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18. 예림아, 공공장소에서 뭐하는 거야!
* * *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 건 나였다. 이 분위기 뭔데!
"예림아, 심심했어? 오기 전에 연락하고 오지."
그래야 내가 안 놀랄거 아냐! 영선누나한테 사촌이라고 뻥 친거 들키는 줄 알았네! 하지만 내 마음도 모른 채 예림이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집 안에 혼자 있으니까 심심해, 오빠."
예림이는 평소 하던 존댓말 대신 반말 모드였다. 나와 반말을 할 정도로 사이좋은 사촌동생을 연기하는 듯 했다. 평소엔 연기 더럽게 못하면서, 이럴 때는 자연스럽네. 영선누나가 우리 둘을 쳐다봤다.
"사촌동생이랑 사이가 좋네?"
"히히. 어렸을때 강민 오빠랑 자주 봤거든요. 커서는 못본지 꽤 됐는데. 이번에 오랜만에 보니까 되게 반갑네요."
"어, 어. 오랜만에 보는 거지. 얘가 부모님이 이혼하셔가지고. 근데 아빠랑 사이가 안 좋아서, 이번에 가출했어."
입에서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내가 왜 이렇게 거짓말을 잘 하지? 영선누나한테 들키지 않으려다 보니 머리가 휙휙 돌아갔다. 누나는 내 말을 정말로 믿고 예림이를 토닥거렸다.
"아이구. 힘든 거 있으면 언니한테 다 말해."
"진짜요? 고마워요!"
"오늘 저녁에 할 일 있어? 없으면 밥 사줄까? 우리 퇴근하려면 두시간 정도 남았는데."
"밥이요?"
예림이 내 쪽을 봤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뭐, 입조심만 하면 거짓말 들킬 건 없겠지? 그냥 사촌여동생처럼 대하면 되니까. 그리고 재미있는 술자리가 고팠다. 사장이 끼는 엿같은 술자리는 사양이었다.
"누나 진짜 사 줄거예요? 그럼 삼겹살?"
"오, 좋네. 소주도 마시고. 예림, 이라고 했지? 술은 잘 마셔?"
"어... 와인 같은 것만 조금 마셔봤는데. 소주는 한번도 안 마셔봤어요."
그러자 영선이 싱글벙글 웃었다. 영선누나는 평소에도 소주의 좋음을 적극적으로 설파하는 소주론자였다.
"야, 소주를 마셔야 진짜 술을 마셔봤다 하는 거거든? 잘됐다. 원래 술은 어른한테서 배우는 거니까. 앉아서 컴퓨터좀 하고 있어!"
영선 누나가 예림을 안내해서 구석 자리로 앉히고, 매니저용 계정으로 로그인까지 해 줬다. 하지만 예림이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리는 걸 낯선 눈으로 바라봤다.
이런! 저게 뭔지 모르는 거구나! 게이트에서 지식을 쑤셔넣을 때 도대체 어떤 식으로 넣어주는 거야? 나는 예림이 옆에 붙어 일단 유튜브를 틀어줬다. 사촌 동생한테 뽀로로 틀어주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람. 근데 뭘 틀어줘야 하지...?
고심하다가, 예림과 처지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영상을 틀었다.
[ 한국에 온 아프리카 촌놈이 깜짝 놀란 이유 ]
예림이가 한국 사회를 공부하는 데 좀 도움이 되겠지. 이세계로 떨어진 예림이야말로 진짜 외국인의 처지다. 아무래도 공감도 많이 되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있겠지.
"이거 보면서 기다려. 궁금한 거 있으면 카운터에 와서 물어보고!"
유튜브를 틀어주고 카운터로 돌아오자, 영선 누나가 토끼눈을 뜨고 옆에 앉았다.
"야, 뭐야? 네 사촌동생 무슨 모델이나 아이돌 연습생이야? 왜 이렇게 예뻐?"
"그런 건 아닌데, 진짜 이쁘죠?"
내 어깨에 힘이 으쓱 들어갔다. 확실히 예림이는 정말 예쁘지. 내 옆에 앉은 영선누나는 호들갑을 떨었다. 나 저렇게 이쁜 사람 처음 봐. 몸매도 장난 아니다. 같이 살려면 불편하지 않아?
"아뇨, 전혀."
아침에 일어나면 똥까시도 해주고, 저녁엔 질싸 후싸 다 하는데 불편할 리가. 오히려 좋죠. 이런 말은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영선은 뭔가 도와줄 건 없으려나, 하는 표정을 짓다가 머리를 긁었다. 주제넘게 말을 얹는 것도 무례한 짓이다.
"나중에 뭐 어려운 일 있으면 꼭 말해. 누나가 도와줄게."
"알았어요. 고마워요 누나."
어제부터 영선누나는 유독 친절하다. 꿈에 영선누나가 등장한게 죄책감이 들 정도로. 으흠. 예림이한테 영선누나 모습으론 좀 참아달라고 부탁할까...
시간은 금방 흘러 퇴근시간이었다. 사장은 아직도 숙취에 시달리고 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잘 됐네. 잘 됐어. 매니저 형만 와서 인수인계를 받았다.
"예림아, 갈까?"
예림이는 거북이처럼 목을 빼고 정신없이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곧 바다로 돌아갈 기세였다. 하긴, 유튜브 영상이 재밌긴 하지. 화면에선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는 게스트가 보였다.
"이거... 정말 오늘 우리가 먹는 거예요?"
그럼. 마음껏 먹으렴. 저번에 회식했던 무한리필집에 또 왔다. 알아보는 사람은 없겠지? 자리에 앉자 영선누나가 고기와 소주를 시켰다.
