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29화 (29/358)

〈 29화 〉 28. 예비군 훈련 1일차

* * *

"이런 개 엿같은..."

일자형 내무반은 상상도 못했다. 모포도 20년은 돼 보인다. 조교가 매 기수마다 세탁하고 말린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2002년 월드컵때도 이 모포는 있었을 것 같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학생예비군을 안 갔을까. 8시간만 하면 끝날 것을 2박 3일... 게다가 7월말 한낮의 더위는 사람을 잡을 기세였다. 속으로 후회를 곱씹으며 정훈교육, 유격훈련, 페인트탄사격, 목진지구축등의 훈련을 굴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같은 조 사람들이 유쾌하다는 점?

"정지, 정지! 누구냐!"

"인민군입니다."

"신원 확인되었습니다. 3보앞으로."

"선배님! 수하 제대로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총 끌고다니시면 안됩니다!"

"야, 내가 재밌자고 왔지 훈련받으러 왔니?"

자꾸 이러시면 교육관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다는 협박에 조원은 웃기는 걸 그만뒀지만, 덕분에 시간을 꽤 잘 보낼 수 있었다. 조원들과 나름 친해져서 내무반으로 돌아왔다.

"아, 아. 행정반에서 전파합니다. 현시간 17시부터 19시까지 샤워장 이용 가능합니다."

개운하게 씻고 밥먹는 게 낫겠지. 땀 나면 한번 더 씻고. 다른 아저씨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가져온 세면도구를 주섬주섬 챙겼다. 샤워장에 도착해 바지를 벗는 순간.

다른 아저씨들의 시선이 내 아랫도리를 향했다. 그냥 서 있어도 뒤에서 코끼리가 보이는 수준이니. 아차 싶었다. 예림이가 만들어준 흉기를 가리려고 해 봤지만 접은 수건으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샤워를 할 동안 샤워장은 기묘할 정도로 조용했다...

내무반 사람들은 석식 후 PX에서 딸기몽쉘과 슈넬치킨을 사서 모여 이야기를 풀었다. 대학생, 고졸 중소기업 입사자, 장발, 수염, 문신. 평소엔 어디 숨어있다가 예비군 받을 때 등장하는걸까?

"그러니까, 복학하고 새내기한테 고백했는데 까였어요. 그래서 빕스 사준 값 돌려달라고 했는데 무슨 벌레보듯 보면서 돈을 주더라구요. 시발련아...사랑했다..."

"아니... 그건 아저씨가 븅신짓을 한 것 같은데."

"그정도는 양반이죠. 저 단톡방 헷갈려가지고 직장 톡방에 도지말좆양봉호로섹스출발 쳤다가 사람들이 맨날 저한테 언제 출발하냐고 물어봐요. 심지어 도지 600원에 물렸다니까! 일론머스크 이 개새끼 분기별로 사형시켜야함."

"화성 갈끄니까~"

재미는 있었지만 무지성 인터넷 게시판을 그대로 구현해 놓은 사람들을 보자 머리가 아파왔다. 예림이 보고 싶다...

그러다 뚱뚱한 아저씨가 내 목을 가리켰다.

"아저씨, 목에 왜그래요? 모기 물렸어요?"

이런, 샤워하다가 데일밴드가 떨어졌나? 예림이가 진하게 남겨놓은 키스마크는 이제 노랑과 보라색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아저씨, 저게 뭔지 몰라요? 저걸 보고 모기물렸다 그러네."

모기자국이냐고 물어본 파오후가 씨익씨익 숨을 먹었다. 아까 자신을 인민군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낄낄 웃었다.

"아, 쪼가리잖아요. 쪼가리 아저씨, 몇년차에요? 2년차?"

"1년차요."

"그럼 스물 셋? 이야, 여친이 화끈하시네."

"시발, 부럽다."

여친이라. 여자친구라는 말만 들어도 웃음이 나온다. 예림이가 여친은 아니지만 여친보다 더 좋지. 굳이 부정하진 않고 머리를 긁자, 사람들이 떠들썩해졌다.

