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금속딜도 암살자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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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서…… 이제는 국서라는 직위조차 박탈되고 이혼당해서 돌싱이 된 디케이는 왕성 지하감옥에 수옥됐다. 꼴에 흑마법사 간부라도 난동을 부렸지만 정령사와 천적인 성녀, 그리고 성자를 상대로 깔짝 선전하는 게 전부였다. 솔직히 키메라 본 드래곤이랑 싸울 때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 테일레나! 이럴 수는 없다! 너가 내게 이럴 수는 없어!"
철장을 붙잡고 광인처럼 울부짖는 디케이의 모습은 상당히 꼴사나웠다. 추레하기도 했고.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아이를 애비 없는 아이로 키울 생각인가!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날 여기에 냅두고 가면 안 된다!"
"우와아아."
정말로 쓰레기 같은 발언에 나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거 팝콘 각인데?
녀석이 발언을 하면 할수록 표정이 참, 뭐라 형용하기 힘들어지는 게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었다. 소추라고 침대에서 부인에게 무시를 받았다지만 저렇게까지 타락해 버린 모습을 보면 있던 동정심도 달아날 것만 같았다. 아니, 달아났다.
실핏줄이 터지기라도 했는지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게거품을 물려는 녀석의 모습은 그야말로 광인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게다가 이미 몇몇 요정 사용인들의 생명력을 뽑아낸 정황이 발견되어 아무리 고위요정이라 할지라도 디케이가 저기서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귀족파의 요정들도 세력 다툼이나 정치권 싸움이 심각하긴 하나 타락한 데다가 계약정령을 그렇게 마개조까지 했으니 결코 녀석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요정은 없을 것이다.
나오면 요정여왕이 조지겠지.
소추라는 남성들의 한을 위해 타락한 거라면 그나마 변명의 여지는 있었을 거다. 하지만 녀석은 자신의 계약정령을 마개조하는 것으로 그 명분마저 잃은 광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약 녀석을 도우려 한다면 이그드라실의 요정 대부분이 요정여왕의 등을 떠받치며 그 녀석을 역적으로 몰아갈 테니까.
"후후후. 당신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디케이."
고풍스럽게 눈웃음을 지으며 입가를 가린 채 요정여왕이 그리 말하는 데 옆에 있는 나는 그녀가 조소를 짓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무서워 죽겠네. 도대체 뭘 말하려고 저렇게 웃고 있는 거람.
"아버지가 없으면 새아빠를 얻으면 되죠."
"뭐……?"
오우야. 팝콘 각이다.
온갖 죄목을 저지른 전 남편의 앞에서 당당하게 아이를 위해 새아빠를 구하겠다는 불륜 선언. 기껏 거근이 됐는데 엄한 녀석과 정분이 나겠다는 선포에 타락을 받아들인 디케이마저 입을 쩍 벌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구경하는 입장에 있어서 다행이다.
만약 내가 저 입장에 있었다면 엉엉 울며 찌질하게 무릎 끌어안고 구석에 처 박혀 있을 자신이 있다.
그러다 돌연 요정여왕이 날 자신의 품 안으로 와락 끌어 안았다. 티타니아와 거의 비슷한 외모와 신장을 갖고 있으나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풍요롭지 못한 딱딱한 모성애가 주는 낯선 감각에 곧장 대응하질 못했다. 여왕은 아이를 안에 품듯이 날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내 정수리에 턱을 대고는 그대로 감옥 안에서 이쪽을 멍하니 응시하는 디케이에게 말했다.
"후후후. 새아빠로 성자님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디케이?"
"뭣……."
"성자인 데다가 제국의 백작이기까지 하지요. 게다가 제 동생인 티타니아의 독수공방을 충분히 만족시키다 못해 음마까지 연인으로 두고 있는 걸 보면 당신이 타락하면서까지 얻은 그 물건보다 훨씬 더 대단하지 않을까요?"
"그럴 리가 없다!"
"훗. 그럼 확인해볼까요?"
'뭘 확인해?'
그녀의 손길이 움직일 기미가 보이자 이 딱딱한 품에서 벗어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빠르게 고민했다.
요정여왕이 그때 내게 속삭였다.
"조금만 어울려주세요. 보답은 확실하게 하도록 할게요, 제부."
가슴팍을 두르던 요정여왕의 손이 점차 아래로 향한다. 손길만큼은 티타니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녀의 손바닥이 옷 위로 내 가슴부터 배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종래에는 벨트까지 잡아 익숙한 손놀림으로 탈의시킨다.
이건 절대 기분이 좋아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요정여왕이 확실하게 챙겨준다는 보답 때문이다!
"에잇!"
그렇게 요정여왕의 손길에 내 벨트가 풀리며 바지와 팬티가 내려갔고.
축 쳐져 있음에도 우람함을 자랑하는 내 물건을 본 디케이는
"……."
사형이 확정되어 살기를 포기한 죄수 마냥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선배 대신 요정여왕한테 폴리모프 마법 안 받았으면 좆을 두 개나 깔 뻔했네.
