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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1화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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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0. 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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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어떻게 믿어! 니가 뭘 아는데?"

나의 반론에 상대방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진짜라니까. 왜 제 말을 못 믿어요? 예림이는 심, 기, 체 전부 다 비처녀야! 마음은 지금 카페 알바 사장님에게, 기술은 전남친이랑 2년동안 사귀면서 질싸후싸 다 해봤고, 체는 고등학교때! 학교 체육창고에서! 동갑내기 일진 고등학생이랑!!"

"입닥쳐!! 당장 사과해!! 나의 예림이는 그렇지 않아!!"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귀를 막았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내 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준낮은 토론을 설명하기 전에, 예림이가 누군지 간단하게 이야기해야겠다.

앞의 이 여자가 지껄이는 헛소리를 믿지 않기 위해서라도.

카페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예림이를 묘사하느라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해도 이해해 달라고!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

예림이가 예쁘다는 건 나 혼자 콩깍지가 씌여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 카페에 오는 사람은 95%가 예림의 번호를 따 보려는 남자고, 5%는 레즈비언이다.

주방에서 세 본 결과 번호를 달라고 하는 빈도는 시간당 6회 정도. 이런 미녀와 같은 가게에서 일한다는 게 자랑스러울 정도다.

예림이의 외모가 실제로 어떻냐고? 일단 눈에 가장 띄는 건...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비단같은 머리카락이지. 일하다 보면 가끔 예림의 머리카락이 내 손에 스칠 때가 있는데 전기가 통하는 기분이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 정신이 아찔해 질 정도로 좋은 향기가 나서 향수를 뭘 쓰냐고 물어봤었는데.

"햐...향수는 뭐 써? 진짜 좋은 향기 난다."

말을 붙여보며 엄청나게 절었는데, 예림이는 신경도 쓰지 않고 태양처럼 활짝 웃으며 대답해줬다.

"향수요? 저 향수는 안 써요! 그냥 엄마가 사다주신 샴푸만 쓰는데. 그렇게 좋은 향기가 나나요?"

그러면서 자신의 머리칼을 한 움큼 쥐고 코로 맡아보다,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렸다고!

이렇게나 부끄러움 많고 귀여운 여자애한테, 심기체 모두 비처녀라는 더러운 모욕을 하다니!

반박의 증거로 예림과의 대화를 들려주자 앞에 앉은 사람의 표정이 샐쭉해졌다.

"그게 다 걸레 여우짓이라니까! 샴푸만 써서는 그런 향기가 안 나요! 집 나오기 전에 팬티랑, 브라에다 향수 듬뿍 뿌리고 나오는 거에요!"

"입닥쳐! 예림이는 그렇지 않아!"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구만!!

예림이가 절대 그런 행동을 할 리 없다.

물론... 외모를 보면 지금까지 남친 한 명 없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 생김새긴 하지.

내가 지금까지 본 고백만 해도 백의 자리 수니까. 지금 TV에 나오는 아이돌을 다 씹어먹을 정도로 압도적인 외모다.

서클렌즈를 낀 것같은 크고 부드러운 눈동자, 립스틱을 옅게 발라도 색이 도드라지는 빨간색의 입술, 눈동자 앞에 차양처럼 드리우는 길고 긴 속눈썹.

그 위에 마스카라가 얼마나 예쁘게 얹혔는지. 크고 짙은 눈동자로 날 바라보면 숨이 막힐 정도다. 게다가 어깨 터치도 서슴없이 하고, 날 보면 환하게 웃어주고.

그리고...이런 말을 하면 내가 정말 성욕에 미친 한심한 놈처럼 느껴지지만, 검은 민소매 터틀넥 아래로 도드라지게 존재감을 주장하는 흉부를 보면 눈이 안 갈 수가 없다.

저 사이에 메신저백을 매고 출근하면 가슴이 엄청나게 부각된다. 가슴과 가슴 사이에 빵 반죽용 밀대를 끼워도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터틀넥 + 메신저백으로 출근했을 때 다른 알바가 얼마나 눈을 흘끔댔는지 가자미처럼 눈이 몰릴 지경이었다. 자기가 슴판독의 달인이라면서, 저정도면 최소 F컵이라고 주절댄다.

게다가 허리는 두 손으로 잡으면 다 잡힐 정도로 가느다란데, 바지는 힙 36인치 사이즈를 입는단다. 계산대에서 잠깐 주방으로 들어오면, 내 뒤로 지나갈 때 서로 엉덩이가 스칠 정도로 육감적인 몸매다.

이러니 나도 안 반할 수가 있나!

