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금속딜도 암살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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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에 도착하니 요정여왕 테일레나 이그드라실의 알현을 뵙는 자리까지 가는 길은 일사천리였다.
애당초 요정왕가의 핏줄이자 현 여왕의 자매인 티타니아가 복귀했으며 남편감을 물어왔으니 그 소식은 빠르게 요정왕가에도 퍼졌고 그쪽에서 알아서 복잡한 절차를 간소하게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사절단은 엘븐 가드제국으로 치면 황실 기사단이다.의 경계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호위를 받으며 요정여왕의 옥좌 앞에 도달했다.
'예쁘긴 예쁘네. 티타니아랑 비슷한 외모기도 하고.'
외모'만'은 티타니아만큼 아름다운 미인이 옥좌에 앉아 있다.
그녀는 우리 제국의 폐하랑은 다른 타입의 지도자였다. 폐하께서 실력과 권력을 기반으로 한 패기를 둘렀다면 눈앞의 여왕은 모든 이를 포근하게 안고 나아갈 것만 같은 포용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일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듯이 단호한 기세 또한 지녔기에 성군이라는 결론이 내 안에 지어진다.
황실의 고위관리직이 사절단의 대표로서 요정들의 예법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세계수의 찬란한 은혜 아래에 빛나는 요정을 뵙습니다. 사절단의 대표 시온 크라이트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국의 사절단 여러분. 제 이름은 테일레나 이그드라실. 이그드라실 왕가의 여왕이랍니다. 그리고 저희 요정의 예법으로 인사를 건네주어 감사합니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외국에 가면 외국 법에 따르라.'라는 말이 있듯 저희는 이그드라실 왕국의 예법을 따르는 게 당연하다 여겼을 뿐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것과 비슷한 속담이다. 혹시 나 이전에 지구 출신 사람이라도 있었던 걸까.
여전히 요정의 예법을 맞추는 고위관리직을 보며 사근한 미소를 짓는 테일레나 여왕.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내 옆에 똑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티타니아에게 향하고 있다는 걸 기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몇십 년 만에 재회한 자매 간의 만남이니 감성이 남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그 사실을 시온 또한 느꼈는지 미리 짜뒀던 플랜 중 하나를 꺼냈다.
"여왕폐하. 일단 서로 '여독'을 풀 시간이 필요할 듯하군요. 장기간의 행군이었던 지라 잠시 휴식을 가질 시간을 주시면 아니되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죠. 사절단 여러분이 쉴 방은각자준비되어 있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일단 티타니아는 나와 금술이 좋았고, 나는 제국의 사람이자 성자다. 그러니 날 통해 티타니아와 해후를 풀어 기분이 좋아진 상태의 여왕과 다시 알현을 해 이단심문의 기회를 순탄하게 얻자, 는 게 이번에 선택된 플랜이었다.
만약 여왕이 내색하지 않고 티타니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면 고위관리직인 시온이 다른 플랜을 진행했을 예정이었지만, 나머지 방법들은 번거롭기 짝이 없는 것들이라 진행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속으로 안도하고 있지 않을까. 역시 중세시대에서 공무원은 할 게 못 된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는 티타니아에게'만' 호화로운 객실이 배정되고 나머지는 이삼오오 머물 객실이 쥐어졌다. 나는 마리랑 아비 누나랑 셋이서 한 방을 사용하게 됐다. 아직 감시의 시선이 있는 듯 했으나 그건 바깥에 나가서 어디로 갈까 봐 감시하는 것이지 사생활을 침법할 생각은 없는지 방 안까지 보는 시선은 없었기에 나는 마음 편히 기막을 치며 마리 마망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어 누웠다.
뭉클.
눈가리개를 자처하는 마리 마망의 왕찌찌 덕분에 행복하다.
"일단 누나랑 마망이 본 처형의 인상은 어때?"
"흐음. 내가 보기에 그녀는 포용성이 있으면서도 그건 같은 요정에 한해서, 인 것 같았어. 티타니아와 레온을 볼 때는 제법 부드러운 눈매였지만 그 외 우리를 포함한 사절단을 볼 때는 싸늘한 시선이었거든."
"저도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도 성자님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서 다행이네요."
"그건 그래. 이쪽이 그럴 생각이 없어도 처형 쪽에서 친해질 마음이 없으면 사이에 낀 티타니아만 고생했겠지."
그런 전개가 없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요정왕국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이권을 티타니아가 마음껏 누리며 나와 생활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나와 테일레나와 사이가 원만하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테일레나이기에 동시에 문제도 있었다.
"딱 보니까 분위기는 자신들 사이에 배신자는 없다는 분위기더라."
자신들 사이에 타락요정(다크엘프)이 있다고는 도저히 믿지 않는 듯했다. 남편이 일찍 사별해서 독수공방을 수십 년이나 하는 요정 미망인을 제외한 대부분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기세로 성장한 세계수만큼 커다랗으니까. 뭐, 테일레나 처형의 가슴은 신기하게도 껌딱지라 자존심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겠지만.
