉장고로 향했다. 오늘 아침은 오레오 오즈인데. 입에 맞았으면 좋겠네. 우유와 시리얼을 부어 식탁으로 가져갔다. 먼저 앉은 예림은 기대에 가득 차있었다.

코를 킁킁거리며 달콤한 향기를 마신다.

"음, 우와! 좋은 냄새! 이건 뭐예요?"

"시리얼이랑 마시멜로. 일단 먹어봐."

예림은 조심스레 시리얼을 펐다. 검은 색 쿠키와 마시멜로 한 조각을 같이 담으려고 노력중이다. 오레오 오즈를 처음 먹어봐도 먹는 방법을 잘 아는구만.

그리고 한입. 오물거리며 씹는다. 표정이 시시각각 변한다. 바삭거리는 식감에 놀라다가 입 안에 퍼지는 단맛에 기뻐하다가. 사각거리는 마시멜로를 씹어보며 황홀한 표정까지.

"으아아..."

귀엽네. 밥을 먹는 예림이를 두고 인스타그램을 켰다. 이 근처에 타투샵이 있을까? 건대 근처 타투샵을 검색해보자 꽤 많은 곳이 인스타그램에 나왔다.

일단 남자 사장 거르고, 여자 타투이스트만. #여자타투이스트 로 다시 검색하자 절반 넘게 줄어들었다.

피드를 내려보며 게시물을 훑어봤다. 하지만 다 고만고만해 보였다. 이왕 하려면 예쁜 데서 하고 싶은데. 그러다 타투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여성의 허벅지 뒤편에 새긴, 리본 모양 타투였다. 가터벨트의 리본같은 게 맨살에 그려져 있다. 침이 꿀꺽 삼켜질 정도였다.

타투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색감이 정말 부드럽고 예뻤다. 분홍빛 리본. 저게 예림이 골반 양쪽에 그려지면 얼마나 야할까?

계정주를 확인했다. 타투이스트 유다. DM으로 문의해야하나. 그런데 프로필에 써져있는 게 눈에 띄었다.

'여성 전용 타투샵! 남성 손님은 받지 않습니다. 문의 죄송합니다.'

음. 내가 따라가는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DM을 보냈다.

[ 저, 여자친구가 타투 받고 싶어하는데. 혹시 4개 하는 데 얼마정도일까요? ]

잠시 후 답이 돌아왔다.

[ 크기랑 종류 따라서 다른데. 한번 오셔서 상담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대략적인 가격은 알고 가고 싶은데. 상담 받고 120만원, 이러면 안 내고 오기도 좀 쪽팔리단 말야. 내 마음을 읽었는지 유다는 가격표를 사진으로 보냈다.

레터링 1cm당 만원. 10*10cm당 15만원. 미니타투 3x3 7만원. 디테일에 따라 추가금. 컬러 추가비용 있음.

머릿속으로 대략적인 비용을 계산해봤다. 85만원에서 100만원 사이. 못 할건 아니지만 부담되긴 하다...

에이 씨, 돈 떨어지면 주말에 쿠팡 상하차나 하러 가자! 호기롭게 다짐하는데. DM이 하나 더 왔다.

[ 혹시 여자친구분 계정으로 연락주실 수 있으신가요? ]

나는 예림이를 슬쩍 봤다. 인스타그램 계정은 없을 텐데.

[ 여자친구가 인스타를 안 해서요. ]

타이핑중이라는 점점점 표시가 한숨처럼 보였다. 줄었다, 늘었다. 썼다 지웠다. 뭔가 말하기 어려워하는 듯 했다.

내 프로필 사진이 남자라 꺼려지는 건가? 증명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예림이가 내게 키스하기 직전의 사진을 골랐다.

[ 지금 이게 저구요. 프사 보면 아시죠? 여친이 타투 받을 건데.]

말이 없다. 무슨 생각 중이지?

[ ...오늘은 손님 없어요. 편한 시간대에 상담받으러 오세요. ]

잘 됐네. 나는 출근시간을 점검했다. 오후 세시 출근이니까 아직 한참 남았다. 그럼 밥 먹고, 예림이랑 같이 상담받으러 가 볼까!

***

타투이스트 유다는 강민이 보낸 사진을 확대해봤다. 예림이의 얼굴을 특히 더.

"여자친구분이, 예쁘시네..."

작업실 안에서 유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름인데도 상체를 가리는 검은색 긴팔 레이스 가디건. 하체도 청바지로 꼭꼭 싸매고. 두꺼운 안경. 귓가와 혀에 피어싱. 어깨에 장미 타투. 소프트한 고스(goth) 패션.

[ 그럼 한시간쯤 뒤에 도착할 것 같아요. ]

알았습니다. 대답했다. 곧 상담받으러 오시겠지? 유다가 몸을 일으켜 전기포트에 물을 올렸다. 따뜻한 차가 마시고 싶었다. 물이 끓는 동안 머리를 벽에 기댔다. 남자를 작업실에 들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무서워.'

유다는 몸을 감쌌다. 에어컨보다 더 차가운 한기가 몸을 파고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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