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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쇼타의 변태목록-122화 (122/142)

〈 122화 〉 금속딜도 암살자 (3)

* * *

"실례할게요."

"실례가 아닙니다. 부디 들어오시지요."

나는 지금 갑작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렸다. 티타니아만 개인방을 지정하기에 자매끼리 해후를 풀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거라 여겼는데 예상 외로 여동생을 대동한 채 테일레나 여왕은 나랑 연인들끼리 있던 방을 기습적으로 방문한 것이다.

아무리 이곳의 주인이라지만 땅거리가 내려앉다 못해 밤하늘에 검은 이불이 쳐져 어두워진 늦은 시간에 손님이 머무는 객실을 방문하는 건 실례였기에 여왕이 사과를 건네고 내가 그걸 예의치례로 받아 넘긴다. 그럼 여왕이 얘기 좀 하겠다는 데 그걸 냉정하게 실례니 내일 합시다, 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내가 여인들과 섹스에 돌입하기 직전이었다가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라 서둘러 정리하고 옷을 입은 거라 할지라도 말이다.

마리 마망도 사절단으로서 복장을 갖췄다. 나만 하얗고 깔끔한 복장이 아니라 마리 마망 또한 사절단의 예복을 갖췄다. 이단심문관, 혹은 이단심판관은 아비 누나 같은 사제랑 다르게 교단에서 정해준 정복이 없기에 이럴 때는 예복을 갖춰야 하기에 제국에서 제공한 예복을 입은 것이다. 다만, 음마답게 노출이 심한 옷을 좋아하는 그녀는 미니스커트에 가슴골이 드러나는 예복으로 현대의 의복과 비유하자면 커리어 우먼 같은 비서 복장 화이트 버전이랄까.

어쨌든 그렇게 셋 다 예복, 수녀복을 갖추고 정중하게 요정여왕과 티타니아를 맞이했다.

객실에 진작부터 있었던 의자를 테이블로 끌고 오고 아비 누나와 마리 마망이 재빠르게 차를 타기 위해 자리에서 빠졌다.

"티타에게 사정은 다 들었어요."

티타라. 애칭인가. 나도 나중에 그렇게 불러도 되는지 허락을 받아볼까.

그보다 힐끔 그녀를 보니 다 잘 얘기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자처해서 성노예가 된 일은 어떻게든 해결했다는 건가. 그럼 여왕이 여동생과 나와의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허락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그렇군요. 그럼, 인정해주시는 건가요?"

"네. 성자와 성녀, 그리고 이단심판관까지 왔는데 이단심문에 협력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네?"

"음? 지금 타락요정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게 아니었나요?"

"…………………맞아요."

테일리나 여왕이 의아한 눈길로 이쪽을 바라보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티타니아랑 주종관계였으며 지금도 티타니아가 주인님이라고 불러주고 있다고 어떻게 내 입으로 말해.

만약 내가 여동생이 있는데 걔가 남자랍시고 데려온 녀석이 금발태닝에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관계라면 조질 테니까. 역지사지라고 똑같이 생각하면 내가 무슨 짓을 당할지 예상이 그려진다. 그러니 당사자인 티타니아가 직접 말하게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쨌든, 티타니아는 자신의 언니에게 흑마법사 조직에 대한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사실 여기 방문한 목적이 그 이단을 찾으려는 거였으니 티타니아는 생각 이상으로 도움을 줬다 할 수 있었다.

"후후. 잠깐 딴 생각을 했던 것 같지만 넘어가도록 할게요. 제 여동생과 정식으로 연분을 나누고 있는 관계라니 사소한 무례 정도는 사돈으로서 넘어갈게요."

"감사합니다, 여왕폐하."

"어머. 처형이라고 불러도 되는 데요?"

"그 말씀은 부디 거두어 주시길."

"재미없네요."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눈웃음만을 내보이는 요정여왕의 페이스에 휘말릴 것만 같았다.

여기서 진짜로 처형이라고 불렀다간 그걸 빌미로 내게 짓궂은 장난을 치려는 게 뻔히 보이는 데 하겠냐고.

사실 선배와 마조성검을 대동해서 요정여왕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 데 지금 섹스를 하려던 참이어서 둘 다 검집에 넣고 책을 덮어 수면모드로 돌렸다. 조언을 얻고 싶건만, 그러지도 못하게 생겼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일단 제국과 교단에서 요청하는 대로 협력을 할 생각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가 있는 거죠?"

"최근 들어 요정왕국의 정세가 왕실파와 귀족파로 나뉘어져서 소소한 분쟁이 이어지거든요."

"……."

여기도 귀족파랑 왕실파가 정치질 중인 거냐. 그나마 제국은 폐하께서 실권을 꽉 잡고 있어서 명분을 주지 않는 이상 귀족파는 있으나 마나지만.

정말로 골치가 아픈지 한숨을 푹 내쉬는 요정여왕. 티타니아가 그녀를 위로하듯이 손을 잡아주자 여동생의 풍요로운 가슴에 기대어 그 푹신함을 만끽하는 폐하. 저 감촉을 잘 아는 나로서는 존나 부러웠다. 설녀체질인 그녀를 어떻게 만지고 있나 싶었더니 묘한 마력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부상을 대신 받는 아티팩트인가? 저거 엄청 비쌀 텐데.

