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21. 행오버
* * *
'역시 내 생각이 맞았네.'
영선은 방에 들어와서 물을 마시다가 벗겨진 츄리닝을 봤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검정색 사각팬티까지. 술에 취해 잘 돌지 않는 머리는 그걸 보고 계산을 시작했다.
'강민이, 밤중에 옷을 다 벗어던지고 자는 거야? 잠버릇 한번 더럽네! 옆에 친척 여동생도 있는데.'
물을 마시고 나가려다 머릿속에 전구가 하나 켜졌다. 그럼 저 이불 아래는 홀딱 벗고 있다는 거야?
그 다음으론 일사천리였다. 자는 지 확인하고 이불을 걷자 거대한 기둥이 드러났다. 아침이라 그런지 수직 손잡이처럼 솟아올라 있다. 영선은 침을 꼴깍 삼키며 우람하게 솟은 자지를 응시했다.
'아아... 만져보고 싶다... 저게 진짜 내 엉덩이랑, 보지랑 번갈아서 쑤셔주면 얼마나 좋을까...나한테 헐렁하다고 욕하면서.'
꿈 속에서는 가까이에서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콧김이 닿을 정도로 가깝다. 정말 압도적인 크기였다. 보고만 있어도 입에서 침이 흐를 정도였다. 심지어 영선의 아랫도리도 조금씩 습기가 차고 있었다.
'아, 만져 볼까. 만지면 깨려나? 입으로 핥으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아니면, 펠라치오? 격렬하게 내 목구멍에 쑤셔 주는 걸까?'
영선이 본 영상물 중, 소파에 눕히고 머리는 소파 밖으로 뺀 후, 입에 격렬하게 박는 작품도 영선의 최애 작품중 하나였다. 손과 발은 묶인 채로. 숨을 컥컥 몰아쉬며 눈물을 흘려도 용서 없이.
영선은 딥쓰롯 당하는 상상을 하며 뚫어지게 자지를 쳐다봤다. 시선 강간이라는 말도 모자랄 지경이다. 시선 윤간? 하지만 자는 척을 하는 강민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이게 지금 뭔 상황이야! 누나가 지금 내 아랫도리를 관찰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제 PC방에서 한번 만지고는 실제로 보고 싶어진거야? 확실히 여자들이 대물을 좋아하기는 하네! 아니 근데 너무 부끄러운데요!
실눈을 뜨고 쳐다보자 누나는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 잘근잘근 깨무는 입술. 붉게 달아오른 뺨. 연신 침을 삼켜대는 입술. 아니, 언제까지 보고 있을 거야!
몸을 뒤척이는 척 하며 다리를 접고, 예림이가 누워 있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며 이불을 돌돌 말았다. 영선 누나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새빨간 얼굴로 후다닥 방을 나갔다.
아... 안되겠다... 아무래도 예림이한테 오늘 저녁에 영선 누나 얼굴로 좀 나와달라고 해야지... 세상에. 이게 뭐람. 영선누나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치녀네.
일단 나가기 전에 예림이한테 속옷을 입히려고 했지만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어쩔 수 없이 방 구석에 굴러다니는 종이봉투에 팬티와 브래지어를 담았다. 디자인이 어긋나 있는 게 미안했다. 브래지어도 사고, 속옷도 같이 사야겠군.
집에 가기 전에 가게에 들러야겠어. 일어난 척 기지개를 펴며 방 밖으로 나왔다. 영선누나는 나를 보더니 얼굴이 빨개져서 냄비에 물을 올렸다.
"어, 어, 어. 일어났어?"
말도 더듬거린다. 모른척 해야지. 나는 앉은뱅이 식탁을 펴고 부엌에 있는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냈다. 내가 곁으로 다가가자 누나는 온 몸을 움찔거렸다. 아니, 그러니까 남의 자지를 왜 훔쳐봐요! 부끄러운 짓은 하질 말아야지!
"누나도 방금 일어났어요?"
"어. 어, 어. 콩나물 넣어서 라면 끓일 거니까. 먹고 집에 가. 우리 어제 술 많이먹었나보다."
영선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수치심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왜 자는 후배 이불을 들춰봤을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벗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새끼가 변태인 거지. 왜 남의 집에서 자는 데 바지를 벗어! 영선은 더듬거리며 말을 걸었다.
"야, 야. 너 무슨 잠버릇 있냐? 방에 보니까 바지가 벗어져 있던데."
"아, 원래 저 더우면 홀딱 벗고 자요. 누나 본 거 아니죠?"
"미,미,미,미쳤냐. 그런 걸 왜 봐. 징그럽다야. 어우, 상,상상도 하기 싫네."
영선누나는 거의 공항도둑마냥 말을 절었다. 우리 둘은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라면이 끓는 걸 기다렸다. 냄새를 맡은 예림이 눈을 비비며 나왔지만 식탁 앞에서 꾸벅꾸벅 조느라 우리 사이는 계속 조용한 상태였다. 질식할 것 같다...
"아으, 너무 매워요!"
예림이는 매운 음식이 익숙하지 않은지 기침하며 라면을 뱉었다. 덕분에 다행히 어색하던 분위기가 아주 조금 풀렸다. 물에 라면을 좀 씻어주며 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누나, 라면 잘 끓이네. 맛있다."
"맛있지? 많이 먹어."
집게로 면을 퍼 주고, 국물도 앞 그릇에 부어준다. 음, 영선누나는 왜 나에게 라면국물을 주는 걸까. 음. 아, 이거 진짜 영선누나가 나한테 관심있는 건가? 정신쪽인 쪽보다는, 육체적인 쪽으로? 그제까지만 해도 키스하다가 집으로 가라고 밀쳤는데. 이거 내 거시기 보고 사람이 변한 게 맞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생각 때문에 체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먹어야 숙취가 가시지. 라면을 꾸역꾸역 먹고는 집을 나섰다.
