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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13화 (13/358)

〈 13화 〉 12. 회식은 즐거워!

* * *

"누나 수건은 가져왔니?"

아차! 영선누나의 수건을 깜빡했다. 오늘은 같은 시간 근무인데 내내 시달리게 생겼군. 누나는 내 옆에 붙어 나를 쿡쿡 찔렀다. 오늘도 아디다스 바지에 운동용 크롭탑이라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옷이다. 옆눈질로 슬쩍 훔쳐보며 몸을 이리저리 피했다.

"아, 하지 마요 누나! 미안하다니까!"

"야, 너 요새 내가 만만하지? 응?"

악의가 담겨있진 않고, 그냥 고양이가 쥐를 귀여워하는 듯한 투닥거림이다. 옆구리를 공격하며 내가 몸을 뒤트는 걸 즐겁게 지켜본다. 그러다 내 추리닝 바지쪽을 쳐다봤다.

"어쭈? 너 이새끼. 오자마자 일은 안하고 밥부터 먹을라고. 빅팜 숨겨놨냐?"

회색 추리닝 위로 덜렁거리는 물체를 보고, 누나가 손을 덥썩 뻗어 내 주머니쪽을 움켜쥐었다. 억. 대형 사고다.

"아, 누나, 아파요! 뭐해요! 빨리 손 안떼고! 누나 변태에요?"

영선 누나는 지금 자기가 붙잡고 있는게 뭔지도 모르고 장난을 쳤다.

"야, 왜 아파? 뭐가 아픈데? 소시지 잡고 있는데 뭐가 아파?"

"그, 누나. 이거. 그...제...자지거든요..."

"어? 어?"

자지라고? 자기가 들은 말을 확인하듯 잠깐 멍하니 있다가, 불에 덴 듯 화들짝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섰다.

"하, 어, 그러니까, 너 좀. 제법 실하다? 섀끼. 간수 잘 안해? 평소에 어디다 떼서 보관해놓던가 해야 할 거 아냐. 어디 이런 걸 들이대서 누나 놀라게 만드냐?"

누나는 평소처럼 농담을 던지며 카운터로 들어갔지만, 이미 목과 귀가 새빨갛다. 엄청 부끄러운가보다. 음담패설을 많이 하긴 해도 물건을 직접 만지는 것엔 내성이 없나보군. 급격히 말이 없어지고, 점검까지 끝난 시재를 굳이 한번 더 뒤져본다. 자기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는지 괜히 나에게 성질을 부린다.

"뭘 쳐다봐 임마. 가서 키보드 안 닦아? 뒈질래?"

"알았어요! 괜히 성질이야."

예쁜 여자 손길이 닿은 자지가 조금 꿈틀거리려고 했지만, 억눌렀다. 그것 말고는 오늘 알바가 소소하게 흘러갔다. 누나는 부끄러움을 희석시키기 위해 일부러 나에게 말을 많이 걸었고, 나도 굳이 들추고 싶진 않았기에 무난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다 문득 예림이의 옷 문제가 생각났다.

"아, 누나. 그러고 보니까 혹시 안 입는 옷 좀 있어요?"

"아 이 변태새끼. 또 이상한 짓 할라고. 야, 누구한테 팔 거냐? 살 사람 있대? 반띵해주면 줄게. 말만 해."

"아, 그런 거 아니예요! 그냥 필요한 사람이 있어서요. 집에서 입을만한 걸로."

영선누나와 예림이는 170 초반대로 키가 비슷하다. 볼륨 자체는 예림이가 훨씬 풍만하지만 집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이라던가, 돌핀팬츠. 여성용 티셔츠 정도는 같이 입을 수 있겠지. 브래지어같은 건 안 맞겠지만 평상복은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가급적이면 새 걸 사 주고 싶지만 내 통장이 아프다고!

"누가 입을건데?"

영선 누나가 장난을 그만두고 물었다. 어, 뭐라고 대답하지? 여자친구가 입을 거라고 하면 좀 싫어할 것 같은데.

"음. 사촌동생이 가출해서 집을 나왔거든요. 근데 제 집에 입을만한 옷이 영 없어서. 사기에는 통장 잔고가 영..."

"가출? 무슨 일로?"

"집안 사정이 좀 복잡해요."

"알았어. 안 그래도 안 입는 옷 한번 정리하려고 했는데 잘 됐네. 키는 몇인데?"

"누나랑 비슷해요."

"퇴근하고 자취방 가자. 챙겨줄게."

역시 이러니 저러니 말은 해도 영선누나가 참 주변인은 잘 챙겨주네!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그럼 퇴근할 때 들러서 옷 가지고 가면, 예림이가 기다리고 있겠지?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퇴근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퇴근 30분 전 사장이 등장했다. 뭔가 불길한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금반지 낀 손을 내 어깨에 얹고 날 계단으로 데리고 나갔다.

"야, 오늘 회식할 거니까 네가 영선이좀 꼬셔봐. 너 친하잖아."

