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스위치 이단심판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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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제의 비밀기지는 대박을 터뜨렸다. 성검 엑스칼리버라는 희대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잠재된 장비를 득템할 수 있었지만 그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라 치고 그 외에도 건국제가 사용하던 매니악한 장비들이나 그녀가 수집한 귀품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거다.
당장에 공간확장 주머니를 챙겨와 쓸만하다 싶은 건 모조리 챙겼고 이득은 쏠쏠했다. 선배가 쓴웃음을 짓고 검집에 담긴 아르미사엘이 웅웅 울어댔지만 쿨하게 무시……까지는 아니고 살짝 꺼내 염화를 개통하고 투정을 받아주었다.
죽어서 이 보물을 전부 나한테 넘긴 녀석인데 대우가 심하면 좀 그렇지 않은가.
본녀 속상해! 계약자 저주할 거야!
"그래. 그래. 우리 아르미사엘 원하는 거 다~ 해."
죽어서 남기는 물품들이 이렇게 호화스럽다면 원한을 담은 저주스러운 톡 쏘는 발언 정도야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장비들도 매니악하긴 하지만 하나 같이 게임으로 치면 전설 등급 장비 판정을 받을 법한 것들이고 소비품도 만만치 않게 귀한 것들이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한다면 여분의 목숨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전설의 포션인 엘릭서가 두 병이나 있었고, 모유생성 및 정력증가 효능을 가진 세계수의 과실은 무려 세 개나 있다.
엘릭서는 일단 킵이다. 그냥 먹으면 환골탈태 수준으로 몸이 정화되서 경지가 껑충 오를 수도 있지만 목숨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세계수의 과실은 곧장 분배할 생각인데 아비 누나랑 티타니아는 이미 모유가 나오는 여성들이었다. 덕분에 두 개는 앨리스와 아르잔느에게 선물한다 쳐도 남은 하나가 내 고민을 가증시켰다.
'이걸 내가 먹어? 아껴?'
절륜해지는 건 좋지만 선배의 조언에 따라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연금술'을 실천하면 정력증가만이 아니라 자지가 한 층 더 커질 수 있다고 하잖은가. 문제는 그 재료가 고위요정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기에 지금 먹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이프리트에게 먹일까 싶었지만 정령이 세계수의 과실을 먹는다고 모유가 나올까?그리고 미안한 말이지만 설사 유선이 활성화되고 모유가 나온다고 해도 그 껌딱지만한 가슴에서 많이 나오기는 할까 싶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모르면 척척박사인 선배한테 물어봐야지. 오래 살았던 데다가 정령왕과 섹스를 시도한다는 선구자에게 묻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래서 물어봤더니 정말로 대답이 나왔다.
후배.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정령에게 세계수의 과실을 먹인다고 모유가 나오진 않아. 정말로 서글픈 현실이지. 정령의 모유를 먹을 수 없다니.
"크윽. 세상은 이리도 비참한 건가."
……본녀는 이런 변태들과 천년건국을 하고, 어둠의 계약을 맺은 것인가.
너 같은 변태에게 듣기는 싫은데.
"그나저나 선배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거야?"
이미 내가 시도해봤거든.
오우. 나보다 용감하게 세계수의 과실을 낭비한 용자가 여기에 있었다. 정령왕과의 섹스가 위험할 지도 모른다는 점을 감수하고 땅의 정령왕과 섹스를 하다가 좆이 짓눌려서 고자가 된 선배다운 행동력이었다.
세계수의 과실이 유샘을 만들어 주기는 하지만 그건 신체를 강화하면서 생기는 긍정적인 부가 효과 중 찌꺼기로 인해 생기는 하나의 결과물에 불과해. 그런데 정령은 세계수의 과실을 먹으면 99.9%로 흡수해서 찌꺼기가 하나도 없거든. 덕분에 유샘도 만들어 지지 않는 거지.
"정령왕은 임신이 되잖아. 그런 데도 인체적 문제로 안 된다고?"
생식기관만 물리계에 가까워서 그런 거야. 정령계가 판단하길, 가슴은 임신을 해서 정령을 낳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결론을 낸 거지.
"정령계도 그렇게 안 봤는데 참 쪼잔하네."
킥킥.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
티키타카가 잘 맞는 기분. 역시 선배는 나랑 잘 맞는다니까. 살아있을 때 만났다면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을 거라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
저 둘에 비교하면 본녀는 아직도 어둠의 탐구자로서 먼 것 같구나….
반면에 그런 우리를 볼 수 있는 제3 자는 질린 기색이 가득한 어조로 중얼거렸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보다는 네가 더 변태거든?
엘릭서는 일단 꿍쳐놓고 세계수의 과실을 챙긴 나는 방을 나섰다.
"백작님. 볼 일을 다 마치셨습니까?"
"응, 세하스. 날 기다린 거야?"
"네. 슬슬 저녁시간이 되어 가 알려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주방 쪽에서 요리가 거의 끝났다고 전달이 왔거든요."
"그래? 고마워."
그러고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챙길 물품을 골랐다. 쇼핑은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하더니 정말로 시간이 삭제됐다. 그만큼 이득도 있었지만.