"사진 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 자랑하고 싶다. 평소에 좀 더 많이 찍어놓을 걸. 예림이 보내준 사진을 꺼냈다. 휴대폰을 산 후 길에서 뽀뽀하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본 사람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와, 진짜 여친이에요?"

"존나 이쁜데? 연예인인가?"

"와, 가슴이 뭔...크롭탑이 다 들리네? 얼마나 큰거야? 가려져서 안 보이는데."

"H컵인가 그랬을걸요."

내무반 안이 조용해졌다. 나에 대한 부러움과 질시의 시선이 쏟아졌다.

"아저씨, 돈 얼마 주고 데이트한거에요?"

"너 아까 이 아저씨 자지 못봤냐? 팔뚝만하던데. 최강자지면 이런 이쁜 여친이 붙네. 와..."

"사진 더 없어요?"

사진이라... 한번 물어볼까?

[ 예림아, 사진 하나만 보내줄 수 있어? 주변사람한테 자랑하게. ]

그러자 곧바로 사진 하나가 날아왔다. 에블린에서 산 민트색 레이스 속옷과 팬티를 입고, 눈가에 V를 올리며 수줍게 웃는다. 흘끔흘끔 훔쳐보던 예비군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세상...좆같네..."

"이게 가슴이야 수박이야?"

"아저씨, 좀만 더 보여줘요! 확대좀 해볼 수 있어요?"

에이, 왜들 그러세요. 하며 폰을 닫았다. 사람들은 아쉬움에 못내 탄식하면서 내 목에 있는 키스마크를 흘끔거렸다. 마음껏 패배감에 젖어라.

그때 카톡이 한번 더 울렸다. 나만 확인해 봐야지. 이번엔 동영상이었다.

[ 오빠 없으니까 심심해요. ]

그러며 브래지어를 툭 풀어헤친다. 가슴이 출렁거리며 살짝 내려왔지만, 처지지는 않았다. 선홍빛 유두가 잠깐 보였다가, 손으로 감싸 다 가렸다. 풍만한 가슴이 예림의 손에 담겨 출렁거린다.

[ 빨리 와야 해요? ]

그러면서 카메라쪽으로 다가오며 전면카메라에 키스. 정말 폰을 완벽하게 잘 쓰는구나. 나는 행여 주변 예비군에게 들킬새라 다시 폰을 집어넣었다. 집에 정말 빨리 가고싶었다.

오늘 불침번은 둘번이라...

불침번 전까지 좀 자둬야 했지만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매일 예림과 껴안고 자다가 갑자기 없으니 허전했다. 게다가 일 2회씩 섹스하다가 갑자기 섹스하지 않으니 다리 사이에서 아우성을 친다.

아무래도 한번 빼고 자야할 것 같은데. 나는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 맨 끝칸으로 향했다. 주머니에 넣어 온 이어폰을 끼고 동영상을 켰다.

아까 보내준 가슴 동영상이 아닌, 예림이의 애널 처녀를 뚫을 때 찍어놨던 영상. 약 15분짜리. 영상 속의 예림이가 '애널 마음대로 쑤셔주세요' 란 부분이 굉장히 꼴렸다. 특히 항문 아다를 깨며, 굵은 대물이 천천히 들어가는 부분에선 머리가 덜덜 떨릴 지경이다. 제발 잠시만 멈춰달라고 애원하는 부분도 그렇고.

앞으로 자주 찍어놔 볼까, 생각하며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이러고 있으니 진짜 예림이가 나오는 영상물로 자위하는 것 같네. '예림이와 닮은' 미카미 아리나따위가 아니다. 진짜 예림이로... 사정감이 금세 올라왔다.

예림의 엉덩이가 조여드는 부분에서 나도 사정했다. 휴지를 거의 뚫어버릴 기세였다. 이렇게라도 안했으면 오늘 밤을 샜겠지?

젠장, 빨리 돌아가서 예림이 울 때까지 항문을 괴롭혀 주고 싶네. 젤 듬뿍 쓰면서 말야.

자리로 돌아간 나는 잠을 청했다. 곧 불침번이겠지. 그때까지만이라도 좀...