하여튼 외모가 그 정도로 뛰어나니 매장에 사람이 몰려드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긴 기다림 끝에 주문을 겨우 하고, 알바 끝나는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나타나지만, 예림은 자긴 너무 바빠서 연애 생각이 없다고 웃으며 거절한다.

거절도 이렇게나 친절하고 예쁘게 하는 예림이한테, 심기체 비처녀라니!

예림이 심기체 비처녀설을 주장하는 놈이 같은 타임 남자 알바생이었다면 나는 필시 대가리를 깨 버렸으리라(심지어 전남친에 대한 묘사가 현실성이 있어 짜증났다).

하지만 나는 대가리를 깨버리는 대신 귀를 막으며 바닥을 구르는 중이다.

지금 나한테 예림이 비처녀설을 설파하는 놈이 누구냐고?

"뭘 그렇게 고민해요? 오빠 나 좋아하잖아요. 그냥 나랑 섹스하자니까?"

내 방 침대에 앉아 나와 섹스하자고 조르는 사람은, 분명히 내가 일주일 전에 고백했다 차였던 이예림이었다.

***

"그러니까... 네가 서큐버스라고? 이름은 샤르아이스고?"

허벅지가 간지러운데, 폰허브나 들어갈까 생각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림이가 내 방 안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고는 자신을 서큐버스라고 소개했다

"편하게 샤를이라고 부르시면 되는데, 예림이라고 부르는 게 좀 더 흥분되지 않나요?"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수많은 의문들(악마라고? 왜 나한테?)은 그녀가 자신의 가슴을 팔로 쓰윽 밀어올리며 강조하는 순간 다 사라져 버렸다.

아무래도 가슴 크기는 예림이보다 더 큰 거 같은데? 게다가 왜 하필 예림이 얼굴을 하고 나타난 거야?

"오빠는 가슴이 클수록 흥분하잖아요. 게다가 요새 강민오빠가 보는 영상 취향을 종합해보면, 맨날 미카미 아리나 보면서 예림이 이름을 부르는­"

"그마아아아안­­­­­­­!"

빌어먹을, 내 성생활을 들키는 게 이렇게나 쪽팔릴 줄이야!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딸딸이를 치는 행동에 죄책감은 들었지만, 예림의 얼굴을 닮은 미카미 아리나를 보고 자위한 날은 정액이 거의 요구르트 하나 분량으로 나왔다.

내가 부끄러움으로 씩씩대며 샤르를 노려봤지만, 샤르는 오히려 취향이 확실한 사람이 좋다며 웃었다.

"서큐버스는 인간의 생각을 읽어서, 가장 흥분하는 대상을 골라 변신한답니다. 강민 오빠 취향대로 와 봤는데, 효과 확실하네요."

게다가 생각 읽었을 때 저 놀랐어요. 강민 오빠, 얼굴은 순진하게 생겨서, 속은 이렇게나 변태라니. 그러면서도 또 순애적인 건 즐기고 싶고... 예림이가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내 은밀한 욕망을 다 들켰다고? 내가 주춤 물러서자 예림이는 괜찮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괜찮아요! 악마는 복잡한 취향과 욕망을 좋아한답니다. 그러니까 저랑 자죠! 제가 오빠가 원하는 거 뭐든 다 해 줄게요!"

침대에 앉아 양팔을 벌리고 나를 불렀다. 하지만 내 마음속은 복잡하다 못해 혼란스러웠다.

"왜 하필 나한테 나타난 건데?"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예림이 한숨을 쉬며, 따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예림이는 저런 표정을 안 한다는 걸 알고 있고. 눈 앞에 있는 건 예림이가 아니고 악마란 걸 알고 있지만.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파왔다.

그녀의 빨간 입술이 열리자 새하얀 진주 같은 이빨이 드러났다.

"나도 왜인지는 모르는데. 그게 중요해요? 강민 오빠. 진짜 계약 안 할 거에요? 저랑 안 자고 싶어요?"

강아지같은 표정을 짓자 눈꼬리가 촉촉해지며, 눈망울이 글썽거린다.

"아니, 싫다는 게 아니라, 잠깐 생각할 시간을..."

예림이 마스카라가 지워지지 않도록 신경쓰며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다. 숨이 막힐 정도로 예뻤다.

"제가 진짜 예림이가 아니란 게, 그렇게 중요해요?"

"아니, 그래도... 나는 예림이 얼굴도 좋지만 성격도 좋은건데. 얼굴만으로 그냥 발정해서 좋다고 자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우물쭈물거리자 샤르가 독설을 내뱉었다.

"어짜피 진짜 예림이는 오늘 퇴근하다 모텔 들러서, 카페 사장님이랑 노콘으로 섹스할텐데. 오빠도 저랑 섹스 안하면 그게 손해라니까요."

