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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쇼타의 변태목록-136화 (136/142)

〈 136화 〉 금속딜도 암살자 (17)

* * *

디케이는 광소를 터뜨렸다. 지하실에 울려퍼지는 그의 웃음소리는 귀곡성보다도 소름이 돋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자신감이 가득 차오르다 못해 뽕이 가득한 건지 어깨가 쌍봉낙타의 등처럼 어깨가 하늘을 뚫을 기세로 치솟는 녀석은 과연 내 마조성검과 비벼볼 만한 마력이 있었다.

어우. 팔뚝에 소름 돋았다.

아름답기까지 한 레반테인을 든 채 디케이는 나란히 선 치열을 자랑하고 싶었던 건지 만개미소를 지으며 요정여왕을 노려보았다.

"하하하! 늦었다, 테일레나. 내가 얼마나 이때를 기다려 왔는지 아나? 넌 날 막을 수 없다."

"……국서, 아니 여보."

호칭을 여보라고 하는 요정여왕. 가족으로서 묻고 싶은 듯했다.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죠? 제가 당신의 아내로서보다 여왕으로서 국정에 좀 더 치중하며 살긴 했지만 여보에게 부족하게 군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말해주세요.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이신 거죠?"

그건 그렇지.

내가 아는 요정여왕은 분명 철혈이긴 하나 감당할 수만 있다고 판단하면 누구보다도 가족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존재다. 그게 아니면 티타니아도 진작에 쫓아냈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가 이해 못하는 게 하나 있었다. 흑마법사란 새끼들은 하나같이 나사 하나가 머리에서 빠져 있는 불량품 같은 존재들이란 점을.

내 예상대로 요정여왕에게 질문을 받은 디케이의 눈에는 분노라는 이름의 기름이 활활 타오르는 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 증오의 불꽃을 그녀도 본 것인지 요정여왕의 안색은 빈 말로도 좋다고 할 수가 없었다.

"뭐가 부족했냐고? 뭐가 부족했냐고!"

그가 갑자기 바지를 내렸다.

"악! 내 눈!"

급히 두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그래도 현 상황이 어떤지 파악해야 했기에 화안금정을 켜둔 채로 있었다.

그나저나 디케이의 수법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마 안구 테러를 일으켜서 가장 강한 전력 중 하나인 날 이렇게 무력화시키다니. 나는 도저히 저 덜렁이를 물리적으로 보면서 검을 휘두를 자신이 없었다.

그나저나 타락요정이 되면 거시기가 커진다던데 진짜 크긴 컸다.

"봐라. 더 이상 예전에 너와 관계를 맺었을 때의 내가 아니다. 나는 타락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커다란 자지를 갖게 되었다고! 더 이상 침대 위에서 여자한테 그런 밤일도 못하냐는 경멸의 시선을 받을 일이 없어진 거다!"

음. 남자로서 여자랑 관계를 가진 뒤에 여성이 '고작 이 정도?'라는 시선을 보내오면 자존심이 크게 상하긴 하지. 나는 같은 남자로서 이해는 한다.

하지만 우리 쪽 여성들은 그의 얘기를 듣고 오히려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와아."

"세상에. 고작 그런 이유로 지금 이 사달을 일으켰다고요?"

"그냥 쓰레기네."

"섹스 좀 못할 수도 있지."

마지막은 좀 뼈 때리는 발언이네. 내 여자지만 진짜 잔인했다.

나였다면 저기서 주저앉고 울 자신이 있었다.

디케이는 여성진의 발언에 눈 위로 뻘겋게 핏발까지 세우며 광분을 터뜨릴 기세로 숨을 헐떡였다. 내가 봐도 좀 불쌍하긴 한데 상당히 찌질한 건 맞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불쌍한 찌질이가 양아치 누나들에게 까이면서 치욕스럽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걸 보면 불쌍하다는 감정보다는 워낙 지가 찌질하고 못나서 저런 꼴이라는 거. 그리고 그런 녀석이 힘을 가져봤자 좋은 일에 쓰지도 않을 법한 찌질이 말이다.

"닥쳐! 네년들이 내 서러움을 알기나 하는 거냐? 사내가 사내구실을 못 한다는 시선을 받을 때의 굴욕을 아느냔 말이다!"

동성만 알 수 있는 비애인데 모르겠지.

"어쨌든, 나는 세계수를 불태우고 이그드라실의 새로운 왕이 될 거다."

"그걸 요정들이 인정할 것 같나요?"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 거다. 세계수가 불타 쓰러지면 자연스럽게 환경이 열화되어 선천적인 재능의 정령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들게 되지. 그러면 무력하게 국외의 침략에 버틸 수 없게 되니 날 따라 모두 타락시킬 것이다! 그러면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깔려서 밤일로 무시당하는 일이 없어지게 되겠지!"

"와. 시발."

남자들을 위한다는 저 발상은 나쁘지 않은데 방식이 조졌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이랄까.

그나저나 저 녀석 지금 계획이 실행될 거라 생각해서 기분이 좋은 거지 다 나불나불 까발리고 있었다. 세계수를 쓰러뜨릴 정도의 무기라면 우리 정도야 쉽게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쪽이야 좋지. 더 까발릴지 한 번 물어나 볼까.

"국서 양반. 하나만 물읍시다. 세계수가 타락해야 쓸 수 있다는 그 마검을 도대체 어떻게 쓰려고? 세계수는 타락하지도 않고 멀쩡한데."

"큭큭큭. 좋은 질문이다."

"……."

와 씨. 나 지금 팔뚝에 소름 돋았어.

