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착정마(馬)왕 성기사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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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프리아포스 자작가의 리모브 프리아포스라 한다. 야만인인 네 녀석 따위가 용살자라는 유명세를 얻게 된 건 네 놈한테는 아까운 윌리엄스 상급 수녀가 공로를 넘긴 것 때문이겠지."
"……."
참으로 대단하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슬쩍 주변을 둘러 보았다. 혹여 프리아포스 자작이 있으면 이 광경을 보고 뭐라 생각하고 있을까 싶었거든.
이 리모브란 미친놈이 황제폐하가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준비한 연회장에서 생각없이 그걸 부정하는 것부터 공작가 출신인 내게 야만인이라고 외친 것까지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 걸까. 심지어 귀족도 아니고 귀족의 자제다. 귀족의 자제는 엄연히 제국법에 따르면 귀족위를 계승받는 게 아닌 이상 귀족이 아닌 셈이다.
자작이 직접 나서서 지랄을 떨어도 황제의 눈에 나서 골치가 아플 텐데 고작 그 자제가 저런다? 어떻게든 가문에 망조를 들게 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니, 진짜 자기 가문에 원수라도 있는 거 아니야?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킹심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둘러 보아도 경악하거나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희희낙락하는 이들은 있어도 아들을 보는 눈빛으로 이 녀석을 보는 귀족은 없었다. 그렇다는 건 가주의 허가도 받지 않고 망둥이 한 마리가 연회의 물을 흐린다는 건데.
"그러니 네 놈은 나의 결투를 받아라! 내가 직접 네 녀석의 그 추잡스런 민낯을 까 주겠다!"
"진정해, 이 친구야."
"건방진 녀석! 귀족에게 야만인 따위가 허물없이 대하다니! 버릇이 아주 더럽군!"
"……."
슈바, 그럼 난 뭐 귀족 핏줄 아닌 줄 아나. 게다가 엄연히 가주가 아닌 이는 귀족이 아니거늘, 이 새끼는 그냥 뇌에서 필터링을 하지 않고 내뱉으며 날 모욕했다.
그 무식한 언사에 주변 귀족들마저 수군댄다. 청각에 집중하니 품격이 떨어진다느니, 내 실력을 볼 수 있겠다느니 귓속말을 나누면서 나오는 한 가지 결론은 여기 끼어들어 저 불쌍한 중생을 구하려는 이는 없어 보인다는 거다. 그럼 눈 앞의 저 무식하고 귀족 예법이라고는 국에 말아먹은 망종은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까.
내가 꼴이 이래도 20세의 성인이다. 미성년에게 결투신청을 받았다고 용살자인 내가 진심을 내보이는 것도 웃긴 일이고, 그렇다 해서 거절하면 허명이라며 호사꾼들이 까내리며 조롱을 던질 텐데 그럼 아비 누나까지 거짓말쟁이로 몰릴 수 있다는 거다.여기서 내가 결투를 거절해도 문제고 받아들여도 문제인 상황인 것이다.
어른스럽게 대처했다고 소문이 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잠깐 결투 전에 말할 게 있어. 내가 용살자임을 목격하고 증인이 되어 준 사람은 황실 기사단 단장과 아가사 교단 최강의 전력인 성룡 기사단의 단장이자 추기경인 분이시지. 그 외에도 목격하여 증인이 될 이들이 한 트럭…… 아니, 작은 성 하나 쌓아서 인부들의 숫자와 비슷할 정도야. 그런데 너는 그걸 부정하면서까지 나한테 결투를 거는 거야?"
"물론이다! 네 놈의 그 비리비리해 보이는 체형을 보면 누가 용살자라 믿겠냐?"
"그렇긴 하지."
시원하게 인정했다. 성장기가 끝났다고 추정돼 150cm도 되지 못해 149cm인 내 쇼타 체형은 검이나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지 되려 의심이 들게 할 것이다.