"야, 김강민, 일어나."

"이병 김강민."

나는 내 얼굴을 비추는 랜턴 불빛에 퍼뜩 잠을 깼다. 시발, 뭐야. 하지만 내가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선임 이봉곤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시발?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좆됐다. 내가 방금 뭐라고 한거지? 아니, 그보다 내가 알람 맞춰놨는데 왜 안 울렸지? 손목에 차고 있는 지?을 만져봤지만 멀쩡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따라 나와. 환복부터 하고. 오늘 김하사니까 빡구 넌 혼자 가서 탄약 받아오고. 미친 새끼. 쳐 자다가 선임 욕도 하고. 그냥 오늘 저지른 김에 근무 빵꾸까지 내지 그려냐? 걍 코골면서 주무시고 계시지 그러셨어요. 왜 일어나셨어요? 걍 집 안방마냥 퍼 자지 왜 일어났냐고."

아직 근무까지는 5분은 남아 있었다. 이봉곤은 복도에 서서 조용히 윽박질렀다.

"너 일어나면서 뭐라그랬냐?"

"시정하겠습니다."

"이새끼야, 귀에 좆박았어? 니가 일어나면서 시정하겠습니다. 뭐 그러면서 일어났어?"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뭐가 끝나? 넌 씨발 진짜 세상 좋을 때 왔다. 하. 일단 근무 들어갔다가, 내일 아침에 니 맞선임 불러다가 내 앞에다 앉혀놔. 에이 씨발, 좆같아서. 내가 빨리 전역하던가 해야지."

이봉곤이 복도에 침을 퉤 뱉었다.

"이거 닦고 들어가라."

건빵주머니에 있는 티슈로 침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씨발,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무슨 실수를 저질렀든 시간은 가고 아침은 온다. 차라리 해가 뜨지 않길 빌었지만 여전히 해는 뜨고, 구보는 지겹고, 아침밥은 똥국이고, 한숨을 푹푹 내쉬는 맞선임과 같이 건조장으로 가야 했다.

"야, 이새끼 교육 제대로 안 시키냐?"

날 옆에 세워두고 맞선임의 가슴팍을 걷어찬다. 시발새끼. 때리려면 차라리 나를 때리지. 맞선임은 가슴을 걷어차이고도 필사적으로 자세를 세웠다. 한번 더 걷어차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가 들어왔다.

"저, 이봉곤 상병님!"

"아, 왜!"

"오늘 강민이 면회외박이라. 지금 준비해서 나가야지 말입니다."

면회 외박? 나한테 면회올 사람이 누가 있더라?

"뭐? 에효, 씨바. 진짜 가지가지... 야, 내가 준비시켜서 나갈테니까. 꺼져."

"...옛씀다."

"야, 팔자 좋다? 누구는 몇개월째 편지도 안 오는데, 누군 면회외박도 가고."

그리고 이봉곤은 진짜로 내 옆에 붙었다.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안했다. 차라리 면회외박을 안 나가겠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옷을 입는 옆에 딱 붙어 끊임없이 욕을 했다. 시발새끼, 표정 존나 좋네. 누구는 후임한테 욕먹어서 기분 좆같은데. 요새 일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아주 씨발 그냥 선임 다 먹겠다 이거야?

차라리 한대 패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면회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날 안내해줘야 할 헌병도 면회장 안을 흘끔거린다. 이봉곤도 뭐야 씨발,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안에서 누가 튀어나왔다.

"강민 오빠, 세상에, 얼굴이 왜 이렇게 탔어요!"

검은 브래지어를 입었다는 걸, 그리고 자신의 가슴이 H컵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하는 듯한 옷이다. 라이스페이퍼마냥 얊은 흰색 티셔츠, 그 아래로 비치는 검정 브래지어. 골반의 굴곡과 엉덩이의 곡선을 착 붙어 드러내는 타이트한 청바지. 방금 전까지 욕을 쏟아내던 이봉곤도 입을 딱 멈췄다.

맞아, 예림이가 면회 오기로 했었지.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