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42. 원유 채굴
* * *
"근데 저, 마계에서 원격으로 마력을 수거하는 실험을 왜 안 했는지 알겠어요. 효율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아요."
그렇다. 마계에서는 계약서에 '관계에서 나온 마력을 샤를의 소유로 한다' 따위의 조항을 삽입할 필요가 없다. 원거리에서 마력을 뭐하러 수거하는가? 그냥 꿈에 찾아가 마력을 빨아내면 되는데. 아니면 직접 섹스하던가. 효율도 100배 차이가 나는데.
그 덕에 마계에서 원격 마력 수집은 아직까지 미개척 시장이다. 아니 가치가 없어서 버려진 폐광과도 같다.
하지만 인간계에서는 다르다. 아카식 레코드와는 다르게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접속하는 인터넷, 값싼 촬영기기, 폰허브와 같은 플랫폼.
그리고 강민이 발견한 계약서 3번 조항. 샤를도 3번 조항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표준계약서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강민이 발견해 준 덕분에 길이 활짝 열렸다. 계약을 맺으면, 원격으로 마력을 수집할 수 있다니!
'정말... 나 엄청난 행운을 붙잡은 게 아닐까?'
샤를은 폰허브에 영상을 올릴 생각을 한 최초의 서큐버스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마력을 수거하는 방법도 알아낸 최초의 서큐버스. 이건 어마어마한 금광을 캐내게 된 게 아닐까? 샤를은 기대에 차 강민의 손을 꽉 잡았다. 게이트를 넘어온 이후로, 강민 덕분에 하루하루가 희망이 넘쳤다.
"예림아. 가슴이 막 뛴다. 연금술도 할 수 있고, 변신도 그렇고. 많이 기대되네."
"저도요. 아, 마력이 모이면 뭐부터 해보지?"
샤를과 강민은 둘은 손을 붙잡고 연인처럼 걸었다. 둘은 지금 같은 꿈을 공유하는 중이다. 마력이 모이면 뭘 할까? 금을 만들어 볼까요? 아니면 연예인으로 변신해서, 오빠랑 데이트 해볼까요?
둘은 웃으며 집까지 걸어간다. 아직 폰허브에 계약서를 첨부하는 방법을 찾진 못했지만, 마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건 엄청난 수확이다. 막대한 양의 원유 매장지를 알아낸 것과 같은. 이제 추출할 수 있는 방법만 찾으면 된다...!
"예림아, 이런 계약도 괜찮을까?"
나는 신나게 걷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라 물었다.
"어떤 계약이요?"
"네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 앞으로 생산하는 마력을 너에게 준다는 계약을 맺으면 어때? 어짜피 인간은 마력을 쓰지도 못하잖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린 어마어마한 마력을 벌 거고"
떠드는 나를 보며 예림이 손을 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강민오빠, 그건 아니예요."
그 말을 하는 예림... 아니 샤를의 모습은 놀랍도록 단호했다. 평소에 나에게 쩔쩔매는 모습과는 달랐다. 차가운 눈빛. 얼음처럼 서늘한 목소리. 예림이라면 절대 보이지 않았을 어둑어둑한 눈동자. 깜짝 놀라 샤를을 바라봤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모든 계약은... 합당한 대가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해요. 오빠가 제안한건 도둑질이예요.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유리 구슬을 주고 황금을 받아내는 것이죠. 계약을 함부로 했다간 관계에, 내 영혼에, 미래의 삶에 상처가 나요."
샤를의 눈은 슬퍼 보였다.
"마계의 게이트가 닫힌 것도 그것때문이예요. 무리한 계약을 남발하고, 인간에게 수많은 고통을 안기자 인간들은 점차 악마를 믿지 않게 되었죠. 마력을 내주는 인간은 줄었고 게이트는 닫혔어요.