하지만 무협에서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무림에서 노인, 여자, 아이를 조심하라고. 그건 이 세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듯 아이 체구인 나와 그림자 여왕으로 추정되는 하사나 사바흐가 괴물에 가까웠으며, 내 여자들의 무력은 하나 같이 상식의 범주에서 벗어난 강자들이고, 노인들은…… 이 야겜도 은거기인 설정이 많긴 한데 나는 모르니 굳이 찾지 않으려 들지 않아서 이건 모르겠네.
어쨌든, 고수들은 다 그런 이들을 경계하며 허투루 보고 방심하지 않는 법인데 얘는 목 위로 머리는 장식이고 눈만 작동하는 모양이다.
"내가 천박한 네 놈을 쓰러뜨리고 윌리엄스 상급 수녀에게 진실을 보여 주겠다!"
"……."
이 새끼, 그렇게 외치면서 눈깔은 아비 눈나의 풍요로운 유방에 꽂혀 있었다. 아무래도 아비 누나 가슴 보고 반해서 지랄발광을 떨며 세상 하직서를 내고 싶은 친구인 모양이다.
스트레스 지수가 상승하는 걸 느꼈지만 최대한 좋게 타이르고자 했다.
장인어른께서 개최한 연회를 이 능지 떨어지는 멍청한 애새끼 때문에 망치면 무슨 면목으로 앨리스의 얼굴을 보겠는가. 당장 앨리스가 저 망나니를 도마 위 참어회처럼 썰어 버리고 싶어하는 살기가 흘러 나왔지만 나와 장인어른을 배려해 최대한 참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자. 잘 들어 보라"
"하! 야만인 새끼 주제에 그 곱상한 외모로 참으로 많은 여인들을 울렸군. 잘 보니 곁에 있는 말 수인과 여인도 한 미모 하잖아? 잘 됐어. 결투로 내가 이긴다면 그 여자들도 받아가도록 하지!"
"……."
연회장의 분위기가 싸~해진다. 아무리 귀족 간의 결투라 해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으며 좀 더 넘어가면 목숨을 잃어도 무방한 팔부능선이 있는 법이다. 귀족 사이의 우아하고 품위가 있는 결투답게 내기를 하는 게 그리 드문 건 아니지만 거기서 대놓고 여자를 달라고 하는 미친놈은 없다.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로 예의라는 걸 눈꼽만큼도 모르는!"
"잠깐만, 아비 누나. 내가 나설게."
"…레온?"
참기 힘들었는지 가장 신분이 높은 아비 누나가 뭐라 하려고 했지만 내가 손을 들어 누나를 만류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당연히 나보다 키가 큰 망나니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나는 싱긋 웃었다. 그 미소에 녀석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 녀석, 설마 내가 결투를 받아들이고 여자들을 건네받는 상상을 하는 건가? 존나 불쾌하네.
화아악!
진심을 가득 담아 전력으로 살기를 내뿜었다. 연회장에 심각한 살기가 풍기자 홀의 문이 열리고 경비를 서던 기사들이 들이 닥쳤지만 마찬가지로 연회장에 들어오자 마자 다른 귀족들처럼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옴짝달싹 못하게 경직됐다. 진득한 살기에 그들은 입도 벙긋거리지 못했다.
이곳에서 살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건 그나마 한줌의 이성이 남아서 살기를 보내지 않고 흘러가도록 세밀하게 제어해 그 범위에서 벗어난 내 여자들뿐이다.
"하하하. 이런, 정신 나간 망둥어 같은 녀석을 봤나. 분명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녀석이 틀림없어. 그렇다면 성흔 보유자로서 신의 은혜를 입은 내가 자비롭게 직접 그 추잡하고 썩어빠진 성격을 교정해 주는 수밖에 없겠네. 진짜 고맙지? 무려 성흔 보유자의 예절 교육이라고, 응?"
"……."
"왜 대답이 없어, 이 친구야."