"민증 한번 보여주시겠어요?"
"98년생 스물 세살. 넵, 됐구요. 97년생 스물 네살...01년생... 스무살."
여드름이 얼굴에 가득 난 남자 알바생은 예림의 얼굴을 쳐다보고, 예림의 민증을 다시 쳐다본다.
"...본인 맞으시죠?"
"맞아요."
예림이 말하는 동안 영선누나와 나는 나이로 낄낄댔다.
"야, 근데 01년에도 사람이 태어난단 말야? 말세다 말세."
"저도 존나 헷갈려요. 주민번호 앞자리 적어달라고 했는데 자꾸 010 527 이렇게 입력해서, 전화번호 말고 생일이라고 말하니까 저게 주민번호 앞자리 맞대요. 개소름."
알바가 가고 나자 예림이 의아함에 질문했다.
"사진 저랑 안 닮았어요?"
"야, 그게 궁금해서 물어본 것 같아? 그냥 네가 예쁘니까 어떻게든 말이나 한 번 더 해보려고 그러는거지."
"그래요?"
영선 누나의 말대로, 사방에서 몰려드는 시선이 느껴졌다. 맨 처음에 입구에서 들어올 때부터 둘의 레깅스 차림에 시선이 꽃혔다. 창가에 앉은 테이블에서도 입모양으로 야, 봤냐, 봤냐? 몸매 미쳤다. 등의 입모양으로 수군댄다.
음, 어깨가 절로 펴지는구만. 예쁜 사람들이랑 술 먹으러 오는 게 이렇게 좋을 줄이야. 내가 물을 따르려고 했는데 어느새 영선누나가 잔과 물컵까지 싹 올려놨다.
이상하다... 영선누나가 왜 이렇게 친절하지... 게다가 고기가 나오기 전 대화 주제도 이상했다. 강민이랑 같이 사는 거 괜찮아? 강민이 어렸을 때는 어땠어? 나에 대한 질문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쑥쓰러워서 그냥 고기만 구웠다.
"자요, 먹으면서 이야기해."
예림이의 눈은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어미새처럼 영선누나와 예림에게 고기를 날랐고, 둘은 연신 쌈을 싸서 내 입에 넣어줬다. 다른 테이블에서 질투하는 게 오라로 느껴질 정도였다.
"예림아, 맛있어?"
한 가득 쌈을 입에 넣은 예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람쥐처럼 볼이 부풀어 있는게 귀여웠다. 먹는 것에 비례해서 술도 빠르게 돌았다. 벌써 탁자 위에 일곱 병의 소주가 쌓였다. 우리 모두 상당히 취했다.
"그러고 보니, 누나 어제 왜 저한테 키스했어요?"
누나는 마시던 소주가 사레들렸는지 쿨럭 토해냈다. 예림도 깜짝 놀라더니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언니 진짜 그랬어요?"
입술을 닦아내고는 얼굴이 빨개져서 횡설수설했다.
"어, 그러니까 맥주 마셔서 취해서 그랬어. 아 그리고, 옷 줬으면, 키스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냐?"
"아, 영선누나 정도면 키스 그냥도 해 줄 수 있는데. 언제든 말만 해요."
웃으며 떠든다. 하지만 멍청하게도 두 여자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난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갑자기 예림의 손이 내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게, 절묘하게 붙어있다. 영선누나는 좀 취했는지 예림이가 나와 가까워진 것도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야, 진짜 키스해준다고?"
예림의 손이 츄리닝 바지 안으로 타고 들어와 속옷 위를 어루만졌다. 순식간에 기둥이 솟아올랐다. 까칠까칠한 속옷을 붙잡고 자지 전체를 붙들고 쓸어준다.
"아니 뭐, 그 정도야."
"너 분명히 말했어! 녹음한다!"
영선 누나가 폰을 켰다. 그 동안 예림의 손은 아예 속옷 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링을 만들어 귀두에 끼우고 흔들며, 중간중간 손을 뻗어 불알을 쓰다듬거나 음모를 쓸어주거나 한다. 아니, 공공장소에서 뭐하는 짓이야!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몸은 정직하게 반응한다. 예림의 손은 내 약한 부분을 정확히 공략중이었다. 게다가 쥐었다가 풀었다가 하는 가감도 예술이다.
"야, 말해! 영선누나가 원할 때 키스해준다, 오케이?"
이 누나도 좀 취했네.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며 올라오는 사정감과 싸웠다. 조금만 더 하면 진짜 사정하겠는데, 지금 여기서...?
그 순간 예림이 손을 뗐다. 대체 뭐하는 짓이야! 바라봤지만 예림의 눈도 상당히 풀려있었다. 이런, 술을 많이 마시더니... 그러더니 벌떡 일어난다.
"화장실 좀 갔다올게요."
예림이 화장실에 간 뒤 잠시 후,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예림이 보낸 문자다.
'오빠, 남자화장실 첫번째 칸으로 오세요.'
뭘 하려는 거지?
"누나. 잠깐 쉬어요. 저도 화장실좀 갔다올게요."
"어어어 갔다 와 나는 담배좀 피고 올게"
영선은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나왔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생각했다. 강민이랑 이대로 친해져서, 남자친구, 그게 아니더라도 섹파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말겠어! 그러면 예림이는 내 올케가 되는건가? 오늘 처음 만났지만 되게 착하고, 이야기도 잘 하는 것 같은데. 친해지면 좋겠다.
영선이 담배를 피며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예림은 남자화장실에서 강민의 자지를 입에 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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