마계는 인간과 교류할 때만 해도 풍요롭고 활기가 넘치는 행복한 곳이었대요. 매일 저녁 고기 수프를 먹을 수 있고, 밤 늦게까지 초를 켜고 책을 읽을 수도 있으며 남는 밀가루와 설탕으로 쿠키를 굽는. 제 할머니의 할머니가 해 준 이야기인데, 꿈만 같은 이야기죠?"
예림의 손이 자신의 가슴 위에 얹힌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화려한 삶이 가슴을 헤집는 게 아팠나 보다.
"지금은 살아남기 위해서, 서큐버스들은 여덟 살이 되면 창관에서 꿈을 꾸게 하고. 열 두살엔 몸을 팔아요. 비참하고 어둑어둑하고 가난하죠. 바닥에 사는 자들에겐 특히 더더욱.
이런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악마들은 아직도 옛날 이야기를 해요. 싸구려 댓가로 영혼을 훔칠 수 있던, 인간의 고통을 이득삼아 자신의 삶을 부풀리던 때를. 그러며 침을 삼키죠. 인간계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다시 한번 영혼을 훔칠 생각밖에 없어요."
샤를의 눈이 고양이처럼 날카로워졌다. 이마가 찌푸러들고, 콧등에 주름이 잡혔다.
"전 그런 놈들이 끔찍하게 싫었어요. 그놈들의 본성이 어디 가는 건 아니죠. 인간에게 훔칠 수 없으니,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짜냈어요. 일을 하고도 밥을 굶는 날이면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인간들을 속이지 말아야지. 꼭 정당한 대가를 주고 거래해야지. 그래서 다시는 게이트가 닫힐 일을 만들지 않을거야."
그러다 혼자 너무 떠들었다는 걸 깨달은 샤를의 어깨가 푹 쳐졌다.
"미안해요. 오빠는 그냥 한 소리지만,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 제안은 기각이예요. 제 영상을 보고 해소한 욕망에서 나온 마력만. 공정하게. 그게 다예요."
"...아냐, 내가 너무 아무렇게나 말했네."
마계에 있을 적 옛날 이야기라니. 나는 내가 모르는 샤를의 일면을 훔쳐본 것 같았다. 의외로 마계 생활이 정말 힘들었구나...
근데 공정한 계약이라면서 어째 내 계약서는 너무 괜찮은 것 같은데. 나는 분위기를 풀 겸 농담을 던졌다.
"공정한 계약이라면서 나한테 좀 무른 것 같다?"
그러자 예림이 달빛을 받으며 쓰게 웃었다.
"하하. 오빠한텐 그렇네요. 왜 그렇지?"
예림은 볼을 긁었다. 조금 슬퍼 보이기도 하고. 음, 뭘까. 갑자기 내 마음 속에 한 가지 생각이 찾아들었다. 혹시 샤를이, 날 좋아하나?
음... 악마랑 연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랬다간 진짜로 화형당하는 거 아냐? 그리고 연애 안해도 뭐든 다 해 주는데... 만약 진짜 예림이랑도 연애할 수 있고, 샤를과도 같이 살 수 있다면. 영선 누나랑은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고.
꿈같은 망상에 가깝지만. 멍하니 생각에 빠진 나를 예림이가 쿡 찔렀다.
"오빠, 이제 집에 가요. 밥 먹고 싶어요. 단것만 먹었더니 속이 니글니글해."
으악. 그래.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샤를이 나한테 사귀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지레짐작해서 앞서나가진 말자. 진짜로 그러고 싶으면 언젠간 이야기하겠지.
"뭐 먹을래?"
먹거리 골목을 지나가며 예림이는 가게를 이리저리 살피고 코를 킁킁거렸다. 옛날 이야기를 들으니까 더 맛있는 걸 사주고 싶잖아.
"이건 뭐예요?"
아, 지지고. 이게 냄새는 진짜 괜찮단 말이지.
"문어랑, 양배추랑 해서 볶은 밥이거든. 소스랑. 맛있긴 한데 먹을래?"
"문어요? 그 다리 여덟개 달린 징그러운 생물? 세상에, 그걸 어떻게 먹어요?"
