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스위치 이단심판관 (14)
* * *
확실히 마르가리타의 실력은 뛰어났다. 음마에게 있어 가장 흔한 능력인 환영을 적절히 사용해 현란한 허초를 만들어 눈을 속이고 그 틈을 노려 혈검이 쌍으로 카운터를 노려왔으니까. 가슴이 커다래서 묘하게 자세가 이상하긴 했지만 아비 누나도 성배를 둔기 마냥 휘두를 때 동작을 일부러 크게 하는 것과 얼추 비슷한 면이 있었기에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내려친 아르미사엘을 혈검을 수평으로 들어 막는다.
콰앙.
꺄으으으으응!!
……검의 충돌로 생기는 충격에 나에게만 들리는 마조성검의 교성은 무시하자.
애당초 그런 여유로운 잡념을 품을 정도로 마르가리타는 약한 상대가 아니었다.
쐐액!
내려친 참격을 막는 것과 동시에 다른 손에 들려 있던 혈검으로 쇄도하는 찌르기. 막는 것과 동시에 공격을 할 수 있는 건 쌍검, 혹은 한손방패를 든 검사만이 가능한 기본기. 고개를 옆으로 젖혀 인중을 노리는 찌르기를 피하고 뒤로 발을 놀려 거리를 벌리자 동시에 목을 노리던 베기가 허공을 가른다.
거추장스러운 걸 싫어하는 나는 경갑조차 입지 않고 싸우는 편이라 저런 힘 없는 베기에도 목젖이 잘리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살초를 날린 건 그게 살초가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선물받은 성자의 로브는 나보다 그녀가 더 잘 알 테니까.'
순백의 로브. 성인만이 입는다는 이 로브는 대체로 전투능력이 떨어지는 성인이 암살이나 기습에 쉽게 죽지 않도록 무척 뛰어난 방어력을 지닌 성자의 로브는 신성력을 불어넣으면 호신강기 뺨치는 수준의 방어력도 선보일 수 있다. 그러니 평소라면 살초가 될 공격도 지금은 상채기를 내는 정도랄까.
아마 그녀는 이런 전투법도 있다고 알려주려고 한 거겠지.
하지만 의외로 변칙적인 전투법은 내가 그녀보다 더 숙달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수많은 장르의 가상현실 게임에서 배운 경험이, 이단심판관 한 명의 인생보다 못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휙!
"에?"
거리를 벌려 발이 닿기도 전에 아르미사엘을 던진다. 제대로 된 투검도 아니라 그냥 나무에 박힐 정도의 위력만을 가진 대충 던진 성검의 모슴에 당혹스러운 반응을 내비친 마르가리타가 침착하게 가드해 튕겨 낸다. 내가 아예 다시 잡지 못하도록 이상한 방향으로 날려 버리는 흘리기.
하지만 그녀가 예상 못한 건 성검의 기능이었다.
파앗!
끼요오오오옷!
"……."
"?!"
던지기 전에 살짝 불어넣은 신성력으로 이기어검을 펼쳐 아르미사엘을 내 손으로 되돌린다. 손에 다시 성검이 안착했을 때는 이미 마르가리타의 앞까지 다시 돌진한 순간이었다. 설마 검이 알아서 돌아오는 기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 지 마르가리타가 다급히 환영을 펼치지만 소용없었다.
이 세계 한정으로 가장 강한 마안이지 않을까 싶은 [화안금정]은 환영을 가볍게 간파한다.
여러 강화계 스킬로 속도를 가속하고 염동력으로 단순히 근력으로만 펼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마르가리타를 몰아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쌍검술을 나보다 오래 단련한 이답게 방어일변도에 집중하는 이단심판관의 철웅성 같은 방어를 뚫는 건 쉽지가 않았다.
굳이 환영이 아니어도 공수전환이 능란하며 그걸 쌍검술로 펼치는 마르가리타의 실력은 강했다. 게다가 간간히 하사나가 보였던 그림자 이동술로 뒤를 점거해 기습을 날릴 때는 수월하게 막지만 처음 보았을 때는 식겁해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 내리는 걸 느꼈을 정도다.
그래도 배울 수 있는 건 많았다.