"누나, 저희 가볼게요. 주말 잘 보내요!"
"응, 너도 주말 잘 보내구"
어색함이 감도는 작별인사를 하고 예림이와 같이 시내 중심부 가게로 향했다. 일단은 속옷을 좀 사줘야겠어. 영선누나 집은 번화가에 가까웠다. 이 쪽에서 레이스와 프릴이 가득한 가게를 봤던 것 같은데...
음, 저기 있다. 며칠 전까진 나와 전혀 관계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안했는데. 햇빛에 정신을 못 차리는 예림의 손을 끌고 가게로 들어갔다. 알바생들의 눈길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민트, 하양, 검정, 빨강... 형형색색의 레이스 속옷이 나를 맞았다.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하고 얼굴을 돌렸는데 점원이 다가왔다.
"손님, 혹시 보시는 제품이 있으실까요?"
예림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머리카락은 딱히 손질 안했지만 흑단처럼 예쁘게 윤이 나고(머리를 흔들때마다 찰랑거린다), 화장은 어제 격렬한 정사를 거치며 망가졌지만 예림이 그러고 있으니 그것마저 패션으로 보였다. 알바도 이런 예쁜 사람은 처음 보는지 예림을 끊임없이 쳐다봤다. 여자한테도 인기가 많네.
"65H컵 제품 있어요?"
어째 H컵은 디자인이 몇 개 없네... b,c 사이엔 이쁘고 화려한 게 꽤 있는데. 역시 크면 불편한 점도 있는 법이군. 예림과 나는 숙취에서 좀 벗어나 제품을 훑었다.
그런데 알바끼리 속삭이는 게 들려왔다.
'봤어? 속옷 안 입으신 것 같은데.'
뭐? 잠깐, 그러고 보니. 영선누나 집에 속옷 담아둔 걸 까먹고 냅두고 왔다! 아오 씨, 누나가 보면 무슨 생각을 할 지 모르겠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예림의 몸매가 다 드러나고 있다는 거였다. 레깅스 아랫부분을 보자 적나라한 도끼자국이 보였고, 크롭탑 티는 아랫가슴을 거의 다 드러내는 중이었다. 걷는 동안 얼마나 얼빠지게 걸었는지, 이제서야 눈치를 채다니.
'예림아, 이거 먼저 들고 가서 입어봐.'
나는 디자인 상관 없이 손에 집히는 대로 예림에게 속옷을 건넸다. 알았어요, 하고 들어간 예림이 얼빠진 비명을 질렀다.
"어, 어?"
레깅스 안에 속옷을 안 입었다는 걸 눈치챘나 보다. 나까지 부끄러움이 올라온다. 속옷 세트 몇 장을 사이즈만 맞춰서 바구니에 넣고 점원에게 건냈다.
"저, 입고 들어간 것까지 싹 계산해 주세요."
점원은 차가운 눈으로 날 보며 '손님, 속옷을 안 입고 오시는 그런 행동은 상당히 곤란한데요'라는 무언의 압박을 내게 가했다. 젠장, 나도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고! 차라리 플레이었다면 부끄럽지나 않지!
계산을 마치자 예림이는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탈의실을 나왔다. 우리는 뒤도 안 보고 가게를 나섰다. 직원이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영수증은 날 더 아프게 만들었다. 가격도 안 보고 골라담은 속옷은 근 15만원에 가까웠다. 제기랄, 이런 쓸데없는 지출을 할 줄이야!
"집엔...택시타고 가자..."
이왕 쓴 김에 더 쓰자... 15만원이나 16만원이나 거기서 거기야. 우리 둘은 푹 퍼진 파김치처럼 간신히 택시를 탔다.
"...예림아... 나 먼저 씻을게... 몸만 씻고 나올테니까 얼마 안 걸릴거야."
집 바닥에 누운 예림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죽은 듯 하다. 욕실 안에 들어가 옷을 벗고 따뜻한 물을 틀자 뜨거운 김이 올라왔다. 몸을 적시자 피곤함이 좀 가셨다. 일단 정신을 좀 차리자... 잠깐 따뜻한 물을 맞고 있는데 갑자기 욕실 문이 열렸다.
예림이 피곤한 얼굴로, 머리를 틀어올리고 들어왔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젓가락으로 대충 머리를 찝었는지 머리끝에 젓가락이 보인다. 수건으로 몸을 가렸지만 가슴은 다 가려지지 않아 압도적인 융기를 자랑한다.
"오빠... 저 너무 피곤해서 못 견디겠어요."
나는 황급히 욕조 안에 앉았다. 갑자기 들어오니까 놀랐잖아!
"같이 씻어요, 오빠. 욕조에 물좀 받아봐요."
어, 응? 응. 알았어. 나는 수건 뒤로 드러나는 예림이의 모델같은 엉덩이 라인, 허리를 감상하며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
근데 이건 진짜 뭐지?
영선은 방 구석에 있는 종이봉투를 빤히 바라봤다. 안엔 브래지어와 속옷이 담겨 있었다. 뭐지? 이건? 설마? 옷을 벗을 일이 뭐가 있지? 그리고는 레깅스를 다시 입었다고?
영선은 혼란스러웠다. 종이가방을 방 가운데에 두고 고심을 해봐도 변하는 건 딱히 없었다.
"얘네... 밤중에 이상한 짓 한 건 아니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