왕족인 데다가 여왕이니 분명 세계수의 과실도 먹었을 테고 티타니아의 언니인 만큼 연상이라 나이도 많을 텐데 가슴이 그렇게 껌딱지인 요정은 처음 봤다.
…아니, 왜 이쪽으로 생각이 빠지는 거람.
"여왕의 근처에 있는 인물들은 어지간해선 고위요정이거나 그 혼혈일 테니까. 자존심이 절로 높아져서 콧대가 올라간 놈들뿐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그들은 세계수의 과실을 조각이라도 얻어 먹으니 자지가 다른 요정보다 절륜하니 자존심이 클 수밖에요."
"……고위요정이 왕족인 건 알겠는데 혼혈이나 방계도 다 먹는 거였어?"
"어머. 당연하죠."
마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안 그러면 그 많은 핏줄들이 과실을 독점하는 왕가를 가만둘 리가 없지 않을까요? 성자님은 성기를 강화시키는 국보를 왕가만 독점하면 냅두시겠어요?"
"그런 거구만."
즉, 세계수의 과실은 조각으로도 정력제로서는 충분히 효과가 있으니 다른 요정보다 밤일을 더 잘하는 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걸 먹으면 자기 부인 관리는 잘 될 테고 그러면 가정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재능이 뛰어난 녀석들이 세계수의 과실 조각을 받고서 왕가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건 어쩔 수 없으리라.
모계사회인 요정왕국이라 대부분 엘븐 가드와 사용인이 여성이던데 그녀들이 남편을 챙겨 즐거운 부부간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반응이다.
일하는 게 여자든, 남자든 충성을 바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성자님이 이번 일을 도와줘도 세계수의 과실을 얻을 가능성은 상당히 적다고 봐요. 이미 성자님의 절륜함은…… 커흠. 성기능은 국외로도 널리 퍼진 상태니까요. 안 그래도 부러운데 주면 아깝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거예요."
"……쩝."
세계수의 과실은 포기해야 하는 건가. 타락요정을 조져도 과실을 얻을 수가 없다니. 상당히 안타깝구만.
순간 훔칠까 하는 고민이 들었지만 이미 건국제가 한 번 도둑질을 했으니 마조성검의 주인으로서 또 그런 짓을 벌이기에는 양심이 찔려서 못 하겠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어때? 타락요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글쎄. 나는 일단 사특한 기운에 민감하긴 하지만 그건 격세유전 모드일 때 강화되니까 통상의 상태로는 눈치 못 채겠더라."
"저도 일단 피맛을 봐야 분별할 수 있어서 그건 힘들 것 같아요."
"결국 협력을 받아야만 잡을 수 있겠네."
"그럴 수밖에 없죠. 애당초 그걸 목표로 온 거고요."
아무리 이단을 찾아내기 위해서라지만 허락도 없이 고위요정의 피를 모으고 다니면 사절단으로서 대단한 실례였다. 당장 활을 들어 활시위에 화살을 걸어 당기고 우리를 겨냥해도 할 말이 없는 무례한 행동이니 반드시 협력을 받아내야만 했다. 한 명이라면 모를까 여왕이 다니는 길 전부를 훑어가며 이들의 피를 수집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근데 모계사회면서 여왕 가슴이 껌딱지인 건 문제 없어?"
"뭐 어때. 남자들은 다 소추라면서."
"……."
생각해보면 아비 누나도 성녀답지 않게 입담이 은근 잔인한 것 같았다.
근데 왜 [직감]은 이게 정답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고장 났나?
***
이그드라실 왕도 어딘가. 그곳에는 검은 로브를 입은 타락요정(다크엘프)이 있었다. 그는 타락하면서 어둠의 정령으로 변질된 자신의 계약정령을 바라보며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곧 있으면 완성이다……!"
투명한 큰 유리관에 갇혀 온갖 흑마법으로 개조를 당한 어둠의 정령. 육봉성의 여섯 간부의 비기를 전부 집약시켜 만들어지는 어둠의 정령은 막대한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기운을 담았을 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 힘을 소화하고 한층 더 진화된 존재로서 눈을 깨게 되리라.
그 모습을 떠올리니 타락요정은 음산한 미소와 함께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요정답지 않게 우람한 자신의 하물을 손으로 훑으며 요정여왕을 자신의 밑에 깔고서 무자비하게 쑤시는 핑크빛 미래를 상상했다.
"곧 있으면 날 소추라 무시한 그 깐프년과 고위요정들한테 복수할 수 있다!! 거근이 된 이 몸의 물건으로 굴복시켜주겠다!"
타락요정 일봉성.
그가 타락을 선택한 이유는……타락요정이 되면 거시기가 커지기 때문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