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31. 저는 쓰레기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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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빠 빠빠빠 빠빠 빠빠빠
기상나팔 소리에 일어났다. 품 안의 예림이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꿈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엥, 근데 불침번 섰어야 하지 않나?
"저, 그게 어젯밤에 사람들이 아무도 안 일어나가지고. 그냥 초번 들어가고 끝났어요."
허, 내가 못 일어나서 끝난 거야? 좀 미안하네. 그런데 우리 내무반 사람들은 멍하니 일어나서 나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뭐야? 아니, 불침번 안 섰으면 좋은 거 아냐?
근데 아저씨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어우, 어제 너무 사실적인 꿈을 꿔서. 아직도 잠이 안 깨네요. 근데 강민 아저씨. 그... 여자친구랑 군대 있을때부터 사귄 거예요?"
"아뇨, 그건 아닌데."
"이상하네. 어제 꿈에서 아저씨 여자친구를 봤거든요."
"어, 저도!"
"저도 봤는데!"
"저, 혹시 이봉곤이란 사람한테 막 얻어맞는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파오후가 깜짝 놀라며 손을 들었다.
"아, 이봉곤 제 선임이거든요! 결국 찔려서 육군교도소 갔는데!"
"뭐야, 아저씨도 그 꿈 꿨어요?"
사람들은 어제 꿨던 실감나는 군대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예림의 꿈에 단체로 휩쓸려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닫고 모르는 일인데요, 이야기했다.
시간은 흘러 정훈 교육 시간이었다. 하지만 생각 하나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제 예림이가 한 말이 자꾸 맴돌았다.
'오빠 어제 내 영상보면서 자위했죠, 마력이 올라가서 알았어요!'
예림의 영상을 보면서 자위하면, 예림의 마력이 찬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에게는, 적용될까?
맨 처음에 예림이 말했지. 욕망이 해소되면서 나오는 에너지가 원천이라고. 나는 볼펜을 깨물며 나눠준 종이 뒷편에 글을 썼다.
'욕망의 해소 > 마력'
누군가가 예림이의 영상을 보고 자위하면 그것도 예림이의 마력으로 치환되는건가?
나는 흥분에 차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연금술을 배우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간단하게 계산해 봤다.
현실에서 인간과 섹스할 경우 1에테. 꿈에서는 10%로 줄어드니 0.1에테. 영상을 보고 자위했을 때 뭐라고 했지? 꿈에서의 10%, 혹은 5%라고 했지. 그럼 누군가 예림이의 영상으로 자위했을 경우 0.01에테, 아니면 0.005에테.
만약 폰허브같은 곳에 예림이의 영상을 올리면, 뷰가 얼마나 찍힐까?
나는 두근거리며 폰허브를 켰다. 당연히 차단당했다. 아차, VPN 우회.
현재 한국에서 인기 있는 포르노 순위. 조회수 792k, 16.1M. 792k면 79만 조회수란 거지?
여기에 0.01을 곱하면...
7920에테.
나는 흥분감에 입 안을 핥았다. 여기서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약 4000에테. 물론 여기서 조회수만 올리고, 자위를 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도 있겠지. 자위하는 사람의 비율을 10%로 잡아도, 영상 하나만 잘 터지면 400에테. 400일분 섹스 마력이 그대로 들어오는 셈이다. 연금술은 무리여도 육화, 혹은 형상변환 마법을 뻥뻥 써댈 수 있다. 아카식 레코드에서 24시간동안 거주도 가능해보였다.
긴장감에 입이 바짝 말랐다.
조회수가 16.1M이 나올 경우를 계산을 해봤다. 1M이 얼마지? 미국놈들 단위는 참 어렵단 말이지. 백만이라.
천 육백만. 16,000,000 곱하기 0.001.
만 육천에테. 연금술을 배우고 시동까지 하기에 충분한 수치였다. 눈 앞에 황금이 어른거렸다. 폰허브에 영상을 올리면, 만 육천에테가...!
"여러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두려울 것이 없다! 손자병법에도 나오는 말입니다!"
아잇, 시발, 깜짝이야! 앞에 선 강사가 자고 있는 예비군들을 깨우기 위해 우렁차게 소리질렀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나도 벌렁거리는 가슴을 붙잡았다.
나는 다시 내 계산식을 봤다. 순간의 판단으로 무작정 영상을 올리자고 조를 뻔 했네. 어제 예림이가 그랬지? 다른 사람이 자위를 해도 마력이 올라가는진 모르겠다고.
내가 예림이의 계약자라 일어나는 현상이면, 이건 정말 쓸데없는 계산이다. 폰허브에 영상을 올려도 기껏 조회수 대비 수익이나 벌겠지. 정식으로 포르노 스타 신청을 하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온리팬즈에서 영상을 팔던가.
그리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오, 이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마력이 없어도 돈은 벌 수 있겠군. 조회수 대비 수익을 받는 것도, 온리팬즈에서 영상을 파는 것도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고민하는데, 앞에서 예비군을 깨우기 위해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옳지 않은 길이면 가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김영환과 장지량 장군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다시 한번 예비군 강사가 소리지른다. 나는 옳지 않은 길, 이란 말에 연단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 두 장군은 공비 소탕을 이유로 해인사 폭격을 명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끝끝내 거부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둘을 처형하라 지시했지만 결국 무산됐습니다. 역사에 부끄럽지 않을 사람은 이 중 누구입니까?"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십시오. 내가 50년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은 적지만, 그래도 여기 서기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는 건 자신할 수 있습니다. 죽을때 가져갈 것도 이 자부심 뿐입니다. 이상입니다."