칼을 나누고 합을 겨룰 때마다 쌍검술의 정교함이 올라가는 걸 느꼈고 정교해지는 걸 체감했다.
[신겁합일]의 재능에 화안금정으로 그녀의 쌍검술 기본기를 훔쳐 배우는 데 빠르게 성장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걸 지도 모르겠지만. 한 바탕 대련이 끝나고 나와 마르가리타는 격한 운동으로 젖은 땀을 수건으로 훔치며 휴식을 취했다.
"후우우. 성자님은 정말로…… 대단한 재능을 가지셨군요."
"선생님이 뛰어난 덕분이지."
"후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그 이상으로 성자님의 재능이 빛나셔서 저까지 눈이 멀어 버릴 뻔했답니다."
전신망사라 보이지 않지만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그윽하게만 느껴졌다. 아니, 음마는 풍기는 체향부터 육신의 모든 게 남성을 꼬시기 위한 존재나 다름없다니까 당연한 현상이려나.
"그렇게 말해도 이번 대련에서 패배한 건 나지. 반사신경과 말도 안 되는 움직임으로 커버했을 뿐이지, 순수 쌍검술로는 내가 압도적으로 밀렸으니까."
"실전이었다면 제 패배였겠지만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면서도 실전이었다면 자신의 패배라고 인정하는 마르가리타. 어느 정도 실력자가 된다면 기교의 차이, 경험의 차이, 스펙의 차이 정도는 읽을 수 있다.
그러니 내게 패배했다고 순순히 수긍하는 거고.
하지만 말했다시피 쌍검술로서 나는 패배했다. 쌍검이 그리는 궤적이 명백히 마르가리타보다 많았으며 움직임 또한 군더더기가 많은 힘을 낭비하는 것이었으니까. 대량의 전투 경험이 축적된 움직임과 이쪽의 더 높은 신체스펙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대련조차 성립되지 못햇을 정도였다.
연무장에 배치된 벤치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선선한 기분을 느끼도록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며 휴식을 취하는 나와 마르가리타. 둘 다 쌍검을 몇 시간 동안 휘두르느라 진이 다 빠졌다. 그 뒤로는 이론적인 논검을 나누었다. 원래, 논검을 나눈 후에 연습에서 실천을 해보는 거라 순서가 반대라 할 수 있었지만 재능이 있다면 오히려 역순으로 가는 게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쌍검술은 공수전환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검 하나를 사용하는 것보다 복잡해요. 자신의 검로가 꼬이지 않게 미리 한 수 앞서서 계산해야 하면서 적의 공방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죠. 거기서 익숙해지면 두 검을 다 공수전환에 능숙하게 사용해서 번잡한 검술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건 금방 익숙해질 것 같아. 그러면 당분간 기본기만 마르가리타 씨에게서 체득하고 그 방어를 뚫는 공격적인 쌍검로를 터득해야겠네."
"그런 셈이죠. 후후. 제 방어, 열심히 뚫어주세요."
"……."
아니, 뚫는다는 표현을 입술을 핥으면서 말하지 말라고. 괜히 음란마귀가 머리를 잠식하려 든다.
"어머. 뺨에 상처가 있으신 데요?"
"이거요? 금방 회복될 겁니다."
아니면 아비 누나한테 치료해달라고 하면 그만이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마르가리타가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여 손수건을 갖다댄다.
"떽! 안 돼요. 성자님이 이렇게 피를 묻히셔야 되겠나요. 제가 닦아드릴게요."
"……."
저항해야 하는 데 못하겠네. 출렁이는 가슴이 만들어 낸 가슴골은 마치 계곡물에 빠진 사람처럼 내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마성이 있었다.
거미줄처럼 느껴지는 전신망사가 어중간하게 가려서 더 야하다는 느낌이었다.
충분히 쉬었다고 판단한 건지 토론을 끝 낸 뒤 얼마 안 있어 마르가리타가 벤치에서 일어난다. 노출 심한 전신망사 본디지로 저 가슴의 출러임은 막을 수 없었다. 내 시선도 저기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
내 시선을 분명 눈치챘을 터인 데도 그녀는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고 오히려 야릇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가 이내 감추며 모델워킹으로 연무장에서 퇴장한다.
