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24화 (24/358)

〈 24화 〉 23. 영선 누나의 첫번째 똥까시 수업

* * *

콰앙. 콰앙! 영선의 훅이 샌드백에 꽂혔다. 모래주머니가 출렁거리며 비명을 지른다. 50kg짜리 덩어리를 꿰뚫는 묵직한 펀치에 관장이 혀를 찼다.

"야, 너 진짜 올림픽 나가볼 생각 없냐? 여자 라이트체급 메달권이라니까."

"됐어요! 무슨 4년동안 어떻게 기다려. 면벽수행도 아니고."

"아니, 이름이라도 올려 봐!"

관장의 권유를 못 들은 체 하고 경쾌하게 스탭을 밟았다. 뒤로 빠졌다가 완벽한 체중이동으로 꽂는 펀치. 다시 한번 샌드백이 휘청거렸다.

강민과 예림을 보내고 샌드백만 두들기는 게 한시간 반 째. 건장한 성인 남자도 다섯 번은 지쳐 나가떨어질만한 운동량이었지만 영선의 마음 속을 다스리기엔 부족했다.

"야! 무식하게 그만 쳐! 너 손목 나간다?"

영선은 관장이 만류하고 나서야 트레이닝을 그만뒀다. 물 1.5L 페트를 다 마셔 비워버리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입구에 있는 전신 거울을 빤히 바라봤다. 땀이 비 오듯 흘러 운동용 브라탑을 흠뻑 적셨다. 만족스러운 운동이었다.

좀 더 구석구석 살폈다. 복서용 바지. 사슴처럼 날렵하게 빠진 근육, 탄탄한 어깨(어깨가 넓으면 허리가 훨씬 갸름해 보여서 이건 좋았다). 운동할 때는 정말 방해되서 떼 버리고 싶은 C컵의 가슴. 영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객관적으로... 예쁜 몸이긴 한데.'

영선은 방 안에 남아있던 속옷이 정말 신경쓰였다. 일단 크기와 재질. 예림이라고 했나? 강민의 친척 동생이 두고 간 브래지어는 자신의 속옷과 판이하게 달랐다. 컵도, 디자인도... 검은색 실크 레이스 브래지어라. 색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면 속옷과 비교해 보면 부끄러워졌다. 색깔만 맞춰 입는 것도 힘들어하는 영선에게 그런 속옷은 생각조차 못 해본 부분인데. 강민이도 저런 걸 좋아하려나?

물론 이건 부수적인 문제다.

'게다가 왜 속옷을 벗어놓고 간 걸까?'

영선은 계속 신경쓰였다. 직접 물어보긴 좀 그래서 마음 속에 담아두려고 했지만, 마음속에 담아두자 자꾸 스멀스멀 괴롭힌다. 대체 왜 예림이가 속옷을 벗은 거지? 브래지어는 불편해서 벗을 수 있다고 쳐도 팬티까지? 그리고 다시 레깅스만 입고 잤다라...

대체 방에서 뭘, 뭘, 뭘, 뭘 한거야...? 혹시 사촌동생이랑...?

"아아아악!!!"

영선은 번뇌를 떨치기 위해서 찬물로 샤워를 퍼부었다. 그리고 샴푸+바디워시 올인원 제품으로 깔끔하게 몸을 씻어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의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폭주하는 머릿속을 간신히 진정시킨다.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볼 때 강민이는 바른 사람이라고! 사촌동생이랑 그런 사이일 리가 없잖아!'

'사촌동생 아닌 거 아냐?'

어?

머릿속에서 똑똑한 영선이 속삭였다. 펀치를 피하거나 사우스 포와 오소독스 중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할 때 등장하는 친구다. 감이라고도 하고, 촉이라고도 하고. 그 생각은 영선을 사로잡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영선은 분홍 캐노피 침대에 덜렁 드러누워 휴대폰을 보며 강민에게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 지 고민했다.

'야, 예림이 걔 진짜 사촌동생 맞아?'

너무 직접적인데.

'예림이 속옷 놔두고 갔더라?'