이런 빌어먹을!! 예림이를 모욕하지 마라!!

"예림이는 그딴 천박한 말 안 해! 그리고 카페 사장님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고, 그리고, 예림이는 잘은 모르겠지만, 처녀일...!"

나는 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을 부정하며 샤르를 쳐다 봤다. 내 마음을 읽어서 예림이로 변신할 수 있는 거라면.

혹시 악마의 권능으로, 다른 사람도 읽을 수 있는 건가?

...그리고, 성경험도?

내 궁금증을 해소해 주려는듯, 샤르가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예림이 처녀 아니라니까요? 아다는 고등학교때 떼고, 전남친 2년 사귈 동안 온갖 변태적인 거 다 해봤고, 지금은 카페 사장님이랑 사귀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씨발!!!! 그럴 리 없어!!!"

"왜요. 벤츠가 좋다는데."

그리고 맨 처음 이야기했던, 지저분한 토론이 시작된 것이다.

한참의 토론 끝에, 나는 믿기지 않는 현실을 부정했다. 섹스를 원하는 악마를 방에서 쫓아내고, 예림이에 대한 환상을 지키자.

"이 방에서 나가. 난 네 말 안 믿어."

성경에서 말하길, 악마는 인간을 속이고 파멸에 빠뜨리려는 존재다. 저 악마가 나에게 이러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예림이 당돌하게 말했다.

"오빠 이런 거 좋아하죠?"

예림이가 민소매 터틀넥은 벗지 않고, 입고 있던 청바지의 앞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렸다. 바지가 천천히 벗겨져 내 방 바닥을 구른다.

말리려고 했지만 입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침만 꼴깍 삼켰다.

상의는 그대로 입은 채, 검은색 레이스 슬립 속옷만 아래에 입고 있다. 그라비아 화보라던가 인스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도다. 시선을 떼지 못하고 빤히 바라보자 예림이 자신의 눈을 가렸다.

"너무 그렇게 보면 부끄러운데..."

연기 더럽게 못하네!

예림은 부끄럽다며 말과는 다르게, 침대 위에 하반신을 드러내며 엎드렸다. 흰 눈같이 하얀 엉덩이 라인이 그대로 드러났다. 속옷의 뒤는 팬티라고 부르는 것이 실례일 정도인 얇은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

골반 옆에 수줍게 묶여있는 속옷 매듭이 너무 야하다.

예림이 손가락으로 허리에 걸려있는 끈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스륵 소리가 나며 풀린 속옷을 집어, 침대 옆에 떨어뜨렸다.

"오빠... 나 그냥 여기 엎드려 있을 테니까. 오빠 하고싶은 대로 해요. 오빠 알바 하면서 이런 상상 많이 했잖아."

제기랄. 나는 속지 않겠어! 성경에서도 그랬잖아! 주님 저를 보호해 주십시오! 기독교는 안 믿고, 주일학교 몇번 나간 게 다지만, 이번만 도와 주십시오! 저 악마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게!

"...나가. 한번 차였어도 난 포기 안해. 너같은 가짜랑 잘 바에야 그냥 딸딸이나 칠거야."

다행히 내 입에서 거절의 말이 흘러나왔다. 난 진짜 예림이랑 사귀어서 키스도 하고, 연애도 하고, 놀이동산도 가고, 영화도 보고 할거야!

천박한 섹스나 하자는 목적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러자 예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속옷을 집었다.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그래, 문 밖으로 어서 나가! 하지만 예림의 입에서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떨어졌다.

"그래요. 그럼 오빠 말고 다른 사람이랑 계약해서 섹스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날 소환해준 게 고마워서 계약하려고 했는데. 옆집 사람이랑 계약할까? 밤 내내 제가 앙앙거리는 소리 들으면서 딸딸이나 치게 되겠네요."

"잠까아아아안­­­­­­­­­!"

빌어먹을! 뭐라고? 예림이 얼굴로, 다른 사람이랑 섹스를 하겠다고? 내가 예림이의 손목을 잡자 차가운 표정이 순식간에 부드러운 미소로 바뀌었다.

"어라, 제가 이 얼굴로, 이 몸으로 다른 사람이랑 섹스하는 건 또 싫어요?"

예림이가 나가려다 다시 침대에 앉으며 이불을 들어 자신의 아랫도리를 가린다. 나를 바라보는 검고 짙은 눈동자에 빠져들 것 같지만, 예림의 입에선 차가운 말이 흘러나왔다.

"10초 드릴게요. 빨리 결정하세요. 10. 9. 8."

진퇴양난이다.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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