나는 불편한 표정을 속으로 숨겼다. 자꾸 술자리에서 개소리를 하니까 영선누나가 당신 피하는 거 아냐. 아예 극혐하던데.

그렇다고 해서 둘 다 도망치는 것도 별로였다. 그래도 나름 건대 터줏대감 사장이랍시고, 이 근처 양아치들과 좆고딩과는 형님 동생 하는 애들이 많았다. 만약 회식 빠지고 영선누나랑 나랑 같이 자취방 들어가는 게 입방아에 오르내린다면? 나중에 뭐라고 개지랄할지 모르는데, 그냥 밥 먹고 들어가는 게 나을 듯 했다.

"알았어요. 말은 해 볼게요."

"어, 고맙다 야! 형이 너 좋아하는거 알지?"

형은 무슨 시발. 나이로 따지면 삼촌뻘이구만.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영선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누나, 사장이 회식하자는데 어쩔 거예요? 우리 둘이 빠졌다 걸리면 나중에 개지랄할거같은데."

"쯧. 공짜 밥 먹는다고 하고 1차만 갔다 빠지자. 지랄하면 걍 관두지. 어차피 나도 다음 달이면 관둘 생각이었어. 에휴. 좆같은 사장새끼. 요새 자꾸 내 배꼽이랑 허벅지 흘끔거리는데 눈알을 파버리고 싶네."

"누나 친구는 무슨 생각으로 여길 추천해 줬대요?"

"나도 몰라. 안그래도 손절할까 생각중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예림이에게 문자를 보내놨다. 오늘 좀 늦게 들어갈테니까 체크카드로 밥 사먹어. 개통이 되면 이 문자도 보겠지?

일이 끝나고 근처의 무한리필 삼겹살 집에 자리를 잡았다. 사장은 주간 퇴근자와 매니저도 불렀다고 했다. 허, 그래도 셋이서 있다 찝적댈 생각은 없었나 보네.

하지만 나는 사장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었다. 주간 퇴근자는 옆 테이블에 앉혀놓고, 자기 테이블엔 나와 영선누나, 그리고 매니저를 앉혔다. 매니저 형은 나이 서른 다섯에 피씨방 알바 인생. 리니지 죽돌이. 걍 사장이 무슨 말을 하든 고개를 끄덕이는 호구다.

"야, 강민이랑 호준이 안쪽에 앉고, 나 여기 앉을테니까 옆에 자리 비워놔."

담배 피고 들어오는 영선 누나를 자기 옆에 앉힐 속셈이로군. 나는 불쾌함을 간신히 꾹꾹 담아눌렀다. 하지만 들어오던 영선 누나는 한 수 위였다. 일부러 내 옆에 앉으며 엉덩이로 꾹 밀쳤다.

"호준오빠! 좁잖아. 뭐해! 사장님 옆으로 썩 안 가고! 오빠가 술을 따라드려야지!"

"어,어. 그럴까?"

심약한 호구답게 순순히 자리를 옮긴다. 사장이 표정을 찡그리며 호준을 보고, 그 다음엔 날 째려봤다. 아니 왜 나한테 그래요. 자기가 평소에 지랄맞게 굴었으니까 그러는거 아냐. 그리고 누나랑 당신이랑 열 두살 차이나는데, 좀 부끄러움을 알아라!

"자, 다같이 건배!"

영선누나는 옆 테이블 근무자들도 우리 테이블 이야기에 끌어들여서 사장이 개소리하는 걸 원천 차단했다. 사장은 속이 타는지 혼자서 연거푸 소주를 들이켰다. 사장이 말을 하지 않자 알바생들은 이미 미칠 듯이 신나 있었다. 각자 소주 한병 반씩은 넘게 마셨다.

"하, 근데 다들 자기 파트너한테 바라는 거 있지 않아요?"

썸녀 이야기, 썸남 이야기 등으로 오른 텐션은 갑작스럽게 속도를 높여 가며 각자의 섹스 판타지를 말하는 데까지 급가속했다. 알바 중 한 놈은 야외나 계단 같은 곳에서 해 보고 싶다고 하다가, 영선누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누나 막 판타지 있고 그래요?"

"어, 나 페티시 있어. 나는 때리는 걸 좋아하거든? 막 흥분되고 그래."

그래서 복싱을 하는 거였나?

"그래가지고 섹스를 하다가. 남자 위에 올라타는 거지. 그리고는 준비해 둔 걸 딱 꺼내."

오, 뭘 꺼내는 거지?

"이제 망치를 꺼내가지고, 아래에 있는 사람 이마를 그냥 빡 내리치는거지. 뒤질때까지. 그럼 존나 흥분돼."

아 씨바, 그게 뭐예요! 누나의 농담에 모두들 깔깔대며 웃었다. 누나도 엄청 웃어대며 옆에 앉은 날 빤히 쳐다봤다.

"넌 뭐 있냐?"