그 다음엔 뭐라고 물어보지?

영선은 한참 고민했다. 대체 뭐라고 연락하지?

***

영선이 샌드백을 두드려 댈 동안 욕조에서 끈적한 정사를 즐기던 강민은 나와서 침대에 누웠다. 예림이의 삐짐도 많이 풀린 것 같고. 피곤하고 토요일이니까 좀 더 자 볼까... 그럼 꿈에서 영선 누나랑 섹스할 수 있겠지? 그러다 궁금증이 떠올랐다.

"예림아, 영선 누나 몸으로 변할 수는 있어?"

그러자 예림이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음... 새로 육화(?化)하는 게 20에테정도 들거든요."

켁. 20에테라고 하면 섹스 20번? 그래도 아예 못할 정도는 아닌데...

"변화한 다음엔 다시 돌아와야 하잖아요. 총 40에테는 필요해요. 애초에 너무 사치스럽다구요! 제가 12년동안 죽어라 일해서 모은 게 20에테인데..."

예림은 내가 이런 걸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모으기 쉬운 마력이라고!

"그냥 꿈 속에서 하면 안돼요?"

"거 뭐냐, 꿈에서 할 때는 좋은 데 깨어나서 텅 빈 감각이 너무 싫어."

실제로 그랬다. 했다는 감각은 똑똑히 남지만, 뭔가 결정적인 게 부족했다. 영혼이 채워지지 않는 듯한...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예림도 한숨을 쉬었다. 꿈으로 성욕을 해결한 사람들이 항상 제기하는 문제인 듯 했다.

"형상 변화의 마법도 있긴 한데, 배우는 데 1000에테는 필요해요. 마계 기준으로 제가 600년 정도 일하면 벌 수 있네요."

"인간계 기준이면 3년 정도면, 아니 1년이면 되지 않을까?"

"하루에 세 번씩 해야 달성 가능한 수치죠. 제가 밖에 나가서 다른 남자랑 자길 바라시는 거예요? 오빠가 하루에 세 번씩 할 수 있다면 저야 좋긴 한데."

나는 포기하고 손을 들었다. 일단 꿈 속에서 영선 누나랑 섹스하는 데에 만족하겠어!

"오늘도 연기 잘 부탁해."

"음, 정확히 말하면 제가 직접 연기하는 건 아니고.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아, 말로 수영을 설명하는 것처럼 어려운 문제예요..."

나는 벌렁 드러누워 잠들기를 기다리며 예림의 설명을 들었다. 꿈에서 예림이가 직접 연기하는 게 아니라고?

"저번에 꿈 속에서 오빠의 고백을 수락했잖아요. 이게 제가 연기를 하고 있는 건 맞는데, 뭐랄까. 자동으로 된다고 해야 하나? 오빠의 기억이나 내 기억에 맞게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고 해야 할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아, 오빠 꾸벅거리네."

아, 잠든다...

강민은 잠든 듯 했다. 예림도 강민의 베개를 베고 누웠다.

그 때 따르르릉, 전화가 울렸다. 자고 있었는데 깨다니, 젠장! 강민은 깨서 전화를 받았다.

영선 누나였다.

"야, 지금 예림이랑 우리 집 올래? 할 이야기도 좀 있고."

지금? 어쩔 수 없지. 할 수 없이 일어났다.

"알았어요. 갈게요."

예림과 같이 영선누나의 집에 도착했다.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소주와 삼겹살.

예림은 혼자 먼저 신나서 마시다가, 어제 잠들었던 방으로 들어갔다.

영선 누나와 나만 남아 술을 많이 마셨다.

그러다 영선누나가 입을 열었다.

"저... 예림이 있잖아. 진짜 네 사촌동생 맞아?"

갑자기 등에 소름이 돋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맞다고 잡아떼야 하나? 아니면 솔직하게 대답할까? 나는 질문으로 되돌려 주는 걸 택했다.

"그건 왜 물어봐요?"

"너 어제 예림이랑 잤지?"