"요즘 제 남편을 중심으로 귀족파 남성 요정들이 모이고 있어요. 저희 이그드라실은 남자는 왕이 될 수 없어 국서가 되는 게 일반적인 전통이죠. 하지만 남편은 국서의 자리로 만족하기 힘들었는지 최근 남성 요정들을 데리고 귀족파를 만들어서 사사건건 국정에 간섭하고 있죠."

"국서와 사이가 안 좋으신가요?"

"음……. 예전에는 좋았던 걸로 기억하는 데 아이를 낳은 이후로는 왜소해진 것 같네요."

애를 낳은 이후 변했다는 건가. 어차피 자신들이 후계자도 있겠다, 억눌렀든지 자각하지 못했던 건지 하는 권력욕이 내부에서부터 폭발할 걸까. 그 외의 이유는 상상의 영역이었기에 추리가 불가능했다. 이건 선배한테 조언을 좀 얻을 필요가 있겠는걸.

똑같은 성별의 고위요정이니까.

"그래서 제가 제국과 교단의 이단심문을 허락하고 협조를 하겠다고 하면 자신들을 의심하는 거냐며 귀족파가 반발할 게 뻔해요. 저희들이 모계사회긴 하지만 내조를 담당해야 할 남성분들이 그렇게 단체로 반발하면 무시할 수도 없거든요."

"그럼 저희들이 이단심문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이 요정여왕. 말하는 걸 보면 귀족파를 설득하기 위해 필요한 설득을 하기 위해 저리 말을 꺼낸 거리라. 자신이 직접 나서서 처리하기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안 되기에 형부 입장이자 성자로서 발언권이 그리 작지 않은 내게 찾아온 거고. 물론, 티타니아와의 관계도 궁금하긴 했을 테니 겸사겸사일 거다.

내 예상대로 이쪽에서 자처해서 도움을 주겠다는 뉘앙스를 내비치니 요정여왕의 눈웃음이 진해진다. 내가 알아서 넙쭉 받아들이겠다 하니 역시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국서, 제 남편을 설득해주셨으면 해요. 그의 고민을 해결해주시는 김에 저희 부부의 소원해진 관계도 해결해주시면 좋고요."

"……노력해보겠습니다."

"어머! 고마워요, 제부. 과연 사돈의 일이니 열정이 넘치시네요."

사이가 안 좋아진 국왕부부의 관계를 해결하라니. 난감하기 짝이 없지만 일다 도움을 받으려면 국서를 설득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싱긋 웃는 요정여왕과 그 옆에서 내게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보내는 티타니아. 나는 괜찮다는 시선으로 대답하고는 이제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무지성으로 설득하겠나고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다 아비 누나와 마리 마망이 돌아오면서 차를 내왔다. 라벤더 향이 퍼지며 솔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게 맛도 좋아 보였다.

"감사해요. 성년와 이단심판관이 내온 차라니. 여왕으로 있으니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되네요."

"호호. 과찬이세요."

"영광입니다."

두 사람이 내온 차를 기품 있게 마시는 요정여왕. 찻잔을 자연스럽게 기울이며 자신의 입가에 갖다대어 라벤더 차를 마신다. 그런데…… 기품은 확실히 있는데 그림이 되질 않았다.

어째서일까 호기심을 갖고 계속 쳐다보던 나는 문득 옆에서 같이 차를 마시는 티타니아에게 시선이 갔다. 폭유를 출렁이며 맛있다고 귀를 쫑긋거리며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티타니아. 음. 역시 여인이 그림이 되려면 가슴이 커야 한다니까.

"음? 흐음."

"왜 그러세요? 혹시 맛에 무슨 문제라도……."

"아뇨. 그저 갑자기 기분이 불쾌해져서요. 뭐, 괜찮아요. 귀족파의 누군가가 제 욕이라도 하나 보죠."

"……."

가슴이 없다는 생각이 그녀에게는 욕으로 느껴지나보다. 그나저나 여자의 감은 역시 무시무시하다니까.

"그나저나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차를 다 마신 요정여왕이 진지한 얼굴로 그리 말한다. 또 다른 중요한 이야기가 있나 싶었는 데 묘하게 진중하지 않은 분위기에 우리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찻잔이 탁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내려놓은 요정여왕이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저희 티타랑 제부의 연애사정을 좀 듣고 싶어요!"

"네?"

"아름다운 꽃잎이 산들바람에 휘날리는 언덕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용병과 오두막에 살던 요정의 만남으로 시작된 연애관계라면서요? 로맨스 소설 같아서 저 지금 굉장히 기대하고 있답니다!"

"……."

너 나 할 거 없이 우리 일행의 시선이 티타니아에게로 향했다. 내 여자들은 각자의 만남이 어떻게 이뤄진 건지 서로들 알고 있었으니까.

뭐? 꽃잎이 산들바람에 휘날리는 언덕? 용병과 요정의 만남?

우리들의 시선을 받은 티타니아의 얼굴에서 붉은 서리가 맺힌다. 아니, 긴장해서 마력제어가 흐트러져 냉기가 생기고 서리가 맺힌 건데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니 그게 서리 위로 다 드러난다. 옆으로 시선을 이동하면 그런 우리를 흥미진진하게 쳐다보고 있는 요정여왕 처형.

'좆 됐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한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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