아무래도 저쪽은 바다가 없는 문화인지, 문어라는 말을 듣자 예림의 이마가 찌푸러들었다. 우리 둘의 만담을 보고 있던 주인이 끼어들었다.
"문어가 아니고 오징업니다. 그 비싼 문어를 어떻게 써요."
"오징어?"
머릿속의 사전을 뒤지는 예림. 하지만 게이트에서 준 지식에서 오징어는 없었는지 입술을 내밀었다. 그리고 냄새를 맡으며 갈등했다.
"모르겠어요오..."
그러자 주인장이 볶던 밥을 덜어 종이컵에 담아준다. 아마 평범한 커플이 이러고 있었다면 장사 방해하지 말고 꺼지라고 쫓아냈겠지만 예림의 미모는 정말 뭐라도 해 주지 않고서는 못 견딘다.
"한번 먹어보시겠어요?"
예림이 컵을 받아들고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보다가, 숟가락으로 한 술 떴다. 그러면서도 하얀 오징어 조각은 최대한 밀어내고 한 조각만 남긴다. 오징어가 쫄깃하니 맛있는데말야.
"음,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한 입. 의심스러운 듯 살짝 맛을 보며 우물거리다가, 커다란 눈동자가 더욱 커진다.
"음! 맛있어요! 오빠, 저 이거 사줘요!"
"알았어. 저, 이거 큰 사이즈로 두개 주세요. 저는 볶음면으로 해서."
"알겠습니다!"
요리를 하면서도 예림의 미모가 부러운지 연신 훔쳐본다. 그동안 옆 가게에 들러 버블티 두개를 주문해 들고 돌아왔다.
"윽, 그거 뭐예요? 개구리알? 도룡뇽 알?"
내 손에 든 걸 보며 예림이는 또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반응이 되게 재미있는데? 나는 모른 척 빨대를 쪼옥 빨아들였다. 검은 알갱이들이 빨대를 타고 올라가는 걸 보며 예림이 기겁한다.
"아우, 징그러! 뭐예요?"
"개구리 알 맞아. 근데 설탕에 절여서 진짜 달콤해."
"아으으으윽, 미쳤어! 그런 걸 왜 먹어!"
예림은 기겁하며 자신이 들고있는 버블티를 퍽 내려놨다. 그러자 밥을 볶던 주인이 웃는다.
"버블티입니다. 떡 비슷한 거예요. 남자친구분이 짖궃으시네. 외국 살다 오셨어요?"
예림이의 언동을 보면 좀 모자란 사람같긴 하지만, 미모는 다 용서할 수 있지. 예림은 내 눈치를 보며 다시 컵을 들었다.
"다 아는데 장난친 거거든요."
그리고 또 눈이 반짝! 버블티가 맘에 드는 듯 하다. 음, 이러고 있으니 좋네.
"예림아, 손 쓰지 말고. 가슴 위에 얹어볼래?"
버블티 컵을 잡아서 가슴 위에 올려놓자 사뿐하게 올라갔다. 부드러운 굴곡 위에 올라가 있는 컵을 보자 수명이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예림이는 그 상태로 무리없이 버블티를 마셨다.
거, 주인장 아저씨. 밥 탑니다. 그만 보쇼. 물론 보여주고 싶어서 시킨 거지만.
우리 둘은 가게 벤치에 앉아 사이좋게 컵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림이 먼저 씻고, 내가 씻는다. 이러고 있으니 영선누나랑 섹스한 게 꿈만 같군. 저녁엔 영선 누나의 후장 아다를 깨줬고, 이제 나가면 예림이랑 섹스하고... 그러자 자지가 우뚝 서오른다. 정말 행복하네.
머리를 닦으며 나가자 예림이이불을 슬쩍 들추며 나를 불렀다.
"오빠, 이리로 들어와요."
저 미소를 보니 마음이 따뜻해지는군. 이불로 들어가자 예림이 온 몸으로 나를 껴안았다. 그런데 감촉이 이상하다.
예림은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다. 이불 속에서 알몸으로 날 기다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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