Re­raise. 포커에서 판돈을 올렸는데, 올린 판돈보다 더 큰 금액으로 되빠꾸를 쳐온다. 나는 아찔함에 눈을 감았다. 여기서는 방법이 없다. 깔끔하게 항복하는 수밖에.

"잤어요. 사촌동생도 아니고 제 섹파예요. 그래서, 어쩔 거예요? 거짓말 한 건 미안해요."

영선 누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술만 홀짝거렸다. 그러다 얼굴을 빨갛게 붉히고는 입을 열었다.

"나랑도 섹스해주면 안 돼?"

내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뭐든 다 할게."

나는 홀린 듯 일어났다. 영선 누나의 손을 잡고 분홍 캐노피 침대로 걸어갔다. 우리 둘다 옷을 다 벗고...

뭔가 이상했다. 나는 되짚어 봤다. 술자리의 처음 시작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영선누나 집에 올때 어떻게 왔지? 걸어왔는지 킥고잉을 타고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옷은 뭘 입겠다고 골랐지? 기억나지 않았다. 예림이한텐 뭐라고 설명했지? 안 한 것 같은데 왜 저 방 안에 누워있지?

영선누나가 문도 열어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들어왔지?

젠장, 이거 꿈이구나!

나는 기겁해서 정신을 차렸다. 도입부 한번 더럽게 현실적이네! 특히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깬 부분! 여기까지 오는 중간 중간이 빠져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깜빡 속을 뻔 했다.

이제 대략 이 꿈이 돌아가는 원리를 알 것 같았다. 나와 예림의 기억을 읽어서 세트장을 만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 안에서 평소처럼 움직인다. 전화를 받고 여기에 온 것처럼. 그러다가 갑자기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생긴다. 예림이랑 잤지? 하고 묻는 부분처럼. 우리는 물살에 휩쓸린 조각배처럼 상황에 휩쓸린다.

아마 정신을 차리지 않았으면, 나는 꿈인 줄도 모르고 자연스레 영선누나와 섹스했을 것이다.

'이거 완전, 인셉션이랑 비슷하네!'

꿈이라는 걸 눈치채기 전까지는 평소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꿈이란 걸 알 길이 없으니까. 환상이라는 걸 깨달아야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

'근데 난 왜 자꾸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닫지?'

강민은 머리를 긁었다. 어찌됐든 무슨 상관이랴. 영선누나랑 하고 싶은 걸 즐기면 되지. 어짜피 꿈인데 좀 막 나가볼까. 예림이한테 받은 이후로는 계속 생각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전여친이 해 주던 이게 밤마다 생각나서 미칠 것 같다고. 지금 여친은 미쳤냐고, 죽어도 안 해준다고 하던 그것...

"누나, 림잡이 뭔지 알아요?"

꿈 속의 영선 누나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림잡? 그게 뭐야?"

아, 이렇게 말하면 모르려나?

"똥까시라고 말하면 알아요?"

"뭐, 뭐?"

영선 누나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애초에 단어부터가 더럽게 천박하다. 똥구멍 + 사까시를 합쳐서 똥까시라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일단 좋은 단어가 아니라는 건 알겠지. 하지만 영선누나는 그게 뭔지 감도 못 잡는듯 했다. 음, 내가 먼저 몸으로 가르쳐 주는 수밖에 없나.

"누나, 뭐든지 한다고 했죠? 일단은 5분동안, 제가 뭘 해도 움직이면 안돼요?"

"자, 잠깐만..."

"자, 누나. 일단 약속부터 해요."

손가락을 내밀고 억지로 도장을 찍는다. 얼떨결에 손도장을 찍은 누나는 기대감과 공포감이 섞인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그럼 교육을 좀 시켜볼까. 어짜피 꿈인데, 뭐 어때! 내가 여기서 아무리 영선 누나에게 가혹하게 대해도 현실의 영선누나에게는 타격이 하나도 없다. 상상 속에서 영선누나랑 섹스하는 거랑 똑같은 거지! 리얼한 상상이라는 게 좀 차이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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