"마님들은 먼저 식당으로 가셨습니다. 바로 가시겠습니까?"
"응. 그녀들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잖아."
"네, 알겠습니다."
단조로운 대답이었지만 풋풋하 남녀의 연애를 보는 시선으로 흐뭇한 눈길을 보내는 세하스. 아니, 풋풋한 연애로 보기에는 여자만 세 명이지 않나.
이 시대의 사람에게 남성 귀족의 연애사는 여성이 여럿인 것도 흔한 일이니 이해 못할 건 없다만.
'그럼 세계수의 과실은 식사가 끝난 후에 얘기해서 줘야겠네.'
밥 먹으면서 모유가 나오게 해주는 열매를 설명하는 것도 좀 뭐하지 않은가.
귀족의 식사는 언제나 필요한 물건을 대령할 수 있도록 시종이 대기하는 법이다. 집사든, 시녀든 사용인이 식탁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석상처럼 예절을 주입된 자세로 서서 말이다. 그런 곳에서 모유니 뭐니 하는 얘기를 꺼내는 건 그냥 씹변태 귀족이다. 귀족으로 임명을 받고서 저택에서 보내는 첫 저녁식사에서 능욕 잘 할 것 같은 귀족으로 인상을 남길 수는 없었다.
그들의 고용주로서 멋있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그리 생각하며 세하스를 따라 당당히 식당으로 발길을 향했다.
…계약자의 모습부터가 이미 금태양이다만?
아니, 이 건국 시절의 아낙은 그 단어를 어떻게 아는 거요.
***
새로운 고용주가 아내들(예정)과 왔다는 소식에 저택 내 주방의 요리사들이 힘 좀 썼는 지 식탁은 풍요로웠다.
훈제오리에서 열기가 피어오르며 솔솔 풍기는 향부터 다채롭게 준비된 야채요리들, 그뿐만 아니라 알코올이 그리 높지 않아 흥을 돋게 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포도주까지. 공작가 별장에서의 요리가 나쁜 건 아니다. 그야 공작가 소속이라고 요리사들 또한 현대로 치면 별을 달 셰프 수준이고 실제로 음식들도 맛이 일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의 요리사들은 그들보다 별이 하나는 더 많은 급으로 추정됐다.
"와아."
"하아아. 맛있네."
"냠냠."
황성에서 요리도 먹어본 여인들이 맛있다는 듯 저녁식사를 흡입하는 속도로 빠르게 해치운다. 원래 수인답게 신체활동량이 많아 식사량이 많은 아비 누나와 아르잔느는 물론, 여기사로서의 단련과 압축형 근육의 유지를 위해 여성 치고는 대식을 하는 앨리스도 양볼을 부풀리고 오물오물거렸다. 마치 먹는 모습이 아기새 같아서 귀여웠다는 건 비밀이다.
본녀도 먹고 싶어. 히잉.
페하. 죽었으면서 식욕이 뭐 아직도 유지되는 겁니까? 체통을 좀 지켜요!
유령은 체면치레할 필요 없잖은가!
……어?
말빨로 패배하는 선배. 건국제의 궤변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니 생전에 고생 꽤나 했겠구나.
"그런데 여기 요리사는 뭐 하던 사람인데 궁중요리사만큼 실력이 좋은 거람?"
"전직 궁중요리사랍니다."
"…깜짝이야."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세하스가 내 혼잣말에 대답해주었다. 갑작스런 접근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의 대답을 듣고 나니 납득이 갔다.
건국제의 저택으로 황실 대대로 내려온 별장인 만큼 늙어서 은퇴한 황실의 고용인들이 이곳에 와서 여가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어떻게 보자면 블랙기업일 수도 있지만 좋은 일거리가 별로 없는 이 시대의 관점으로 보자면 복지가 좋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들 방은 정한 거야?"
"네. 여기 없는 티타니아 언니의 방까지 미리 정했습니다."
오리 닭다리를 솜씨 좋게 식칼로 분해를 선보이며 살코기만 발라 먹는 앨리스가 빠르게 씹어서 먹는다. 먹으면서 말하는 건 식사예절이 아니니까.
"언니동생 순서대로 좋은 방부터 갖기로 했습니다. 제가 막내라서 4번째로 좋은 방입니다."
"뭐… 사실 열 개 중에서 다섯 개 정도는 그냥 좋은 방이라서 거기서 거기라 그닥 차이는 없지만."
"그건 그래요."
흐음. 방이 제법 좋은 건지 여자들의 평은 나쁘지 않았다. 굳이 내 방에서 밤을 보내는 게 아니라 나중에 따로 찾아가서 관계를 맺을 때가 기대된다.
개인의 방에서 관계를 가지면 색다른 분위기 속에서 할 수 있을 테니까. 가끔 산책로에서 기막 치고 야외 야스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아이 형수님을 엔티알 백작성 곳곳에서 따먹으면서 스릴을 즐겼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흑마법사 조지고 쉬……지는 못하겠구나. 거대괴수가 찾아올 거라는 미래가 아직 남아 있으니까.
어쨌든, 그것만 끝내면 평화로운 하렘 라이프만이 남는다. 부디 그 미래가 최대한 빨리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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