녀석은 내 살기 때문에 대답을 못하는 거라며 억울하다고 항변의 시선도 못 보냈다. 그야 내가 눈앞의 이 녀석만큼은 집중해서 살기를 보내고 있었고, 리모브 어쩌구포스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동공을 쉴 새 없이 떨어대는 게 심장마비가 오는 건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들 정도로 안색히 시퍼렇다.
꽈아악.
무형검의 묘리로 무형강기만으로 몽둥이를 하나 만들어 손에 쥔다. 손아귀에 들어가는 힘 때문에 형태가 없는 무형몽둥이(?)가 살짝 일그러질 정도.
그리고 오러의 감각을 떠올리며 성흔의 신성력을 무형몽둥이에 비슷한 원리로 담는다. 성기사들이 홀리 오러가 내 무형몽둥이에서 솟구치더니 눈이 부실 정도로 우람함을 뽐냈다. 심지어 그 안에 담긴 효능은 홀리 오러라는 게 믿기지 않는 막대한 치유력이었다.
홀리 오러는 견고함을 상징하는 오러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담긴 건 순수하게 치료의 의미로 신성력을 주입하여 성질을 변질시킨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잘못하시면 사랑의 훈육봉을 쥐고서 날 후려쳐 반성시켰지."
전생의 얘기다. 현생의 아버지인 공작이 이 얘기를 듣는다면 이 황당무계한 소문에 억울하다며 찌에 낚인 활어마냥 팔딱팔딱 뛰며 억울함을 호소할 거다.
"한 때나마 망나니가 될 뻔한 나는 그 매질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그러니 나도 이 성스러운 훈육봉으로 너에게 예의란 걸 교육시킬까 한다. 그래도 크게 다치지는 않으니 걱정 마라. 이 홀리 오러에는 갱생했다고 생각되면 나는 이 잔혹한 고무ㄴ…… 교육의 매질을끝낼 생각이니까."
우람한 무형몽둥이로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라는 전문가의 자세로 나는 망나니에게 다가갔다.
"아니, 결투를 하고 명예를 얻고 싶으면 그린 스킨의 영역에 가서 몬스터 사냥이라도 알차게 해. 왜 남의 여자를 탐 내? 생각을 좀 하라는 의미에서 일단은 대가리."
빡!
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꺼어어억!"
숨 넘어가는 비명이 리모브의 입에서 터진 풍선에서 바람 나오듯 연회장에 울려퍼진다. 살기에 짓눌려 있던 생존본능을 넘어서는 고통에 리모브는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
"대가리. 대가리. 대가리. 뚝배기이이잇!"
빡! 빡! 빡! 빠아악!
일단이라고 한 것 치고는 뚝배기만 계속 때렸다. 어차피 홀리 오러에 담긴 치유능력이 대가리에 그대로 적용되어 두개꼴이 진짜 깨질 일은 없을 것이다. 회복불능 수준으로 깨 버리면 모를까.
"끅! 꺽! 컥! 케흐룹붸뷉켁."
입에서 게거품을 무는 리모브.
흠. 내 예상보다 녀석의 몸이 튼튼하질 않았다. 이대로라면 내구 이상의 데미지로 뚝배기가 진짜 깨져서 회생불가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럼 튼튼하게 만들어 줘야지.
주저앉아 부르르 떠는 녀석의 정수리에 손을 얹고 신성술 버프 중 최고의 스킬을 사용했다.
"[블레스]."
힘 강화, 반사신경 강화, 체력 회복력 상승 등등 수많은 버프를 한 번에 내리는 블레스. 블레스 뽕을 맞은 리모브는 게거품이 멎더니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녀석은 내 얼굴을 보자 마자 넙죽 엎드려 도게자를 펼쳤다.……칼각 같은 도게자네?
"하르트 공자니이이임!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용!"
"아가리!"
뻐걱!
용서해달라고 빌기 전에 아가리를 털었다. 다행히 블레스가 효과가 있는 건지 불길한 소리가 났음에도 옥수수가 뽑히는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갑자기 얻어 맞은 녀석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날 쳐다볼 뿐이지.