분명 내가 보고 있음에도 일부러 엉덩이를 씰룩이며 걷는 건 봐 달라는 뜻이 분명할 텐데…… 대체 왜 나한테 저러는 건지 모르겠네.
"아니, 씹. 내가 언제 꼬셨나? 이번에는 손도 안 댔던 것 같은데."
그녀가 음마이니 내가 용자지를 노출했다거나, 그녀 쪽에서 남편을 잃고 독수공방을 하느라 성욕이 쌓인 거라면 이해는 한다. 한 번이라도 경험하면 일반인 또한 쌓이기 마련인데 많은 경험을 가진 음마가 독수공방을 하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데 독수공방하는 음마라니. 들어본 적도 없고 그녀도 자위 정도는 분명 다 할 터이다.
대체 왜 나한테 호감을 갖고서 저리 야리꾸리한 눈빛이나 미약한 어필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단심판관으로서 그냥 성자를 좋아하는 건가.
고민하고 있는 데 옆자리에 반짝이는 햇살을 반사시켜 내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순 짜증이 일었으나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분명 내가 앉은 곳은 평범하게 목재로 제작된 벤치 의자였고 반사될 것이 없는 데 어찌 햇살이 이리도 반광하며 부신단 말인가.
고개를 돌리고 내려다 보니 일 자로 젖은 흔적이 벤치에 남아있었다. 심지어 물기까지 고여 있었는 데 그 모양이 마치…… 전복이랑 비슷했다.
'아 씁. 머리 더 아파지네.'
도대체 나한테 호감을 가질 이유가 뭔데?!
***
"하아……. 하아아…."
마르가리타는 두근거리는 가슴이 뭉개질 정도로 한 손으로 꾸욱 누르며 다른 손으로는 손수건에 묻은 혈향을 맡으며 침대에서 다리를 배배 꼬았다.
쌍검술은 미숙하나 전투 자체는 능숙한 합법쇼타의 수컷다운 박력 있던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말았다. 음마는 강한 수컷을 본능적으로 탐하는 종족. 아이까지 낳고 전 남편을 아직 잊지 못해 그런 욕구는 거의 없다시피 하던 그녀는 성자의 혈향에 중독되어 버렸고 모든 생명체의 축복인 망각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지우려고 눈을 감고 머리를 비우려 하면 상상력이 잊지 말라는 듯 뇌리에 자꾸 그 피맛을 떠올리게 했다.
결국 꾹 참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는 데 오늘 쌍검술을 연습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자님에게 쌍검술을 가르치고자 나섰는 데 그만 예상 외의 실력에 수컷다운 박력을 느끼고 음마로서 발정이 나고 말았다.
사실 벤치에서 휴식을 취할 때 그의 뺨에 흐르는 피를 보고 얼마나 덮치고 싶었는 지 몰랐다.
혈향도 혈향이지만 그 냄새 속 깊숙이에 '신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는 걸 마르가리타는 간파할 수 있었다. 주신 아가사의 사랑을 그렇게 진득하게 받은 존재라니. 과연 성자답다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광신도인 그녀는 자꾸만 그 피맛이 보고 싶어졌다.
음마의 본능과 광신도로서의 집착이 레온을 탐하고자 유혹하면서도 성자의 몸을 상하게 할 수는 없다는 모순된 사고가 그녀를 심란하게 했다. 이단심문관 시절, 동료이자 남편이 되었던 소인(드워프) 이단심문관도 체력이 장점이었던 남성이었으나 결국 자신의 흡정을 견뎌내지 못하고 복상사하지 않았던가.
성자를 복상사 시키는 희대의 마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마르가리타는 손수건을 자신의 인중에 파묻고 혈향을 가득 맡으며 남성에게 비비듯 다리를 꼬고 손가락을 본디지 안으로 넣어 꽃잎을 쑤신다.
찌걱찌걱, 찌걱, 찌걱, 찌극.
"아아. 성자님…. 성자님, 성자님, 성자님, 성자니이이임………!!"
신의 사랑을 진득히 받는 그의 피맛을 맛보며 자궁으로 받아 내는 정액맛은 얼마나 황홀할까.
있어서는 안 될 미래를 망상하며 이단심판관은 홀로 객실에서 저녁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자위를 반복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