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금속딜도 암살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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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왕국 이그드라실의 국서. 어떻게 보자면 내게 형님이라 할 수 있는 양반인 디케이 이그드라실.
국서로서 훌륭히 의무를 수행하고 있고 정력이 부족한 남성 요정임에도 요정여왕을 임신시켜 왕가의 후손을 보장해줬으니 그는 고위요정들 사이에서도 존경을 받는 사내였다. 긴 머리에 안경을 쓴 그는 이지적인 분위기로 학자와도 같은 인상을 주고 있었다.
요정여왕이 다리를 놓아준 덕부에 어렵지 않게 나는 디케이와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쯤이면 사절단 일행이 요정여왕과 공식적으로 화담을 나누며 협력을 할지 말지를 중신들과 함께 주제 삼아 수다를 떨고 있으리라. 그 사이에 나는 귀족파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국서를 만나 최대한 귀족파의 입김을 줄이며 동시에 그가 협력에 공조하도록 꼬드기는 게 임무였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선배의 조언에 따라 얻은 연금술 방식은 세계수의 과실이라는 희대의 영약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남성의 거시기를 커다랗게 성장시키는 물건이 그리 흔하겠는가.
특히 선천적으로 소추인 수컷 요정들에게 있어 이 연금술 방식은 천금을 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1%도 안 되는 수치긴 하지만 요정왕국의 남성 숫자가 줄어드는 이유 중 가장 큰 게 사고도 아니고 복상사라니 할 말 다했다.
특히 국서 쯤 돼는 양반이라면 요정여왕을 상대로 밤일을 해야 하는데 그녀는 티타니아보다 나이가 많다. 즉, 더 굶주렸다는 뜻일 테고 가끔이지만 나도 감당하기 힘든 요정보지의 상위격인 요정여왕의 보지를 소추인 그가 전부 감내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터. 이 연금술을 거래 소재로 쓴다면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으리라.
학자와도 같은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디케이가 안경의 중앙을 중지로 밀어올리며 이쪽을 바라본다. 왜 욕을 먹는 기분이지?
"여왕님께 얘기는 들었습니다. 절 설득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귀족파의 수장격으로 활동하신다는 국서님을 설득하면 이단심문을 순조롭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지금 사절단과의 협상 중임에도 제가 이곳에 있는 거군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디케이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귀족파의 수장이자 부인과 사이가 안 좋은 남성 요정의 심리 따위는 알고 싶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 놓였다면 복잡하고 심란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내 생각을 마쳤는 지, 다시 눈을 뜬 그가 날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협상을 시작하죠. 절 설득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데 생각해두신 건 있으신 겁니까?"
"물론이죠. 남성 요정이라면 부정할 수 없는 제안을 들고 왔습니다."
"남성 요정이라면, 요?"
디케이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남성 요정에게 좋다는 게 무엇인지 궁금한 듯하다.
그냥 요정에게 좋은 거였다면 정령석이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성별을 확정하고서 넘어올 수밖에 없다는 투로 얘기하니 국서이자 이지적인 그 또한 짐작이 가질 않던 모양이다.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귀족파를 이끄는 수장격이지만 힌트도 없이 짐작조차 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나는 마력을 은밀하게 퍼뜨려 주변에 누가 없나 감지했다.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주변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걸 느끼신 겁니까? 제법 은밀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대단한 실력을 지니신 모양이군요."
"그러니까 여왕폐하의 옆자리인 국서에 오를 수가 있었던 거죠."
담담히, 그러면서도 자부심을 갖고 그리 말하는 디케이의 모습은 과연 뛰어난 실력자라는 걸 인식시켰다.
내가 작정하고 안 들키게 마력을 운용한 건 아니지만 그걸 감지했다는 건 그녀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암시했다. 요정여왕에게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뛰어난 역량의 마법사였다. 부부가 동시에 뛰어난 마법사라니. 천생연분이 아닐까 싶은데 왜 요즘 관계가 소원해지 건지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네.
그래도 정령사로서의 기량은 요정여왕 쪽이 디케이보다 높다고 하니 그걸 질투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미쳤다. 요정들에게 있어 정령사로서의 자질은 그야말로 중요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그의 말대로 주변에 훔쳐들을 법한 이들이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더욱 은밀하게 마력을 운용해 기막을 펼치고 힐끔 디케이의 눈치를 보았다.
'이 정도는 안 들키나 보네. 그러면…… 대충 기사랑 비교하면 앨리스 수준의 역량을 지녔으려나.'
앨리스랑 붙이면 좋은 훈련이 되겠다 싶은 역량이다. 내가 인정한 천재와 비견되는 재능을 지녔다니. 요정여왕께서도 남자 보는 안목은 제법 높은 듯했다.