"지난 120년 동안 타락요정인 이 몸의 정액을 세계수의 뿌리에다 뿌렸지. 세계수가 반신이라 할지라도 결국 나무는 나무. 물을 흡수한다는 특징을 이용해서 내 정액을 흡수하게 했다. 그것도 모르고 세계수는 물을 흡수하다 내 정액에 담긴 사특한 마력까지 받아들여 차근차근 오염이 누적되었을 터! 비록 일부라도 타락은 타락. 그럼 레반테인은 가동한다!"

"…참고로 세계수가 타락했다고 확신하게 된 증거는?"

디케이가 품 안에서 나뭇잎을 하나 꺼낸다.

그 나뭇잎은 분홍색이었다. 아니, 저게 뭔데.

"이건 세계수에서 떨어진 나뭇잎이다. 세계수의 잎이 이렇게 변질됐다는 건 내 마력이 적잖이 스며들었다는 뜻이 되겠지."

"아, 그러고 보니 세계수에서 요즘 잎사귀들에 분홍색이 감돈다는 보고가 있기는 했어요."

"큭큭. 바로 그거다."

즉, 세계수가 변모했다는 걸 확신하게 된 건 저 나뭇잎이 분홍색으로 변해서다?

아니, 핑챙 천마도 아니고 핑챙 세계수는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은 걸까.

내가 [화안금정]으로 간파해보니 사특한 마력이 아니라…… 미약이 스며들어서 저런 거네. 그러고 보니 최근에 하사나랑 떡 치면서 사특한 마력은 있었는데 미약은 나오질 않더라. 하지만 파블로프의 개처럼 하사나랑 나는 그때만 되면 관계를 맺는 게 조건화 돼서 계속 자위를 협력했었고.

이제 보니까 세계수 이 새끼가 미약 효과만 따로 빼돌렸던 모양이다.

나랑 같은 결론에 도달한 건지 하사나가 날 힐끔인다.

아니, 생각해 보면 하사나는 저 잎사귀가 뭔지 간파할 수 없으니까 왜 저렇게 됐는지 순수하게 궁금하겠네. 일단 우리들이 자위 협력으로 세계수를 오염시키던 마력을 전부 뽑아내긴 했으니까.

"큭큭. 선조들의 서기에 따르면 레반테인의 불꽃은 그 어떤 불꽃보다도 강력한 겁화라고 하지. 아무리 성자 네 녀석이 불꽃에 강력하다고 해도 이 검을 이기지는 못할 거다!"

미안한데 발동도 안 하지 않을까. 미약 먹고 핑챙 세계수가 된 나무가 타락했다며 주장해봤자 마검에 걸린 봉인이 그딴 걸 인정하겠는가.

오히려 망가진 세계수를 처벌하는 거라면 봉인이 반응이라도 하겠지. 미약 먹고 핑챙이 된 미친 세계수를 벌한다는 명목으로. 하지만 타락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좀 변질되긴 했어도 사특한 거라곤 하나도 없는 세계수를 벌목하자고 봉인이 풀리겠냐고.

그 사실을 모르는 디케이가 힘차게 자신의 질 떨어지는 마력을 마검에 꾸역꾸역 쳐 넣으며 기합을 내뱉었다.

"하아아아압!"

"모두 대비하세요!"

요정여왕이 외치고 모두가 전투태세에 돌입했으나,

"하아아아압───!!"

마검은 반응하지 않았다.

"하아아아아아압───────!!!"

아무 일도 없었다.

백 날 해봐라. 저게 봉인이 풀리나.

"하아아아아아아아압──────────!!!!"

저래봤자 지 마력만 동 날 텐데.

그쯤 되자 여성진도 위화감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자 마력낭비를 알차게 하며 애쓰는 디케이에게 의문을 담아 쳐다보았다. 자기 마력을 반 이상 낭비해도 마검이 꿈쩍을 안 하자 녀석도 이상현상을 자각했는지 당황하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어, 어째서 반응을 안 하는 거지? 이럴 리가 없는데……?"

녀석이 허공에 검을 휘둘러 보기도 하고 바닥에 내려쳐 보기도 하고 온갖 시도를 하며 생쇼를 벌인다. 좀 불쌍한데 말해줘야 하려나.

"어째서 발동을 안 하는 거냐고오오오오─────!!! 나는 이그드라실의 왕이 돼 테일레나와 티타니아를 따먹고 세상까지 지배할 남자란 말이다!"

'좋아. 저 새끼는 최대한 악랄하게 조진다.'

방금 말을 듣자 동정심이 싹 가셨다. 어떻게 하면 저 새끼를 악랄하게 조졌다고 대륙에 소문이 퍼질까. 적어도 악당임에도 불쌍하다는 동정 정도는 받을 때까지 최악의 방식으로 괴롭히고 싶다.

당황하는 녀석과 이해가 안 가는 현재 상황에 공격을 할지, 몰래카메라 같은 상황인지 갈피가 안 잡혀 혼동하는 일행의 앞에내가 나서며 말했다.

"뭐 합니까? 보니까 계획에 차질이 있는 모양인데 지금 잡아다 조집시다!"

­이쪽 진영

성검을 든 성자. 성배를 든 성녀. 뛰어난 마법 기량을 지닌 요정여왕. 물의 정령왕과 계약한 정령사. 이단심문관들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이단심판관. 제국 최고의 암살자.

­저쪽 진영

쓸 수도 없는 쇠막대기 들고서 마력을 반 넘게 낭비한 데다가 계약한 어둠의 정령마저 역소환되어 곁에 없는 타락요정.

참고로 나는 아직도 눈을 감고 있지만,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화안금정 만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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