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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쇼타의 변태목록-135화 (135/142)

〈 135화 〉 금속딜도 암살자 (16)

* * *

냉기와 신성력이 뒤섞인 화살이 쉬지 않고 쇄도하고 똑같이 그림자를 다루는 이단심판관과 암살자의 합공에 어둠 그 자체라 경직이 찾아오는 어둠의 정령은 쉴 새 없이 두들겨 맞았다.

더욱이 내가 틈을 놓치지 않고 성화로 베고 촉수를 걷어내자 어둠의 정령은 아예 어둠을 뭉쳐 만든 탄환을 쏘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성화무형검을 몇 자루 만들어 베어 내는 걸로 전부 처리해서 괜찮았지만.

간간히 들어가는 정령들의 공격도 데미지를 누적시켜 어둠의 정령은 허무하게 쓰러졌다.

'별로 어렵지 않았네.'

거의 정령왕이 되기 한 발 직전의 격이 느껴졌는데.

­당연한 일이다, 계약자. 그대에게 반한 여인들은 본녀로 혀를 내두르는 어둠에 물든 자들! 계약자도 만만치 않지만 계약자의 주변 여인들 또한 만만치 않도다.

'그건 그런가.'

아비 누나는 성녀고, 티타니아는 인 엘라임과 계약한 정령사고, 마리 마망은 이단심판관에 하사나는 제국 제일의 암살자다. 하나같이 신분만 뜯어다 보면 말도 안 돼는 스펙을 자랑하는 여인들이니 그녀들과 내가 합공하면 당하는 건 당연할 지도 몰랐다.

그래도 격한 전투였기에 성의 일각이 무너졌고 부상자들이 만연했다. 아비 누나가 경험 많은 이답게 사람들을 전두지휘하며 죽을 이부터 순위를 매기고 차례대로 신성술을 통한 치료를 진행한다.

나도 성흔에 아직 신성력이 넉넉하게 남아 있으니 도울까 했지만 아직 이 사태의 발단이 되는 흑막이 존재했으니 힘을 보존해야 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참 색다른 기분이네요. 아무리 타락한 정령이라지만 절 똑 닮은 외형으로 저렇게 괴물이 되어 쓰러져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요."

"여왕님. 이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겠습니까? 이렇게 정령까지 흑마법으로 마개조시킨 존재가 그저 이 사태 하나를 일으키기 위해 이 녀석을 희생시켰다고는 생각되지 않거든요."

"그건 알 수 없어요. 정령과 정령사 간의 계약은 설사 정령왕이라고 해도 알아볼 수 없으니까요. 하물며 이렇게 흑마법으로 혼자 날뛰게 만들었으니 공급하는 마력의 흐름을 추적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고요."

"그럼 색다르게 추적해야겠네요."

굳이 마력의 흐름을 추적하는 게 아니어도 예측 정도는 가능했다. 애당초 흑막으로 국서 디케이를 의심하고 있으니 그를 범인으로 치고 추정해보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정황만 갖고 범인을 특정해서 추리를 짜는 건 굉장히 위험한 짓거리지만 솔직히 국서가 타락요정일지도 모른다는 사실부터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오히려 내 추측이 틀렸고 국서가 아닌 다른 요정이 타락한 거라면 그게 더 낫지.

"여왕님. 몇 가지 질문 좀 해도 될까요?"

"혹시 그 질문이 실례될 수 있는 건가요?"

"네. 하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으음. 그렇다면중요한 얘기일 터니…… 좀 조용하게 만들도록 하죠."

지팡이를 살짝 휘두르자 내가 기막을 친 것처럼 주변의 소음과 우리 둘 사이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됐다.감탄스러운 마력 운용이었다.

내가 기막을 쳤다고 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그녀라면 내가 은밀하게 기막을 치는 것도 감지하고는 호기심을 갖지 않을까.

그렇게 대화의 장을 만든 요정여왕이 날 응시하며 말했다.

"자, 이제 문답을 나눠도 되겠네요. 질문하세요."

그럼 사양 않고.

"국서가 최근에 정령을 소환한 게 언제죠?"

"120년 전이네요."

"국서의 잠자리를 가진 게 언제죠?"

"120년 전이네요."

"국서가 귀족파의 수장이 된 게 언제죠?"

"120년…… 전 쯤이네요."

처음부터 과감하게 질문해도 태연하게 대답하던 요정여왕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같다는 걸 인지하면서 점차 낮빛이 흐려졌다. 그녀도 지금 내 질문으로 국서가 타락요정에 가장 가깝다는 걸 인지한 거겠지.

'아니, 그런데 섹스리스 부부 생활이 120년인 거 실화냐.'

잘도 이혼을 안 했다. 요정들에게 있어 남녀는 역전된 관계에 가까워서 성욕이 많은 요정여왕이 국서를 덮치고도 남았을 텐데 섹스리스가 한 세기를 넘는다니.

저것도 다 수명이 긴 고위요정이라 가능한 거겠지.

그나저나 대답을 보면 120년 전부터 타락요정이 되었던 것 같은데 잘도 안 들켰다. 괜히 흑마법사 조직의 수장격이 아니란 거겠지.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할게요. 혹시 국서가 접근할 수 있는 이그드라실의 기밀 중에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법한 걸 알고 있나요?"

"……있네요."