"일단 제가 꺼낼 교섭 재료는요정들의 음경을 성장시킬 수 있는 비법입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에게는 요정들의 남성기를 부작용 없이 성장시켜 그 크기를 만족스럽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걸 알려드리겠습니다."
"……."
침묵하는 디케이였으나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그런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자고로, 고추 멀쩡한 수컷이 그 크기를 부작용도 없이 키울 방법이 있다고 하면 눈이 돌아가는 것은 유전자 단위로 새겨진 욕망을 느끼게 되리라. 나조차도 마리 마망에게 모유수유를 받는 걸 포기하고 성기를 강화시키지 않았던가. 덕분에 내 용자지는 살짝 더 커져 31cm의 가정파괴범이 되었다고 자부할 정도다.
어쨌든, 남성 요정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건넸으니 남은 건 이성을 되찾은 디케이와 협상에 들어가는 거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벌떡 일어나 호통을 치기 시작한 디케이. 차분했던 인상이 마치 가면이었다는 듯이 벗겨진 그의 얼굴에는 광기와 분노가 득실거렸다.
"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방금 제게 타락하는 방법을 알려주려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무슨……?"
타락한 흑마법사 간부를 잡기 위해 교섭을 하는 자리에서 타락해 흑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 소악을 잡으려면 거악이 되어야 한다는 개똥논리도 아니고 왜 국서의 입에서 저런 생뚱맞은 발언이 나온단 말인가.
게다가 그의 얼굴에 서린 저 분노는 내면에 깃든 광기를 숨기기 위함에 가까웠다.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눈 안에서 소용돌이 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똑같이 빠져들게 만들 법한 광기. 이단심문관 중에서도 극단적인 녀석들이 지을 법한 눈빛이었으며, 자신은 이미 저 눈빛을 흑마법사에게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착각일 지도 모르지만 명백히 국서라는 위치에 있는 양반이 할 눈빛은 아니었다.
'……짜증 나네. 제국이었다면 그냥 조져보면서 손수 확인했을 텐데.'
상대방은 티타니아의 형부.
제국의 입김이 그리 강하지 못한 요정왕국에서 증거도 없이 국서를 핍박했다는 사실이 퍼졌는데 만약 내 생각이 틀렸던 거라면 그 길로 흑마법사 간부를 잡을 기회는 더 이상 없어지다. 그러면 요정왕국에 재해가 일어날 테고 나는 티타니아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지겠지.
"타락이라니! 성자라고 해서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제게 그런 부정한 방법을 전하려 하다니요!"
그러니 불 같이 솟구치려던 짜증을 억누르고 침착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진정하십시오, 국서. 제가 말하려던 건 연금술을 통한 비약이었습니다."
"타락이 아니라, 비약 말씀이십니까?"
"네."
당연히 비약이지 왜 타락을 시킨단 말인가.
"오히려 저는 왜 타락을 종용하려고 했다 생각하시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군요. 요정이 타락하면 음경이 커지기라도 한답디까?"
"그렇습니다."
"……."
진짜?
황당해 하는 내게 디케이가 설명했다.
"타락요정(다크엘프)이 되면 정령이 그림자 정령으로 타락함과 동시에 신체능력이 상승합니다. 그 부가효과로 성기 또한 커지지요. 여성 요정이 타락하면 가슴이 커지고, 남성 요정이 타락하면 음경이 커집니다. 그래서 저는 성자님께서 말씀하신 방법이 틀림없이 타락을 통하 것이라고만……."
"……오해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뇨. 제가 성자님의 말을 전부 듣지 않고 오해해 폭주할 뻔한 것이니 오히려 제가 사과해야겠지요."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디케이를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학자로서의 인상이 다시 씌워진 듯한 모습.
그러나 그가 억누르고 있던 광기를 한 번 마주하니 가면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무엇보다도 날 거의 배신한 적이 없던 스킬인 [직감]마저 눈앞의 그가 수상하다고 연신 신호를 보내왔다. 정말로 그가 타락요정이고 모종의 방법으로 그를 숨기고 있던 거라면 어떻게 확인하는 게 좋을까.
서로에게 사과를 하고 훈훈한 분위기가 되도록 유도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그의 정체를 밝힐 방법을 모색했다.
결국, 이렇게 내가 고민하고 있어봤자 답은 나오질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러니 일단 마리 마망에게 부탁해서 당신의 그림자의 정보력을 이용해 디케이의 최근 정보를 모조리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에 닿았다.
그리고 그건 상대방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우리 둘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지만 뒤로는 칼을 갈았다.
"…하하하!"
"…허허허."
시발. 나도 쟤 찍기는 했는데, 나도 찍혔네. 어떡하지?
국서가 날 내쫓느냐, 내가 국서의 정체를 까발리느냐의 치킨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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