***
디케이의 배신에 의한 뒤처리는 귀족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다. 디케이와 똑같은 타락요정, 혹은 그에 동조한 배신자가 아니냐는 명분으로 요정여왕이 강하게 밀어붙이니 귀족파의 요정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얌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만 해도 분노조절장애들처럼 그녀의 말에 명분을 갖다 붙이며 태클을 걸던 녀석들은 분노조절잘해가 된 것이다.
안 하면 지들이 어쩌겠는가. 흑마법사라는 명분을 얻어 완전히 협력하기로 한 우리가 떡하니 요정여왕을 지탱해줬으니까.
우리가 사라지자마자 지랄발광을 떨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요정여왕의 말에 굽신굽신 길 수밖에 없는 노릇인 거다. 어둠의 정령을 처리할 때 싸웠던 현장에서 엘븐 가드들이 보았던 우리 실력을 전해 듣고도 시비를 거는 건 오래 산 게 무색하게 제국의 살만 뒤룩뒤룩 찐 머리 장식 귀족들과 동급이란 소리겠지.
다행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닌지 귀족파 요정들은 잠잠해졌다.
그리고 나는 요정여왕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협력 및 디케이 모욕 건으로 개인적인 보답을 받는 중이었다.
"여기 세계수의 과실 두 개에요. 더 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 하나는 제 아이를 위한 거라 줄 수가 없네요."
"괜찮습니다. 이걸로도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럽거든요."
세계수의 과실이 두 개! 마치 가슴 같은 자태였다.
'이제 마리도 모유가 나오는 건가.'
아비 누나와 동격의 모성애를 가진 마리 마망의 젖무덤에서 모유가 안 나와 얼마나 아쉽던가. 이제 내 여자들은 다 모유가 나오는 데 그녀만 안 나왔었으니까. 그것도 이제 해결된 셈이다.
게다가 하나 더 얻었으니 선배한테 어떻게 사용할지 조언도 좀 구해볼 생각이다.
그나저나 선배는 저번에 그 대마법을 사용한 이후로 아직도 수면 모드네. 하긴, 이틀밖에 안 지났는 데 그렇게 일찍 깨는 건 좀 무리려나.
"그리고 이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사절단과 협력체계를 쌓는 논의를 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그러니 그때까지 제부와 동생들은 우리 이그드라실을 관광하는 게 어떨까요?"
"일단 사절단의 일행인데 그래도 됩니까?"
"네. 얼마든지요. 사실 저도 티타 그 아이에게 죄책감이 있거든요."
그리 말한 요정여왕의 얼굴에는 서글픈 미소가 맺혔다. 뭔가 아련한 걸 떠올리듯, 혹은 후회가 옅게 나은 듯한 연륜이 담긴 눈빛이었다.
"성인식 이후로는 설녀지체가 강하다는 이유로 맘대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제재했어요. 동생에게는 못할 짓을 시켰다고 자각하고 있고 항상 반성하면서도 저는 그때로 돌아가면 똑같은 대처를 했을 거예요. 그래서 제부에게 더더욱 고마워요."
"저는 별로 한 게 없는 걸요."
"평범하게 그 아이랑 연애를 해주고 행복하게 해준 걸로 충분해요. 그 아이는 몇백 년이 넘게 그 평범함을 손에 쥐질 못했으니까요."
"그렇게 치면 저도 여왕님께 감사드려야 할 게 있는 걸요."
"제가요?"
"티타니아를 제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왕님께서 계속 티타니아를 붙잡지 않아서 그녀랑 만날 수 있었어요."
요정여왕이 티타니아를 계속 품 안에 두려고 했다면 만남조차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요정 미망인이 성노예를 자처해서 간다지만 어디 왕국의 공주 씩이나 되는 티타니아가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마 요정여왕의 묵인해서 가능했던 거리라.
덕분에 나는 티타니아를 만날 수 있었고 그녀랑 이어질 수 있었다.지금은 내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중 하나가 됐다.
그러니 어찌 그녀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후후. 그 아이는 정말로 사랑받고 있네요. 살짝 부러울 지경이에요."
"여왕님께서도 금방 좋은 짝을 찾으시겠죠. 저는 그러리라 믿습니다."
"후후. 그 말에 책임지실 수 있겠나요?"
"얼마든지 져 드릴게요."
요정인 데다가 세계수의 과실을 먹은 것 치고는 모성애가 좀 부족하다 싶지만 요정여왕은 티타니아의 자매답게 엄청난 미녀다. 지구의 아이돌이 몰려와도 싸다구를 후려칠 정도로 급이 안 되는 미녀. 미모만 따지면 내 여자들 중 가장 아름다운 이는 티타니아였고 그녀와 거의 닮은 요정여왕의 미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니 남녀역전에 가까운 모계사회에서도 그녀라면 직위 상관없이 금방 새 남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빈유가 취향이 아니라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아니, 진짜 그런데 고위요정으로 나이는 먹을 대로 먹은 데다가 세계수의 과실까지 먹어놓고 가슴이 왜 저러신 걸까.
"제부."
"네?"
"한 번만 더 제 중앙을 그딴 눈으로 보면 뽑아버릴 거예요."
"…넹."
무서워서 지릴 뻔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