너무 빻은 취향이라 말을 못하겠네요! 싫다고 거부하는 여자 애널에 삽입하기, 그 다음에 화장 무너질때까지 청소 딥스롯 시키기, 섹스하면서 더티톡 하기, 컨셉 잡고 플레이하기 등. 예림이와 했던 섹스와 하고 싶은 플레이들을 말하면 영선누나가 극혐해 할 게 뻔했다.

나는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전... 딱히 판타지같은 건 없어요. 그냥 같이 에버랜드 교복 데이트같은거? "

"ㅋㅋㅋㅋㅋ뭐야. 졸라 순진하네. 근데 맞긴 해. 원래 판타지 있는 게 이상한 거야. 그치?"

맞아요. 제가 좀 이상한 사람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소주가 한번 싹 돌자, 갑자기 사장이 입을 열었다. 사장이 옆 테이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척 하면서 슬쩍 영선 누나를 쳐다본다.

"야, 근데 거시기가 너무 크다면 여자들이 싫어한다던데, 진짜냐? 막 닿아서 아프다고."

"아, 뭐야! 지저분하게 그런 이야기는 왜 해요? 그리고 사장님이랑은 연관 없는 소리같은데 알아서 뭐하게요."

누나는 사장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맹공을 가했다. 그러자 사장이 시뻘개진 얼굴을 찡그리며 자신의 팔꿈치를 붙잡고 팔을 치켜올렸다.

"나 씨바, 이만하거든?"

"크핫! 지이~랄. 무슨 사장님 거시기가 팔뚝만해요. 안봐도 개쌉미더덕이겠지."

"야, 봤어? 본 적 있어? 오늘 확인 한번 해볼래?"

옆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좀 선을 넘은 드립이었다.

"올~~~ 야스각? 오늘 야스각인가?"

알바생 한 명이 싸해져가는 분위기를 수습하려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영선누나의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씨발 개소리하지 마라. 야, 그리고 여기에서 제일 큰 사람은..."

누나는 내 쪽을 가리키려다가 손가락을 급히 돌렸다. 하긴, 내가 말자지라고 하면 그것도 이상하지.

"내가 관상을 좀 보는데. 이 중에 말자지 관상은 한명도 없어. 거기에다 사장님이 제일 소추 관상이야."

다들 왁자하게 웃었다. 대충 이렇게 마무리되는 분위기였지만 사장은 그렇지 못했나 보다.

"야, 씨발년아. 니가 뭔데 내 자지에 이래라 저래라야. 존나 기분나쁘네? 봤냐? 어?"

사장이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순식간에 가게 안의 이목이 쏠렸다.

아 씨바, 좆됐다. 혼자 퍼먹다가 또 왜 급발진이야. 혼자 얼마나 마셨는지 사장의 몸이 휘청거린다. 슬쩍 옆을 보자 영선누나는 이미 주먹을 꽉 쥐고 일어나는 중이었다. 이대로 냅두면 사장 턱주가리가 돌아가게 생겼다.

"아이고, 많이 취했네. 사장님! 여기 대리좀 불러 주세요!"

황급히 사장의 몸을 붙들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사장이 이거 안 놔? 야, 놓으라고! 지랄했지만 나는 꿋꿋이 끌고 나왔다. 거의 넘어뜨리다시피 바깥의 의자에 앉혔다.

"사장님. 사람들 다 쳐다봐요. 진정해요."

"야, 저년이 존나 건방지게 굴잖아!"

아이 씨바. 그냥 내가 후려쳐 버릴까 하다가 꾹꾹 참았다. 다행히 사장은 숨을 씩씩 불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더니 머리가 툭 떨어진다. 머리끝까지 술이 오른 듯 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누나 옆에 앉았다.

"누나, 진짜 칠려고 그랬어요?"

"아, 저새끼가 꼴받게 하잖아."

"그러지 마요 누나. 그러면 누나만 손해야."

"...알았어. 여튼, 내일부터 그만둘 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쩝, 한숨이 나왔다. 이 꼴을 겪고 여기서 일하는 게 이상하긴 하지. 이미 회식 테이블 분위기는 씹창나있었다. 나는 매니저형에게 눈짓을 보냈다.

"형, 계산하고 파하죠. 형이 사장님 집 들어가는 것까지만 좀 봐주세요."

"어, 어..."

"우린 가자. 옷 줄게."

영선누나가 내 팔을 이끌고 회식자리를 빠져나왔다. 다른 알바생들도 삼삼오오 자리를 빠져나갔다. 밤의 공기를 맞자 영선누나도 술이 좀 깨는 듯 했다.

"...말려준 거 고마워. 하, 성격좀 죽여야 하는데. 그게 맘대로 잘 안되네."

영선누나의 눈이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앞서가던 영선 누나의 발이 어느 새 느려지더니 내 옆에서 보조를 맞춘다.

"근데 너 진짜 섹스 판타지 그런 거 없냐?"

엑, 아까 그 질문의 연장선?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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