"아악?! 어, 어째서…?"
"아가리에 냄새가 나네. 양치질을 똑바로 안 한 모양이야. 내가 교육의 매질로 그 냄새까지 제거해 줄게."
"아니, 입냄새는 상관이 없!"
"아가리!"
뻐걱!
"아가리! 아가리! 아가리! 아가리!"
"끄워어어어어얿………!?"
아가리 신공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뻐걱!
***
팔부능선을 넘었으니 그만큼 정성을 들여 손수 어루만져 주었고 막타로 "가랑이!"라고 외치며 무형몽둥이로 후려쳤다. 알이 콰직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연회장의 남성들은 그 금찍한 광경만큼은 보기 힘들다는 듯이 내 살기조차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사실 막타에서 홀리 오러를 끄고 치유효과를 지웠기에 녀석의 고환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정확하게는 고간을 깨고 홀리 오러로 껍데기만 치료하고 정자를 생산하는 부분에서 껐기에 녀석은 이제 씨 없는 수박이 됐다.
그렇게 살기를 풀어 연회장을 짓누르던 압박감을 지우고 공들여 패느, 아니… 교육하느라 흘린 땀을 소매로 훔치며 상쾌한 기분을 맛보며 말했다.
"하하. 이 친구, 드디에 갱생한 모양이네."
"끄르르륿……."
"앞으로도 이렇게 착하게 살아, 이 친구야!"
"……꺼어어억."
숨이 넘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지만 괜찮다. 본 드래곤을 조졌던 막대한 성흔의 신성력을 오롯이 이 녀석한테 다 쏟아 부었는 데 무슨 문제가 발생한다고. 심지어 다치지 말라고 블레스까지 걸어 튼튼하게 만들어서 교육했다.
녀석이 내가 얼마나 공들여 세심하게 교육했는지 알면 기뻐서 눈물춤을 추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렇게 연회장에 자유가 찾아오자 마자 한 중년이 성큼성큼 투박한 발걸음으로 접근했다.
"이보시오, 하르트 공자! 이게 무슨 무례요?"
"댁은 뉘슈?"
"……."
복장만 보면 귀족인 걸 빤히 알 텐데 구수한 말투로 너 같은 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주니 중년의 안색이 수치심에 붉으락푸르락 변한다.
"나는 그대가 개 패듯이 팬 리모브의 아버지인 프리아포스 자작이요! 어찌 결투를 신청한 내 아들을 합법적인 절차도 없이 이렇게 잔혹하게 팰 수가 있소! 용살자가 된 황도의 영웅이라 들었건만, 이거 실망이로군!"
"아하."
이제야 상황이 좀 이해가 가네. 이 귀족 새끼는 누구한테 사주를 받은 건지 모르겠지만 지 망나니 아들을 버리는 패로서 내게 합법으로 정치적 압박을 가하기 위해 이러는 거다. 용사가 이렇게 사람을 패도 되냐는 식으로 몰아서 말이다.
내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 미소를 본 프리아포스 자작이 움찔했지만 금방 다시 기세를 차리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대가 아무리 공을 세웠어도 귀족도 아닌 이가 폐하께서 개최한 연회장에서 폭행을 행사하는 건 불법이오! 그러니 어서 얌전히 경비들에게 끌려, 가…."
"야."
나는 살기를 쏘아 그를 경직시키고는 멱살을 잡아 아래로 내려 눈높이를 맞췄다.
"자식의 죄는 잘못 가르친 부모도 책임이 있데."
"뭐, 뭐요?"
자작의 눈에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동공이 떨려댔다. 곧 자신에게 들이닥칠 미래를 떠올린 게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다시 손에 무형몽둥이를 만들어 쥐고는 홀리 오러를 일으켰다.
"당신도 맞자."
나는 남녀평등, 장자(?子)평등이다.
"블레스."
"아니, 신성술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게 아닌!"
"대가리!"
빠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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