연설이 끝나자 예비군들은 관성적으로 박수를 쳤다. 이제 이틀차도 끝나가는구나 하는 박수였다. 하지만 난 손 사이에 얼굴을 묻고 생각에 빠졌다.
만약 예림이와 섹스한 영상을 폰허브에 올린다면. 진짜 예림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를 보며 웃어주던 눈. 고백하는 손님들을 돌려보내며, 곤란하게 한숨을 쉬던 어깨. 힘들다며 엉엉 들썩거리던 등. 내 고백을 미안하게 거절하던 입술.
거절당하던 때의 기억이 가시처럼 콕콕 찔렀다.
그리고 내가 예림이의 영상을 올린다면, 진짜 예림이의 남은 인생은 엉망이 될 것이었다. 엉덩이 처녀를 뚫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라. 물론 마력, 돈은 벌 수 있겠지.
야, 어짜피 예림이 걔 앞뒷구멍 다 따인 걸레라고 하잖아. 영상 하나 둘쯤 퍼진다고 무슨 지장 있겠어? 전남친 중 누군가가 푼 걸로 생각할걸. 들키지도 않을 거고. 내 안의 어두운 목소리가 속삭였다.
입닥쳐. 걔가 걸레든 아니든 상관없는 문제야. 문란하게 살았다고 해서 영상이 퍼져도 되는 건 아냐.
내 안의 어두운 목소리를 쫓아내며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일단 예림이 영상을 올리기 전에 테스트부터 먼저 해야 했다. 나 말고 다른사람이 예림이의 영상을 보고 자위하면, 마력이 올라가는지.
누구한테 부탁하지?
내 주변인에게 자위를 부탁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거리 같았다. 그렇다면 인터넷에, 얼굴 모자이크를 하고 올려봐?
퍼져나가는 걸 통제가 가능할까? 내 목소리를 알아볼 사람은? 모자이크를 해도 예림이를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 목소리도 변조해?
문제가 많았다. 통제불능의 영상을 올려서 나와 진짜 예림이의 인생을 꼬고 싶진 않았다. 나는 머리를 붙잡고 생각에 빠졌다.
안타깝게도 답이 쉽게 나오는 문제는 아니었다. 남은 예비군 훈련시간 내내 고민해봤지만 퇴소할때까지 아무 해답도 생각하지 못했다. 일단 예림이랑 같이 토론해 봐야겠군. 정문으로 터벅터벅 향했다.
"오빠! 여기예요!"
예림이가 폴짝폴짝 뛰며 손을 흔들었다. 맨 처음 만났을 때의 복장이다. 검정 터틀넥, 청바지. 속옷은 뭘 입었을려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가슴이 떨렸다. 예림은 아무 생각 없는지 옆으로 다가와 손을 잡았다.
"오빠, 보고 싶었어요!"
고민했던 모든 것이, 물에 씻겨내려가는 솜사탕처럼 사라진다. 예림이가 예비군 갔을 동안 잘 지냈을지, 여기에 어떻게 왔을지. 예림이에 관한 것만 궁금했다.
"예림아, 여기까진 어떻게 왔어!"
"버스 타고 왔지요~"
예림이가 손을 내밀며 V자 표식을 그렸다. 티머니 처음 써 봤어요. 버스란 거 마차보다 훨씬 편하던데요! 그런데 옆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예림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밥 안 먹었어?"
"먹긴 먹었는데..."
가까이서 보자 예림이의 눈가에 눈물 자국이 있었다. 뭐지? 그리고 피곤해보이는 걸음.
"오다 무슨 일 있었어?"
"아뇨..."
예림이의 발을 봤다. 내가 신던 슬리퍼인데, 이곳 저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여기 예비군 훈련장은 정말 꽤 멀었다. 나도 여기 오는데 한참 걸렸다.
잠깐, 이거 혹시.
머릿속에서 경보가 울렸다.
나는 예림이가 버스를 잘 타고 올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중이었다.
그래서 폰허브 생각한다고 정신팔려서. 주소 주고 찾아오라고 했는데. 예림이도 올 수 있다고 했지만 혹시 익숙치도 않으면서 호기를 부린 거였다면...
"혹시 몇시에 출발했어?"
"열한...시요..."
지금은 다섯시 반이다. 자그마치 여섯 시간을 헤맨 셈이다. 말을 하던 예림의 입꼬리가 갑자기 뚝 떨어졌다. 너무 슬프고 힘들면 입가를 제어할 수가 없다. 눈물이 둑처럼 흘러나왔다.
"흐극, 안 물어보고, 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중간에... 이상한 곳으로 빠지고... 버스도,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안 오고..."
뚝뚝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저 진짜 길 잃어버리고 오빠 못 보는 줄 알았어요. 여기 진짜 너무 멀어요. 너무 무서웠는데...
아이고, 끝나면 섹스하면서 폰허브 토론이나 하려고 했던 내가 병신이다. 아이고! 후회에 내 머리를 팍팍 쳐가며 예림을 달랬다. 버스도 처음 타 보는 애인걸! 정문에서 기다린다고 말했어도 그냥 택시 타고 오라고 했어야지!! 차라리 내가 대신 죽고싶은 마음이었다.
예림의 흐느낌은 거의 티슈 한 통을 다 쓰고서야 잦아들었다. 완전 부은 얼굴을 보이기 싫은지 고개를 돌린다. 마음이 아프다....
그러고 있는데 차 한대가 옆에 와서 멈췄다. 뉴 아반떼다. 뭐지? 창문이 내려오자 같은 내무반 아저씨가 보였다. 도지출발 아저씨다.
"아저씨, 무슨 일 있어요? 밖에까지 태워드려요?"
아무래도 도지는 착한 녀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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