즉답한 요정여왕의 안색은 마치 끔찍한 걸 상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이 정황이 되어 남편을 타락요정이라고 가리키고 있으니 아내로서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게 당연하지.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여왕과 그 남편만이 알 수 있는 세계수를 불태울 봉인된 병기가 왕성 비밀지하실에 있어요."

"오……."

좆 됐다.

***

그 뒤로 뭐가 있겠는가. 여왕은 현장에서 가장 직위가 높은 이에게 뒷처리를 맡기고 우리와 함께 지하를 향해 달렸다.

급해서 일단 따라오기는 했는데 이그드라실의 기밀, 그것도 세계수를 벌목할 병기가 있는 곳에 이국의 출신인 우리들이 가도 되는 걸까.

"괜찮아요! 티타니아는 어차피 제 동생이고 당신들은 이 이후로 요정왕국에서 출입을 금지할 거니까요!……아, 그래도 이건 왕성 지하니까 입국 정도는 허락해드릴게요."

"그것 참 감사한 말이네요?!"

입국 금지 당할 뻔했다. 나, 이래 보여도 성자인데 취급이 너무한 거 아니냐. 요정들 중에서도 주신을 숭배하는 신도는 적잖이 있을 텐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런데 테일레나 언니, 세계수님을 죽일 병기 같은 게 왜 저희 왕성 지하에 있는 거예요?"

"그게 말이지……."

티타니아의 질문에 요정여왕이 떨떠름한 얼굴을 짓고서 달리며 설명했다.

"고서에 나오는 일인데 예전에 세계수가 타락하면 어떻게 대처하냐며 주신에게 기도를 올렸던 왕족이 있었거든. 그랬더니 주신이 그 기도에 응답해서 '진짜 그럴 수도 있으니 대처할 수 있도록 마검을 줄게'라고 주신님이 답하셨데."

"……와우."

"그 분, 혹시 성인이셨나요…?"

아니, 뭘 어떻게 기도하면 주신 아가사가 그에 대답하고는 마검을 하사한 걸까. 기도한 요정이나 마검을 하사한 주신이나 내 상식을 벗어난 존재였다.

이러니 왕성 지하에 처박아 봉인할 수밖에 없었겠지. 요정들 대다수에게는 반신이 아니라 신으로 숭배받는 세계수를 죽일 무기를 왕족이 빌어서 받아냈다니. 신을 죽이겠다는 데 가만히 있을 신도는 없었고 그러면 왕권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될 게 뻔하고, 아예 없던 일로 하자니 이미 마검은 하사됐고 진짜로 세계수가 타락할 수도 있는 미래가 있을 수 있는 거다.

솔직히 내가 우연찮게 세계수 내부에 잠재된 사특한 마력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종래에 정말로 타락했을 지도 모를 일이고.

"그래서 저희 선조들은 보관은 하고 있되, 함부로 사용할 수 없도록 정말 세계수가 타락했을 경우에만 풀리는 봉인을 걸어놨다고 해요. 애당초 주신께서 그런 목적으로 준 거라 상당히 강력한 봉인을 걸 수 있었죠."

"그럼 지금 녀석들도 사용 못하는 거 아닐까요?"

"윌리엄스 성녀. 그래도 국서인 그는 이곳에 드나들 수 있으니 120년 사이에 뭔가 새로운 방법으로 봉인을 해제했을 지도 몰라요. 낙관적으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군요."

납득하고 달리는 요정여왕과 내 여자들. 한없이 진중하고 무거워 보이는 표정은 그녀들이 얼마나 지금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녀들의 머릿속에서는 최악의 경우가 실현되어 국서 디케이가 마검을 들고 세계수를 불태우거나 발목하여 없어진 경우를 상상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 이그드라실을 떠나 이주민이 되는 요정부터 세계수의 은혜가 없어 정령사의 선천적인 재능이 점차 감쇄해 국력의 저하로 이어지는 먼 미래까지. 아마 엄청 심란하겠지.

그러나 날 포함한 한 명의 암살자는 침묵하고 말았다.

"……혹시 그건가."

"……그거겠죠."

아무래도 세계수를 조금이라도 타락시켜서 인정을 받아내고 봉인을 풀어 마검을 사용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그거 나랑 하사나가 서로 자위하는 거 도와주면서 해결했다.

아마 그걸 꿈에도 모르고 녀석은 찰떡 같이 세계수가 이쯤이면 타락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겠다 판단하고 작전을 감행한 게 아닐까.

너무나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달리는 일행들에게 차마 아니라고 말은 못 하겠다. 어떻게 해결했냐고 하면 나랑 하사나가 서로 손으로 애무했던 일까지 말해야만 할 것 같으니까.

어쨌든 요정여왕을 따라 달리며 목적지에 도달하자 그곳에는 우리들의 예상대로 국서 디케이가 커다란 양손대검을 들고 있었다.

선홍빛이 물결을 치듯 검신을 타고 흐르며 눈을 즐겁게 하고 정열적인 붉은 자루는 화로처럼 마음을 뜨겁게 달구는 것만 같았다.

"크하하하하! 늦었다! 늦었어! 타락한 세계수를 죽일 수 있는 ­!"

그는 자신의 머리 위로 마검을 들고는 광기에 찬 호성을 터뜨렸다.

"레반테인이 내 손에 들어왔다!"

……미안한데 세계수 타락 안 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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